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권 12화
212화
“다가올…… 파멸을…… 막아내 기 위해서는……. 커어억-!”
괴로운 신음을 토하던 나라연천 의 입에서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 왔다.
“그만!”
서준이 황급히 나라연천을 말린 다.
예상하지도, 생각지도 못했던 비 밀을 들은 탓에서준의 정신에도
적잖은 충격이 밀려 왔지만 나라연 천의 상태가 그보다 훨씬 더 심각 해 보인 탓이었다.
“존재하지 않았던 미래…… 새로 운 운명을……
계약을 이행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인지, 아니면 반드시 알려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라연천은 마치 이 모 든 일이 자신의 사명이라도 된다는 듯 피가 연신 나도록 입술을 깨문 채로 말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개척......
파사삭-!
나라연천의 몸에 휘감겨 있던 전 류가 발작처럼 스파크를 일으킨다.
당장 숨이 멎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이만하면 됐어!”
서준이 다급한 목소리로 나라연 천을 제지했다.
“나머지는 내가 직접 알아낼게, 이 이상 무리하면 정말로 죽어!”
그 말에 나라연천의 눈동자에 깊 은 고민이 스친다.
지금부터 무언가를 알아가기에는
남은 시간과 힘, 모든 것이 부족할 것이다.
당연한 생각이었다.
지금 들려주는 이야기는 서준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스케일이 컸 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서준이 그것에 지레 겁을 먹고 불가능을 논할 소인배는 아니었다.
“네가 말하고 싶은 게 뭔지 알았 으니까.”
서준이 일대에 일어나는 전류를 헤쳐, 나라연천에게로 다급히 다가 온다.
지직, 지직…….
거센 저항과 함께 일어난 전류가 서준을 밀어내려 한다.
그러나 서준의 몸에서 일어난 회 색빛 기운이 사방으로 퍼져나가 일 어나는 전류를 모조리 집어삼켰다.
이윽고 나라연천의 앞으로 서준 이 빠르게 도달했다.
“너의 새로운 군주를 믿어도 돼.”
나라연천이 동그란 눈으로 서준 을 바라본다.
“어……떻게?”
지금 나라연천을 고통에 떨게 만 드는 힘은 단순히 위대한 존재의 파편을 이용한 계약의 페널티가 아 니었다.
그보다도 더 위험한, 세계의 비 밀에 대한 정보, 천기누설에 대한 우주의 제재인 것이다.
당연하게도, 비밀은 괜히 비밀이 아니었다.
예정된 파멸은 이를 만들어 놓은 위대하지만 간악한 존재들이 숨기 고 싶어 하는 이야기였다.
입 밖으로 발설하는 것만으로도 세계의 미움을 받고 고약한 고통과
제약을 받도록 금제를 가해두었다.
그렇기에 지금 나라연천은 세계 의 가해를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 이 아니었다.
하지만 서준은 그런 위협을 가벼 이 흩뜨려놓고 있었다.
‘이것이……. 개척자의 그릇이란 말인가?’
나라연천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서준을 응시할 때였다.
마침내 지척에 당도한서준은 미 소를 보인 후, 가벼이 손을 휘두른 다.
“무리하지 말고, 이만 쉬어.”
억지로 입술을 달싹이고 있던 나 라연천의 두 눈이 스르륵 감기고는 육신을 뒤흔들던 기운과 전류가 단 숨에 사라진다.
나라연천을 침대에 눕히는 것으로 일대의 소란을 잠재워 내는 데 성공했지만, 서준의 표정은 매우 어두웠다.
‘운명이라……
과거, 한 번쯤 생각해본 적은 있 던 화두이긴 했으나, 그것이 실재 한다는 사실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물론, 나라연천의 입에서 흘러나
왔던 운명론은 좋은 이야기가 아니 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거대한 압박감 에 발버둥조차 치지 못하고 포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아니, 오히려 서준의 눈동자는 매우 불타고 있었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내 행복을 침범하려 한다면 부숴버릴 테다.’
생각을 이어가던 서준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가기 시작했다.
여의도, 연합 리벨리온 세이프티 쉘터.
그 내부 의장실에 있는 서준은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파멸의 시작점들이 마신을 제외 한다면……. 언제, 어디서 시작된다 는 거지?’
나라연천에게 세계의 파멸과 연 관이 깊은 마신이라는 존재에 대한 정보를 듣긴 했지만, 그것은 수많
은 가지 중 하나일 뿐이었다.
다른 파멸의 시작점, 방식에 대 해서는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가진 정보의 양이 너무 적었기에 추측조차 섣불리 할 수 없었다.
애초에 세계의 파멸, 운명과 관 련된 이야기도 나라연천이 아니었 다면 알지 못했을 정보였다.
‘어떻게 해야 하지……
깊어지는 고민이 애석할 정도로 타개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서준은 고개를 내젓는다.
“지금 당장으로는 어찌 알아낼
방법이 없네.”
그러나 완전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마신, 그 가지 하나를 타고 올라 가다 보면 또 다른 가지라도, 운이 좋으면 뿌리에 닿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때문에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명 확해졌다.
‘악마족, 판데모니움으로 향한다.’
지금 서준의 능력으로 차원을 연 결할 수는 없었다.
아니, 차원의 위치를 알고 있지 도 않았다.
하지만 서준은 이 두 가지 문제 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었다.
‘남도 차원을 거두어들인 거는 아주 훌륭한 선택이었어.’
지구를 침공했을 때 증명했듯, 나라연천이 끌고 온 우주선에는 분 명 차원 이동 능력이 존재했다.
그리고 내전과 마신에 관련된 정 보들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나라연천은 틀림없이 판데모니움에 다녀왔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일이 그렇듯 마냥 서준에게만 좋게 풀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라연천은 천기를 누설한 대가 로 안정을 취해야만 하는 상태였다.
물론, 나라연천이 눈을 뜨면 자 연스레 해결될 일이었다.
다음 문제는 우주선의 상태가 그 리 썩 좋지 못하다는 것이었다.
내부에서 큰 전투가 연달아 벌어 졌던 만큼 적잖은 충격을 받은 탓 이었다.
다행인 것은 기술의 달인인 드워 프가 리벨리온에 속해있다는 점이 었다.
휘노소프가 말하기를 시간만 어 느 정도 주어진다면 충분히 수리할
수 있다고 했다.
판데모니움을 침공할 준비는 착 착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 흐음......
하지만 서준의 찌푸려진 미간은 펴지지 않았다.
이렇게 공격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 때문이었다.
동시에 천사와 악마의 침공에 대 한 방비도 해둬야만 했으니 말이다.
‘놈들이 지구를 파괴할 수 없도 록 핵을 찾아둬야 하는데.’
사실상 작금 지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에 속했다.
대격변의 시대를 맞이한 이후 지 구의 핵을 찾아 방방곡곡을 찾아 헤맸지만, 발견할 수 없었다.
그동안은 당장에 닥친 일 때문에 인력 부족으로 어쩔 수 없이 뒤로 미뤄둔 일이었지만, 천사와 악마 그리고 파멸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만큼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었다.
‘전담팀을 편성해서 본격적으로 수색에 나선다.’
공격과 방어, 모두 대비를 어느 정도 세웠으나, 이외로도 생각해야 할 문제가 남아있었다.
‘우선은 천사와 악마의 정확한 전력을 알 수 없다는 게 큰데.’
대비를 세워 뒀을지라도 싸움에서 패배하게 된다면 모두 헛고생에 불과할 뿐이었다.
자연스럽게 서준의 시선이 스테 이터스 창으로 향한다.
[스테이터스]
신명 : 상격 투신.
레벨 : 350
보유 내공 : 5,700
힘 : 4,611, 민첩 : 4,600, 체력
: 4,611
특이사항
1~2. 전과 동일.
3. 같은 상격의 투신, 나라연천에 게 인정을 받은 상태입니다. (대신 의 자리가 공석이 될 경우, 대신의 자리에 지원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최종으로 확인했을 때 이후, 레 벨 업을 제외한 스텟 상승이 존재 하지 않은 탓에 스테이터스 자체로 만 보자면 눈에 띄는 성장은 보이 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정
한 힘의 전부는 아니었다.
‘혼돈의 힘을 수준급으로 다뤄낼 수 있게 됐어.’
더군다나 서준은 상격의 투신에 오를 때 얻은 특권인 권능 창조를 사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지금 가진 모든 것들을 퍼붓게 된다면 대신과의 싸움에서도 밀리 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물론, 직접 맞붙어본 적이 없기 에 확정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최소한 승산이 존재한다 는 것은 확실해.’
거기에서준이 일구어낸 것은 서준 개인의 강함이 전부가 아니었다.
이외로도 지구, 아니마, 프리실 라, 중원 대륙, 불카누스, 그리고 남도까지.
내외적으로 이종족의 차원을 규 합하여 거대한 연합을 이룩했고, 충분히 강하다고 말할 수 있는 지 경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서준은 아직 여기서 만 족할 생각이 없었다.
만약에 종족을 대표하는 존재인 차원의 수호자들과 싸우게 된다면?
서준의 고개가 내저어진다.
‘모르겠어.’
승산의 유무를 떠나 판단 자체가 불가능했다.
만나본 적은커녕, 들어본 적조차 없었다.
어느 경지에 도달해 있는지, 어 떤 신명을 가지고 권능을 가졌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 찌 판단을 내릴 수 있단 말인가?
허나, 결단코 그들은 호락호락하 지 않을 것이다.
천사와 악마는 틀림없는 상위의 종(種) 이었다.
그런 종족을 대표하는 존재, 차 원 수호자의 힘이 나약할 리 없었다.
‘만반의 준비를 해둬야 해.’
인생(人生)이, 인류의 사활이 걸 린 싸움이었다.
설령 손짓 한 번에 세계를 부숴 버릴 수 있는 강한 적을 마주할지 라도 이길 수 있을 만큼의 힘을 갖 춰놔야 했다.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강적과의 싸움이었지만, 다행히도 서준에게는 그것을 대비할 방법이 존재했다.
‘천마의 보구.’
절영호로병은 천마의 보구 중 극 히 일부일 뿐이었다.
특이하면서도 뛰어난 보구가 제 법 많았다.
비록, 지구로 귀환을 할 때 모두 잃어버렸지만, 다행히도 선계로 향 하는 문을 찾아놓은 상황이었다.
지금 해야 할 일이 정해진 것이 다.
‘선계로 돌아가 천마의 보구를 모조리 회수한다.’
뿐만 아니라, 옥황을 만나 나누 어야 할 이야기도 있었다.
생각을 정리한서준이 자리를 박 차고 일어날 때였다.
에에엥-!
쉘터 내부에 적색 경고등이 켜지 며, 소란이 일어난다.
동시에 안주머니에 넣어둔 스마 트폰이 갑작스럽게 울려댄다.
우웅- 우우웅-
발신자의 이름이 강석호임을 확 인한서준이 곧장 통화 버튼을 눌 렀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적색경보가 울리는 건가요?”
전화를 받기 무섭게 강석호의 다 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큰일 났습니다! 연합 본부의 상 공에 천사들이……!]
서준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네. 치천사 장이 당해서 조금 더 신중하게 움 직일 줄 알았는데.’
아니면, 상처를 입은 지금의 기 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것일 수도 있었다.
전쟁이 끝난 직후를 기다렸다는 듯 침공을 시작했으니 말이다.
서준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영악한 놈들......
해야 할 일들이 많았기에 당장의 싸움은 피하고 싶었다.
허나 애석하게도 방도가 없었다.
애초에 적이 바라는 때를 기다려 주고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다소 당황스럽긴 했지만, 전쟁에 익숙한서준은 이 사태의 해결책을 몰라 발을 구르지는 않았다.
“싸우는 수밖에 없겠네.”
그리고 보란 듯이 승리를 쟁취한 다.
이것이 여태껏 서준이 보였던 해 결책이자 타개책이었다.
그렇기에서준은 곧장 천사들이 모여 있는 곳을 향해 망설임 없이 발을 옮겼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