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권 22화
197화
“여기는……
서준은 다소 어지러운 머리를 부 여잡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기운을 허용해 주자마자, 절영호 로병으로부터 흘러나온 기운이 육 신을 잡아당겼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육신을 잡아 당기도록 허락해준 것이지만 말이
물론, 이런 자잘한 순서가 중요
한 건 아니었다.
“절영호로병이 왜 백옥문에……?”
착각이 아니었다.
혼돈의 힘을 집어삼켰던 기운의 성질과 마치 별 하나 없는 밤하늘 을 떠올리게 만드는 어둠 속과 같 은 풍경까지.
이 세계는 틀림없는 호리병의 내 부였다.
애초에 호리병의 능력은 모든 것 을 휩쓸고 흡수하는 것이었다.
본인의 보구에게 삼켜진 다소 황 당한 상황이었으나, 큰 위기감을 느낄 것도 없었다.
만약 탈출 방법을 모를 경우 위 험할 수 있었지만, 천 년간 절영호 로병을 다뤄 온 서준이 그 탈출법 을 모를 리가 없었다.
마음먹고 되돌아가고자 하면 순 식간에 호리병 바깥으로 탈출하여 다시금 본래 위치로 돌아갈 터였다.
‘그런데 굳이 나갈 필요가 있나?’
주술에 조예가 얕은 서준이었기 에 어떤 술법이 걸려 있는지, 어떤 결계가 쳐져 있는지는 몰랐지만, 호리병 내부는 매우 단단하고 절대 로 부서지지 않았다.
한마디로, 최고의 수련 공간이란
말이다.
‘굳이 마음에 걸리는 점은……
정체 모를 자가 나타나 호리병을 들고 다른 세계, 미지의 곳으로 갈 수 있다는 점 정도였다.
그러나 호리병이 움직인다는 느 낌이나 특별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 도 전혀 없었다.
위협이 될 상황이 연출될 확률이 낮다는 것이다.
안전이 확보되어 있다면 이것은 기회였다.
‘호리병 내부에 갇히는 게 흔한 일은 아니지.’
서준의 눈이 반짝인다.
숙련도를 가장 빠르게 늘릴 방법 은, 계속해서 연습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백 퍼센트 다뤄 낼 수 없 으면 너무나도 위험하면서도 불완 전한 힘인 만큼 함부로 사용할 수 는 없었다.
그렇기에 생명체를 일절 위협하 지 않을 수 있는 곳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때문에, 혼돈의 힘을 다뤄낼 수 있는 수련장을 찾아서 지구에 생성 된 게이트 이곳저곳을 공략하며 다 녔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게이트가 제대 로 된 힘을 발현해 보기도 전에 부 서져 버려 곤란해하던 참이었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면서, 절대 부서지지 않는 절대 수 련 공간.
마음껏 혼돈의 힘을 사용하기에 이만한 수련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완전 좋은 기회잖아……?”
호리병 내부에 갇힌다는 것은 지 금의 서준에게 최고의 선물이나 다 름이 없었다.
“사양할 이유가 없지.”
누가 어떻게 호리병을 얻어 어떠 한 이유로 백옥문에 설치를 해뒀는 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호리병에 갇힌다는 것은 서준에게는 최선의 상황이었다.
“고맙게 사용해주지.”
웃음을 보인 서준은 어깨너비만 큼 다리를 벌려 자세를 다잡은 후, 손을 앞으로 내뻗는다.
“무간(無間), 극한방출.”
엄청난 속도로 기운이 응축되고,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다.
그 화력의 폭풍 속에 빠져든 서준은 잠시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끼며, 황급히 발산한 혼돈의 힘 들을 회수한다.
‘이거…… 생각했던 것보다 더 위험하네……
더 포악하고, 파괴적이다.
어이없게도 본능적으로 불안감을 느낀 스스로가 힘을 제한하고 사용 하고 있던 것이었다.
만약 바깥이었다면 퍼져나가는 혼돈의 힘에 많은 생명체가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어느 정도 혼돈의 힘을 다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자부했는데, 근 거 없는 자신감에 그치고 말았다.
“허...... 허허......
어이없게 웃음을 홀린 서준은 재 빠르게 자세를 다잡는다.
‘이러면 더더욱 수련하는 보람이 있겠네.’
서준의 입가에 숨길 수 없는 기 쁨의 미소가 피어난다.
어느덧, 기운을 일으킨 서준이 다시 한번 주먹을 내뻗고 있었다.
쿠구궁……. 쾅-!
아공간이 뒤흔들리며 폭발이 일
어나기 시작했다.
호리병에 평생 갇혀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인지, 아니면 아직 눈치 채지 못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다행히도 갇힌 이후로도 호리병을 회수하려는 움직임은 전혀 포착되 지 않았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수련을 할
수 있게 된 서준의 입장에는 너무 나 기쁜 일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계속해서 수련 에 몰두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오늘이 벌써 사흘째.’
약속의 시간이 다가왔고, 제대로 된 수련을 이어가고 싶은 서준에겐 안타까울 정도로 짧은 시간이 지나 갔다.
하지만 당장 이 정도로도 주변의 피해를 생각하지 않고 수련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상당히 기쁘면서 도 의미 있는 일이었다.
실제로 서준은 바깥 세계에서는
위험하여 함부로 시험해보지 못했 던 혼돈의 힘이 가미된 무공을 마 구잡이로 사용해 볼 수 있었다.
결과는 아쉽게도 대다수가 실패 로 끝났지만, 얻은 것이 없지는 않 았다.
‘혼돈의 힘을 전보다 더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어.’
빈말이 아니었다.
무(武)에 관해서만큼은 독보적인 천재라고 불리는 서준은 불과 사홀 만에 혼돈의 힘을 보다 정밀하면서 도 정교하게 다뤄낼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설마, 혼천마공의 이식 (三式)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해낼 줄은 몰랐네.’
성장과 동시에 새로운 초식을 만 드는 데 성공했다.
비록 이식을 다뤄내는 게 아직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는 게 흠이 긴 했으나, 나라연천과의 대결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미련을 가질 수 는 없었다.
‘이제는 이곳에서 나가야 해.’
다행히도 호리병에서 나가는 것 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호리병 내부에 숨겨져 있는 핵,
탈출구에 손을 얹고 이곳을 나가겠 다는 의지를 불어넣는 것이 전부였 다.
본래라면 내부의 핵을 찾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지만 서준에 게는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스윽“
자연스레 발걸음을 옮긴 서준은 호리병의 핵의 앞에 어렵지 않게 섰고, 손을 얹었다.
이윽고, 강력한 의지를 불어넣는 순간이었다.
휘오오…….
몸 주변에 회오리가 몰아치고 감 각이 뒤틀리더니, 마지막으로 보았 던 태산의 풍경과 부서진 하얀 백 옥문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백옥문을 바라보는 서준의 눈동 자에는 진한 아쉬움이 어린다.
‘선계로 가서 확인해보고 싶은 게 많은데……
달라진 시간의 축에 대한 의문, 남은 보구들의 행방과 현재 옥황의 의사까지.
이외로도 궁금한 것들이 한 보따 리 남아 있었다.
하지만 걸음을 내디딜 수는 없었
다.
앞서 말했듯, 나라연천과의 대결 이 약속되어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 었다.
‘아쉽지만 지금으로써는 어쩔 수 가 없네.’
아쉬움에 입맛을 다신 서준이 백 옥문으로부터 등을 돌린다.
생각해보면, 애초에 조바심 낼 필요가 없는 부분이다.
호리병 내부에서의 수련으로 한 층 더 강해진 만큼, 입구를 더 정 교하게 숨긴다고 해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잠시 뒤로 미뤄둬도 상관없는 일이야.’
지금은 리벨리온, 지구의 명운이 걸려 있는 나라연천과의 대결만을 생각할 때였다.
생각을 정리한서준은 구석 편에 널브러져 있는 절영호로병을 주워 들고 자리를 벗어났다.
요 며칠 서연을 비롯한 출전 대 표들의 수련은 상당히 고됐다.
다들 머리로는 연신 무공의 올바 른 사용 방법을 몇 번이고 되뇌며 서준이 가르쳐 준 무공을 따라 하 기를 반복했지만, 이내 모두 한숨 을 연신 내쉬었다.
“하아.”
“마음대로 되지 않네요.”
대표들은 뒤늦게야 서준이 자신 들에게 알려주고 간 무공의 난이도 가 말도 되지 않는 수준이라는 것 을 뼈저리게 체감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것에 대해서 불만을 가
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 노력하여 그 기대에 부응하겠다는 생각만이 커질 뿐이 었다.
애초에 이 정도의 힘, 준비가 없 다면 이번 전장에는 설 수 없다.
다행히도 바탕이 되는 재능과 고 된 노력이 더해져서인지 꽤 빠르게 유의미한 성과를 거둬가고 있었다.
그렇게 남은 시간이 빠르게 홀러 갔다.
서연을 비롯한 대표들이, 모두 상당히 지친 모습으로 서로를 보며 미소 짓고 있올 무렵.
[시간이 됐군. 전장은 준비됐다. 리벨리온의 대표자들을 기다리지.]
나라연천의 목소리가 세계 곳곳 에 울려 퍼졌다.
연합 본부.
세계 각국의 정상이 모여 있는 이 자리에도 나라연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거운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각 나라의 지도자를 비롯한 최정상들의 시선이 저절로 창문 밖 을 향했다.
“외계 종족의 기술력이란…… 정 말 대단하군요. 이런 곳까지 목소 리를 전달할 수 있다니 말입니다.”
헛웃음을 흘린 미국 대통령 루이 스 마셜의 앞, 의자에는 독일의 총 리인 뮐렌이 앉아있었다.
그는 밀려오는 긴장감에 마른침 을 꿀꺽- 삼키며 입을 열었다.
“사실상 전 세계에 전해졌다고 보아도 무방하겠지요.”
“정말 괴물 같은 이들이군요.”
현재까지 지구가 알고 있는 그 어떠한 각성자, 이종족도 전 세계 인 모두에게 음성을 전달할 수는 없었다.
말 그대로 기존의 상식을 아득히 벗어난 능력을 지닌 것이었다.
어이없는 웃음을 홀린 뮐렌은 의 자에 몸을 기댄다.
“슬프지만 저희는 저런 괴물을 상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준비를 해두지 않았습니까.”
그 말에, 뮐렌이 쓴웃음을 흘린 다.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도주 계 획을 짜둔 것들을 말씀하시는 건가 요?”
“각자 맡은 바 임무가 있는 법이 죠.”
“말이라도 고맙습니다.”
넋두리와 같은 말을 흘린, 루이 스의 시선이 창밖을 향했다.
지구의 불안전한 상황과 달리 평 온하면서도 맑은 하늘이 그의 심리 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과연 한서준 각성자, 리벨리온 을 지지하는 일이 잘하는 것일까 요?”
“후회하시나요?”
고개를 내저은 루이스가 피식-미소를 흘린다.
“당연히 아니지요.”
“저도입니다, 바보같이 끌려다니 고 지배당하는 것은 자유를 구가해 온 우리 성정에 맞지 않죠. 다소 도박적인 면모가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요.”
각국 정상의 시선이 일제히 활짝 열린 창문, 하늘을 향했다.
“만약 이 싸움에서 이겨낸다면 난 앞으로 무슨 욕을 먹더라도 한서준을 크게 지지할 생각입니다.”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깊은숨을 내쉰 루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게 미래 지 구의 모습이죠.”
“상당히 기대하고 계시나 보군
요.”
침묵을 지키고 있는 루이스의 얼굴에 스스로에 대한 의문이 떠올랐
다.
그리고 곧, 숨길 수 없는 미소가 피어난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이번 싸움에서 한서준이 이끄는 리벨리온이 승리를 거머쥔다.
그로써 지구, 리벨리온이 단순히 천사와 악마뿐만이 아닌 어떠한 상 위 종족과의 싸움에서도 절대로 밀 리지 않다는 것을 모두에게 보여준 다.
완전한 독립과 자유를 거머쥐게 되는 것이었다.
“독립과 자유, 인간의 삶에 이보
다 더 매력적인 말은 없지 않습니 까‘?”
환한 미소를 보인 루이스는 간절 히 원한다.
“한서준 각성자님 부디, 모두를 위해서라도 꼭 이겨 주십시오.”
차원 남도와의 싸움에서만큼은, 절대로 지지 않기를 이 자리의 모 두가 기도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