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권 16화
216화
세이프티 쉘터 내부 의료실에 도 착하기 무섭게 강석호가 곧장 뒤를 따랐다.
“분부대로 계속 경과를 지켜보고 있습니다만……. 아직도 의식을 회 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이트에 관한 여러 기술을 익히 는 것은 한시가 급한 일이었지만, 아직 나라연천의 상태가 좋지 못했 다.
‘대체 얼마나 무리를 했길래.’
세계의 비밀.
고작 일부를 말한 것만으로도 혼 수상태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이 비밀을 숨기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궁금증이 동할 정도였다.
‘내가 이길 수 있을까……
지금 당장은, 절대 넘지 못할 벽 과도 같은 존재들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계속해서 성장 을 이어간다면 충분히 맞서 싸워
이길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이 들 었다.
그를 위해서라도 지금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고개를 돌린 서준은 강석호를 바 라보며 입을 열었다.
“찾아올 물건들이 있어요. 잠시 자리를 비워야 하니 연합의 총괄을 부탁드려요.”
“지금 바로 출발하시는 건가요?”
애써 숨기려 했지만, 강석호의 얼굴에는 그늘이 드리우고 있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서준은 현재 리벨리온에서 가장 중요
하면서도 강력한 전력이었기 때문 이다.
당장 이번 천사들의 침공만 해도 서준이 없었더라면 큰 피해를 입었 을 것이다.
든든한서준이 자리를 비우게 되 면 불안함을 지울 수 없는 것이 당 연했다.
“무슨 걱정을 하시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걱정하실 거 없어요.”
서준의 말에는 확신이 묻어 있었다.
“천사와 악마들도 함부로 움직이 지 못할 테니까요.”
천사는 연달아 두 번이나 대침공 을 벌이고 실패를 했다.
그로 인해 수십만에 달하는 천사 가 소멸했고 치천사장, 에레미아는 죽음을 맞이했다.
거기에 더불어 대신, 요피엘마저 상처 입어 천사 군세에 크나큰 타 격을 입은 상태였다.
그리고 악마족은 현재 내전을 벌 이고 있는 상황으로 외부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을 것이다.
심지어 천사와 악마들이 숨겨 놓 았던 게이트들을 모두 닫아 놓은 상태였다.
지금 천사, 악마의 상황과 게이 트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 까지 고려한다면 한동안은 두 종족 모두 침공을 쉽게는 벌일 수 없을 것이란 결론이었다.
자리를 비워야만 한다면, 지금이 최고의 때였다.
“그리고 만에 하나 침공을 강행 하더라도 아마 전력으로 올 수 없 을 겁니다.”
그 정도라면 한층 성장한 리벨리 온의 전력으로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계산을 마친 것인지, 강석호의
얼굴에 환한 빛이 드리우기 시작했 다.
“맡겨 주십시오.”
대답 대신 미소를 홀린 서준은 망설임 없이 등을 돌렸다.
이어, 회색빛 기운이 일대에 휘 몰아치기 시작한다.
고개를 주억인 강석호는, 진지한 표정으로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의장님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지 구, 리벨리온을 무사히 지켜내고 있겠습니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마 음 편히 다녀오시길.”
“그러면 믿고 다녀오도록 하겠습
니다.”
마침내, 서준의 신형이 흩어지며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 * *
선계의 입구, 백옥문의 앞에 당 도한서준의 고개가 젖혀진다.
“아직도 수리를 안 했어?”
선인(仙人)들은 자격이 없는 존
재들의 방문을 극도로 꺼렸기에 항 시 백옥문의 입구를 감춰두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백옥루는 전 혀 보수되지 않고 망가진 채 그대 로였다.
궁금증과 동시에 불안감이 피어 났지만, 이곳에서 머리를 싸매고 고민해봤자 답을 도출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내가 가서 직접 확인해보는 게 가장 빠르겠지.’
결정을 내린 서준은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내딛는다.
직후, 너머의 세상이 곧장 펼쳐 지는 게 아니었다.
흔들리고 공간의 사이를 지나가 는 느낌이 든다.
공간의 틈새에 끼어든 육신과 영 혼이 본래의 감각을 잃어가고 있었지만 두려워할 것은 없었다.
이것은 일종의 심사, 선별 과정 일 뿐이다.
‘자격이 없거나, 부정한 자들의 침공을 대비하기 위한 시간 끌기.’
너머 어딘가에 문이 있다는 사실 을 알고 있는 만큼, 서준은 대수롭 지 않게 갑갑할 정도의 망망대해를
걸어간다.
그렇게 1시간의 기나긴 여정이 이어지던 순간이었다.
화악-!
새하얀 빛이 사방에 번쩍였고, 다소 무뎌져 있던 육체의 감각들이 선명하게 돌아온다.
신선한 공기와 더불어 단전을 가 득 채우는 기(氣)가 느껴진다.
“오랜만이네.”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 혼잣말이 귓가에 들려온 직후, 서준의 고개 가 젖혀진다.
“아무리 봐도 이상한데.”
벚나무가 잔잔한 바람결에 휘날 리며 꽃잎을 휘날리고 있는 평화롭 기 그지없는 풍경.
평범한 선계의 모습이었다.
그렇기에서준의 의문점이 더더 욱 커져간다.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시피 앞선 망망대해의 풍 경은 일종의 선별 과정이고 부정한 자들의 침공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서준과 같이 마의 기운을 근간으
로 삼고 있는 자의 침공을 사전에 대비하는 차원이란 말이다.
실제로 서준은 과거, 처음 선계 에 당도하기 무섭게 곧장 선계의 치안을 관리하는 수비대를 마주해 야만 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수비대가 전 혀 보이지 않았다.
‘조금 곤란한데.
과거, 서준이 곳곳을 돌아다니고 대충 짐작한 바로는, 대략 천계는 아시아 대륙만 한 크기였다.
생각 이상으로 큰 차원이라는 말 이었다.
물론, 지금 서준의 능력이라면 순식간에 목적지인 백옥루의 중심 지를 향해 날아갈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곳, 차원이 선계라는 점이었다.
백옥루의 주변뿐만 아니라, 일대 에 갖가지 결계나 술법들이 펼쳐져 있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불필요한 분쟁을 만들어내지 않 고 싶을뿐더러, 괜히 특이한 능력 의 결계에 사로잡혀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서준이 뒷머리를 긁적인다.
“다른 수가 없네.”
최대한 평화롭게 대화로 이야기 를 풀어나가기 위해서는 백옥루의 정문으로 직접 걸어가는 일뿐이었다.
다행히도 숲속의 끝, 지평선 너 머에 이정표가 될 거대한 벚나무가 보였다.
일반적인 나무와는 규모부터가 달랐다.
하늘을 품을 만큼 높고 차원 전 체를 둘러싸고 있는 듯한 따사로운 나무.
선계 내에서도 한눈에 띄는 거대 한 나무가 있을 만한 곳은, 백옥루
뿐이었다.
‘일단 가볼까.’
서준은 망설임 없이 발을 놀려 백옥루로 향했다.
딱히 곤경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 하지 않았다.
이미 한번 와봤던 곳이고, 일면 식이 있었기에 대화를 통해 품고 있는 의문을 해소하면 되는 일이다.
‘간단한 일이네.’
물론, 이 생각은 혼자만의 착각 에 불과했다.
선계의 중심지, 백옥루.
그 거대한 벚나무 아래에 위치한 성벽을 시야로 확인하게 된 서준은 성문과의 거리가 1km도 남지 않은 지점에서 발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선계의 대신(大神)이 당신을 주 시합니다.]
갑작스럽게 시스템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그리고 눈앞으로 갑작스럽게 형 성된 기의 파동이 서준의 앞을 막 아선다.
직후, 머리를 크게 울리는 목소 리가 들려온다.
[돌아가라.]
목소리의 정체에 대해서는 의문 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선계 내에서 이런 기운을 가질
수 있는 존재는 한 명뿐이었다.
‘어디지?’
서준이 황급히 고개를 돌려 옥황 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연신 고개를 두리번거림 과 동시에 기운을 넓게 퍼뜨려 보 아도 옥황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았다.
‘옥황이 아니었나?’
이미 서로에 대해서 알고 있었기 에 굳이 모습을 숨길 필요가 없을 터였다.
잠시, 선계의 서열이 바뀐 게 아 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서준은 얼마 가지 않아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이건 틀림없는 옥황이야.’
직감이 었다.
만약 옥황이 아닌 다른 존재가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라면 서준을 발견하고도 경고의 메시지 정도만 보낼 리가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거지?’
보수되지 않은 백옥문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수비대까지.
서준이 여태 알고 있던 선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다행인 것은 더 이상의 어떠한 경고도, 기운의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앞길을 막아섰던 기의 파동 역시 혼적도 없이 모습을 감춘 상태였다.
‘그래도 가능하면 조용히 들어가 는 게 좋겠지.’
우선 목표는 옥황을 만나 보구의 위치를 파악, 회수하는 것이다.
굳이 분쟁을 만들 필요는 없다.
오히려 괜한 소란을 일으켜서 선 인들이 떼로 몰려온다면 옥황과의 평화로운 대화도 힘들어질 터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귀찮은 일이 되어버렸네.’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내심 당황 을 했지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서준이 시선을 성벽의 끝으로 옮 긴다.
‘들키지 않게 조심스럽게……
가벼운 발놀림으로 땅을 박찬다.
탓-
깃털처럼 가벼운 몸놀림으로 성 벽 위에 몸을 띄웠다.
펼쳐진 결계 때문에 성의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역시 이 결계가 문제네.’
백옥루의 일대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결계.
지금의 서준이라면 단숨에 부숴 버릴 수 있겠지만 분명 일대에 충 격이 요란하게 퍼져나갈 것이다.
‘시선 엄청 끌리겠지……
조용히 침입하기 위해 머리를 굴 려보았지만,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
‘최대한 힘을 죽이고 틈새를 만 드는 수밖에.’
이 정도면 서준의 입장에서 최대
한 조용하게 들어가는 것이었다.
만약 발각되고 공격을 해온다면?
다소 불안하긴 하였지만, 닥치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할 필 요는 없었다.
‘그때 가서 생각해보지.’
선인들과의 싸움을 두려워서 피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가능하다면 최대한 빠르게 지구 로 되돌아가고 싶었기에 분쟁을 피 하려 것뿐이었다.
아니, 애초에 선인들이 두려웠다 면 선계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내심은 조금 소란을 일으 켜 한시라도 빨리 선계의 대신에 대해서 직감이 아닌 두 눈으로 확 인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도 했다.
그래서 조금은 과감하게 움직였 고, 단숨에 높디높은 성벽을 향해 몸을 날린다.
은밀하면서도 재빠른 움직임이 펼쳐진다.
실제로도 성벽 위에서 있는 기 척들, 경비대들은 서준이 성벽을 넘어서고 있는지도 모르고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바라보았
지만, 서준의 존재를 눈치챈 이들 은 누구도 없었다.
사삭-
마침내 인기척이 없는 뒷골목 사 이로 안착할 때까지도 서준에게는 특별한 소란이 일어나지 않았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주변을 둘 러보았지만, 뒤를 쫓아오는 기운이 나, 시야에 들어오는 특별한 신형 은 없었다.
서준이 어깨를 으쓱인다.
“차라리 잘됐지, 뭐.”
예정대로 큰 소란 없이 옥황을 만날 수 있게 된 셈이었다.
그렇게 가볍게 생각하며 발걸음 을 옮기려던 때였다.
일대에 퍼져있던 기운들이 다급 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서준이 홀린 말소리로 기척이 드 러나며, 존재를 눈치챈 것이다.
타닥-
분주한 발걸음 소리가 연달아 들 려왔고, 일대에 퍼져있던 기운들이 순식간에서준을 포위하기 시작했 다.
‘하나, 둘…… 여섯……
거리를 좁혀오던 이들의 숫자가
순식간에 열 명으로 늘어난다.
마침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기척의 정체를 확인한 순간, 서준 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도깨비‘?”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