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권 11화
186화
지상에 삼십만에 달하는 천사 군 단이 결계의 핵을 부수기 위해 강 하한다.
인간, 엘프, 수인, 드워프는 각자 의 위치에서 진형을 갖추고 쏟아져 내리는 천사를 향해 각자의 절기를 뽐낸다.
빗발같이 쏟아지는 그 힘들은 천 사들에게도 매우 위협적이었다.
급속도로 강하하던 천사들이 핵
에 도달하기도 전, 약 삼만에 달하 는 천사들이 허망하게 자취를 감췄 다.
물론, 그 활약의 중심에는 각 종 족의 대표들이 서 있었다.
콰광-!
하지만 기둥의 근처에 접근한 천 사들과의 난전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질릴 정도로 쏟아지는 천사의 공 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지기 시 작했다.
“몸이 튼튼한 수인족이 전면에서 막아 줘!”
“엘프! 내부 결계는 아직인가!”
“치유 각성자들 이쪽으로 붙어 줘!”
다급한 외침이 여기저기서 쏟아 져 나온다.
계속 강하하는 천사들은 스스로 의 재생 능력들을 믿는 것인지, 거 침없이 돌격하며 연합군의 육신을 도륙해 마지막 순간까지 공격을 가 해온다.
지상에 안착하기 전, 마구잡이로 쓸려나가던 때와는 사뭇 차원이 다 른 공세였다.
“부상자들은 뒤로 빠지고 빠르게
진형을 재정비하라!”
위기의 상황이 이따금 찾아왔지 만 각 종족의 장점들을 이용한 지 원, 전투와 빠르게 부상자들을 뒤 로 물리고 곧장 새로운 진형과 계 획을 세워내는 강석호의 지휘 솜씨 가 빛을 발한다.
서서히 뒤로 밀려나는 천사들의 진형에 사기가 더욱 물이 오른다.
그때쯤 휘노소프의 입에서 기다 리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력포의 장전이 끝났습니다! 모두 길을 여십시오!”
그리고 연합군은 기다렸다는 듯
이 길을 열었다.
이윽고, 마력포의 항로가 열렸다.
“발포-!!”
거대한 굉음이 터져 나오는 순간 이었다.
“끄아악-”
“허억-!”
단말마와 함께 천사가 추풍낙엽 처럼 쓸려나간다.
그 사이 엘프들 역시 정령들과 함께 마법들을 펼치기 시작했다.
“바람의 정령이여, 성령이여, 부 름에 답하여 무너지지 않는 강인한
마음을 주소서.”
주문이 완성되고, 발동되는 순간 허공에서 거대한 돌풍이 몰아치며 천사들의 진형을 휘젓고 붕괴한다.
찢기고 휘날리는 천사들의 신형 이 서로서로의 장애가 되어 더욱 큰 피해를 만들어간다.
육탄전을 중심으로 벌이는 수인 족의 경우에는 선두에 선 무명신의 의 지휘를 따라 움직이며 자리를 벗어나려는 천사들을 해치워낸다.
지구의 각성자들 또한, 서연을 필두로 특유의 다양한 능력들을 통 하여 천사들과의 전투를 잘 이끌어
나간다.
난전에 몰아치는 대공세, 분명한 승리가 찾아오고 있었다.
압도적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 았다.
수월하게 서울, 도시를 지켜내고 전투를 끝낼 수 있을 것 같다는 희 망이 피어나던 시점이었다.
하늘에서 서준의 앞길을 가로막 으려 했던 치천사를 비롯한 정예 천사들이 합세하여 지면으로 내려 선다.
처음에는 그리 두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왕께서 너머의 차원을 파괴하고 돌아오실 때까지 자리를 지키면 끝 난다.’
시간을 끌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 었다.
지상에는 든든한 우리 연합군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각 종족의 수장, 대 표들 또한 자리를 지키고 있기까지 했다.
듬직한 전력에 시간 정도는 충분 히 벌어낼 수 있을 거라고 모두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세 쌍의 날개를 가진 치천사가,
아음속의 속도로 날아와 무명신의 를 밀어내는 순간까지는, 말이다.
쾅-!
폭음과 함께, 뒤로 길게 밀려난 무명신의 신형이 땅바닥에 처박혀 거대한 크레이터를 만들었다.
다른 반신인 에우레시아와 이세 디아 역시 세 쌍의 날개를 가진 치 천사의 공격을 받고는 지면에 꽂혀 일순간, 자취를 감추었다.
[이런 잔챙이들도 처리하지 못해 서 나와 샤키엘이 나서게 하다니.]
[유리엘, 너무 흥분할 것도 없어. 어차피 대다수가 쓰레기들이라는
거 알고 있지 않았어?]
강하다.
직접 마주한 치천사, 유리엘과 샤키엘의 강함을 체감한 연합군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진다.
“……r
모두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 고, 당황을 금치 못할 때였다.
지구의 각성자를 지휘하던 서연 이 앞으로 뛰쳐나오고는 묵색 기운 이 둘러진 팔을 휘두른다.
[이런 하찮은 공격이 먹힐 거라 생각하는 건가?]
코웃음을 친 유리엘이 가볍게 손 을 휘저어 기의 장막을 일으켜낸다.
앞서 자신 있던 유리엘의 말과 달리 전혀 다른 결과가 펼쳐졌다.
쨍그랑-!
방어막을 꿰뚫어낸 서연의 주먹 이 유리엘의 육신을 가격했고 그가 벽면에 처박힌 것이다.
[어……. 어찌!]
느껴지는 고통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절대적이라고 믿고 있던 상식이, 진리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신격은커녕 반신에도 오르지 못 한 존재가, 신격에 오른 자신의 의 념기를 부수고 상처를 입힌 것이었다.
직접 피부로 겪고도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었다.
당연하지만, 다른 이들에겐 더 터무니없을 수밖에 없었다.
[유리엘! 치천사장의 명령을 잊 은 거냐? 이런 데서 장난치고 있을 시간이 없다고!]
[장난친 적 없다! 저 여자가 내 의념기를 뚫어냈단 말이다!]
[의념기를 뚫어냈다고? 정말인
가?]
[내가 지금 농을 주고받는 얼굴 로 보이나?]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유 리엘의 표정과 달리, 서연의 입가 에는 숨길 수 없는 환한 미소가 피 어나고 있었다.
“우리 오빠가 정말로 대단하다니 까.”
서준이 서연을 친위대로 임명하 고 하사한 치천마역천지공.
비록 열화판이라고는 하나 선계 를 공포에 떨게 했던 내공심법을 이용하여 빚어낸 내공의 위력은 이
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능력이 부족해서 열화된 것조차 제대로 다뤄내지 못하는 게 아쉽긴 하지만……
허나, 큰 문제는 없었다.
치천마역천지공은 말 그대로 근 본 자체가 다르다.
일대의 공기, 세계 자체가 내공 을 받들고 힘을 불어넣어주고 있었다.
이 정도의 힘이라면 으스대고 있 던 유리엘의 시간을 끌어낼 수 있 을 것이다.
문제는 치천사가 유리엘뿐만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일대일이라면. 어느 정도 접전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샤키엘과 힘을 합쳐 공격 한다면.
‘불가능해.’
입가로 쓴웃음이 흐른다.
‘이런 치천사를 일격에 쓰러뜨리 다니, 대체 오빠는 얼마나 높은 경 지에 있는 걸까.’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너무나도 큰 격차 때문에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전장에서서 직접 그 위용을 체감하니 확실히 다르다 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준이야 말로 진정한 천무지체, 진정으로 신(神)을 논할 수 있는 자.
존경이 절로 들 정도였다.
물론, 이런 감탄조차도 지금의 서연에게는 크나큰 사치였다.
[무슨 수작을 부린지 모르겠다만 결국 격의 차는 좁혀지지 않는 법 이다.]
놀란 감정을 추슬러낸 유리엘이 한 줄기 섬광이 되어 서연을 향해
쇄도해오는 순간이었다.
쏟아진 암기들이 유리엘의 앞길 을 가로막는다.
“나 무명신의가 살아 있는 한, 교주님 혈육의 옥체에는 손댈 수 없다.”
[잔챙이는 빠져라.]
유리엘이 쇄도해오며 암기를 막 아내려 했다.
이미 한번 당했기에, 더 이상의 방심은 없었다.
[글로리우스 크로스.]
의지가 실린 기운들이 십자가 방
패의 모양을 취하고는 견고한 방어 가 펼쳐진다.
창-! 창-!
쏟아지던 암기들이 맹렬히 부딪 치고 파열음을 토해낸다.
[크읍-!]
지구라는 차원, 리벨리온 연합의 군대는 무언가 이상했다.
분명 신격에 오르지 못한 자들임 에도 불구하고 펼쳐내는 공격들에 의지가 실려 있었다.
마치 사도로서 힘을 빌려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사도.
섬기는 신의 뜻을 따르고, 의지 를 집행하는 존재로, 한계를 넘어 서는 막강한 힘과 권력을 하사받는 존재를 일컬었다.
한계점을 돌파해낼 수 있는 매우 특별한 힘인 만큼 대신에 오른 존재, 그중에서도 특출한 이가 펼칠 수 있는 기적이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현실은 무엇 이란 말인가?
쩌적-
미세하지만, 쏟아지는 암기 때문 에 의지가 실려 있는 방패에 균열 이 생겨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린 거지?!’
유리엘의 미간이 깊게 파인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지금 닥친 상 황에 생각에 빠지거나, 고민을 이 어가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공주마마를 따르라!”
“치천사들을 막아내라!”
수인족의 자칼을 필두로 엘프와 드워프들의 대표들이 공격을 쏟아 낸다.
하나하나가 의념기를 상쇄해낼 정도의 파괴력을 가진 매우 위험한 공격이었다.
막을 수 없다.
유리엘은 방패를 버리고 자리를 벗어나는 것을 택했고, 이는 실로 훌륭한 판단이었다.
쨍그랑-!
굳건했던 방패가 형태를 잃고 부 서져 내린다.
공격이 먹힌다는 것을 확인한 연 합군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어오 른다.
“이것이……. 왕의 은총.”
각기 하사받은 능력은 달랐지만, 그 능력에는 기본적으로 모두 의지 가 실려 있었고, 덕분에 신격을 위 협할 정도로 뛰어난 파괴력을 가지 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공격이 닿을 수 있다면 제아무리 신격이라 할지라 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파팍-!
땅을 박찬 각 종족의 대표들이 자신감 있게 치천사들을 향해 달려 들었다.
게이트 내부.
흙과 나무들이 펼쳐져 있는 땅이 서준의 시야에 들어온다.
얼핏 보아서는 평범해 땅이었지만, 하늘에서 흩뿌려지는 밝게 빛 나다 못해, 눈이 부실 정도의 기괴 한 빛들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진다.
유달리 피부가 아려 올 정도의 따가운 빛이라는 생각이 들 때였다.
띠링-!
[위대한 존재의 파편이 부여한 속성 ‘신성’의 효과로 인하여 차원 글로리시아의 정화의 빛에 저항합 니다.]
‘신성 공격인가?’
글로리시아라는 차원에는 숨도 쉬기 힘들 정도의 신성력이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만약 파편이 없었다면, 이 신성 만으로도 상당히 고전했을 정도로
말이다.
‘마냥 생각 없이 쳐들어온 거는 아니었네.’
많은 군대, 강자들과 더불어 혹 여나 있을지도 모르는 역습까지 대 비하여 함정을 파두기까지 했다.
이쯤 되면 훌륭한 대비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상대가 너무나도 나빴 어.’
서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흐 르던 찰나, 글로리시아의 중심에 엄청난 진동이 일어났다.
[어리석은 것! 가만히 있었어도
죽이러 찾아갔을 텐데, 스스로 죽 음을 자초하고자 찾아왔구나!]
광명 속에 높게 치솟아 오른, 네 쌍의 백색의 날개가 하늘을 뒤덮으 며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기사를 떠올리게 하는 중갑 옷을 걸친 천사는 머리에 쓴 두꺼 운 투구 사이로 비릿한 미소를 흘 리며 웃었다.
[대군주, 우리엘 님에게 하사받은 집행관의 권한으로 나 치천사장 에 레미아가 대역죄인 한서준을 이 자 리에서 참하도록 하겠다.]
서준은 말없이 네 쌍의 날개, 그
리고 두꺼운 중갑옷을 입은 에레미 아를 지그시 바라본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정돈되면서도 거대한 기운.
에레미아는 틀림없이 게이트 너 머에서 느꼈던 강자.
상격의 신위에 도달한 존재였다.
“이렇게 직접 보니 대단하긴 하 네.”
서준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온 다.
에레미아가 눈앞에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갑갑해지며 전신을 짓눌 리는 압박감이 느껴진다.
이것이 바로 상격의 신위에 도달 한 존재가 내뿜는 존재감이었다.
‘이런 느낌, 정말 오랜만이네.’
그저 존재감만으로 전신이 짓눌 리는 느낌을 받을 정도의 강자를 만난 것은, 서준의 기억 속에서 너 무나 오랜 과거였다.
‘아주 즐겁겠어.’
얼마나 즐거운 전투 경험을 가져 다줄까?
얻게 될 신화와 획득할 수 있는 경험치, 상승할 레벨은 또 어느 정 도일까?
상상만으로도 몸 곳곳에서 저릿 저릿한 전율이 밀려온다.
자연스레 서준의 입가에는 숨길 수 없는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