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8권 18화
193화
별안간 욕설을 들은 바알이었지만, 바알의 표정은 평온하기 그지 없었다.
“너무 흥분한 것 같은데 잠시 진 정하게. 머리에 열이라도 좀 식히 는 게 어떤가?”
“딱히 그럴 필요 없어.”
자기 자신의 감정인 만큼 누구보 다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치솟는 분노는 바알의 사지
라도 분질러야만 사라질 감정이었다.
서준이 진한 살기가 어린 눈동자 로 응시하고 있었지만, 바알은 여 전히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잘 생각해보게. 내가 정말 자네 를 분노하고 절망하게 만들고 싶었 다면 자네의 신하는 진즉 죽음을 맞이했을 걸세.”
쉽사리 부정할 수 없었다.
루이드, 지금은 바알의 이름을 가진 악마의 힘을 생각한다면, 광 무혈마는 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었다.
아니, 지금 마주하고 있는 바알 의 힘을 보아서는 서울이 소멸 위 기를 맞이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바알은 정말로 광무혈 마를 의도적으로 놓아줬다는 말이 된다.
생각에 잠겨, 침묵을 지키는 서준의 모습에 바알은 비릿한 미소를 흘리며 말을 이어나간다.
“묻겠네. 악마와 인간은 꼭 싸워 야만 하는가? 우군이 될 수 없는 건가?”
서준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이제 와서?”
“악마가 과거, 지구를 침공했다. 이 이야기는 누구의 기억인가?”
“수많은 기록들.”
서준은 대격변의 초기에는 지구 에 존재하지 않았다.
옥황의 실수 혹은 고의로 인해 대격변 이후 귀환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서준이 모르는 대격변 당시의 기억은 기록으로만 남겨져 있는 것이었다.
“기록이라……. 그를 뒷받침할 증거는 존재하는가? 잘 생각해보
게. 인간이여. 우리 악마 중에는 신 이 많지. 천사 중에도 마찬가지야. 더 높은 존재인 대신도 물론 존재 한다네.”
바알이 너털웃음을 홀린다.
“그런 신격들이 고작 지구라는 곳을 넘보기 위해서 대전쟁을 벌였 다고?”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지구는 과연 질 좋은 생명력이 흐르는 곳이었기에 신격 하나쯤은 탐을 낼 수 있는 차원이었다.
그러나, 천사와 악마, 강하면서도 다수의 신격과 대신까지 존재하는
종족이 전쟁을 벌이면서까지 탐낼 만한 차원은 아니었다.
만약, 정말로 이 땅을 두고 전쟁 을 벌였다면, 지금 지구는 이렇게 온전하게 존재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자네도 알고 있지 않나? 지구는 넓은 차원이긴 하나 신격에 오른 존재들이 마음을 먹는다면 순식간 에 지워버릴 수 있다네.”
바알의 검지 끝이 서준을 향한 다.
“생각해보게, 대전쟁 당시의 기 록들은 어떠한 형태로 남아 있지?”
“수기와 구전.”
대부분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왔다.
그리고 그렇게 전해진 이야기들 이 문서로 만들어지고 남겨져 있었다.
“이상하지 않나? 지구에는 과학 이란 문명이 상당히 발달해있는데 그런 파멸적인 대전쟁이 있었다면, 다른 기록이 남아 있어야 정상 아 니겠나?”
존재하지 않았다.
구전과 문서를 제외한 어떠한 형 태로도 말이다.
“다시 묻겠네, 지구는 정녕 진정 우리 악마들에게 침공을 당한 적이 있는가?”
바알의 입가에 미소가 흐르기 시 작한다.
“천사들이 지어낸 거짓말에 기만 당하지 말게, 자네는 테두리를 부 수고 홀로 존귀해진 위대한 신이 된 자이니.”
눈을 가늘게 뜬 서준은, 그런 바 알을 응시한다.
“정확하게 하고 싶은 말이 뭐 야?”
물었다.
그리 생각한 바알의 입가에 어려 있던 미소가 짙어진다.
“우리와 손을 잡고 천사와 함께 싸우자는 거네. 자네를 기만하고 능멸한 그들을 말일세.”
바알이 온순한 표정으로 손을 내 민다.
그를 본 서준이 코웃음을 친다.
“내가 너 같은 사기꾼을 한두 명 만나본 줄 알아?”
“어리석군, 어리석어. 어째서 우 리와 같은 든든한 우군을 적으로 돌리려 하는 거지?”
“뭐, 단순히 구전과 문서로 남은 기억을 신용할 수 없다는 네 말에 는 일부 동의하지. 하지만, 대격변 이후로도 악마는 얼마든지 타 차원 을 공격해왔어. 지구까지도. 내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지.”
“흐음, 그건 나의 뜻이 아니었다 만.”
바알이 느긋한 음성을 흘렸다.
“불필요한 침공과 살육을 벌이지 말라는 명령을 내려두긴 하였으나 인간이 그렇듯 우리 악마들 또한 개개인의 성향과 성격이 다르며 그 중에는 제멋대로 날뛰려는 녀석들
이 존재하는 법이지. 혹여 이 부분 에 대해서 불만이라면, 이 내가 대 신 사과하지.”
제법 그럴듯한 변명이었지만, 서준은 바알을 믿을 생각이 없었다.
악마는 거짓말과 사기를 일삼는 종족.
지금 당장 보이는 우호적 모습이 진짜라고 할지라도 만약 천사들과 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머쥐게 된다 면?
‘토사구팽 (束死有長).’
자신들을 견제할 적수가 없어졌 다고 생각한 악마는 분명 지구, 리
벨리온을 집어삼키려 할 것이었다.
“음……, 자네가 어째서 투신이 라 불리는지 알 것 같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던, 바알은 차가운 눈동자로 서준을 응시한다.
“마지막으로 묻겠네, 너희 리벨 리온이 천사와 악마 모두를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불가능할 이유는 없지.”
믿음.
대신(大神)을 위협할 정도로 강 했던 자신의 재능과 각 종족의 수 장들이 가진 가능성 그 모두를 믿 었다.
현재 연합이 가진 모든 것들을 개화하고 조화시킬 수 있다면, 천 사와 악마를 무리 없이 상대할 수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었다.
“감정에 치우친 만용은 큰 화를 부를 뿐이야.”
“만용은 내가 아니라 네가 부리 는 거겠지. 본신도 아닌 그런 분신 체로 내 앞에서 그런 말을 지껄이 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 생각 했나?”
“그래, 아무래도 교육이 좀 필요 하겠군. 대단한 존재임은 맞으나, 오만함이 위대한 대신을 넘어설 정
도이니 말이야.”
어이없다는 듯 혀를 차며 웃은 바알이 손바닥을 활짝 펼친다.
“이 몸은 대신(大神)에 오른 존재이자 악마들의 위에 군림하는 왕, 지저의 대현자 바알이다.”
바알이 손을 내뻗자, 붉은 전류 가 파지직- 소란을 일으킨다.
콰쾅-!
이어서 하늘에서 벼락이 내리치 는 순간이었다.
띵-!
[자신보다 강한 적과의 전투를 벌입니다.]
[투신(상격) 신명의 효과가 발동 합니다.]
[모든 스테이터스가 3배 증가합 니다.]
투신의 효과가 발동했다면, 상대 는 틀림없는 강자.
실제로도 내리치는 벼락은 강대 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를 다뤄내는 기교가 한 참이나 부족했다.
“어설퍼.”
이런 식의 공격에 맞을 리는 없 다.
피식- 미소를 흘린 서준은 재빠 르게 발을 놀린다.
“고작 한 번 피한 것으로 그렇게 기고만장하지 말게.”
그 말과 함께 바알이 내뻗고 있 던 주먹을 말아 쥔다.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벼락이 쏟아 져 내린다.
한 발, 한 발.이 의지가 실려 있
는 강기, 의념강기로 이루어진 공 격들이 었다.
위력도 뛰어났지만, 음속에 달할 정도로 상당하다.
허나, 서준은 침착하게 앞으로 내뻗고 있던 발을 옆으로 꺾어낸다.
콰쾅, 콰과광-!
방금까지 서 있던 자리에 벼락의 세례가 떨어진다.
그 여파가 바닥, 바다 위에 미쳐 태평양의 물이 허공까지 치솟아 오 른다.
후두둑-
장대비와 같이 쏟아지는 바닷물 을 바라보고 있는 바알의 눈이 빛 난다.
“물은 전기를 잘 흐르게 하지.”
바알의 육신에서 세상을 휘감아 내는 붉은 전류가 피어오른다.
쿠구궁.....
솟구치던 물방울들이 발작을 일 으킨다.
이후, 물방울이 기존의 법칙을 어그러뜨리며, 허공으로 치솟는다.
“마탄(魔彈).”
피할 곳은 없다.
굉음과 함께 수만 발의 탄환이 서준에게도 쇄도한다.
파바박-
쏟아지는 공격 속, 식은땀을 흘 리며 발을 놀리는 서준과 바알의 시선이 교차한다.
“이제야 네놈의 오만함을 알겠 나?”
바알의 입가로 묘한 웃음이 떠올 라 있었다.
그 모습은 비웃는 듯도 하였으 며, 크게 안도하는 것처럼 보이기 도 한다.
다소 의문이 피어나는 모습이었지만, 서준은 그에 따른 생각을 할 겨를 없이 쏟아지는 탄환을 피해내 기도 바빴다.
실제로도 바알의 탄환이 서준의 몸을 둘러싸고 있던 의념강기를 찢 어발긴다.
지직-
찰나의 틈, 찢어진 호신강기를 파고들어 몸 곳곳에 마탄이 달라붙 으며 전기를 흘려낸다.
“고통에 몸부림쳐라.”
미소를 홀린 바알이 계속해서 맹 공을 퍼부었다.
쾅-!
워낙 짧은 틈이었기에 파고든 마 탄의 수는 미미한 수준이었으나, 온몸을 휘감는 마탄의 고통에서준 의 미간이 찌푸려져 간다.
그 끝.
콰광-!
서준의 머리 위에서 붉은 벼락이 관통할 듯 크게 내리친다.
의념강기를 두르고 있던 만큼, 단숨에 타버린 것은 아니었지만, 서준의 신형은 단숨에 태평양 아래 로 처박혀 바닷속으로 가라앉았다.
‘동맹 제안은 괜한 짓이었나?’
허공 위, 검은 날개를 펼치고 있 던 바알이 이맛살을 찌푸린다.
분명 한서준은 강하다.
인간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 도로 말이다.
비록, 분신의 전력은 본신에 비 하자면 절반에 불과했지만, 어찌 됐든 대신에 오른 바알, 본인의 공 격을 이토록 막아낼 수 있는 존재 는 수많은 차원을 넘나들면서도 몇 번 보지 못했다.
적어도 서준은 전 차원들을 통틀 어서도 수준급으로 강하다는 것이
허나, 대신급에 이른 천사들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한서준을 포기하고, 이 자리에서 물러나서는 안 되었다.
‘이 성장이 불과 수개월 만에 이 뤄낸 것이라니.’
오직, 인간만이 가능한 일이었고, 그렇기에 한서준을 그냥 방치해둬 서는 안 되었다.
‘확실하게 내가 품어내든가, 이 자리에서 죽여 둬야 한다.’
바알의 차가운 눈동자에 정면,
어느덧 수면 위로 떠오른 서준의 모습이 들어온다.
“어떤가. 아직도 동맹을 체결할 생각이 없는가?”
바알의 물음을 무시하고 서준은 침을 뱉으며, 고개를 털어낸다.
“퉤, 퉤, 더럽게 짜네.”
“여전히 동맹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나 보군.”
어깨를 으쓱이는 바알이 다시 붉 은 전류를 일으킨다.
“그렇다면 자네의 앞길에 남은 것은 죽음뿐이네.”
말을 내뱉은 바알은 흘러나온 전 류를 이용하여 마탄을 다시금 생성 해간다.
살기 어린 눈동자를 한 바알이 다시금 손아귀를 꽈악- 말아 쥔다.
파바박-
다시금 음속의 속도에 다다른 번 개가 서준을 향해 내리꽂힌다.
“느려.”
휙-
한 번의 손짓
가벼이 내저은 한 번의 손짓으로 벼락을 지운 서준은 입꼬리를 비틀
어 올린다.
“건방진!”
노골적인 비웃음에 기분이 상했 는지 바알의 미간을 찌푸리며 주먹 을 말아 쥔다.
쾅
허나, 또다시 서준은 내리친 벼 락을 가벼이 흘려낸다.
보인 동작이라고는 여전히 가볍 게 내저은 한 번의 손짓이었다.
“어, 어떻게……
바알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순간 이었다.
“천존마선, 정격. 너의 벼락은 내 구름에 삼켜졌어.”
웃음을 보인 서준이 다시 한번 손을 내젓는다.
쿠웅.....
바알이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의 념강기를 펼쳐낸다.
하지만 급하게 만들어 낸 방어막 이 강할 리가 없었다.
내리친 벼락으로 인하여 바알의 신형이 바닥에 처박힌다.
‘ 구름?’
뒤늦게야 주변을 살핀 바알의 눈
이 휘둥그레진다.
마치 칠혹을 머금은 듯한 구름이 일대를 장악하고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는 사실은, 구름에 삼켜진 벽력의 대부분은 바알이 다 루고 있던 것이란 점이었다.
완전히 서준의 손아귀에 놀아나 면서, 농락당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감히!”
바알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 진다.
“인간 따위가 대신을 농락하다 니!”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