- 10권 12화
237화
“환영을 이런 식으로 해도 되는 거야‘?”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에 셀리우스와 고든이 서로를 바라보 고 있을 때였다.
쌔액-!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세 상이 어둠으로 뒤덮인다.
정확하게 말해서는 쏟아지는 화 살 비에 해가 가려졌다.
그야말로 폭우와 같은 화살 비 속에서 있던 고든의 얼굴이 경악 으로 물들었다.
‘죽, 죽는다!’
끔찍한 죽음을 떠올린 고든이 몸 을 웅크리고는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그러나 뭔가 이상했다.
예상했던 것과 달리 조금의 고통 도 느껴지지 않았다.
“..r
어느새 마차의 위로 뛰어오른 서 연이 쏟아지던 화살 비를 걷어낸
것이었다.
직후, 가소롭다는 듯 미소를 흘 린 서연이 풀숲 너머를 노려보며 입을 연다.
“한번 붙어보자는 거지?”
나지막한 음성.
하지만 귓전을 파고들고 뇌리에 전해진다.
수풀 너머에 숨어있던 자에게도 똑똑히 전해졌는지, 곧장 대답이 돌아온다.
“사과하도록 하지, 처음 보는 얼굴인데 제법 강해 보여서 당연히 제국의 사냥개가 따라붙었다고 생
각했거든.”
수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내 가 고개를 돌리어 세 자루의 칼이 교차하고 있는 문신을 보여주며 걸 어 나온다.
“슬레이어님?”
교차하는 세 자루의 칼의 문신은 틀림없는 슬레이어의 증표였다.
실제로 고든의 물음에 사내가 씨 익 미소를 홀리며 고개를 주억인다.
“자네가 차기 슬레이어 후보인 셀리우스의 수송을 맡은 고든 팀장 인가?”
레지스탕스는 기본적으로 비밀
조직으로 이루어져 있다.
같은 레지스탕스의 단원끼리도 서로를 알아볼 수가 없다는 말이었다.
그렇기에 이렇게까지 상세한 정 보를 알고 있다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네, 슬레이어 후보 수송 팀장역 을 맡은 고든이 슬레이어님께 인사 올립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고든의 모습 을 곧장 셀리우스가 따라 했다.
“평단원 셀리우스가 슬레이어님 께 인사 올립니다.”
“살아서 만날 수 있어 실로 반갑 군, 나는 슬레이어, 힐트 레벤헬이 다. 그런데……
입가로 웃음을 그리고 있던 힐트 의 눈동자가 마차 쪽으로 향한다.
“뒤에 계신 분들은 누구시지?”
앞서 서로 공방을 주고받아 봤기 에 확신을 할 수 있었다.
강한 힘을 가지긴 했지만, 다루 는 마나 자체가 용족과 관련된 이 들은 아니다.
그렇다고 슬레이어 중에 저런 인 물은 없었다.
“데헤르트를 처치하고, 저를 비 롯한 식구들을 구해주신 분들입니 다.”
힐트의 눈빛이 빛난다.
‘ 어쩐지……
고수들은 한 수만 겨루어 보는 것으로 안다고 하지 않는가?
단 한 번의 충돌이었지만, 여간 내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동시에 스스로의 행동이 부끄러 웠다.
“저희 단원들을 구해 준 은인에
게 무례를 저질러 버렸군요. 정식 으로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아니에요,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는 법이죠.”
“하하, 넓은 이해에 감사드립니 다. 입은 은혜는 반드시 갚도록 하 겠습니다.”
힐트의 말에서연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럼……. 굳이 미룰 게 뭐 있 나요? 지금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 어요.”
“따로 바라는 게 있으십니까?”
“성지로 가는 법을 알고 싶어
요.”
서연과 여동빈은 이곳에 오기 전 에 처음, 셀리우스에게 정보를 듣 고 빠르게 아인그라드에 다녀왔었다.
분주히 움직이면서 숲속을 꼼꼼 히 뒤져 보았지만, 성지로 가는 입 구의 흔적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한시가 급했기에 그런 곳에 발 묶여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 성지로 가본 적이 있는 사내에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슬레이어들은 모두 성지에 갔다
온 것으로 알고 있어요, 부디 저희 에게 성지의 입구의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서연의 이어진 질문에 힐트의 눈 동자가 가늘어진다.
레지스탕스의 단원들을 구해주긴 하였지만 그렇다고 신원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조심스레 행동해서 나쁠 것은 없 었다.
“……혹시나 하는 이야기입니다 만, 목적이 무엇입니까?”
“가족을 만나려구요. 친오빠가 거기에 있거든요.”
즉각 튀어나온 대답과 흔들림 없 는 눈동자.
거짓을 고하는 것은 아니었다.
‘딱히 문제가 될 것은 없겠군.’
오히려 이 정도의 전력이 성역을 어지럽혀 준다면 레지스탕스의 입 장에서도 상당한 이익이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저 부탁올 들 어줄 수는 없었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 당장 성지로 갈 방법은 존재 하지 않습니다.”
“정말로요?”
“네, 반대쪽, 그러니까 성역 쪽에서 문을 닫아 버렸거든요.”
“그러면 성지로 들어갈 방법이 아예 없는 건가요?”
서연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가 던 찰나, 힐트의 입이 열린다.
“지금 당장은 없지만, 완전히 가 는 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 방법이란 건……?”
힐트가 안주머니에서 자그마한 비늘 한 조각을 꺼내어 보이며 입 을 열었다.
“이건, 수호룡 타키온의 비늘입
니다. 이 매개체를 이용한다면 강 제로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겠죠.”
희망을 본 서연의 눈동자가 빛난 다.
“지금 당장 사용 가능한가요?”
“죄송하지만 지금은 안 됩니다.”
힐트는 쥐고 있던 비늘 조각을 품에 집어넣으며 말을 이어갔다.
“저희도 계획이란 게 있어서 당 장은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신호를 받은 후에 넘어갈 때 동행 할 수는 있습니다.”
“신호가 올 때가 언제죠?”
“정확한 날짜는 저도 알 수 없습 니다만, 그래도 머지않았을 거라고 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원했던 대답은 아니다.
하지만 힐트의 도움을 받는 것을 제외하고는 성역으로 들어갈 뾰족 한 수가 없었다.
다른 방도가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서연은 고개를 들어 힐트 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한다.
“그럼, 약속해 주세요. 그때 우리 도 같이 데려가겠다고.”
“괜찮겠습니까? 여태 없던 대전 쟁이 될 것입니다. 목숨을 보장할 수 없을 정도로요.”
고민은 사치다.
아니, 큰 싸움이 있다면 더더욱 서준과 만나야만 했다.
“네. 괜찮으니까, 꼭 데려가 주겠 다고 약속해요.”
확고한 서연의 의사를 확인한 힐 트가 고개를 주억인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따라오시죠, 신호가 올 때까지 은신처에서 대기 하고 있어야 하기에.”
직후, 앞서나가는 힐트를 따라 서연의 일행들이 걸음을 옮겼다.
♦ * *
아름다운 푸른빛이 퍼져나가는 동공 내부.
요정이 살 것 같은, 반짝이는 동 공의 중심에는 작은 균열이 있었다.
정말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균 열이었다.
내부가 보이지 않을 만큼 짙은 푸른빛.
아름다움에 당장이라도 현혹이 될 것 같았다.
손을 뻗으면 가질 수 있을 것 같 았기에 저도 모르게 손이 움직이고 싶을 정도였다.
푸른 균열의 주변에 타키온이 둘 러놓은 수십 개의 마법진이 펼쳐져 있지만 않다면 말이다.
“성역으로 출입할 수 있는 워프 들은 모두 폐쇄했겠지?”
첫 번째 사도, 알드노아는 원형 의 테이블에 모여 있는 위디아와
멜디아를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를 흘렸다.
무거운 분위기 속, 위디아와 멜 디아가 곧장 고개를 주억인다.
“명령하신 대로 모두 닫아뒀어 요.”
“알고 있겠지만, 타키온 님이 돌 아오시기 전에 놈들을 확실히 정리 해둬야 한다.”
겁을 집어먹은 것인지, 말을 내 뱉고 있는 알드노아의 목소리가 떨 려온다.
위디아와 멜디아의 상태 또한 마 찬가지 였다.
둘의 몸은 사시나무라도 된 것처 럼 떨리고 있었다.
애초에 이건 단순히 사도의 죽음 이 문제가 아니었다.
만약 이 일들이 바깥에 새어 나 간다면 용족, 타키온의 명예가 떨 어지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새로운 신앙이 퍼 져나가는 파탈라 대륙에 좋지 못한 변화를 가져다줄 것이 분명했다.
당연히 사도들에게는 끔찍한 형 벌들이 내려질 것이다.
최소한 ‘죽음’이라는 형벌을 피하 기 위해서는 벌어진 일들을 수습해
둬야만 했다.
그렇기에 지금 해야 할 일은 명 백했다.
침입자들을 죽이고 떨어진 명예 를 되찾는 것.
“남아있는 전투의 흔적으로 보았 을 때, 적은 바그너와 의문의 사내 한 명, 그리고 사라진 나라연천이 놈들에게 합류했을 가능성이 있다 고 봐요.”
이어지는 잿빛의 로브를 걸친 위 디아의 보고에 알드노아가 턱에 손 을 괸 채로 고민에 빠진다.
“상상 이상의 전력이군.”
당황스럽긴 하였지만, 놀랄 것은 없었다.
“어차피 놈들이 노리는 것이야 뻔하지.”
일전에도 바그너가 수차례 노렸 던 전적이 있었기에 확신을 할 수 있었다.
놈은 반드시 중심부에 있는 결계 석을 파괴하려 할 것이었다.
“곧장 제가 수비에 나서도록 하 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 오히려 바그너 가 결계석을 편히 파괴할 수 있도 록 길을 열어주도록 해라.”
“ 네?”
되묻고 있는 쪽빛의 로브를 걸친 멜디아의 모습에 알드노아가 비릿 한 미소를 흘린다.
“놈이 결계석을 파괴한다는 것은 우리 또한 마나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된다는 거지.”
알드노아의 손끝에 푸른빛 마나 가 어른거린다.
넘실대는 마나에 멜디아의 입가 에도 미소가 흐르기 시작했다.
“저희 또한 제약이 사라진다는 거군요.”
“바로 그거야, 그리고 여기 모여 있는 우리는 고작 백 년 남짓밖에 살아오지 않은 사도들과는 격이 다 르지.”
오랜 세월을 살아온 만큼 기본적 으로 마나의 양, 다루는 기술이 일 전의 사도들과는 궤를 달리했다.
마나의 제약이 사라지게 된다면 압도적인 힘, 파괴를 가지게 된다 는 것이었다.
“결계석이 파괴되면 이 동공과 함께 놈들을 파괴해버린다.”
알드노아의 계획을 듣고 있던 위 디아와 멜디아가 난처한 표정을 짓
는다.
“좋은 작전입니다만……
“타키온 님께서 노하실 겁니다.”
성역이라 일컬어지는 중앙 대륙 은 드래곤 레어, 타키온의 둥지라 는 게 홈이었다.
그 누구라 할지라도 본인의 집이 훼손되는 것을 좋아할 리가 만무했 다.
“너희들의 머릿속에는 이보다 확 실하면서도 빠르게 놈들을 제거할 방법이 있다는 것이냐?”
궁리해 본다면 잡을 방법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그너가 워낙 조심스럽 고 영악하게 움직이는 만큼 빠르게 잡아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은 없 었다.
“만약 바그너 놈을 잡기 전에, 타키온 님께서 돌아오신다면 그 분 노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
침묵을 지키고 있던 위디아가 얼굴을 굳힌 채로 입을 연다.
“하지만 바그너의 동료로 나라연 천, 상격의 투신이 합류했을 가능 성이 있지 않을……
“벌써 회복을 마쳤을 리가 없 다.”
알드노아가 냉정하게 말을 잘라 낸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타키온이 직접 손을 써, 의지조 차 완전히 꺾어내었다.
그리고 무너진 마음을 일으켜 세 우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다.
기적이라도 일어난 것이 아닌 이 상, 고작 며칠 만에 심마를 털어냈 을 리가 없었다.
‘설사 털어냈더라도……. 그 몸으로 제대로 싸우는 것은 불가능할 터.’
그렇기에 확신을 할 수 있었다.
“바그너와 함께 있는 의문의 존재가 나라연천 놈과 같은 상격의 신이라도 되지 않는 한 변수는 없 다. 아니면 그런 말도 안 되는 일 이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알드노아의 물음에 위디아가 곧 장 고개를 내저었다.
“당연히 그럴 확률은 없죠.”
넓디넓은 우주에서도 상격의 신 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다면 상격의 신도 아닌 놈 들에게 내가 패배할 것이라 생각하 느냐?”
“말도 안 되는 일이죠.’’
위디아는 단순히 아양을 떠는 것 이 아니었다.
오랜 과거, 알드노아가 벌였던 파괴를 직접 두 눈으로 보았던 만 큼, 저도 모르게 마른침이 꿀꺽-삼켜진다.
자연스레 침입자들의 죽음을 떠 올리고 있던 위디아의 입가에 비릿 한 미소가 흐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