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권 14화
214화
[피해라!]
여기 있는 천사들 중 그 누구도 저 벼락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하누엘의 대처는 실로 재빨랐다.
그러나, 옳은 판단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피할 수 없다.’
하늘, 세상을 뒤덮고 있는 구름 의 시야를 피할 곳이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콰쾅-!
실제로 천벌(天伐)은 무수히 많 은 천사를 집어삼키고 일대를 불태 우고 있었다.
“크아아악!”
“살려 줘어-!”
피할 곳 따위 존재치 않는 재앙 앞에 천사족은 공포에 질려갔다.
두려움에 이를 딱딱 부딪치고 몸 을 떨었으며 쥐고 있던 병장기들마 저 내려놓고 줄행랑칠 채비를 마치 고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몇 걸음 가지
못해 죽음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여유를 보이던 하누엘의 표정은 극심하게 일그러져 갔다.
“마, 말도 안 돼.”
수십만의 천사 중, 절반 이상이 쏟아지는 벼락에 삼켜져 허무하게 소멸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활 로(活路)가 없는 건 아니라는 점이 었다.
‘게이트 너머로 돌아갈 수만 있 다면……!’
회색빛 세상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하누엘의 눈동자에 희망이 피어 나려 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하누엘의 얼굴을 응시하고 있던 서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흐른다.
“게이트 너머로 도망칠 수 있을 거 같아?”
걸어온 싸움을 피하지 않는다.
대신, 그에 따른 대가는 확실하게 치르게 한다.
그렇기에서준은 결단코 이들을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너도 느끼고 있잖아, 너를 포함
한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천사는 모 두 내 손에 죽게 될 거라는 걸 말 이야.”
허세 따위가 아니었다.
지금의 서준은 눈앞의 천사들을 혼자서 전부 다 소멸시킬 만한 힘 을 가지고 있었다.
적대 관계에 있는 천사 종족의 전력, 그것도 주요 전력이라 할 수 있는 치천사장 중 한 명을 제거하 는 것은 서준의 입장에서는 상당한 이득이었다.
서준의 살의를 마주한 하누엘은 깨달았다.
‘너무 섣부른 판단이었다……
항시 침묵을 유지하던 천신께서 엘리시움에 마침내 계시를 내린 것 이 바로 사흘 전이었다.
‘인간……. 한서준을 우리 편으로 만들거나 죽이는 것.’
절대적인 존재의 명령인 만큼 만 반의 준비를 하며 기회를 노렸다.
그렇기에 남도 차원과의 전쟁이 끝난 시점, 바로 이 시기. 지구의 힘이 가장 미약해져 있는 지금이 가장 적기라고만 판단을 하고 행동 을 한 것이었다.
분명 지구, 리벨리온은 협상을
거절하지 못할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인간은 결국 인간이었기에 전처 럼 천사의 위엄으로 우위를 점하면 지구와 리벨리온의 끄나풀들을 손 쉽게 착취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 했다.
그런데 단 한 명 때문에 힘겹게 세운 모든 계획이 물거품이 되었다.
‘고작 인간 따위가……
금기(禁忌)가 되어버린 힘을 다 루곤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 지 못했다.
하누엘의 입가에 쓴웃음이 흐른
수십만에 달했던 천사들은 이제 불과 수천밖에 남지 않았다.
그들 중에는 나름 높은 직위를 가지고 있다던 치천사, 대천사들도 존재했다.
계획은 실패했다.
힘의 차가 역력한 만큼 도망도 칠 수 없다.
‘어린양을 굽어살피는 위대한 천 신이시여, 우리에게 광명의 빛줄기 를- 부디 내려주십시오.’
두 눈을 감고 양손을 모은 하누 엘이 간절히 기도한다.
자신의 기도가 게이트 너머, 위 대한 존재에게까지 닿기를 말이다.
그 신앙심이 닿은 것일까?
촤악-!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울 려 퍼지는 순간, 하누엘의 등 뒤로 한 쌍의 날개가 더 돋아나기 시작 한다.
다섯 쌍, 자그마치 열 장이나 되 는 백색의 날개를 편 하누엘이 쥐 고 있던 창을 길게 휘두른다.
[오늘은 여기서 이만하도록 하 지.]
음성이 세계를 울리며, 서준이 뿜어내던 기운을 밀어낸다.
흔들리는 세상 속, 서준의 미간 이 찌푸려진다.
하늘을 뒤덮고 있던 회색빛 기운 이 단숨에 흩어졌다.
눈앞에 있는 황금빛 기운, 신력 을 뿜어내고 있는 열 장의 날개를 가진 천사가 벌인 일이었다.
‘누구지?’
혼돈의 힘을 밀어낼 수 있는 강 력한 힘.
어쩌면 차원의 수호자, 종족을
대표하는 존재일 수도 있을 것이다.
허나, 느껴지는 기운에서 서준은 직감할 수 있었다.
갑작스럽게 방출된 강력한 힘은 서준도 놀랄 정도였지만, 두려움을 느낄 것까지는 없었다.
분명, 매우 위협적인 힘을 지니 고 있었지만 천사라는 종족을 대표 해 차원을 수호하는 존재는 아닐 거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충분히 싸워볼 만해.’
서준이 다시금 혼천마공의 기운 들을 해방해 자세를 다잡을 때였다.
황금의 빛이 사방을 뒤덮었다.
그러자, 서준의 천벌에 소멸하였 던 무수히 많은 천사가 찬란한 빛 에 휘감기고 빠르게 육체를 회복하 기 시작했다.
‘ 부활?’
이어질 전투를 준비하고 있던 서준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기 적과 같은 일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 기 때문이었다.
“대체 넌 누구냐?”
서준의 물음에 황금빛 세상의 중 심에서 있는 존재의 입이 열린다.
[내 이름은 요피엘, 치천사를 관 장하는 대군주이자, 치유(治療)의 대신이다.]
천사 중에서도 군주(君主)라는 호칭을 쓸 수 있다는 것이 종족의 가장 최상위에 위치하고 있다는 말 과도 같다는 것을 서준은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 명확하게 알고 있 는 것도 존재했다.
‘ 대신 (大神).’
비록, 종족을 대표하는 것은 아 니었지만 하나의 신격을 대표하는 존재.
이 또한 쉬운 적수는 아니었으 나, 두려움을 느낄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이건 기회였다.
“여기서 너를 죽이면 대신의 자 리가 하나 공석이 되겠네?”
나라연천을 통해 같은 상격의 투 신에게 인정을 받은 상태였다.
이제 대신의 자리에 공석이 생기 기만 하면 된다는 말이었다.
물론, 이후 추가 시험이 존재할 수도 있었지만, 충분히 감당할 자 신이 있었다.
대신이라는 매력적인 자리에서
준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흐르기 시작한다.
[치유의 대신인 날 죽인다,
라……. 재미있는 농담이군.]
요피엘이 웃음을 홀린다.
사실, 대답을 들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저 틈이 보이면, 곧장 파고들 준비를 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요피엘은 서준의 대화를 받아주었다.
심지어 살기조차도 내비치고 있 지 않았다.
혹시 모를 공격을 염두에서 지우 지는 않았지만, 다소 이상할 정도 였다.
‘뭐지?’
지금의 상황, 분위기를 추측해 나올 수 있는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너, 설마 싸울 생각이 없는 거 냐?”
이어진 서준의 질문에도 요피엘 은 미소를 흘리며 대답했다.
[당연한 것이 아니겠느냐. 본래 직접 싸우는 타입도 아닐뿐더러 적 의 본거지라 불리는 곳에서 싸움을 벌이는 것은 멍청한 행동이지. 더
군다나 운명의 줄기 중 하나가 갖 가지 제약을 거는 상황인지라.]
하누엘을 휘감고 있는 황금의 빛 이 옅어져 간다.
[게다가 자네는 전투를 거듭할 때마다 무서울 정도로 성장을 해왔 지, 이후 전장에서 싸우게 될 수도 있는 적을 성장시켜 줄 이유가 없 단 얘기다.]
“될 수도 있는, 이라니. 아직도 내 의사가 제대로 전달이 안 됐나 보네?”
[이해관계에 절대적이란 것은 없 지. 서로 같은 미래를 바란다면 충
분히 한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두게.]
서준은 입꼬리를 한쪽만 비틀어 올려 노골적인 비웃음을 보냈다.
“이제 와 사이좋게 지내기에는 우리의 관계가 너무 틀어졌잖아.”
천사들은 기억을 조작하는 것으로 수많은 차원을 속여 위선 행각 을 벌여왔다.
서준이 돌아와 바꿔놓지 않았다 면, 리벨리온의 대다수 생명체는 천사의 위선에 희생되는 꼴이 되었 을 것이다.
서준이 요피엘의 말올 믿을 이유
가 조금도 없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알 아주게. 그러나 힘이 없던 과거의 지구와 달리 한서준, 자네가 존재 하는 리벨리온의 대우는 확실하게 다를 것이라고 나의 신위를 걸고 약속하지. 자세한 것들을 말해주고 싶다만 아쉽게도 나에게 주어진 시 간이 많이 없군.]
요피엘이 창을 길게 휘두르자 황 금빛 기운들이 다시 한번 퍼져 나 온다.
부활, 그리고 대군주인 요피엘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당황하던 천 사들이 빛에 휩싸이며, 자신들이
넘어왔던 게이트 너머로 빨려 들어 간다.
“올 때는 마음대로였을지 몰라도 갈 때는 아니지.”
당연하지만, 서준이 이 상황을 지켜만 볼 리가 없었다.
쌔액-!
아광속으로 이동하여 게이트의 입구에 당도한서준의 몸에서 회색 빛 기운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어찌! 무의미하고 헛된 싸움을 벌이려 한단 말이냐!]
요피엘이 괴성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헛되지 않았어.”
천사와 악마.
둘 모두와 전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어쩌면 요피엘의 말처럼 절대적 이해관계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내 기분은 절대적이거 r三 ”
1=
요피엘의 감언이설 따위에 흔들 릴 리가 없었다.
애초에서로의 목숨에 위협을 가 해온 ‘적’에게 어설프게 틈을 보이 는 어리석은 행동을 보여서는 안 된다.
“개수작도 상대를 봐가면서 부려 야지.”
서준은 이미 무수히 많은 싸움을 겪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물론 요피엘처 럼 그럴싸한 말을 지껄이는 사기꾼 도 여럿 존재했다.
때문에서준은 망설임 없이 주먹 을 말아 쥐어 회색빛 기운, 혼돈의 힘을 응집시킬 수 있었다.
‘혼천마공, 일격.’
직후, 게이트를 유지하고 있는 기운을 집어삼킬 수 있을 만큼 거 대한 힘을 응집시킨 서준은 있는
힘껏 주먹을 내지른다.
콰앙-!
공간이 비틀어지는 소리와 함께 천지가 뒤흔들렸다.
[아직 한 줄기의 가지에도 닿지 못한 종족 주제에 이토록 오만방자 하다니!]
얼굴을 구긴 요피엘이 쥐고 있던 창을 내던진다.
‘ 일격.’
캉-!
서준의 주먹과 맞부딪힌 창이 요 란한 소리를 토해내며 튕겨져 나간
싸움이 거듭될수록 서준은 혼천마공에 조금 더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대신(大神)에 이른 존재, 강자와 의 싸움이 주는 긴장감, 고양감이 서준의 혼천마공에 대한 적응을 빠 르게 진행시키고 있었다.
요피엘 또한 그것을 확실하게 느 끼고 있었다.
[괴물 같은 놈…….]
탄식을 흘린 요피엘이 땅을 박차 며 몸을 날린다.
전투를 위함이 아니다.
현신한 육체, 치천사장인 하누엘 이라는 전력이라도 보존하기 위해 게이트를 향해 도주하는 것이었다.
“가는 건 마음대로 안 된다니 까.”
서준은 손을 말아 쥐어 공간, 세 계의 흐름을 잡고 강력한 의념을 흘려 넣는다.
이후, 응집되어 있던 기운들이 폭발하듯이 터져 나와 요피엘을 휘 감았다.
파괴를 시작한 혼돈의 힘이 요피 엘 등 뒤의 날갯죽지를 찢었다.
푸쥭-!
치솟던 붉은 피가 황금으로 물든 다.
[라이프 에센스.]
요피엘의 외침과 함께, 황금빛 기운이 육신을 뒤덮고는 찢겨 나간 날갯죽지를 언제 그랬냐는 듯 원상 복구 시켰다.
지직, 지지직-
무간(無間), 혼돈의 힘이 벌이는 파괴와 요피엘의 재생의 힘이 반복 해서 부딪쳤다.
그것은 단순한 회복이 아닌, 세 상의 법칙을 거스르고 있는 ‘권능’ 이었다.
서준이 그를 깨달았을 때는 찢겨 나간 날갯죽지가 이미 회복을 마친 상태였다.
쌔액-!
회복을 끝마친 요피엘은 황급히 게이트 너머로 몸을 내던진다.
예상치 못한 권능의 발현으로 적 을 놓치긴 했지만, 여전히 순순히 보내줄 생각은 없었다.
서준은 퍼져 있는 혼돈의 힘을 손아귀로 응집시키며 검의 형상을 빚어낸다.
‘개벽.’
촤악-!
일대와 함께 갈라진 요피엘의 오 른팔이 절단되었다.
적지 않은 고통을 느낀 것인지 요피엘의 몸이 크게 휘청인다.
그러나 쓰러질 정도는 아닌 듯했 다.
마침내, 게이트 너머로 당도한 요피엘이 분노에 가득 찬 음성을 흘린다.
[어리석은 인간이여, 오늘날의 일 을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다-!!]
삼류 악당과 같은 말을 남긴 요
피엘이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동시에 열려있던 게이트의 문도 닫혔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