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권 9화
209화
퍼펑—!
폭음이 일며 회색빛 기운이 사방 으로 퍼져나간다.
‘혼천마공, 일격, 변형……!’
서준의 눈이 반짝이는 순간, 기 운의 흐름이 준동한다.
본래 일격은 힘을 일점에 집중하 는 것.
일대일의 단순한 대결에서는 매 우 위력적인 무공이었지만, 지금
서준이 상대해야 하는 것은 한 명 이 아니었다.
‘ 난타.’
뻗어진 주먹들이 달려들던 나라 연천의 수많은 분신체를 가격하고 부쉈다.
.....
놀란 나라연천이 뒷걸음질을 치 는 순간, 한 발자국 더 뻗고 거리 를 좁힌 서준이 자신의 손에 뭉쳐 있던 일격(一擊)의 힘을 나라연천 의 가슴팍으로 쏘았다.
단숨에 나라연천을 쓰러뜨리기 위해 팔을 뻗고 있는 서준의 미간
이 곧, 찌푸려진다.
‘이것도 아니야.’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검을 쥔 나라연천 또한 실(實)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 다.
사악……!
실제로도 가슴팍이 꿰뚫리는 순 간, 다시금 나라연천의 모습이 사 라졌다.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아직도 더 해봐야 알겠나?”
허공,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나
라연천이 쥐고 있던 검을 치켜세우 며 서준을 가리킨다.
“찢어져라.”
차가운 음성과 함께 서준을 향해 무형의 검격이 날아온다.
쌔액-!
빠르지만, 눈으로 좇지 못할 정 도는 아니다.
쏟아지는 검격을 종이 한 장의 차이로 피해낸 서준이 순식간에 거 리를 좁혀낸다.
그러나 여태 그랬듯 다시 나라연 천의 신형이 자취를 감춘다.
“조금 짜증 나네.”
미간을 찌푸린 서준은 재빠르게 고개를 돌려가며 나라연천의 위치 를 확인한다.
“발버둥 치는 꼴이 꽤나 우습 군.”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나라연천 이 쥐고 있는 검을 계속해서 휘두 른다.
그러자 사방에서 쏟아지는 검격 의 연쇄가 거미줄처럼 펼쳐져 서준 의 시야를 가득 메웠다.
샤삭—!
피할 곳이 존재치 않은 완전한 사각에서준의 육신에 크고작은 자상들이 생겨나 피 보라가 일었다.
“크읍...
몸 곳곳에서 피를 홀리고 있는 서준을 보며 비웃음을 보인 나라연 천이 땅을 박차고 달려든다.
샥-!
다시 쏘아진 검격이 거미줄처럼 서준을 옭아매려 할 때였다.
그 순간, 몰아치는 바람과 함께 잔상을 남기고 흩어지는 서준의 모 습을 보며 나라연천의 눈이 휘둥그 레졌다.
“팔경성보, 지수.”
흩어졌던 서준의 신형이 나라연 천의 등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잡았다.”
서슬 퍼런 서준의 목소리와 함께, 뻗어진 주먹이 나라연천의 심 장을 꿰뚫는다.
흩어지는 나라연천의 신형과 사 라지는 검.
“시도는 좋았지만 아쉽겠군. 답 지 않게 잔재주를 부려도 아무런 소득이 없어서 말이야.”
“그래도 도전해 봤다는 것 자체
가 의미 있는 거 아니겠어?”
일부러 공격을 허용해주는 것으로 확실하게 빈틈을 만들어 내고, 파고들어 완벽하게 공격을 가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전혀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노림수가 완전히 수포로 돌아갔 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준의 입가 에는 여유로운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그런 여유가 언제까지 갈 수 있 을지 궁금하군.”
서준이 고개를 주억인다.
“맞아, 언제까지 이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을지 궁금하네.”
나라연천이 뿜어내는 기운은 너 무나도 흐릿하다.
하지만, 그에 비해 존재감은 사 방을 가득 메울 정도로 거대했다.
서준은 처음 이런 느낌이 나라연 천의 정교한 기의 운용과 거대한 존재감이 어우러진 탓이라고 생각 을 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
“너는 어디로든지 갈 수 있고, 어디에나 존재할 수 있다.”
“정확하다. 그런데 여태껏 알아 낸 것이 그뿐인가?”
분명, 멀리서 말을 내뱉고 있었지만, 어느새 눈앞에 모습을 드러 낸 나라연천이 서준의 심장을 노린 다.
쉭.
우아할 만큼 가벼이 공격을 홀려 낸 서준이 담담한 음성을 흘린다.
“그럴 리가, 아주 많은 비밀을 꿰뚫었지.”
서준은 다시금 자취를 감추고,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낸 나라연천 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멍청하게도 처음에는 검에 집중 했었지, 어쩔 수 없잖아? 검을 꺼 낸 뒤로 계속해서 위치를 바꿔냈으 니 말이야.”
여유롭던 나라연천의 얼굴이 딱 딱하게 굳어진다.
대신하여 두 눈동자가 뱀의 동공 처럼 가늘어졌다.
“흠, 그래서?”
“그런데 그건 내가 너를 너무 얕 본 거였어.”
서준은 나라연천과의 능력이 키 케르와 상당히 비슷하다고 생각했 다.
거짓과 환상.
실제로 나라연천은 이와 비슷한 능력들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키케르보다 훨씬 더 진화 된 상태였다.
‘능력을 다루는 격(格) 자체가 달 라.’
키케르는 환상을 통해 거짓을 만 들어 냈을 뿐이다.
하지만 나라연천의 공격은 환상 에 그치지 않고 모두 실재(實在)하 며 영향을 주고 있었다.
실제로도 뇌전과 검격 모두 현상
보고 고.”
에 영향을 주었고, 따라서 상처를 입기도 했다.
“이해할 수 없었는데, 아주 넓게 나니 확실하게 이해가 되더라
지금까지 펼쳐진 공격 또한 실을 숨기기 위한 허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 세계 자체가 바로 너이기 때 문이지.”
나지막이 내뱉은 말.
하지만, 그 여파는 일대에 퍼져 나가며 세계를 준동시키고 있었다.
나라연천의 형상을 하고 있는 이 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거운 침묵은 오히려 확 신을 주는 법이었다.
“애초에 뇌전을 다루는 것을 보 여준 이유는 그저 이 세계는 공평 하게 이루어져 있다는 인식을 심고 생각을 흐릿하게 만들어 내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겠지.”
그저 나라연천이라는 존재는 특 이한 능력을 지니고 있을 뿐이라는 인식을 심어내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 세계에서 나라연천이 다룰 수 있는 것은 뇌전뿐만이 아
니었다.
“세계 자체가 자신……. 즉, 너는 모든 것을 다룰 수 있다는 말이야.”
추측이나 망상이 아니었다.
‘인간의 육체는 소우주(小字ffi)라 일컬어진다.’
처음 내공을 공부할 때는 말도 되지 않는 소리라고 치부했었다.
그러나, 깨달음을 얻고 상승의 경지로 갈수록 이러한 말이 틀리지 않는다는 것을 점차 느낄 수 있었다.
인간의 육체의 신비는 헤아릴 수 없으며, 끝없이 적응해내고 확장하
는 우주와 다름없는 커다란 가능성 을 품고 있었다.
이는 즉, 육체로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정식으로 세계를 창조하는 방식 은 매우 어렵지만, 굳이 큰 형태에 얽매일 필요는 없지. 누구나 흔히 쉽게 자신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 는 방법이 있잖아.”
서준은 검지를 곧게 펼쳐내더니 자신의 관자놀이를 두드린다.
“상상, 나만의 세계.”
“하하......!”
나라연천의 입가에 헛웃음이 흐
“네놈 정체가 무엇이냐?”
놀랍다 못해, 당혹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서준이라는 인간이 투신의 신격 에 오른 이후, 그에 대해 부단히 조사를 했었다.
그렇기에 기본적으로 성장력이 뛰어나다는 것과 상당한 강자라는 것쯤은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수명은 너무나도 덧없기에, 그 짧은 세월 동안 경험 과 지식까지 쌓을 수 있을 것이라 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서준은 너머의 세 계에 관한 비밀과 조건을 꿰뚫어 말하고 있었다.
아니, 마치 한번 도달해본 경험 이 있는 것 같은 상당한 통찰력이 었다.
“인간은 상상하고 꿈을 꾸지. 물 론 대다수가 아주 짧게 사라져 버 리는 망상(妄想)으로 그치지만 말 이야.”
하지만 그 망상 속에 확고한 의 지를 끊임없이 실어 낼 수만 있다 면?
“현실로 구현이 될 수 있겠지.”
물론, 일반적으로는 감히 상상조 차 할 수 없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고 볼 수 있었다.
상상 속의 세계를 현실에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강한 의지뿐만 아니 라 방대한 기운을 조율해내야만 했 다.
그러나 상격의 신위, 대신을 위 협할 정도의 힘을 가진 존재라면 마냥 불가능한 일도 아니란 말이다.
“그리 크지는 않다만, 그래도 이 정도 세계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적 어도 중원식으로 계산을 하자 면……. 대략 스무 갑자 이상의 내
공이 필요하겠지.”
1갑자의 내력은 60년, 20갑자라 면 자그마치 1,200년 동안 내공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영약을 섭취하거나, 성지라 불리 는 곳에서 수련하거나, 자신만의 특별한 방법을 통하여 내공을 더 빠르게 키워낼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기는 했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인간을 비롯 해 다른 생물의 기준으로도 상당히 숨이 막히는 내공의 양이었다.
하지만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넓은 우주에는 그 숨 막힐 정도의
많은 내공을 쌓은 이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당장 나라연천 또한 그중 한 명 이었다.
그는 무수히 많은 시간 동안 싸 워왔고, 승리했으며, 갖가지 방법으로 내공을 쌓아내고, 쟁취해냈을 터다.
덕분에 상격이라는 높은 투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네가 이렇게까지 강할 줄은 몰 랐네.”
물론, 지금 중요한 것은 나라연 천이 세계를 구현한 방식 따위가
아니었다.
이곳은 나라연천의 생각과 뜻대 로 이루어진 공간.
어떠한 공격도 닿지 않을 것이 다.
아니, 닿을 수 없을 것이다.
‘이를 파훼할 방법은 하나뿐이 다.’
눈을 빛낸 서준이 체내의 기운들을 일으켜 혼돈의 힘을 끌어내기 시작한다.
쿠우웅…….
포악한 기운들이 퍼져 나오며,
세계를 위협한다.
“하, 하하, 크하하하!”
나라연천이 노골적인 비웃음을 터뜨린다.
육체의 형태를 한 거짓된 환영에서 터져 나오는 것이 아니다.
세계 전체가 서준을 비웃고 있었다.
“통찰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인정 하지. 그런데 이 세계를 벗어날 방 법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원리를 이해한다고 하여, 그를 파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설사 방법이 있다 할지라도 이 제는 너무 늦었다.”
나라연천은 더 이상 거짓된 환영 들을 이용하여 서준을 속이지 않는 다.
아니, 방해할 필요가 없었다.
세계의 시작이 존재했다면, 당연 히 그 끝도 존재하는 법이다.
이 순간,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나라연천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흐르기 시작한다.
쿠웅-!
나라연천의 세계는 가진 기운을
폭발하듯이 쏟아내 서준을 둘러싸 고 짓누른다.
“소멸해라.”
나라연천의 선언이 이루어진 순 간, 서준을 억누르고 있는 기운들 로부터 시작해 세계가 무너지기 시 작한다.
쩌적-
공허한 어둠으로 가득 차기 시작 하는 세계.
그 중심에서 있던, 서준의 몸에서 회색빛 기운이 폭발하듯이 터져 나온다.
‘모든 걸 쏟아부어 부순다.’
서준은 최대치의 내력을 모두 발 산한다.
물론, 나라연천 또한 이를 가만 히 보고 있을 리가 만무했다.
본신의 힘을 여과 없이 드러낸 나라연천은 망설임 없이 가진 기운 을 불어넣는다.
“하아압—!”
맞부딪치는 두 개의 거대한 기운 에 세계가 뒤흔들린다.
허나, 이 세계는 나라연천의 공 간이다.
서준의 기운이 절반 이상이 억지
로 흩어지고, 소멸하고 있었다.
‘결국,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 는 힘은 절반뿐.’
그러나 전혀 개의치 않는다.
빛과 어둠, 상극의 힘이 공존하 는 혼돈의 힘이 가진 가능성은 무 한하기 때문이다.
이 포악하면서도 난폭한 힘이 집 어삼키지 못할 것이 있단 말인가?
서준은 확신했다.
혼돈의 힘은, 고작 이런 작은 세 계에 갇혀버릴 힘이 아니다.
‘부술 수 있다.’
확신이 있기에 두려움과 망설임 은 존재치 않는다.
가진 단전들을 모두 열어 내력들을 전부 쏟아낸다.
‘부순다.’
스스로를 믿고, 강한 의지를 불 어넣는다.
‘부숴!’
종말하는 세계의 중심.
서준은 새로이 만들어 낸 혼돈의 힘, 혼천마공의 무공을 펼쳐낸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