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권 23화
198화
서준을 비롯한 대표들은 나라연 천의 우주선 내부에 들어섰다.
나라연천이 준비한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난생처음 외계 종족의 우주선에 들어선 서준의 고개가 갸웃 젖혀진 다.
“흐음……
내부는 지구에서 만든 비행선과 큰 차이가 없는 듯했다.
벽면 곳곳에 복잡한 기계장치들 이 존재하긴 하였지만, 상상 속에서 보았던 화려한 공중 도시나 정 원 따위의 모습들은 존재치 않았다.
물론, 그 크기가 바깥에서 보았 듯 아주 광활했지만 말이다.
“이렇게 보니 우주선이라는 것도 그리 특별하지는 않네.”
서준을 비롯한 지구 대표가 한창 우주선 내부를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였다.
“단순한 이동 수단에 화려한 장 식은 사치일 뿐이지.”
내뱉었던 말을 담담하게 흘려내
는 목소리에 고개가 절로 돌아간다.
고개를 돌린 서준의 눈에 훙미가 어린다.
“나라연천……. 네가 직접 마중 나올 줄은 전혀 예상 못 했네.”
심지어 호위하는 이들 없이 홀로 몸소 행차한 것이었다.
만약 서준을 비롯한 출전자들이 흑심을 품어 낸다면, 홀로 있는 나 라연천을 상대로 다대일로 몰아붙 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뭐, 비겁한 수를 쓴다면 자네 그릇이 그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 이겠지. 그리고 실력에는 자신이
있는지라.”
거침없는 기세와 어투를 가진 나 라연천의 모습에서준의 입가에 미 소가 흐른다.
“씩씩한 게 상당히 마음에 드는 데. 악마가 만든 연합에 있을 이유 가 없지 않나? 나와 손을 잡는 건 어때?”
서준의 말에 시선을 돌린 나라연 천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피어났다.
“칭찬은 고맙게 받도록 하지. 다 만, 배신하는 비겁한 성격은 아니 어서 말이지.”
“갈수록 점점 더 마음에 드네.”
“자네가 나를 좋게 봐주는 것은 관여할 수 없으나 조심하게. 나는 적을 살려서 돌려보낼 정도로 자비 로운 성격은 아니니까 말이야.”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나라연천과 서준은 서로가 내심 마음에 들었으나 이렇게 전장에서 적으로 만난 이상, 쓸데없는 자비 를 보이는 것은 멍청한 짓이었다.
마음을 바로잡은 서준의 표정이 겨울 얼음장처럼 차가워진다.
그러고는 입을 닫고 더는 어떤 감정도 표현하지 않았다.
“전장은 비행선 내에 구비된 장
치를 통해 구현할 것이다.”
“공간 창조 마법인가?”
“창조라고 하기에는 거창하지. 그저 가상의 공간에 불과한 것이 니.”
“가상공간이라면 외부까지 피해 가 가는 거 아니야?”
당연한 걱정이다.
우주선의 바깥은 지구였다.
서준의 입장에는 괜한 피해가 생 겨서 좋을 것이 없었다.
“남도의 기술력을 너무 얕보는 군.”
서준의 질문에 답을 하는 나라연 천의 입가에 피식 미소가 피어난다.
“자네 힘이 지구만 한 행성 하나 를 순식간에 파괴하는 수준이 아닌 이상은 비행선, 그리고 그 너머까 지 피해를 입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라연천의 말에는 자신감이 가 득했다.
그도 그럴 것이 홀로 행성 하나 를 순식간에 파괴해낼 수 있는 존재는 대신(大神) 중에서도 매우 드 물다고 말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이번 싸움은 아주 재미가 있을 것 같군.”
넓은 비행선을 거닐던 중 나라연 천이 눈을 흘기며 지구 대표진을 바라본다.
“뭐, 신경을 좀 썼지. 아무래도 우리도 전력을 보여 줘야 할 거 같 아서 말이야.”
“기쁘군. 덕분에 아주 재미있는 싸움이 되겠어.”
이외로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 다 보니 어느덧 눈앞에 복잡한 기 계와 갖가지 마법진이 설치된 커다 란 문이 나타났다.
문을 마주한서준의 입에서 감탄 사가 흘러나온다.
“굉장한 문이네.”
단순한 기계장치, 문이 아니었다.
주술 계통에는 문외한이라 볼 수 있는 서준의 입장에서도 주변에 둘 린 마법진 하나하나가 매우 정교하 면서도 뛰어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잘 짜인 마법이 었다.
감탄하는 서준을 본 나라연천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난다.
“환영한다. 우리 남도가 자랑하 는 대전장에 온 것을.”
문 앞으로 다가선 나라연천이 활 짝- 양팔을 펼치자, 문에 펼쳐진
마법진이 작동되며, 공명하기 시작 한다.
우웅-
이후 기계장치가 가동되는 소리 가 들려오더니, 덜컹- 하며 거대했 던 문이 열린다.
내부에서부터 새어 나온 빛이 사 방을 뒤덮는다.
화악-
눈이 부실 정도의 빛에 눈살이 찌푸려지는 순간이었다.
빛과 함께 흘러나온 기운들이 서준을 비롯한 대표진을 집어삼키듯 지나가고, 눈앞에 새로운 광경이
펼쳐졌다.
“여기는……?”
차가운 대리석 바닥, 평평한 지 형.
서준은 이와 같은 풍경을 너무나 도 잘 알고 있었다.
“ 연무장?”
“가장 단순하면서도 확실하게 실 력을 볼 수 있는 곳……. 우리가 싸우게 될 첫 전장으로 이보다 적 합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어느덧, 연무장의 끝자락에 놓인 왕좌로 날아가 앉은 나라연천이 서준과 그 무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라연천이 앉아있는 왕좌의 주 변으로는 남도의 거주자, 친위대로 보이는 인물 넷의 모습이 보인다.
“왕이시여, 저들이 우리의 상대 입니까?”
“약한 종족이라던 이야기와는 달 리 상당한 강자들이 있군요.”
“아주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저 수인족은 내가 맡을 거 다.”
한 명, 한 명에게서 느껴지는 기 세가 상당하다.
단순히 보이는 것만으로도 모두
반신 이상에 올라있는 강자들이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어렵겠 네.’
긴장감에 마른침이 꿀꺽- 목울대 를 타고 넘어간다.
“대결 방식은? 어떻게 진행되는 거지?”
서준의 질문에 왕좌 위에 앉은 나라연천이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연다.
“기본은 일대일 대결이다. 룰은 자유. 무기와 능력 무엇을 사용해 도 상관없다. 상대를 죽이거나 살
리는 것도, 모든 것이 본인 재량이 자 자유다. 승리 조건은 전장에 최 후까지 남는 것. 살아남는 자가 승 리자다. 전에도 말했듯, 승자는 패 자의 모든 것, 차원의 모든 권한을 양도받는다.”
“그러면 승자가 연이어서 다음 상대를 상대해도 된다는 말인가?”
이어진 물음에 나라연천이 어이 없다는 코웃음을 친다.
“너무나 자만하는군. 나, 나라연 천을 상대하겠다고 하는 작자가 가 진 능력을 먼저 보여줄 생각을 했 단 말인가?”
나라연천의 가늘어진 눈이 서준 을 꿰뚫어 내듯이 흘겼다.
“자네의 힘은 광장해. 그건 나도 인정하지. 하지만 그게 언제까지나 자네가 정점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 은 아냐. 흘로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패배와 죽음을 앞당길 뿐이다.”
정곡을 찌르고 들어오는 나라연 천의 기세가 날카롭다.
확실히 남도의 전사, 나라연천의 친위대는 방심해서는 안 될 만한 강자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나라연천 또한 상 당한 강자였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괜한 변수를 높이는 싸움을 택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조언은 고맙게 듣도록 하 지.”
“무엇을. 감사할 것은 없다. 내 말을 겸허히 수용하는 것도 또한 자네 역량이니.”
서준은 고개를 끄덕인 후 질문을 이어간다.
“그런데 만약 상대가 약속을 어 길 경우는 어떻게 되는 거지?”
“그 부분은 걱정할 필요 없다.”
나라연천이 손을 내젓자, 허공 위로 처음 보는 형태의 언어가 휘 갈겨있는 거대한 회색빛 비석이 모 습을 드러낸다.
서준으로서도 처음 보는 특이한 형태의 물건이었지만, 정체를 유추 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위대한 존재의 조각.’
생김새는 전혀 달랐지만, 비석은 위대한 존재의 조각과 비슷한 느낌,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지금 중요한 것은 이런 기 운의 성질 같은 것이 아니었다.
“방금 말한 내용이 전부 기재가 되어있지.”
서준을 비롯한 일행들이 그 내용 을 각자의 언어로 이해할 수 있게 끔 친절하게 적혀 있었다.
“아, 그렇지.”
씨익 미소를 보인 나라연천이 검 지를 들어 올려 비석의 마지막 줄 서명란에 자신의 이름을 적었다.
스슥—
무언가 새겨지는 소리와 함께 비 석에 각인되듯 글자가 생성된다.
이후 나라연천이 손을 내젓자 비
석이 서준의 바로 앞으로 날아왔다.
“알고 있겠지만, 그 비석은 위대 한 존재가 남긴 유산이다.”
“위대한 존재의 조각……
“표정을 보아하니 계약서의 효력 이 얼마나 강력할지는 말하지 않아 도 알겠지?”
나라연천은 자신감 넘치는 목소 리를 홀린 이후, 서준을 응시한 채 로 다시 입을 열었다.
“여태까지의 모든 조건에 동의한 다면, 서명해라.”
서준은 비석의 마지막 줄에 적힌 패배자가 약속을 이행하지 않을 경
우, 관련된 모든 차원, 인물은 죽게 되며 차원 자체가 붕괴된다는 구절 을 보고서는 움직임을 멈췄다.
‘……이거 상당히 위험한 계약인 데.’
만약 나라연천이 계약을 어기려 할 경우, 수많은 생명을 모조리 죽 이고 차원 자체를 부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가질 필요도 없었다.
계약의 보증을 서는 것은 위대한 존재의 조각.
직접 겪고 사용한 그 조각이 가 진 능력과 힘이 무엇보다 대단하고 위험하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서준이 걱정하는 것은 고작 자신 혼자서 수많은 차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명이 걸려 있는, 이런 엄청난 계약서에 사인해도 되 냐는 점이었다.
수많은 이들의 목숨, 자유가 어 깨에 메여졌다.
그러나, 이제 와 압박감에 두려 울 필요는 없었다.
아니, 느껴서는 안 되는 상황이 었다.
‘어차피 이미 판은 벌어졌다.’
애초에 겁이 나서 물러난다고 해
서 피할 수 있는 싸움이 아니다.
‘오히려 더욱 잔인하면서도 끔찍 한 전쟁이 시작되겠지.’
물러설 곳은 존재치 않는다는 것 이었다.
오직 싸워 승리를 쟁취해내는 것 뿐이었다.
마음을 다잡은 서준은 손을 들어 올려 서명란에 자신의 이름을 적는 다.
스슥“
직후, 비석이 회색빛 기운을 토 해내는 순간이었다.
항거할 수 없는 마력이 일대를 휘감는다.
[계약은 이루어졌다.]
이후, 서준과 나라연천을 비롯한 주변에서 있는 친위대의 머릿속으로 무미건조하기 그지없는 음성이 울려 퍼진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계약을 거부하면 끔찍한 죽음을 맞이할 것을 말이다.
“그래, 자네도 한시름 놓은 것
같으니 이제는 본격적으로 시작해 도 되겠지?”
말을 내뱉은 나라연천이 눈을 흘 기며 자신의 친위대를 바라본다.
“그러면 첫 번째 선봉으로는 누 가 나설 것이냐?”
나라연천의 바로 옆에서 있던, 거대한 육체와 그에 걸맞은 우락부 락한 근육을 두른 사내가 앞으로 나선다.
“신, 바라하가 감히 이 전쟁의 선봉에서도 되겠습니까?”
“아르슈나의 가장 위대한 전사 바라하여, 자네 정도라면 선봉에
설 자격이 차고도 넘친다고 말할 수 있지. 출전을 허락을 해주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승리로써 이 은혜 를 갚도록 하겠습니다!”
나라연천을 향해 고개를 숙인 후, 포권을 취한 바라하가 발을 놀 리며 허공으로 치솟는다.
이내, 두 진영 사이의 중앙으로 떨어져 내린다.
쿵!
거대한 덩치만큼이나, 큰 기파가 사방으로 번져나가며 사방에 쩌렁 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 이름은 아르슈나의 전사 바 라하! 나의 승리의 제물이 될 자가 누구냐!”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