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권 19화
219화
탄식과 같은 옥황의 말에 의문을 느낄 틈조차도 없었다.
“으아악-!”
“막아라! 막아야 한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바깥에서 문 을 지키고 있던 선인들의 외침들이 들려온다.
위협적인 기운이 쏘아지고 있었다.
누가 쐈는지는 고민할 필요도 없
었다.
‘검은 괴물.’
서준은 가능하다면 적당한 도움 을 줘가며 후방에서 편안한 싸움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선택지가 존재치 않았다.
‘내가 놈을 상대해야 한다.’
부상을 입은 옥황을 선두에 세울 수는 없었다.
정의감에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서준은 애초에 자신을 정의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고 만약 그랬다 면 옥황의 거절을 뿌리치고 멋대로 이곳을 찾아오는 행동을 하지도 않 았을 것이다.
그저 옥황에게는 물어봐야 할 것 들이 잔뜩 있을 뿐이다.
이런 곳에서 옥황이 죽음을 맞이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서준은 망설임 없이 문을 가로막 는다.
콰광-!
폭음과 함께 순식간에 거대한 기 파가 퍼져나간다.
뒤늦게 쫓아온 선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충돌하는 곳으로 향한다.
강력한 공격이긴 하나, 이미 대 비를 하고 있던 만큼 공격을 막아 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혼돈의 힘을 다뤄내는 서준의 힘 은 그야말로 경악스러울 수준이었다.
“방해되니깐, 모두 물러나 있어 라.”
공격을 막아선 서준이 천천히 걸 음을 옮긴다.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던 선인들 의 시선이, 그제야 서준을 향한다.
“내 말이 안 들려? 살고 싶다면
뒤로 물러나.”
이어진 말은 거스를 수 없는 명 령이다.
선인들에게 있어 마선, 한서준이 라는 존재는 언제나 오금을 저리게 하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정도를 넘어선 공포는 어떠한 말 보다도 뇌리에 각인된다.
실제로 서준의 말에 선인들이 곧 장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피, 피해!”
“휘말리면 죽는다!”
서준과의 거리가 가까웠던 선인
들이 먼저 내달리기 시작한다.
[나중에 모든 것을 이야기해줄 테니 우선은 선인들을 대피시키는 동안만 뒤를 맡아 달라.]
옥황의 약간은 미안함을 담은 음 성이 울려 퍼지는 순간이었다.
화악-!
다시 한번 붉은 섬광이 허공을 가르며 쏘아진다.
허나 이번에도 원했던 지점, 선 인들과 옥황에게는 도달하지 못한
다.
서준은 코웃음을 친다.
“내가 부탁을 받아서 말이야. 이 앞으로는 지나갈 수 없다.”
보란 듯이 기운을 크게 부풀린 서준은 본인의 힘을 과시한다.
여유로운 걸음을 보이던 검은 괴 물의 움직임이 멈춰 선다.
‘ 뭐지?’
머릿속에 의문이 피어나는 순간 이었다.
멈춰있던 기운이 폭발하듯이 터 져 나오며, 쏘아진다.
어느덧, 한 줄기의 붉은 섬광이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 빠르다.’
눈을 휘둥그레 뜬 서준은 다급히 발을 놀린다.
쌔액-!
지척 거리, 바로 옆을 스쳐 지나 간 섬광이 벽면에 부딪힌다.
우레와 같은 진동과 함께 뜨거운 불길이 터져 나온다.
서준은 자세를 다잡고는 터져 나 오고 있는 불길의 앞에 섰다.
이후 혼돈의 힘을 일으키며 일대
의 불길을 휘감아낸다.
회색빛 기운이, 불길을 집어삼키 기 시작한다.
끼긱, 끼기긱…….
불길이 회색빛 기운을 밀어내기 위하여 저항한다.
화륵-!
서준은 그 불꽃에 혼돈의 힘을 더욱 강하게 일으켰다.
하늘 높게 치솟던 불꽃이 서서히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우웅-
회색빛이 강하게 진동하며 불꽃
을 뒤덮는다.
지옥의 업화보다 뜨겁다던 심판 의 불꽃조차도 결국 혼돈의 힘을 태워내지 못하고 사그라든다.
옥황과 선인들을 집어삼켰다던 불길이 사라진다.
이미 수백에 달하는 동료들이 불 꽃에 휘말리며 타오르는 모습을 봐 왔던 만큼 선인들의 시야에 경악이 어린다.
“그러고 있을 시간 없어, 빨리 도망쳐!”
서준이 목청을 한껏 높여 선인들 의 정신을 다잡았다.
희망을 보아서일까?
이제는 공포가 아닌 생존 본능에 의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다.
“도, 도망쳐!”
“살 수 있어! 살 수 있다고!”
활기찬 음성을 내뱉은 선인들은 황급히 옥황의 도움을 받아가며 자 리를 벗어난다.
그들의 뒤를 지키고 있던 서준은 혼돈의 힘을 다시 거뒀다.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고?’
어째서인지, 불꽃을 쏘아냈던 폐 안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의아함을 느낀 서준이 고개가 젖 혀지려는 순간이었다.
끼기직-!!
세상이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강렬한 기파가 서준의 전신을 때린다.
온몸에 저릿저릿, 강한 충격이 전해진다.
이어서 내성 전체가 강하게 뒤흔 들렸다.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는 돌무더 기들을 피해낸 서준은 재빠르게 지 면으로 날아올랐다.
“으아악-!”
“위대한 분께서 노하셨다!”
백옥루 내성의 파편들이 외성의 거주 구역으로 쏟아진다.
‘진짜 귀찮게 하네.’
정의를 논할 정도의 선인은 아니 었지만, 자신의 싸움에 휘말리는 것으로 다른 생명이 죽는 것을 지 켜볼 악인도 아니었다.
서준은 이를 악물고 혼돈의 힘을 사방으로 넓게 퍼뜨려 내성을 감싸 쏟아져 내리는 돌비를 막았다.
당연하지만, 이렇게 힘을 넓게
퍼뜨리고 나면 상대적으로 방어가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스륵“
서준이 펼쳐 낸 혼돈의 힘을 부 수고 솟아난 검은 형체가 하늘로 치솟아 오른다.
[크아아-!]
거대한 포효가 광풍(狂風)을 만 들어 낸다.
[금기(禁忌)의 힘을 사용하는 인 간이라니, 역시 옥황은 새빨간 거 짓말을 하고 있었군.]
허공으로 높이 떠오른 검은 형체 가 하늘을 가린다.
거대했던 백옥루 전체를 뒤덮는 엄청난 덩치.
좌우로 뻗어진 거대한 날개는 태 양마저 가리고 그림자조차 허용하 지 않았다.
“위대한 분이시여!”
“부디, 자비를! 분노를 가라앉혀 주십시오!”
백옥루에 거주하고 있던 이종족 들은 황급히 머리를 조아리기 시작 한다.
이제야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선인과 옥황을 몰아내고, 새로이
백옥루에 안착해 낸 이종족들의 마 음을 굴복시키고 금제를 걸어 둘 수 있었던 존재.
[세상의 균형을 위협하려는 네놈 과 옥황에게 용(龍)족의 권한으로 심판을 내리겠다.]
전신을 뒤덮은 검은 비늘을 가 진, 블랙 드래곤이 동공을 가늘게 뜬 채로 서준을 향해 분노의 음성 을 쏟아낸다.
서준은 속으로 경악을 가까스로 삼켰다.
드래곤이라는 종(種)이 뿜어내는 위엄, 중압감에 절로 경외심이 피
어난다.
그러나 서준은 감정의 편린들을 떨쳐낼 수 있었다.
단순히 가진 능력, 힘이 뛰어나 서가 아니었다.
블랙 드래곤의 상태가 온전하지 는 않은 탓이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네.’
폐안(%干).
검은 괴물이라 일컬어진 블랙 드 래곤의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아 보 였다.
선계를 뒤덮고 있는 거대한 날개
는 구멍 뚫린 그물처럼 빈틈투성이 였다.
뿐만 아니라, 드래곤의 위용을 상징하는 높게 치솟아 있어야 할 뿔마저도 반으로 잘려나간 채다.
전신을 뒤덮고 있는 검은빛 비늘 사이로는 무수히 많은 상처가 아직 남아있었다.
심지어 흉터 사이로는 검붉은 핏 물이 흘러나오고 있다.
옥황만큼이나 큰 상처를 입은 것 이다.
‘이러면 혼자서도 사냥할 수 있 겠는데?’
서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흐 르는 순간이었다.
폐안은 서준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노기 어린 음성과 함께 기운 을 쏟아낸다.
[오만하군, 고작 인간 주제에 용 을 사냥할 생각을 하다니.]
용의 위엄.
폐안의 시선이 닿는 순간, 거대 한 압박감이 어깨를 짓누르며 전신 을 옭아맸다.
손끝조차도 뜻대로 움직이기가 힘들다.
내력을 일으키며 혼돈의 힘을 펼 쳐보려 하였지만, 그조차도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고작 위엄 하나로 서준의 전신을 속박한 것이다.
‘이게 진정한 드래곤.’
종의 정점이라고 칭해지는 종족 의 힘이다.
심장이 요동친다.
‘이건 조금 위험한데……
솔직히 현명한 선택이라고는 생 각할 수 없었다.
피할 수 있던 싸움이었는데, 굳
이 욕심을 부려 용족에게 싸움을 걸었다.
그러나 후회는 하지 않는다.
‘혼자였다면 모를까, 지금은 혼자 가 아니지.’
서준의 입가에 피식- 미소가 흐 르는 순간이었다.
콰쾅!
벼락, 높게 떠올라 있는 용의 머 리 위로 한 줄기의 섬광이 내리친 다.
키에엑-!
비명과 함께 거대한 육신이 뒤흔
들린다.
자연스레, 서준을 향해 쏘아지던 위엄이 흩어진다.
“대피는 끝났나?”
“덕분에 모두 안전하게 벗어날 수 있었지.”
분명, 폐안은 강하다.
괜히 종의 정점이라 일컬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대신(大神)에 오른 옥황 과 힘을 합한다면.
물론, 승리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설사 불리한 싸움이라 할 지라도 서준은 물러서지 않는다.
아니, 물러설 수 없다.
신의 힘은 자신이 가진 신명에 기반을 둔다.
제대로 싸우고, 투쟁해 보기도 전에 패배를 생각하며 어찌 투신 (H神)을 자처할 수 있단 말인가?
생각을 바꾼다.
‘충분히 이길 수 있다.’
아니, 이겨낼 것이다.
띠링-!
[투신(상격) 신명의 효과가 발동 함에 따라 모든 스테이터스가 3배 증가합니다.]
미세하게 남아있던 압박마저 완 전히 떨쳐낸다.
허나, 부족하다.
애초에 폐안은 힘을 아껴서 상대 할 만한 상대가 아니다.
서준은 가진 능력들을 사용한다.
띠링-!
[정복자의 진가, 가이사의 광폭,
가이사의 지도 능력 및 훤일(暗日) 의 낮 귀고리의 특수 효과가 발동 됩니다.]
메시지가 떠올랐고, 체내에 힘이 용솟음친다.
모든 준비를 끝마친 서준은 고개 를 들어 하늘 높이 치솟은 채로 오 만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폐안을 노려보았다.
[감히! 고개를 조아리지 못할까]!
폐안의 일갈과 함께, 하늘을 뒤 덮고 있던 불덩이들이 쏟아져 내리 기 시작한다.
분노한 폐안은 주변의 다른 생명 체를 개의치 않고 마구잡이로 힘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서준은 단숨에 혼천마공, 천벌(天 伐)을 쏘아내는 것으로, 날아드는 불덩이들을 모두 집어삼키고 소멸 시킨다.
펑—! 펑—!
연달아 충돌이 일어나며, 허공에서 화려한 불꽃놀이가 펼쳐진다.
[금기시된 힘을 사용하여 균형을 어지럽히려 들지 마라!]
분노한 폐안이 입을 벌리자 그 내부로 비늘과 똑 닮은, 흑색의 기
운이 뭉쳐지기 시작한다.
“조심해라! 용의 숨결이다!”
직접 마주해본 적은 없다.
허나, 옥황의 다급한 목소리와 폐안의 입안에 모여들고 있는 힘이 그 위급함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저런 공격이 쏟아지면……
대신의 존재이거나, 그에 달하는 힘을 가진 존재라면 건사할 수 있 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계라는 차원은 파멸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실제로도 옥황이 황급히 몸을 날
리고 있었다.
휙, 휘릭!
빠르게 휘두른 붓에서부터 완성 된 문자들이 커다란 폭발을 일으켜 폐안의 육신을 강하게 강타한다.
그러나 황금빛 동공의 눈은 이죽 이며 옥황을 비웃고 있었다.
[하찮은 공격.]
콰오오-!
폐안의 입에 모여든 기운이 단숨 에 형태를 갖추고, 쏘아질 준비를 끝마친 상황이었다.
“제길……
욕설을 흘리고 있는 옥황의 얼굴 에 그늘이 드리울 때였다.
한 줄기의 회색빛 섬광이 하늘을 가로지르고 날아와 폐안의 앞에 섰 다.
“혼천마공 제1식, 무간.”
서슬 퍼런 목소리는 가진 힘을 발산하고 세상을 뒤덮었다.
그 위협적인 힘에 목을 젖히며, 용의 숨결을 쏟아내려던 폐안의 몸 이 잠시나마 움직임을 멈춘다.
“제2식, 개벽.”
스륵-
이어서 손에 쥐어진 검을 휘두르 는 순간, 폐안의 가슴팍에 일자의 상흔을 만들었다.
촤악-!
가슴팍에서 피 분수가 터져 나오 는 순간, 충격을 견디지 못한 폐안 의 신형이 허공으로 쏘아져 날아갔 다.
자연스레 눈을 휘둥그레 뜬 옥황 의 시선이 압도적인 힘을 보인 존재, 서준에게로 향했다.
“아까부터 계속 말했잖아, 나를 믿으라고.”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