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권 1화
2()1 화
“ 크으......
“으윽……
둘 다 넝마가 된 채로 바닥에 널 브러져 있었지만, 아직 생을 다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의식을 잃었을 뿐이다.
이 이상, 싸움을 이어 갈 수는 없었다.
나라연천의 입에서는 진심이 담 긴 감탄이 흘러나온다.
“실로 훌륭한 전투였다.”
단순히 그 무력만을 의미하는 바 가 아니었다.
오히려, 바라하는 나라연천의 친 위대 중 가장 약자였다.
그러나 인간 한서연이 마지막까 지 보여준 싸워 이기겠다는 집념과 정신력, 그리고 강한 투쟁의 의지 는 투쟁의 신으로서 존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인간, 이 종족이 이토록 강할 수 있다니 정말 놀랍군.”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나라연천이 남도의 패배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
리벨리온의 대표진이 강했기에 나라연천의 친위대 또한 강했다.
“감상도 좋지만, 승부의 판정 은‘?”
나라연천의 휘어진 눈매가 말을 내뱉은 서준에게로 향한다.
“미안하군. 너무 흥분해서 실수 를 저질렀어. 둘 다 싸움을 이어갈 수 없는 상태이니 우선 각자 정비 를 끝마친 후에 무대를 변경하고 선수를 교체하도록 하지.”
나라연천이 가볍게 손을 내젓는 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바라하의 신형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남도 진영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고생 많았다, 이만 쉬도록 하여 라.”
의식을 잃은 채로 쓰러져 있는 바라하를 향해 따뜻한 음성을 내뱉 은 나라연천의 손길이 그에게 향했 다.
지잉-
푸근한 목소리와 전신을 감싸내 며 치유하는 따뜻한 기운에, 고통 으로 일그러져 있던 바라하의 얼굴 에 평온함이 깃들었다.
바라하가 자취를 감춘 직후, 서준은 연무장의 중앙으로 이동했다.
이후, 당장에라도 끊어질 것 같 은 숨을 쉬고 있는 서연의 손목의 맥을 잡으며 몸을 살핀다.
‘예상은 했지만……
싸움이 조금 더 길어졌다면 선천 지기까지 모두 소모했을 수도 있었
다.
선천지기, 인간이라면 태어날 때 부터 가지고 있는 순수한 기의 근 원.
비록 그 양은 아주 미약하지만, 가지고 있는 힘은 엄청났다.
가진 힘의 몇 배나 빠른 힘과 몸 놀림을 발휘하게 되는 경우 모두, 선천지기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천지기를 쓰지 않는 이유는 하나였다.
‘위험하니까.’
앞서 말했듯 선천지기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기의
근원이다.
생명력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이를 모두 소모하게 된다면 당연 히 죽음에 이르게 되고, 일부만 사 용해도 큰 병을 앓는다.
방금 서연의 싸움은 정말로 위험 했다는 것이었다.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서준은 몇 번이고 이 싸움을 말릴 고민을 했 고 몇 번은 발을 떼고 말았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럴 수 없었다.
‘필사의 각오.’
단순한 싸움이 아니었다.
서연에게는 모든 것을 바친 싸움 이자,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견 디고 걸어야 할 길이었다.
때문에, 서연 역시 이 순수한 싸 움에 누구도 끼어들기를 원치 않았 을 터였다.
부서지고 망가지는 한이 있더라 도 말이다.
‘그게 서연이 선택한 길.’
서준은 그 누구보다도 동생, 서 연의 삶을 존중했다.
그렇기에 억지로 막아 세울 수
없었다.
‘아니, 세워선 안 돼.’
때문에, 묵묵히 지켜보았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생각 없이 방치를 한 것은 아니었다.
뜻을 존중하며 지켜보지만, 해줄 수 있는 것, 해야 할 일을 해나간 다.
이후, 서준의 손가락에서부터 흘 러나온 기운이 서연의 몸으로 스며 든다.
이어진 내력의 움직임은 극도로 섬세하면서도 부드럽다.
조심스럽게 서연의 육신 전체를, 아주 작은 세포부터, 장기와 근육, 뼈까지 전부 감쌌다.
무리한 기의 운용으로 상처 입고 고장 난 상태의 육체를 무작정 치 료해서는 반발이 심했다.
서연은 한계를 넘어선 힘을 이용 한 상태다.
그 여파로 아직도 체내의 기운이 아주 크게 준동하고 있었다.
만약, 억지로 치료한다면 어떠한 반발이 찾아올지 서준으로서도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새롭게 만드는 수밖
에.’
원래라면 육신의 변화를 눈치챈 기운이 반작용으로 더욱 폭주했을 터였다.
그러나 치천마역천지공은 본래 서준의 것.
서연의 체내에 머물고 있는 기운 들이 서준의 명령에 복종하고, 조 율된다.
삽시간에 몸 곳곳에서 폭발하듯 이 몸부림치던 치천마역천지공의 기운이 보금자리, 단전을 만들고 자리를 잡아낸다.
꿈틀-
제멋대로 날뛰었던 서연의 내력 이 서서히 육신에 녹아든다.
자연스레 한계에 도달하여 서서 히 죽어가고 있던 서연의 육체가 빠른 속도로 활기를 되찾아간다.
그를 확인한서준은 손을 떼며, 뒤로 물러났다.
‘이제부터는 서연이의 몫이다.’
해줄 수 있는 일은 끝마쳤다.
이제는 할 수 있는 일에 충실해 야 할 때였다.
‘전쟁에서 승리한다.’ 서준의 고개가 돌아간다.
그 시야에는 나라연천을 비롯한 친위대들의 모습이 보인다.
“기다려 줘서 고맙군.”
“별말씀을. 투쟁의 이름을 사용 하는 신이라면, 누구보다도 잘 알 고 있지 않나? 훌륭한 전사는 존중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말이지.”
미소를 홀린 나라연천이 손을 휘 젓는다.
휘오오....
거센 바람이 몰아치는 순간, 회 색빛 돌무더기로 가득했던 연무장 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춘다
그를 대신해 울창한 수풀과 거대 한 나무가 가득한 밀림이 모습을 드러낸다.
두 진영은 그 중심을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은 언덕 위에서 있었다.
서준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새 로이 변한 전장을 응시한다.
‘전투마다 전장이 계속 변화하는 거였군.’
높은 확률로 출전 상대의 능력, 특성에 어울리는 전장을 택하고 있 을 것이다.
불리할 수밖에 없는 싸움을 하게
될 수도 있었다.
“왕이시여, 이 전장에 제가 나서 는 것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바라하와는 정반대의 모습, 비쩍 바른 몸을 가진 이가 목소리를 흘 린다.
어둡고 음침한 느낌.
“이런 숨을 곳 많은 지형에서 아 르슈나의 토벌대장, 쿠라마의 저력 을 아는 내가 어찌 거절할 수 있겠 는가? 출전을 허락하도록 하겠다.”
나라연천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 섭게, 쿠라마가 발을 놀린다.
신속하고 은밀하기 짝이 없는 움
직임이었다.
분명, 눈으로 바라보고 있음에도 기척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을 정도 였다.
‘생각했던 것 이상의 강자다.’
마침내 전장의 중심에 선 쿠라마 가 안주머니 속에서 끔찍한 냄새를 풍기는 독이 든 병을 꺼내어 손가 락에 끼워 넣는다.
‘독을 이용하는 암살과 시야가 제한되는 이런 숲 지형이라……
예상했듯, 전장은 적에게 유리한 지형으로 설정되고 있었다.
“특별히 경고하자면 쿠라마는 바
라하처럼 용맹한 전사라기보단, 잔 혹한 암살자이니 출전자를 신중히 고르는 게 좋을 거다.”
나라연천의 입에서 스산한 목소 리가 홀러나왔다.
이전처럼 전사의 긍지를 존중하 는 싸움을, 어떻게 보면 행운이 될 수 있는 기회를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당연했다.
‘애초에 이곳은 전장.’
대결의 구도를 취하고 있었지만, 이 싸움의 본색은 사활이 걸린 전 쟁이다.
전장에서는 목숨이 위험하다고 해서 누구도 도울 수 없었다.
서연의 경우는 차라리 행운의 영 역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 일이었다.
서준 또한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선출 과정에 까다로운 조건을 덧붙여가며 심혈을 기울였 던 것이었다.
‘이제는 전력을 아끼지 않는다.’
독을 이용한 암살자.
다행히도 서준 일행에도 이런 적 을 상대하기에 특화된 인물이 있었다.
자기 차례를 알기라도 하듯, 차 가운 눈으로 상황을 묵시하고 있던 무명신의가 조심스레 의견을 건네 왔다.
“교주님, 아무래도 제가 나설 때 가 된 것 같습니다.”
서준이 무명신의를 바라보며 고 개를 끄덕인다.
“부탁할게.”
무명신의는 기다렸다는 듯이 한 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다.
그의 눈동자에 열의가 가득하다.
“천마신교 만만세, 반드시 승리
를 거머쥐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이후, 망설임 없이 숲 한복판으로 몸을 던진다.
사삭-
전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백색의 의복을 걸친 사내.
의도적으로 감추고 있었지만, 은 연중에 흘러나오는 사내의 기운들 은 예사롭지 않았다.
실제로, 무명신의는 어지간한 무 인 정도는 가벼이 다룰 수 있는 상 당한 강자였다.
호} 악'....
이러한 사실은, 무명신의가 숨겨 두었던 기운을 해방하는 순간, 모 두가 확인할 수 있었다.
단지 기운을 뿜어내는 것뿐인데 일대의 공기가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반신 내의 벽을 넘어선 존재군.’
무명신의를 바라보는 나라연천의 눈이 가늘어진다.
“같은 경지에 도달해 있는 창과 방패의 싸움이라……. 재미있겠군.”
피식 미소를 흘린 나라연천이 왕 좌에 몸을 기대며 한 손으로 턱을 괸다.
“싸움을, 전쟁을 시작하도록 하 라!”
나라연천의 선언이 떨어지기 무 섭게, 쿠라마가 땅을 박찬다.
쌔액-!
거친 바람이 일고, 쿠라마의 신 형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춘다.
“날고 기는 의원들이 내 독에 절 망했지.”
숲속에서부터 쿠라마의 음침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다만, 그 소리가 사방 곳곳에서 들려와 위치를 알 수 없게 하고 있
었다.
‘잔재주를 부리고 있네.’
숲에 숨어들어 무명신의의 시선 과 감각을 교란한 쿠라마의 모습에서준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그래도 공방 정도는 주고받을 줄 알았는데……
무명신의의 기세에 위축이 되었 기 때문일까?
쿠라마는 공방을 주고받기도 전 에 모습을 숨긴 채로 독을 흘려내 고 있었다.
치이 익..
끔찍한 소리와 함께, 무명신의를 포함한 모든 생명이 녹아내려 죽어 가기 시작한다.
웬만한 반신급의 강자라 할지라 도 순식간에 절명할 수 있는 극독 이었지만, 무명신의에게는 어림없었다.
비웃음과 같은 미소를 보인 무명 신의가 품 안에서 독들을 홉수하고 품어낸다.
흡수된 독의 성분을 분해하여 배 합을 알아내고 치료 방식을 찾아내 파훼한다.
딸그락-
대기 중에 독을 흘려놓은 쿠라마 의 미간이 깊게 파였다.
‘……벌써 해독의 단계에 이르렀 단 말인가?’
녹아내리던 육신이 삽시간에, 본 래의 활기를 되찾아간다.
여태껏 중독시켰던 어떤 존재도, 눈앞의 무명신의와 같.이 빠르게 해 독법을 찾아내는 이가 없었다.
다소 당황스러운 일이었지만, 쿠 라마는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하나가 되지 않는다면 두 개, 다 음은 세 개의 독을 뿌려내면 된다.’
그래도 안 된다면 가지고 있는 수백에 달하는 독들을 모조리 다 사용하면 된다.
애초에 이를 제외하고는 다른 방 도가 없었다.
‘정면승부는 불가능하다.’
기세에서 알 수 있다시피 무명신 의라는 자는 그저 의원을 겸했을 뿐인 수준급의 무인이었다.
제대로 된 무(武)를 갈고 닦지 않은 쿠라마에게는 승산이 존재치 않았다.
그렇기에 우선 독으로 중독시켜 전투 불가 상태로 만들어 두려 했
던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무명신의의 해 독 능력이 무서울 정도로 뛰어났다.
중독으로 숨통을 끊어내는 쿠라 마의 입장에서는 상성이 너무 좋지 못했다.
‘최악의 상대군.’
미간을 찌푸린 쿠라마는 발을 다 시금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숲 속 깊숙한 곳으로 뛰어 들어가 몸 을 숨겼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