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권 12화
187화
서준이 웃는 것을 확인한 에레미 아의 입가에 자신만만한 웃음이 피 어난다.
[내 위엄에 실성했나 보군. 치천 사장의 권한으로 지금이라도 고통 없는 죽음을 맞이할 자애를 베풀어 주겠다. 자결하라.]
허세를 부리는 것이 아니었다.
이유는 아직 알 수 없었으나, 에 레미아는 발목이 묶여 지구로 넘어
오지 못하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곳, 차원 글로리시아 안이라면 에레미아는 자유롭게 움 직이고 가진 모든 힘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이 가능했다.
‘상격에 오른 신.’
사실 이것도 추정에 불과했다.
글로리시아는 백색의 빛, 신성력 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에레미아는 그 신성력을 기반으로 자신의 힘과 존재감을 불 리고 있었다.
지금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라는 말이었다.
[마지막 자비마저 뿌리치다니, 제 손으로 걷어찬 기회를 고통 속에서 후회하게 될 거다.]
에레미아가 허공에 손을 뻗자 일 대에 빛무리가 모여들며 한 자루 검을 형성한다.
후웅-
이윽고, 검이 휘둘러지는 순간, 환한 빛의 세계가 마구잡이로 갈라 지고, 찢어진다.
서준은 찢어지는 세계 사이로 몸 을 던져 에레미아와의 거리를 좁혀 낸다.
[택해라. 팔다리가 잘려 허우적대
다 비참하게 죽을 것이냐, 아니면 몸이 두 동강이 나는 끔찍한 죽음 을 맞이하겠느냐.]
“시끄럽네.”
비웃음으로 대답한서준이 오른 손과 왼손에 내공을 응축시킨다.
“죽는 건 내가 아니라 너야.”
바로 앞에서 수십만에 달했던 천 사들을 휩쓸었던 것과 같은 거대한 내공들이 모여들고 있었지만, 에레 미아에겐 그조차 우습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하찮은 힘이로다. 그까짓 잡기로 나를 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
는 것이냐-!!]
에레미아가 다시 손을 뻗자 빛무 리가 응어리지고 한 자루의 창을 형성했다.
이어서 창끝에 날카로운 의념강 기가 맺히기 시작한다.
쾅
주먹과 창이 부딪치며 폭발이 일 었다.
그 기파가 사방으로 번져나가는 것과 동시에, 딛고 있던 대지가 하 늘로 솟는다.
후두둑...
떨어져 내리는 바위와 자갈들을 호신강기로 가볍게 떨쳐낸 서준의 눈이 빛난다.
[네놈의 격으로는 나에게 닿을 수 없다.]
그 말과 함께 에레미아의 신형이 서준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에레미아의 기운이 폭발 할 듯 솟구치는 것만큼은 느껴진다.
‘ 초음속.’
곧, 무시무시한 맹공들이 쏟아져 내리려 할 것이다.
단순한 유흥거리로 여길 만한 상
대가 아니었다.
[투신(중급) 신명의 효과가 발동 됩니다!]
[정복왕의 수투의 특수 능력 정 복왕의 진가가 발동됩니다.]
[정복왕의 수투의 특수 능력 가 이사의 광폭이 발동됩니다.]
[훤일(暗日)의 낮 귀걸이를 착용 한 ‘분신’으로부터 능력치를 흡수합 니다.]
체내에 힘이 용솟음치기 시작한
다.
어마어마한 속도의 영역에 들어 감각이 에레미아의 움직임을 마침 내 정확하게 포착하기 시작했다.
공격을 퍼부어내는 에레미아는 뛰어난 육체 능력을 믿는 것인지 방어 따위는 생각지 않고 있었다.
‘자고로 과한 자신감은 독이 되 는 법이지.’
서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떠 오른다.
맹렬한 공격의 세례 속, 존재하 는 아주 작은 틈들 사이를 누비며 공격을 피해내며 발을 놀린다.
이윽고, 여덟 번째 걸음이 땅에 닿는 순간 팔경성보, 지수(止水)가 펼쳐진다.
서준의 신형이 바람과 함께 흩어 졌다.
이윽고, 에레미아의 앞에 당도한서준의 손바닥이 뻗어졌다.
팡-!
서준이 내지른 일장이 에레미아 의 주변을 싸고 있던 의념강기를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했다.
[……?!]
당황한 에레미아의 표정을 확인
한서준은 입가에 호선을 그린 채 로 더욱 공격에 열을 올렸다.
콰직, 콰드득-!
세상이 마구잡이로 부서지는 소 리와 함께 에레미아의 얼굴이 서서 히 일그러져 간다.
그 끝.
쾅-!
폭음과 함께 에레미아의 가슴팍 을 서준의 손바닥이 관통할 듯 크 게 때렸다.
황급히 펼쳐낸 의념강기가 있었 기에 단숨에 꿰뚫리지는 않았지만, 에레미아의 신형은 단숨에 바닥에
내리꽂힌다.
쾅-!
바닥에 생겨난 거대한 크레이터 에 박혀 있는 에레미아를 바라보던 서준은 입꼬리를 한쪽만 비틀어 올 린다.
“닿았네?”
노골적인 비웃음을 흘리고 있는 서준의 모습에 에레미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진다.
[제법이군. 설마 내 몸에 손을 댈 줄이야. 그러나 결국 날 뛰어넘을 수는 없을 것이다.]
동시에 에레미아의 몸 주변에서
새하얀 광채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 한다.
여태 보았던 글로리시아의 하얀 빛과는 사뭇 이질적이었다.
에레미아가 직접 빚은 내공, 기 운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몸은 무신(武神). 그중에서도 상격에 오른 존재로 대신에 곧 오 들 몸. 백식(百式)의 웨펀 마스터 에레미아다.]
에레미아, 다르게는 상격의 무신 이자 웨펀 마스터라 불리는 그가 직접 기운을 이용하여 한 자루의 검을 빚어낸다.
지잉-
만든 검날에는 찬란한 백색의 의 념강기가 둘러져있다.
[네놈은 넘볼 수도 없는 영역에 발을 디딘 존재라는 것이다.]
에레미아가 하늘에 닿아있는 거 대한 검을 크게 휘두른다.
그러자 검날을 따라, 새하얀 빛 이 마치 유성처럼 쏟아져 내려 서준의 신형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 나가 바닥에서 폭발을 일으킨다.
콰쾅-!
굉음과 함께 대지가 흔들렸고 차
원 전체가 들썩인다.
압도적인 파괴를 목도한서준의 목울대로 마른침이 넘어간다.
‘한 방, 한 방이 천존마선공의 일 격에 달하는 파괴력이다.’
심지어 가짓수는 무수히 많았고, 범위도 상당했다.
방출을 위한 특별한 준비도 없었다.
그저 검을 빚어내어 휘둘렀을 뿐 이다.
실로 훌륭한 기의 조율이라고 말 할 수 있었다.
서준의 입에서 감탄이 터져 나온 다.
“ 대단하네.”
거짓된 거인의 왕을 상대했을 때 는 크게 실망했던 서준이었다.
정확하게 말해서는, 본연의 능력 이 전투에 치중되지 않는 신격의 능력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술법사에 가까운 존재였지.’
무(武)를 다루는 무인(武人)과는 거리가 멀었단 얘기다.
강력하긴 했으나, 전투에서는 상 격의 신이라고 보기에 다소 부족한
면모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에레미아는 확실히 달랐다.
상격, 그것도 무신(武神)이라는 이명이 아깝지 않은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팔뚝에 닭살이 일어나며 입꼬리 가 씰룩인다.
‘이래야 재미가 있지.’
비로소 이제야 싸움과 같은 싸움 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과연 언제까지 그런 웃음을 보 일 수 있을지 궁금하군.]
“궁금하다면, 제대로 덤벼 봐, 조 금 더 즐기고 싶으니까.”
[그리도 명을 재촉하고 싶다니 청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겠군.]
에레미아는 쥐고 있던 백색의 검 을 다시 허공으로 사라지게 하고 등 뒤에 매고 있던 붉은빛의 창을 손에 쥔다.
그것만으로 차원이 겁을 먹은 듯 숨을 죽였다.
“그건 좀 위험해 보이는데?”
[감이 좋군, 게이볼그를 알아보다 니.]
“게이볼그……?”
서준은 신화에 대해서는 자세히 몰랐다.
하지만, 그 이름이 위험하면서도 끔찍한 무기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천사가 그런 잔인한 무기를 써 도 되는 거야?”
에레미아가 피식- 미소를 흘린 다.
[네놈과 같은 대역죄인을 처단하 기 위해 존재하는 창이지. 그것보 다는 지구의 전설 속에 남은 이야 기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이 창을
내가 다룬다는 것에 신기해야 하지 않겠나?]
말을 끝맺은 에레미아의 신형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서준이 기운을 일대로 퍼뜨리며 사라진 에레미아의 움직임을 좇는 다.
포착된 곳은 바로 등 뒤.
참으로 거칠고 포악한 기운이었다.
[이유가 뭔지 궁금하지 않나?]
재빨리 등을 돌린 서준이 입을 연다.
“가진 명성, 쓰인 신화는 곧 힘 이 되고 실체가 되니까.”
[정답이다, 이제 네놈이 어떠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 알겠나?]
서준은 황급히 양손을 앞으로 뻗 어 방패 형태의 의념강기를 계속해 서 빚어낸다.
[물어뜯어라, 게이볼그.]
의념강기로 빚어진 다수의 방패 와, 에레미아의 게이볼그에서 흘러 나온 기운이 격돌하며 충돌을 일으 킨다.
챙-!
막강한 힘이 격돌하고 사방으로 전류를 토했다.
‘그래도 그 명성만큼 강하지는 않은 듯한데.’
서준의 뇌리에 의문이 피어나고 있던 찰나, 미소를 흘린 에레미아 의 손이 다시 한번 움직인다.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집에서 두 자루의 검이 빠져나오고 하늘로 치 솟아 오른다.
척 보아도 하나하나가 범상치 않 아 보이는 무기들이었다.
[나는 무신! 모든 병장기는 내 손에서 춤춘다.]
에레미아의 음성과 함께 두 자루 의 검이 허공을 노닐며 서준의 사 방을 노리고 쏘아졌다.
강력한 게이볼그의 기운을 막기 위해 전면으로 대다수의 힘을 쏟고 있는 서준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난 처할 수밖에 없었다.
급한 마음에 허공에 흩뿌려진 신 성력을 다뤄내 방어막을 형성해 보 지만, 에레미아가 뽑아낸 검은 생 각 이상이었다.
정확하게 말해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절검 (絶劍).]
에레미아가 입술을 달싹였고, 그 순간 날아들고 있는 두 자루의 검 이 세계의 일부를 찢어발기더니, 허공에 펼쳐낸 방어막을 뛰어넘으 며 서준을 향해 쇄도했다.
“허업-!”
서준이 헛바람을 삼키며 재빨리 앞으로 내뻗고 있던 양팔을 거세게 휘두른다.
챙, 챙-!
게이볼그에서 나오던 기운이 요 란한 소리와 함께 경로가 바뀌더니 서준의 신형이 흩어지듯 사라진다.
콰과광-!
폭음이 연달아 들려오고, 일대에 는 흙먼지가 피어나 시야를 모두 뒤덮은 순간이었다.
휙-!
솟아오른 흙먼지를 가르고 뛰어 오른 에레미아의 검이 아무것도 없 는 허공을 향해 휘둘러지는 것처럼 보인다.
허나, 그 순간.
그 자리로 이동 중이던 서준이 에레미아의 검들과 부딪힌다.
.....
움직임을 완전히 읽혔다.
그 사실에 놀라기도 전, 매섭게 눈을 굳힌 에레미아가 게이볼그를 휘두르고, 허공에 떠오른 두 자루 의 검을 조종하면서 서준을 압박해 온다.
놀라운 점은 세 자루의 병장기가 각각 펼치는 공격의 방법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펼쳐지고 있는 창술, 검 술 하나하나가 매우 높은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서서히 몸을 압박하고, 옥죄여오 는 병장기들의 매서운 공격들에 비
로소, 무신이라는 신명의 능력이 실감되기 시작한다.
서준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 렸다.
‘위험하다.’
마지막 수라고 할 수 있는 권능 을 사용한다면 지금 당장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에레미아가 가진 힘이 어 느 정도인지 아직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무인들이 괜히 실력의 7할은 숨 겨두는 게 아니지.’
먼저 마지막 수를 꺼내 들 경우,
역습을 당하거나, 허무하게 파훼되 고 간파당할 확률이 매우 높았다.
그러나 지금의 서준에게는 이러 한 고민조차도 사치였다.
[절검.]
허공을 노닐던 검이 다시 한번 공간을 찢었다.
갑작스레 거리를 좁혀온 검날이 서준의 심장을 노린다.
쌔액-!
빠르게 의념강기를 형성한 덕에 막아냈지만, 균형이 완전히 무너졌 다.
더 이상 게이볼그를 휘두르고 있 는 에레미아의 공격들을 막아낼 수 없었다.
어깻죽지를 파고드는 게이볼그의 창날의 서늘함을 느낀, 서준의 입 가에 헛웃음이 흐른다.
‘방법이 없다.’
이리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 보다는 무엇이든 나을 거다.
전력을 다한다.
사경을 헤매고, 호흡은 벅차올랐 으며 머리가 아찔해지고 있었지만, 즐거웠다.
미적지근했던 전투들과는 다르게 심장이 떨리는 싸움이 이어지고 있 다.
지금 느끼고 있는 흥분을 계속해 서 간직해 종국에는 이번 투쟁(H 爭)에서 살아남고, 새로운 힘을 얻 어내어 마침내 벽을 넘어설 거다.
지금 이 순간을 단순히 위기가 아닌 기회로 바꿔낼 거라는 말이었다.
[사용자 ‘한서준’의 권한으로 고 유 활성화 스킬, 비상천의 효과를 재활성화합니다.]
[모든 스테이터스가 1500씩 중가 합니다.]
[사용자 ‘한서준’에게 법칙, 상식 밖의 힘을 조율할 일부 권한이 부 여됩니다.]
마지막 수로 사용하기 위해, 일 시적으로 잠가두었던 비상천이 활 성화되기 무섭게 넘치는 힘과 새로 운 권한이 신체에 깃드는 순간이었다.
콰앙-!
빛과 어둠.
두 개의 힘이 체내에서 어우러지 고 폭발하며, 육신과 사고를 가속 시킨다.
극초음속, 서준의 신형이 절대적 영역에 도달하며 순식간에 흩어진 다.
“이런 장난들은 그만하고……
말끝을 흐린 서준이 내뻗은 손에 모여든 회색의 기운들이 에레미아 가 다루고 있던 검들을 부쉈다.
“제대로 한번 겨뤄 보자.”
어느덧, 서준의 눈동자에는 모두 를 공포에 떨게 했던 마선으로서의 꺾이지 않는 투지가 어려 있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