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권 10화
185화
끝이 보이지 않던 천사 무리를 독무가 휩쓸고 지나갈 때, 전투를 치르던 무명신의의 눈이 휘둥그레 졌다.
“이제는 독마저 이리 다뤄낼 수 있으신 건가……!”
지친 표정을 하고 있는 무명신의 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온다.
과거에도 그 강함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한층 더 강해진 모습을
보니 전율이 돋을 정도였다.
똑같이 암기, 독을 다루는 입장 이었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자신, 아니 동서고금 그 누구라 할지라도 저런 극독을 이렇게 쉽게 다뤄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도대체 어디까지 가시려는 겁니 까.”
나지막이 경외 섞인 말을 홀리던 찰나, 하늘의 게이트를 바라보고 있던 무명신의의 눈동자가 가늘어 진다.
“왜 그.러십니까?”
지친 기색이 다분한 에우레시아
가 물음을 던진다.
사실, 전에 나타난 대천사 군단 만 하더라도 서준이 제때 나타나지 않았다면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 것 이다.
그런 군단을 처치했지만, 백색의 광채를 내뿜고 있는 게이트는 여전 히 대단한 위용을 뿜어내고 있었다.
“옵니다……. 지금보다 더 많 이……
이어진 무명신의의 말에 자칼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수가 너무 많습니다! 우리도 왕 올 도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명신의가 고개를 내젓는다.
서준이 가진 가능성과 힘은 고작 저 정도의 천사들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문제가 되는 거라면 차라리 도심 바깥과 시민이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런 게 아닙니다.”
눈을 가늘게 뜬 무명신의가 고개 를 돌려 시선을 돌기둥 쪽으로 옮 긴다.
“교주님께서 편히 싸우실 수 있 도록 우리는 결계의 핵을 노리는 천사들을 처리합시다.”
그때쯤 상공을 뒤덮고 있던 게이 트가 다시 한번 새하얀 빛을 토해 낸다.
약 천만에 달하는 천사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어떻게, 제 뜻과 함께하시겠습 니까.”
호마의 가호가 단단하긴 하였으 나, 기둥인 핵이 부서진다면 무너 져 내릴 수밖에 없었다.
어설프게 공중에서 전투를 치르 며 서준을 방해하는 것보다는 핵을 보호하는 쪽이 낫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었다.
“좋습니다. 우리 엘프는 무명신 의 님의 뜻에 함께하겠습니다.”
무명신의의 판단이 나쁘지 않다 고 생각한 에우레시아가 동의했다.
“파리가 아무리 많아 봤자 어차 피 파리일 뿐. 왕께서 저런 천사들 에게 쓰러지실 리가 없지요.”
자칼 또한 동의하고는 시선을 돌 기둥 쪽으로 옮긴다.
애초에 이 싸움은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다.
싸움에서 이겨도 영토가 엉망진 창이 된다면 전쟁에서는 실질적으로 패배하게 되는 셈이었다.
“수인 모두 집중! 전력을 다해 기둥을 지키도록 한다!”
자칼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인족 전사들이 발을 놀려, 바람 을 갈라 드워프 주변으로 향한다.
“저희도 빠르게 움직이지요.”
엘프와 중원 대륙의 무인들도 빠 른 속도로 뒤를 따른다.
공중에서, 돌기둥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는 연합군의 모습을 확인한서준의 입가에 피식- 미소가 흐른 다.
‘누구의 생각인지 모르겠다만, 현 명한 전략이야.’
결계 방어에 집중해준다면, 서준 의 입장에서도 편한 점이 상당히 많아진다.
‘아무리 숫자가 많아 봤자지.’
천만대군(千萬大軍)은 바로 실감 이 나지 않을 만큼 거대한 수였다.
하지만, 펼쳐진 호마의 가호와 그 주변을 지키는 연합군 덕에 도 시에 피해가 갈 것을 고려할 필요 가 없어진 서준이 느끼기에는 우스 운 수에 불과했다.
“고작 이 정도로 내 땅에 침공을 가해 와?”
코웃음을 친 서준은 고개를 돌려
광채를 내뿜고 있는 게이트를 바라 본다.
“우습네.”
비록 상격의 신에 도달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중격의 신위만으로도 다 뤄 낼 수 있는 기의 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았다.
그저 모든 기운을 쏟아낼 상황조 차 여태 없었을 뿐이다.
쿠구구-!
거대한 게이트가 떨리고 백색의 날개를 가진 천사들이 얼굴을 조금 씩 드러내는 순간, 서준은 말아 쥐
고 있던 주먹을 앞으로 내뻗고, 펼 쳐 보이며 손바닥을 게이트를 향해 들이민다.
휘오오…….
기운이 서준의 손바닥 위에서 회 오리치듯이 휘감기고 치솟는다.
어느덧, 둥글고작은 형태의 구 체가 서준의 손바닥 위에 뭉쳐진다.
피라미 여럿 잡자고 달리 특별한 기술을 펼칠 필요도 없었다.
그저, 기운을 응축하고 응축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죽어.”
서준의 선고가 내려진다.
팡-!
뭉쳐있던 묵색의 기운이, 게이트 를 향해 쏘아진다.
후웅-
세상이 검게 물든다.
“크악!”
“아아악-!”
천사들의 비명과 함께, 게이트가 깨질 듯 흔들린다.
천만이 넘던 천사 중, 과반이 봄 에 눈 녹듯 녹아내려 사라져 간다.
[최하급 천사 7,532,113명 처치 성공, 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 다.]
[투신 신명의 효과가 발동하여 증가된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축하합니다! 263으로 레벨 업 하셨습니다.]
눈앞을 가득 채우는 메시지를 한 껏 만끽하고 있던 찰나였다.
게이트 내부의 세계를 집어삼키 고 있던 칠흑과 같은 어둠이 새하
얀 빛에 밀려나며 순식간에 자취를 감춘다.
“막았어?”
호기심이 움직인 서준이 다시 게 이트를 내부를 바라본다.
“피라미들만 있는 건 아니었네.”
게이트 내부, 공격을 받아 낸 충 격의 여파로 인하여 몇몇 천사들이 다소 지친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공격을 막아내는 데는 성공해내었다.
서준의 눈동자에 진한 흥미가 깃 들 때였다.
키잉-
[이게 인간이 내는 힘이라니 소 문이 과장된 것은 아니었군! 재미 있겠구나!]
게이트 너머에서부터 머리에 울 려 퍼지는 당찬 목소리와 함께 평 범한 천사와는 다른 거대한 기운이 준동하며 게이트 바깥으로 빠져나 온다.
마구잡이로 배출되던 천사들이 아닌, 세 쌍의 날개를 가진 치천사 급 천사들이 셋이나 모습을 드러냈 다.
하급이라고는 하나, 한 명, 한 명 이 엄연히 신격에 다다른 존재들이
다.
충분히 강한 전력이라 할 수 있 었지만, 서준의 시선은 아직도 게 이트 내부에 집중되어 있었다.
[치천사들이여, 이건 위대한 전신 이자 대군주(大君主)이신 우리엘 님께서 직접 내린 명령이다. 전심 전력을 다 하도록.]
다시 한번 호기로운 목소리가 머 리에 울려 퍼지는 순간, 서준의 눈 매가 가늘어진다.
목소리에 실려 있는 기운이 여태 껏 마주했던 어떠한 상대보다도 묵 직하고 중후하다.
게이트를 너머에서 내뱉은 말이 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상당한 강자다.’
눈앞에 있는 하급 신격들 따위가 아닌, 상격에 달하는 존재감과 힘 을 가진 천사가 게이트 너머에 있 다.
일전에 상대했던 상격신, 거짓된 거인의 왕보다 더한 강자였다.
무언가 제약 때문에 아직 지구로 넘어오지 못하고 있는 듯하였으나, 모습을 드러낸 것을 보면 머지않아 넘어올 수 있게 될 것이 분명했다.
‘저런 놈과 싸우게 된다면 결계
가 버티질 못할 텐데.’
절대 지구로 넘어오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최고의 시나리오는 너머의 존재 가 지구로 넘어오기 전에 게이트를 닫아내는 것.
‘하지만 지금 문을 닫아서 막는 다고 할지라도 어떤 형태로든 침공 을 해오겠지.’
그때는 피치 못할 상황으로 자리 를 비운 상황이 될 수 있었다.
거기에 곧장 지구로 귀환할 수 없는 상태까지 더해진다면.
‘지구는 순식간에 멸망할 거다.’
방치해서는 되지 않는 적이었다.
어차피 제거해둬야 하는 존재라 는 말이다.
그렇다면 피해를 최소화시키는 게 현명하다.
‘게이트 내부에서 제거한다.’
문제가 있다면, 넘어온 것들이 신격에 도달한 천사들이라는 점이 었다.
서준, 자신을 제외하고는 작금 연합에는 신격에 오른 존재가 존재 치 않았다.
당연하지만 벽을 넘어선 존재와
넘어서지 못한 존재의 격차는 상당 하다.
다행인 점은 해법이 있다는 것이 었다.
‘예속의 보석.’
특수 옵션인 ‘천명’을 사용한다면 가지고 있는 무공 중 한 가지를 즉 시 전수할 수 있었다.
‘무공을 전수해주면 신격들을 상 대로도 버틸 수 있을까?’
이미 친위대로 임명할 이들을 정 해놓고, 그에 따른 적합한 무공을 정해둔 상태였기에 망설임은 없었다.
천 년의 경험과 기억이 있었기에 전수할 무공 하나하나가 문자 그대 로, 신공(神功)에 다다른 엄청난 것 들이다.
동시에 개인의 성향에 매우 적합 하기에 시너지는 말할 것도 없었고, 준비만 되어있다면 상승의 경지를 넘볼 수 있게 해 줄 뛰어난 무공들 이었다.
‘충분히 가능해.’
신격을 쓰러뜨릴 필요도 없었다.
게이트 내부에 있는 강자를 쓰러 뜨릴 때까지 시간만 벌어주면 되는 일이었기에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
각할 수밖에 없었다.
고민이 깊었던 만큼, 행동은 재 빠르다.
서준은 품 안에 넣어두었던 예속 의 보석을 꺼내어 매만진다.
띠링-!
[예속의 보석의 특수 옵션 ‘천명’ 의 효과가 발동합니다.]
[친위대로 설정할 인물을 설정하 십시오.]
[인간, 한석훈, 양정화, 한서연, 무명신의, 광무혈마.]
[수인, 자칼, 레잉가]
[엘프 에우레시아, 이세디아.]
[드워프 휘노소프.]
[이상 10명이 친위대로 설정되었 습니다.]
[전수할 스킬(무공)을 선택해주세 요.]
서울로 이동하는 와중에 정리해 둔 것이었기에 막힘없이 무공을 설 정했다.
[인간, 한서연에게 치천마역천지
공을 전수하시겠습니까?]
[사용자 ‘한서준’의 치천마역천지 공을 익히기에는 친위대 ‘한서연’의 능력이 부족합니다.]
[친위대의 능력에 맞추어 전수하 는 스킬(무공)의 위력, 능력들을 약 화시켜야 합니다.]
[변경에 따라 일정 시간이 소모 됩니다.]
[인간, 무명신의에게 천라독
포…….]
이외로도 많은 계속해서 메시지 들이 떠올랐지만, 이를 확인하고
있을 틈이 존재치 않았다.
서준의 의도를 눈치챈 듯, 눈앞 에 천사 군단이 조소를 띤 채로 앞 길을 가로막아낸다.
“모든 게 네놈의 뜻대로 될 거라 생각하지 마라!”
서준의 시선이 잠시 눈앞의 천사 를 향한다.
펼쳐진 날개는 세 쌍, 치천사로 서 신격에 오른 존재라는 것이다.
동시에서준의 입가는 호선을 그 린다.
‘운이 좋네.’
게이트 너머로 가기 전에 신격을 하나 더 줄일 수 있다면 연합군이 한결 더 수월하게 막아낼 수 있게 될 것이다.
미소를 흘린 서준은 빠르게 날아 가 세 쌍의 날개를 가진, 치천사의 가슴팍을 향하여 일장(一掌)을 내 뻗는다.
후욱-
분명 피부가 손바닥에 닿으려는 순간, 기(氣)의 장막이 둘러진다.
의념기를 전신에 갑주 형태로 둘 러낸 것이다.
“헛수고에 불과하다! 나는 치천
사 스티엘! 내 방어를 뚫어낸 이는 엘리시움에서도 손꼽힌다. 네놈은 여기서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할 거다.”
“쫑알쫑알 시끄럽게 하지 말고 죽어.”
서준은 뻗어진 손바닥의 앞으로 거산대해(巨山大海)와 같은 기의 파동을 스티엘의 육신으로 강하게 밀어 넣는다.
“천존마선, 잠식 (S食).”
놀란 스티엘이 눈을 동그랗게 뜬 다.
“이게 무슨……
경악 가득 섞인 표정을 지은 스 티엘의 온몸에 균열이 생겨나기 시 작한다.
이윽고, 전신이 붕괴되어 조각처 럼 무너져 내렸다.
후두둑-
아직도 앞길을 가로막는 천사들 은 끝도 없이 존재하였지만, 그 누 구도 서준을 막아설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
당연한 것이다.
신격에 오른 스티엘이 허무할 정 도로 쉽게 제압당했는데, 이곳에 있는 그 누가 서준을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천사들은 그저 두려움에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그 순간, 서준의 입술이 달싹여 진다.
“비켜.”
항거할 수 없는 공포에 천사들이 뒷걸음질 치며 길이 열리는 순간. 서준은 망설임 없이 게이트 너머의 세상으로 몸을 내던진다.
이후, 다소 멀게만 느껴지던 게 이트 속 세계의 풍경이 두 눈 앞에 펼쳐졌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