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권 10화
210화
쉽지는 않았다.
세계를 가득 메운 나라연천의 힘 이, 서준의 내력을 억누르고 집어 삼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멸해라.”
나라연천의 선고.
그 소리와 함께 세상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다.
쿠오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 은 어둠이 눈을 가린다.
고요한 침묵만이 내리깔려 감각 을 지워낸다.
그렇게 하나둘씩 지워내며 종국 에는 존재 자체를 지워내려는 어둠 과 침묵이 서준을 잠식해나간다.
이윽고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세상 속, 무(無)의 세상에 갇혀간 다.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허나 두려워할 것은 없다.
한서준이라는 나, 자신이 자신으
로서 존재한다면 무(無)의 세상은 존재할 수 없고, 완성될 수 없다.
‘나는 한서준, 스스로를 잃지 마 라.’
의지를 가다듬어 냄으로써 존재 를 확립시킨 서준은 응집되고 있는 회색빛 기운, 혼돈의 힘에 집중한 다.
어둠만이 가득 찬 세상 속.
너무나도 작고 희미하게 남아 있 었지만, 확실하게 느껴진다.
어둠에 삼켜져 사라질까 조바심 을 낼 것은 없다.
천천히, 확실하게 혼돈의 힘을
느껴낸다.
손을 움직인다.
어떠한 감각도 느껴지지 않지만 스스로를 믿는다.
천 년의 고투로 쌓은 경험과 지 식을 신뢰한다.
희미하게 느껴지는 혼돈의 힘을 따라 몸을 움직여간다.
[그만!]
상당히 익숙한 음성이다.
서준은 속으로 피식- 미소를 흘 린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라연천의 목소리다.’
그의 다급한 목소리가 세계에 울 려 퍼지고 있었다.
[그만-!!]
다시금 나라연천의 목소리가 들 려왔다.
이토록 다급함을 느끼는 이유는, 서준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두렵겠지.’
제아무리 상격의 신위에 오른 존재라 할지라도, 서준의 손에서부터 뻗어 나오고 있는 혼돈의 힘, 혼천
마공은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두려 움을 느끼기에 충분했으니 말이다.
쩌적-!
더 이상은 두고만 볼 수 없는 것 인지, 세계가 크게 진동을 한다.
하지만 헛된 발버둥에 불과하다.
쩌저적-!
준동하던 세상은 혼돈의 힘에 집 어삼켜지고 부서진다.
이것이 바로 혼돈이 가진 힘.
어떠한 힘도 집어삼킬 수 있고, 부술 수 있는 가장 강력하면서도 포악한 힘.
그러나 나라연천도 쉽게 포기할 생각은 없는 듯했다.
[당장 그만둬라!]
서준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난다.
‘이러면 더 멈출 수가 없잖아.’
본래 하지 말라면 더욱 하고 싶 은 것이 사람의 심리이지 않은가?
[그만두라고 하지 않았느냐-!!]
폭발하듯이 솟구친 나라연천의 기운이 서준을 위협해왔다.
그러나 서준의 입가에 피어난 미 소는 더욱 진해져 있었다.
“늦었어.”
말을 내뱉은 서준의 동작이 처음 으로 멈춘다.
아니, 이 이상 움직일 필요가 없 는 것이었다.
제 주인마저 집어삼킬 것 같은 포악한 혼돈의 힘을 꽈악- 움켜잡 고, 잡아당긴다.
콰드드득-!
세상이 뒤흔들리며, 위협을 가해 오던 기운들이 집어삼켜진다.
힘을 다룬 여파로 심장이 욱신거 린다.
[공멸하자는 뜻이냐?!]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승리를 쟁취하려는 것은, 살아남 기 위해서다.
자멸(自滅)하기 위해 힘을 무리 하게 다룰 생각은 없단 말이다.
“내 걱정보다는 네 목숨부터 챙 겨야 할걸.”
비릿한 미소를 홀린 서준은 회색 빛 기운을 더 거칠게 잡아당긴다.
온몸이 바스러질 것 같은 극한의 고통이 느껴진다.
“끄으읍-!”
억누르려 했지만, 입에서 비명이
절로 새어 나온다.
콰득, 콰지직-
권능, 투쟁 성취가 발현되어 육 신이 붕괴와 재생을 연달아 반복했 다.
고통스럽다.
괴롭다.
이런 고통이 심해질수록 서준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더욱더 진해져 간다.
‘드디어, 펼칠 수 있다.’
스스로 만든 혼천마공의 다음 초 식.
이미 호리병 속에서 피 흘리는 노력 끝에 만들어 확신에 가득 찬 서준에게 두려움이나 망설임은 존재치 않았다.
전력이라고 하면 조금 미치지 못 하는 수준이었지만, 이 정도의 응 집만으로도 아주 강력할 것이었다.
항상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던 나 라연천이 다급하게 만류하는 것이 서준을 더욱 확신케 했다.
하지만, 거기에 만족해서는 새롭 게 만든 무공, 초식의 위력을 전부 펼치지 못한다.
스스로의 한계점을 마주해보고
싶었다.
서준은 차오르는 고통을 이를 악 물고 견뎠다.
“크어아아-!”
서준의 입에서 흘러나온 비명이 세계를 뒤흔든다.
마구잡이로 잡아당겨진 회색빛 기운은 어느덧 강제로 서준에게 이 끌려 손아귀에서 응집되기 시작한 다.
[제발 멈춰……
초식의 흐름대로 기운을 폭발시 키는 순간, 세상은 다시 한번 종말 을 고했다.
지잉-
회색빛 기운이 세상을 가득 뒤덮 어 간다.
“혼천마공, 제이식, 만리화(萬里 花).”
혼천마공의 새로운 초식이 세상 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띠링-!
[포스 시스템이 사용자 ‘한서준’ 이 펼쳐낸 무공에 대한 측정에 들 어갑니다.]
[파괴력, 확인. 응용력, 확인. 요
구 난이도, 확인. 경지의 정도, 확 인. 요구 내공량, 확인.]
[10…… 20…… 65…… 94% 진 행.]
[재측정을 완료했습니다.]
[재측정한 스킬의 등급 : 금기 (禁忌)]
[혼돈의 힘을 다뤄내어 신화 둥 급 무공, 혼천마공을 성장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보유 중인 혼천마공이 ‘금기’ 둥 급으로 진화합니다.]
[우주가 감탄할 역대 미중유의 무공을 완성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새로운 신화가 발아합니다!]
[보유 중인 신화에 위인(健人)의 신화가 추가됩니다!]
[전 우주가 사용자 ‘한서준’을 주 목합니다.]
[대다수의 대신이 사용자 ‘한서준’의 행보를 주시하고 경계합니 다.]
회색빛, 혼돈이라 불리는 힘이 세상의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마침내 회색빛 기운들은 서준을
감싸고 있던 어둠을 밀어내기 시작 한다.
“……
나라연천의 두 눈이 휘둥그레진 다.
경악과 부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하나, 서준은 다시 마음을 가다 듬어 낸다.
다뤄내고 있는 힘이, 얼마나 위 협적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띠링-!
[대단합니다! 포스 시스템의 판 단으로 사용자 ‘한서준’의 등급을 다시 판독합니다.]
[현재의 레벨과 사용자의 격과 힘에 대해 부적합하다고 판단을 내 립니다.]
[시스템의 판단에 따라 사용자 ‘한서준’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경험치를 극대량 획득합니다.]
[축하합니다! 레벨이 350으로 상 승했습니다!]
서준의 입가에 헛웃음이 흐른다.
‘이런 식으로도 레벨을 상승시킬 수 있는 거였어?’
시스템의 권한은 대체 어디까지 란 말인가?
두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메 시지 창에 절로 의문이 피어났다.
허나, 애석하게도 지금은 그걸 신경 쓰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혼돈의 힘은 계속해서 일대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멋대로 날뛰지 않도록 조율해야
만 해.’
다행히도 레벨 상승은, 가장 직 관적으로 힘을 증가시켜 주었다.
제멋대로 날뛰려고 하는 혼돈의 힘을 조금 더 수월하게 조율해낼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더 이상 세상은 뒤혼들리지 않는 다.
대신하여 주변을 집어삼키던 어 둠도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
나라연천이 가둬두려 했던 어둠, 세계의 멸망조차 서준에게는 위협 이 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네가 만들어 낸 세계는 나의 혼 돈의 힘에 잡아먹히게 될 거야.”
혼돈의 힘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 고 파괴해내는 포악한 힘이다.
그것이 설사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는, 칠흑과 같은 어둠의 세상이 라 할지라도 예외는 없었다.
쩌적.
무너져 가는 세계 속, 원형의 경 기장 위에서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나라연천의 모습이 시야에 들 어온다.
“……혼돈의 힘을 뜻대로 다뤄낼 수 있다고?”
나라연천을 바라보고 있는 서준 의 입가가 호선을 그린다.
“직접 눈으로 봐놓고도 왜 부정 하려 하지?”
혼돈.
금기처럼 여겨졌던 힘이 형상화 되어 서준의 손끝에 피어오른다.
일반적인 의념강기와 같은 형태 이지만 달랐다.
우선 의념강기와 달리 눈으로 볼 수 없었다.
기운의 흔적조차 느껴지지 않는 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육안으로 좇거나, 느낄 수 없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서준이 다뤄내는 힘은 음속 의 영역을 넘어섰기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빛과 다름이 없는 영 역.
‘아광속 (亞光速)
서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피 어난다.
실제로 광속의 영역에 도달한 것
은 아니었다.
아직은 비루한 육신이 그 속도, 힘을 견뎌낼 수 없으니 말이다.
다만 이를 이용하여 무공을 펼쳐 내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이미 쌓아놓은 경험과 지식이 부 족한 육신을 뒷받침해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바로 지식의 힘이었다.
‘마선 시절의 그림자 정도는 쫓 아왔네.’
그러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 른 성장이었다.
시스템의 도움과 새롭게 발견한 혼돈의 힘이라는 지름길까지.
불과 수년 만에 천 년이 넘는 세 월을, 최강이자 최악의 마선(魔仙) 이라 불리던 시절의 초입 경지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허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머지않아 전성기 시절 이상의 힘 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 치 않았다.
그 순간을 환영하기 위해서라도 지금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대신.... 그 자리에 오른다.’
자연스레 서준의 시선이 여전히 당황을 금치 못하고 있는 나라연천 에게로 향한다.
“이만, 승부를 마무리 짓자.”
말을 끝맺은 서준이 손을 들어올 린다.
소리, 형태 그 무엇도 느낄 수 없는 기운이 세상을 가르고 날아가 나라연천의 어깨를 꿰뚫었다.
푹-
신형이 흩어지고 다시금 자취를 감춘다.
다행히도 세계의 가호를 받고 있
었기에 공격에 적중당하지는 않았다.
허나, 기척조차 느끼지 못했다.
눈을 보름달처럼 휘둥그레 뜬 나 라연천이 마른침올 꿀꺽- 삼킨다.
“일단 짜증나게 하는 이 세계부 터 완전히 가루로 만드는 게 좋겠 네.”
방법에 대해 고민을 할 필요도 없었다.
서준은 손을 뻗어 혼돈의 힘을 응집시킨다.
우웅-
모여든 힘이 한 자루의 검을 만 들어내는 모습에, 세상이 겁에 질 리며 천지가 떨려온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수 있는 혼 돈의 힘은, 어떠한 형태로도 변형 할 수 있다.
애초에 모든 것을 집어삼킬 수 있다는 것은 어떠한 것도 될 수 있 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동안 그저 틀 안에 갇혀있었 을 뿐이지.’
스스로의 부족함에 자조 섞인 미 소를 홀린 서준은 만든 검에 수십 갑자의 내력을 담아내기 시작한다.
무공을 펼치기 위해 필요한 뼈대 라고 볼 수 있는 체(體)의 능력은 아직 부족했다.
그러나, 내력을 뜻하는 심(心)과 그를 다루는 기(技)는 매우 뛰어났 다.
단순히 응집하고 휘두르는 것에 는 부족함이 없다는 말이었다.
결국, 서준은 빚은 혼돈의 힘, 검 을 휘두르면 될 뿐이라는 말이었다.
“혼천마공, 개벽(開關).”
가벼이 휘두르는 것뿐이었지만, 검 안에 담겨 있는 내력과 기교의 위력은 차원을 달리했다.
상상력으로 빚어낸, 이런 작은 세상이 견뎌낼 만한 힘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쩌적, 쨍그랑-!
회색빛 검이 초라하리만치 가볍 게 휘둘러졌고, 나라연천이 만들어 낸 세계를 반으로 갈랐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