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권 20화
220화
옥황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폐안이……. 상처를 입었다고?’
용족(龍族), 그것은 종의 정점에 군림한 존재이자 우주의 균형을 지 키는 수호자였다.
그를 꾸미는 말과 막중한 임무에서도 알 수 있듯, 용족 개개인이 가진 힘은 웬만한 존재 따윈 가볍 게 압도할 수 있을 만큼 규격 외의 것이었다.
실제로, 옥황도 폐안에게 상처를 입히기 위해 대신이 가진 모든 전 력을 퍼부어야 했던 것은 물론, 수 많은 선인의 희생까지도 동반되어 야 했었다.
물론, 폐안도 일전의 전투로 인 해 크게 상처 입은 상태였다.
하지만 서준 또한 만전의 상태라 고 볼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존에 쌓아 올린 격과 힘을 대부분 다 소실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 상황은 대체……?’
인간, 한서준이 가진 격과 힘이
알고 있던 것보다 강했단 말인가?
그건 아닐 것이다.
당시에 내보였던 집념으로 보아 서는 만약 알고 있었던 격과 힘 이 상올 가진 존재였다면 스스로 공간 을 찢고 시간을 되돌려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
서준 또한 규격 외, 재능의 한계 가 인간을 초월한 수준이라는 것뿐 이었다.
‘한서준……. 그는 위험한 존재 다.’
단순히 지닌 재능과 힘 자체도 문제였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서준이 인간이라는 사실 자체였다.
‘인간은 최초로 끝에 닿았던 종 족.’
종족 특유의 적응 능력으로 신격 에 이른 이후부터도 발전이 끝이 없었다.
그렇기에 우주의 비밀을 쥐고 있 는 존재들조차도, 인간이라는 종족 이 가진 가능성을 누구보다도 높게 평가했다.
상위권의 종족들이 인간을 견제 하고 복속시키려 하는 이유였다.
‘두 번째.’
인간으로 대신(大神)의 격을 마 주한 존재.
그는 시간을 역행한 이후, 분명 기존보다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
그리고 더 성장할 것은 분명했 다.
‘먼 훗날의 한서준을 감당할 수 있을까?’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먼 미래를 바라보는 것은 사치다.
지금은 선계를 지켜내야 할 때였
“방심하지 마라! 폐안은 이런 공 격으로 소멸할 존재가 아니니!”
한 손에는 책, 반대편 손에는 신 력으로 빚어진 먹을 머금은 붓을 든 옥황이 서준을 향해 다급한 음 성을 홀린다.
처음 보는 옥황의 다급한 모습이 었지만, 당황할 것은 없었다.
“나도 알고 있으니까, 괜한 걱정 할 거 없어.”
서준 또한 이미 폐안의 힘을 익 히 알고 있었다.
“아니,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르지. 저 포악한 용은 자네가 예상한 그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단 말이네!”
때마침, 정면으로 날아갔던 폐안 이 다시 한번 날개를 펼치며 공중 에 떠오른다.
가슴팍에 벌어졌던 상처는 온데 간데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생각보다 더 튼튼하긴 하네.”
서준이 혀를 차며 이어질 전투를 준비할 때였다.
“나도 합세하도록 하지.”
“다친 몸으로 무리하지는 마라.”
“보조는 충분히 할 수 있을 걸 세.”
서준의 의미심장한 시선이 옥황 을 향한다.
“믿어도 되는 거겠지?”
과거 선계와 서준은 오랜 시간 전쟁을 해 왔다.
그로 인해 수많은 선인의 피가 흘렀다.
남아 있는 감정이 없을 리가 없 었다.
옥황은 입가에 미소를 홀리며 서준을 바라본다.
“오해로 비롯된 것을 누가 꾸짖 을 수 있겠나. 낡아빠진 감정에 얽
매일 정도로 속이 좁지는 않네.”
옥황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만약 폐안이 자네의 존재를 다른 용족에게 전한다면 더 많은 용족이 우리를 소멸시키러 올 것이야.”
“저 폐안이라는 용족을 지금 이 자리에서 반드시 소멸시켜야 한다 는 거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옥황이 정 면을 바라본다.
미간이 찌푸려진다.
“온다.”
짧게 번 시간이 대화로 모두 소 진되었다.
그러나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서준의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가 흐른다.
“조금은 기대가 되는데.”
옥황의 딱딱한 입가로 흐릿한 미 소가 지나갔다.
“말하지만, 상처가 커서 기대하 는 만큼의 힘을 내지 못할 수도 있 네. 미리 사과하지.”
옥황은 전투에 직접 가담하는 싸
움에 최적화된 신격이 아니었다.
물론, 그 정확한 진가는 서준도 아직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입에서 입으로 건너 들 은 정보로는 생사(生死)를 다뤄내 고 신묘(神妙)한 능력을 사용해 적 을 무력화시키는 데 특화된 존재라 했다.
그로 미루어보아 아마도 옥황은 보조 능력이 매우 뛰어날 것이었다.
실제로도 내뱉는 말과 달리, 책 을 펼치고 있는 옥황의 몸 주변에 는 상당한 신력이 넘실거렸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백옥루에서
떨어진 곳에서 싸우고 싶은데 가능 하겠나?”
“ 얼마든지.”
서준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는 다.
옥황이 그 뒤를 빠르게 쫓았다.
용족, 폐안과의 싸움은 단순한 전투가 아니다.
앞으로 싸우게 될 수도 있는, 종 의 정점이라 불리는 용족에 대한 정보 수집전이며 동시에 대신(大 神), 옥황의 보조를 받아가며 싸울 흔치 않은 기회이기도 했다.
운이 좋다면, 또다시 한계를 넘
어설 수 있을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설레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가 흐를 때였다.
“충고 하나 흐}지, 싸움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 좋을 것이네.”
옥황이 굳은 표정으로 서준을 바 라보며 말한다.
그 순간, 둘의 눈앞으로 흑색의 섬광이 쏘아진다.
‘용의 숨결!’
접근을 눈치챈 폐안이 망설임 없 이 가장 강력한 용의 공격을 쏘아 보낸 것이다.
방심을 노린 치명적인 공격인 탓 에서준이 제대로 된 방어를 펼칠 타이밍을 놓칠 때였다.
“일필휘지(一筆揮之), 겁파(幼波)
옥황의 붓이 현란하게 휘저어지 고 책 위에 글씨를 남겼다.
그러자 매서운 속도로 쏘아지던 용의 숨결이 현저히 느려지기 시작 했다.
“ 좋아……
한 번도 본 적 없는 술법이었지만, 어떤 원리로 펼치는 것인지 깊 게 고민하지 않았다.
시간이 없었다.
실제로도 다가오는 용의 숨결이 다시 빨라지고 있었다.
서준은 혼돈의 힘으로 빚어낸 검 을 꽈악- 말아 쥔다.
그리고 날아드는 용의 숨결, 그 핵을 향해 거칠게 휘둘러 낸다.
키직-!
혼돈의 힘이 갈려 나가고 검을 쥐고 있는 손바닥에서는 핏물이 튀 기 시작한다.
계속되는 충격으로 손바닥은 넝 마가 된 지 오래였다.
하나 서준은 망설임 없이 나아가 고, 이윽고 용의 숨결을 반쪽으로 가르는 데 성공했다.
촤악-!
일대가 찢기는 소리와 함께, 강 렬한 기운을 뿜어내던 용의 숨결이 자취를 감춘다.
혼돈의 힘의 응집체라 할 수 있 었던 개벽의 검 역시 그 충격을 견 디지 못하고 흐릿하게 변하며 흩어 진다.
“크읍-!”
거친 숨을 쏟아낸 서준이 손바닥 을 말아 쥔다.
“ 후우......
이어서 수투의 능력, 체내의 내 력을 이용해 쓰린 상처를 회복했다.
이를 지켜보던 옥황의 입에서 경 악이 가득 담긴 말이 흘러나온다.
“대단하군……. 용의 숨결을 정 면에서 베어 내다니.”
용의 숨결은 모든 용족에게 있어 최강의 공격이다.
본래 가진 힘에 따라 다르다고는 하나, 태생이 종의 정점이었기에 기본적으로 차원 하나를 파괴할 수 있는 수준의 파괴를 품고 있었다.
전투 능력이 다소 부족하긴 하 나, 대신에 이른 옥황조차도 용의 숨결에 대항하는 법은 회피밖에 없 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서준은 그를 일격으로 막 아내고, 소멸시켰다.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지 만, 애석하게도 이렇게 감탄을 표 현하고 있을 시간조차도 없었다.
[옥황! 역시나 금기의 힘에 손을 댄 인간 놈과 한통속이었구나!]
어느새 옥황과 서준의 앞으로 무 섭게 날아온 폐안이 거대한 발톱을 휘두른다.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거대하면 서도 날카로운 용족의 발톱이 가하 는 일격은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위 협적인 수준이다.
서준과 옥황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피해내며 자리를 피한다.
“일필휘지, .흥진도래(紅塵到來)!”
뒤이어 옥황의 붓이 휘날린다.
지잉-
무형의 힘이 육신을 옭아매려 했 으나 폐안은 가볍게 몸을 털어내는 것으로 홍진도래를 떨쳤다.
[먹구름.]
동시에 폐안의 주변으로 거대한 흑운(黑#)이 드리운다.
쿠웅, 쿠궁…….
뒤이어,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내 리치는 검은 뇌전들이 세계를 박살 내기 시작했다.
그사이 폐안의 근처로 다가선 서준은 갈라진 비늘 사이에 존재하는 상처 부위를 바라보며 개벽의 검을 다시금 빚었다.
푸욱-
휘둘러진 개벽의 검이 상처를 파 고들고, 헤집어 낸다.
[크아아악-!]
비명을 내지르고 있는, 폐안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치솟는다.
그러자 검게 물든 흑운이 빠르게 거대해지고는 선계를 뒤덮기 시작 했다.
[소멸시켜 버리겠다!]
개벽의 검으로 폐안의 피부를 찢 던, 서준의 표정이 석고상처럼 굳 어진다.
구구구구…….
화염이 불타오르고 있는 거대한 운석이 지면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
었다.
“옥황!”
다급한 부름에, 쏟아지던 벼락들을 피해 밀려나 있던 옥황이 서준 의 옆으로 다가온다.
“지금 몸 상태로는 늦출 수 없 다.”
“아까 용의 숨결도 늦춰냈잖아?”
“규모 자체가 다르지 않은가! 애 초에 용의 숨결도 자네가 베어내지 않았다면……
고개를 내젓던 옥황의 얼굴이 딱 딱하게 굳어진다.
서준도 황급히 의념강기를 펼쳐 낸다.
[차원과 함께 소멸해라!]
짧은 대화 사이, 어둡게 물든 하 늘에서부터 벼락이 쉴 새 없이 내 리치기 시작한다.
콰쾅!
동시에 흑운에서 뿜어져 나온 바 람들이 칼날처럼 쇄도해온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빗방울들은 회오리를 그리고 뭉쳐내더니, 거대 한 용의 형상이 되어 서준과 옥황 을 집어삼키려 했다.
촤악-!
쏟아지는 마법들을 베고, 피하고 있는 서준의 두 눈동자에 경악이 어린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폐 안의 입에 거대한 기운이 다시금 응집되는가 싶더니 용의 숨결이 쏘 아질 준비를 마치고 있었기 때문이 었다.
혹운이 만드는 자연재해, 거기에 더불어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거 대한 운석까지.
과연, 흔히 생각하는 멸망의 도 래와 같은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게 용족의 힘.’
아무리 서준이라 해도 혀를 내두 를 수밖에 없었다.
“대단하네……
종의 정점이라 불리는 용족의 힘 에 저도 모르게 감탄이 흘러나온다.
“그렇게 감상에 젖어있을 때가 아니지 않은가!”
옥황이 다급하게 외치며 하늘, 떨어지고 있는 운석을 바라본다.
위력적이긴 하나 지상에 도달하 기 위해서는 아직 어느 정도 시간 이 필요했다.
“우선은 폐안에 집중하도록 하 지.”
“하나라도 최대한 빠르게 처리해 보자고.”
서준은 아광속의 세계로 뛰어들 어 단숨에 폐안의 입 앞에 선다.
뒤이어 폐안의 입에 응집되고 있 는 거대한 기운에 개벽의 검을 찔 러 넣으려는 순간이었다.
[지독한 놈!]
폐안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진다.
쨍그랑!
용의 숨결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
께 모여 있던 기운이 퍼져나가고는 서준의 시선이 검게 물든다.
“큭……
쾅!
기운의 웅집체가 폭발하며, 몰아 치는 기운의 폭풍에서준의 온몸에 상처가 생겨난다.
그러나 상처를 입은 것은 서준만 이 아니었다.
폐안의 부서진 비늘, 찢어진 상 처에서 붉은 선혈이 폭포처럼 흘러 내렸다.
[동귀어진을 노릴 것이라고는 상 상조차 하지 못했군.]
“……무슨 소리, 여기서 죽는 건 너 하나뿐이야.”
[허세 부리지 마라, 네놈의 몸도 온전치 못한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다.]
용의 숨결이 만들어 낸 파괴를 정면에서 맞이하고도 피해를 입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실제로도 방금 전, 서준의 목소 리가 들려주는 생명의 기운도 희미 하기 짝이 없었다.
[시도는 좋았으나, 인간과 용족은 가진 그릇, 근간이 다르다는 점을 망각했구나.]
신음을 흘리고 있던 폐안이 자신 만만한 미소를 흘리며 몸을 일으켰 다. 그러나 눈앞에서 있는 서준을 마주한 폐안의 동공이 거세게 흔들 리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상과 달리 서준의 육신에는 상처가 하나도 존재 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체 어떻게……!]
당황하고 있는 폐안의 눈동자를 응시하고 있는 서준이 입가에 비릿 한 미소를 홀렸다.
“원래 내 투쟁이 조금 질긴 편이 거든.”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