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권 4화
204화
찬드라가 소리를 내지르는 순간, 절벽에 거대한 눈보라가 몰아친다.
휘오오…….
몰아치는 눈보라 속, 찬드라는 푸른 눈동자를 반짝이고는 정령들 의 비호를 받는 에우레시아를 바라 보았다.
“확실하게 끝내주마.”
넘치는 것이 힘이었다.
그렇기에 찬드라는 자신할 수 있
지형의 이점을 백 퍼센트 활용할 수 있는, 지금의 자신은 최고의 힘 을 발휘할 수 있다고 말이다.
“한낱 정령들 따위로 내 앞길을 막으려 하다니.”
읊조리듯이 말하는 찬드라의 지 팡이 주위에 거대한 얼음의 창이 만들어지며, 회전하기 시작한다.
쩌저적…….
강력한 냉기에 일대가 얼어붙는 소리와 함께 얼음의 창이 쏘아진다.
“ 얼어붙어라.”
찬드라의 공격에, 에우레시아를 비호하고 있던 노에아넴이 전력을 다하여 거대하고 투명한 사각 방패 형태의 모래 벽을 세웠다.
그 위에 샐레아나가 뿜어낸 불꽃 의 막이 덧씌워진다.
화르륵-!
마지막으로 실레스틴이 바람을 쏘아 방패를 받치듯이 세워내는 순 간, 얼음의 창이 정령들이 만들어 낸 방패와 격돌한다.
콰과광-!
굉음과 함께 일어난 폭발은, 아 이러니하게도 세상을 푸른 냉기로
뒤덮었다.
빙제, 찬드라의 비릿한 미소가 흐른다.
“너무나도 나약하구나.”
에우레시아의 주변을 비호하던 정령들이 형체를 잃어간다.
방패 뒤에서 바람을 빚어내었던, 실레스틴은 완전히 뭉개져 있었다.
일대에서 힘을 보태고 있던 다른 정령들도 팔 혹은 다리가 부서진 채였다.
끼릭…….
이제는 팔 하나밖에 남지 않은
노에아넴이 자세를 겨우 유지하는 모습을 본, 찬드라의 입꼬리가 올 라갔다.
“정령이라고 제 주인을 닮는군. 주제 파악 하나 안 되는 것을 보 니.”
일대에 흩어졌던 모래들이 뭉치 듯 모여 다시 한번 노에아넴의 팔 이 생성되고 있었지만, 그 속도가 현저히 느려져 있었다.
반면 찬드라가 얼음의 창을 생성 해내는 것은 전과 다를 바 없이 빠 르다.
비록 말을 할 수는 없었지만, 진
한 그늘이 드리운 정령들의 얼굴이 좋지 못한 상황임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계약을 맺고 있는 에우레시아를 전력을 다해 보호하고 있었지만, 더 이상은 한계였다.
“좋다. 네놈들의 충성심을 높게 사, 네 미련한 주인 놈과 함께 통 째로 얼려주마.”
미소를 홀린 찬드라가 다시 한번 창을 쏘아낸다.
승산은 없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정령으로서 에우레시아와 맺은 계약을 이행해야만 했다.
실레스틴은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수를 떠올린다.
날아오는 얼음의 창은 정면으로 막을 수 없다.
하지만 바람으로 밀어내 위치, 목표 지점 정도는 바꿔 낼 수 있었다.
쉬익-!
그러나 그마저도 의도만큼 완벽 히 달성하지는 못하였지만, 다행히 도 최악의 결과는 발생하지 않았다.
가슴팍, 정확히 말하자면 에우레 시아를 노리고 날아들던 창의 경로 가 휘어져 노에아넴의 어깨가 완전 히 박살난다.
파삭-!
굉음과 함께 노에아넴이 쓰러져 나가고 있었지만, 찬드라는 이 상 황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짜증나는군.”
두 번이나 끝을 내고자 마음을 먹었는데 모두 하찮은 방해로 실패 했다.
예상을 벗어난 끈질긴 발악으로 싸움이 길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힘의 차가 역력했기에 자 신이 패배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저 지금 상황 자체가 너무나도 불쾌했을 뿐이었다.
미간을 찌푸린 찬드라는 이번에 는 지팡이를 높게 들어 올려 거대 한 얼음의 구체를 만들어냈다.
“발악조차 하지 못하게 해주마-!”
노기 어린 목소리를 흘린 찬드라 가 지팡이를 앞으로 내뻗는 것으로 허공에 떠있던 얼음의 구체를 던진 다.
후웅-
빙창처럼 날카로운 예기를 품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구체에 담겨있는 파괴력, 폭발력은 주변 일대를 완전히 날려 버릴 정도로 강력했다.
구체에 실려 있던 힘을 확인한 나라연천은 짜증 나는 듯 표정을 구겼다.
“어리석군, 감정에 치우쳐서는 다음 싸움을 생각하지 않고 저런 막무가내 공격을 하다니.”
서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구체 가 품고 있는 기운의 흐름을 주시 한다.
“에우레시아.”
이토록 처참한 패배를 맞이할 것 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기에서준 의 미간이 깊게 파여 있었다.
‘ 제발.’
패배는 상관없다.
그저, 죽지 않기만을 기도했다.
후오오…….
날아오는 얼음의 구체의 위용에 노에아넴, 실레스틴을 비롯한 정령 들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우는 순간 도달한 얼음의 구체가 일대를 집어 삼킨다.
이후, 힘이 폭발하듯이 터져나간 다.
콰콰앙-!
여태와는 비교도 안 되는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 그 냉기가 일대를 절대영도의 세계로 인도했다.
이 공격을 정면으로 받았다면, 얼마나 거대한 충격을 받았을지 상 상조차 하기 싫은 공격이었다.
주변을 비호하던 정령들은 물론, 가장 뒤편에서 있던 에우레시아 또한 버렸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여태껏 이런 강자와 맞서 싸운
것이 대견할 정도였다.
‘부디 살아만 있어 줘.’
억지로 두 눈에 기운을 실어 눈 보라 너머를 보려 하였지만, 볼 수 가 없었다.
몰아치는 눈보라가 상당히 거센 탓이었다.
‘에우레시아가 이렇게 죽는다 고……?’
심장이 두근거리며 날뛰기 시작 한다.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 서준의 입가에 붉은 선혈이 흘러내린다.
‘아니, 안 죽었어.’
서준은 고개를 내저었다.
오랜 세월 자신과 함께한 본능적 직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실제로 거세게 몰아치던 눈보라 의 기세가 서서히 누그러들고 있었다.
[내 소중한 아이들을 이렇게 만 든 자가 누구냐-!!]
에우레시아가 있던 곳에서 거대 한 음성이 울려 퍼진다.
몰아치는 눈보라는 점점 더 빠르 게 소강되기 시작했다.
거대한 음성을 터뜨린 존재가, 절대영도마저 녹일 불꽃을 발산하 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서준의 입 가에 미소가 어린다.
“괜한 걱정을 한 거였네.”
전장의 중심.
불의 정령왕, 샐리온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라연천은 단 한 번이라도 찬드 라가 패배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찬드라는 나의 친위대 중 가장 힘이 강한 존재.’
실제로도 찬드라는 반신 내에서 도 정상의 경지를 이룩한 강자였다.
신화만 충족된다면 언제든지 신 격에 도달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 이었다.
순수하게 전투력이 매우 뛰어나 단 말이다.
지금처럼 전력을 다할 수 있는 상황과 환경이 더해진다면 당연히 압도적인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 이라 예상을 했다.
‘최소한 둘은 쓰러뜨릴 수 있겠 지.’
운이 좋다면, 둘을 잡고도 서준 이 보유한 힘, 능력을 파악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과거 엘프 왕 따위는 상대조차 되지 않을 것이었다.
‘그저 남의 힘을 빌리는 것에 그 치는 종족이기에 약하다.’
나라연천 역시 상위 차원인 남도
에 거주는 상위 종족이었기에 하위 종족들을 얕보는 감정이 없잖아 있었다.
서준을 다소 후하게 평가한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이라는 종에 대한 특수성 때문이었다.
‘적응의 힘.’
인간이라는 종은 최하위권의 종 족이지만, 어떠한 벽, 한계를 마주 할지라도 극복해나갈 수 있는 특성 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엘프는 평화롭고 고요한 삶을 살아가는 종족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를 달리 말하자면, 언제나 정 체되어 있는 삶을 살아가는 종족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라연천은 엘프라는 종족을 기껏해야 일부 몬스터와 다 를 바 없는 나약한 종족으로까지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목도한 광경 을 바라보고 있는 나라연천은 고개 를 젖히며 스스로를 향해 질문을 던진다.
“모두 선입견에 불과한 것이었 나‘?”
아니,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분명 엘프는 정체되어 있었다.
하지만 강한 이끌림을 가진 존재 가 엘프라는 종족마저 변화시키고 있었을 뿐이다.
어떠한 존재인지 고민을 할 필요 도 없었다.
나라연천의 가늘어진 시선이 서준에게로 향한다.
‘한서준……
정체된 종족마저 이끌어 내줄 수 있는 기이한 힘을 가진 존재.
“상상 이상의 존재였군.”
평가를 후하게 내리는 것이 아니
한서준이라는 존재가 이끈 기적 과 같은 일이 바로 나라연천의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주변을 뒤덮었던 냉기의 폭풍을 밀어내고 거대한 불꽃 사이에서 불 길을 일으키고 있는 거인(巨人)이 모습을 드러낸다.
[대답해라, 나, 우리의 아이들을 죽인 것이 네놈이냐?!]
샐리온.
정령들의 왕, 그중에서도 불을 관장하는 존재인 샐리온의 눈동자 에 진한 분노가 어려 있었다.
그 존재를 누구보다 가장 먼저 느끼고 있던, 찬드라의 미간이 찌 푸려진다.
“감히 내 앞에서 불꽃을 피워 내 려 하다니!”
찬드라가 거친 외침과 함께 얼음 의 창을 쏘아낸다.
쏘아지는 얼음의 창을 확인한 샐 리온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네놈이구나. 나의 소중한 아이들을 살해한 것이.]
동시에 눈동자에서는 숨길 수 없 는 분노의 불길이 활활 타오른다.
[아이들을 해한 죄, 네놈의 목숨 으로 받겠다.]
“할 수 있다면 말이지!”
괴성을 내지른 찬드라가 계속해 서 창을 형성하고 쏘아낸다.
[이런 나약한 냉기로 감히 불을 관장하는 이 몸의 불길에 대응하려 하다니.]
조소를 흘린 샐리온이 펼친 손바 닥을 앞으로 내뻗는다.
허공에 피어오른 불길들이 찬드 라의 창과 부딪힌다.
폭음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충돌조차 없었다.
타오른 불꽃은 찬드라가 쏘아낸 얼음을 뙤약볕의 아이스크림처럼 녹였다.
취익…….
[엘라임에 비하자면 한없이 보잘 것 없는 냉기구나.]
혹평에 거대한 찬드라의 미간이 와락- 일그러진다.
“감히! 감히!”
분노한 찬드라를 바라보며 샐리 온의 입가로 노골적인 비웃음이 떠
오를 때였다.
“샐리온 님.”
샐리온의 가슴 안쪽, 계약을 맺 어낸 에우레시아의 목소리가 들려 온다.
한계를 넘어서, 스스로 벽을 깨 정령왕과의 계약에 성공을 해내는 데 성공했지만, 지친 육신은 새로 이 얻은 강한 힘을 완전히 받아들 이지 못하고 있었다.
다소 지친 목소리의 에우레시아 가 간절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저는 너무나도 나약합니다. 그 렇기에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부디
눈앞의 적을 무찔러 주십시오.”
에우레시아의 부탁에, 거인의 형 체를 한 샐리온의 몸에서부터 불길 이 치솟아 오른다.
[굳이 부탁할 거 없다. 부족한 네 녀석과 마지못해 계약을 맺은 것도 아이들의 복수를 위한 것이니!]
이어서 일어난 불길이 회오리치 며 일대를 집어삼킨다.
[녹아내려라.]
거대한 불의 회오리가 일대의 공 기를 뜨겁게 달궈낸다.
일대에 휘몰아치던 눈보라가 사 라지며, 찬드라의 힘이 순식간에
약해졌다.
쉬이익…….
녹고 중발하는 소리와 함께 찬드 라의 거대한 육체가 작아져간다.
“나는 빙제! 얼음의 제왕이다. 고작 불길 따위로 나를 녹일 수 있을 것 같으냐!”
분노에 찬 음성과 함께, 불길을 뚫고 뛰쳐나온 찬드라가 지팡이를 들어 올리며 얼음의 구체를 만들어 내는 순간이었다.
[후으읍.]
샐리온이 거친 숨을 들이마신다.
일대에 피어났던 불길들이 모두 샐리온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불길이 완전히 사라진 세상.
오직, 뜨거운 공기만이 일대에 불길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게 된 순간이었다.
샐리온은 들이마셨던 숨결, 불꽃 을 한 번에 토해낸다.
[불의 숨결.]
콰과광-!
일대가 무너져 내리는 소리와 함께 찬드라의 거대한 육체가 녹아내 리고 흩어진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