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권 8화
183화
한국을 돕기 위해 수인족과 엘프 에 이어 중원을 비롯한 리벨리온 소속 구성원들이 공식적 합류를 선 언했다.
소식을 접한 강석호는 기쁨을 감 추지 못했다.
서울을 방어하기 위해 모여 있는 병력이 주는 든든함은 이루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강석호를 기
쁘게 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이로써 리벨리온이 트리니티처 럼 허울뿐이었던 연합이 아님을 증 명했다.’
단순히 연합이라는 이름 아래 묶 여있는 것이 아니었다.
구성원 모두가 강한 충성과 투지 가 어려 있는 채로, 한 가지 목표 들 향한 열망을 보이고 있었다.
여기 있는 존재들은 모두 서준에 게 생명의 은혜를 입은 자.
구명의 은혜를 입고도 모른 척하 는 것은 천명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이들 또한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최대한 힘을 써 서울을 지키려는 것이었다.
“이 모두가 단 한 사람이 만들어 낸 기적이라니.”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던 강석호 는 시선을 옮겨 백색의 광채가 넘 실거리고 있는 게이트를 바라본다.
이렇게 목도하고 있자니 두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엄 청났다.
‘대체…… 얼마나 많은 병력이 넘어오려는 거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게이트를 타
고 넘어올 천사들이 지금의 인간, 지구에 상당히 적대적일 것이란 점 이었다.
틀림없는 대전쟁의 발발.
‘당장 게이트를 닫는 것이 가장 최선의 수일 터인데.’
서준의 부재가 새삼 너무 크게 와닿았다.
뼈아픈 전력의 부재였지만, 지금 모여있는 연합군 덕에 그나마 한시 름 덜 수 있게 됐다.
전의 지구와 비교하면, 지금처럼 천사대항군을 모아냈다는 것 자체만 으로도 다행인 일이었으니 말이다.
“……마음을 비우셨군요. 눈빛이 좋아지셨습니다.”
무명신의가 강석호의 앞에서 기 분 좋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애초에 괜한 걱정이었을지도 모 릅니다. 주군께서 자리를 비우신 상태긴 하지만 이 정도 전력이라면 천사들도 섣불리 덤벼들 수는 없을 테니 말이지요.”
“설령, 덤벼들어도 우리 엘프와 정령이 방어선에 펼친 결계를 쉽게 벗어나진 못할 겁니다.”
자칼과 에우레시아, 각 종족의 대표가 자신감 어린 목소리로 저마
다 포부를 뱉으며 작은 불안마저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때.
쿠구궁…….
고요했던 게이트가 마침내 거대 한 진동을 일으키며 새하얀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옵니다.”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한 무명신 의의 안색이 굳어진다.
무언가가 게이트 바깥으로 나오 려고 한다.
이윽고, 빛이 가시고 그 무언가
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제법 훤칠한 외모, 그리고 두 쌍 의 날개를 가진 천사를 필두로 백에 달하는 천사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집행관이자 치천사장의 대리인 으로 온 나 이드시엘이 말한다. 지 금부터 악에 물들어 정의로운 트리 니티를 배반한 차원, 지구에 대한 처형식을 거행한다. 그 죄가 상당 히 무겁기에 몰살을 진행하도록 한 다. 지구의 종족은 순순히 항복하 고 죽음을 받아들이도록 하라.”
말도 되지 않는 헛소리가 천사의 입에서 마구 쏟아져 나왔지만, 이 들의 이분법은 익히 알고 있던 부
분이었다.
물론, 알고 있다고 해서 이런 이 야기를 참고만 있을 생각은 없었다.
“특히, 악을 전파한 대역죄인 한서준은 그 죄질이 매우 무거운 브}, 극형에 처해 사지를 가를 것을 명 받았으니 운명을 거스르지 않도록 하라. 이상.”
선두에서 있던 천사, 이드시엘 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에 무명신 의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진다.
“감히 교주님을 욕보이다니……
엘프라는 종족이 펼쳐 낸 결계 덕에 힘이 도심까지 영향을 미칠까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졌다.
이드시엘을 바라보고 있던 무명 신의는 의념기로 빚어진 기운들을 암기처럼 예리하게 다듬어낸다.
“ 암군지공 (暗君之功)
중원 대륙의 무인들이 괜히 무공 을 사용할 때 초식명을 상기하거나 입 바깥으로 내뱉는 것 아니었다.
이유는 일종의 형상화다.
익숙한 무공은 몸이 기억하고, 빚어내는 기운들은 정신의 영향에 따라 그 형태가 완성된다.
하지만 몸과 정신이란 것이 언제 나 최상의 상태일 수는 없었다.
아무리 위대한 무인도, 분명 그 날의 상태, 기분 같은 것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이럴 때 만들어 놓은 무공 이름 이 있다면 펼쳤을 때의 형상을 떠 올리기 쉬웠고, 이러한 기억과 습 관들은 무공을 펼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지금 무명신의만 해도 초식의 이 름을 떠올리고, 내뱉는 것만으로 무공의 완성 속도가 같은 경지, 반 신급에 이른 강자들보다 조금 더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달리 말해, 입으로 뱉거나 상기
하지 않는 이드시엘의 경우는 무명 신의보다 대비를 빠르게 할 수 없 다는 말과 같았다.
쌔액-!
이드시엘이 무명신의의 무공을 인 지하고 방어를 준비하기도 전 쏟아 낸 암기들이 단숨에 급소를 노린다.
몸을 관통한 암기가 단숨에 이드 시엘의 사지를 찢었다.
갈가리 찢어진 육신이 사방으로 흩날린다.
일반적인 종족이라면 곧장 죽음 을 맞이했어야 할 치명적인 상처.
허나, 이드시엘의 육신은 순식간
에 재생하기 시작했다.
이드시엘은 무명신의를 바라보며 비웃음을 흘리는 것으로 방심을 보 인다.
“허튼 발악에 불과한 것을.”
하지만 이런 방심은 무명신의에 게 둘도 없는 기회를 제공해준 것 이었다.
무명신의는 재빠르게 이드시엘의 앞으로 다가서며 양손을 펼친다.
둥글게 뭉친, 안에서 폭발할 듯한 자줏빛 기운이 충돌하기 시작한다.
“암군지공, 절초, 극독(劇毒), 요 호 (妖虎).”
혀를 찬 무명신의가 이드시엘의 바로 앞에서 독극물인 요호독을 뿜 어낸다.
이후 도망가듯 재빠르게 자리를 벗어난다.
쉬이익…….
그러자 재생을 거듭하던 이드시 엘뿐만 아니라 하늘에 떠있던 천사 들의 육신마저 녹여내기 시작했다.
천사들을 말끔히 지워낸 후, 대 기 중으로 흩어지는 육신들의 형태 를 무심히 바라본 무명신의가 다시 금 게이트를 바라본다.
지이잉-
새하얀 광채가 뿜어져 나오고는 다시 천사들을 배출했다.
경악스러운 광경이었지만 모두 이 정도 사태는 예상했기에 투지가 꺼지는 법이 없었다.
“이렇게나 모여 있는데 방금이 끝이었다면, 섭섭할 뻔했는걸.”
연합군이 기세등등하게 앞으로 나서려 할 때였다.
지잉-
다시 새하얀 빛이 더 크게 터져 나오더니 순식간에서울 하늘이 천 사들로 가득 메워지기 시작했다.
“아예 작정을 하고 왔군.”
수백, 수천.
아니, 숫자를 헤아리는 것이 무 의미할 정도로 많은 천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었다.
“하나, 둘, 셋, 다섯……?”
반신에 달한 강자가 자그마치 다 섯에 달했다.
“저희가 맡아야 할 상대들이 정 해진 것 같군요.”
각 진영을 대표하는 강자들끼리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 자연스레
두 쌍의 날개를 가진 천사들의 시 선이 지상, 연합군으로 향했다.
“위대한 천사에게 반기를 드는 지상의 우매한 것들을 모두 쓸어버 려라-!”
선두에서 있던 천사의 명이 떨 어지는 순간이었다.
와아아-!
천사들의 함성이 서울 상공을 쩌 렁쩌렁하게 울린다.
실로 대단한 기세였지만, 연합군 그 누구도 움츠러드는 기색이 없었다.
“왕의 영토! 우리의 동료를 지켜
라!”
“위선자들을 몰아내고 진정한 평 화를 쟁취하자!”
우렁찬 함성과 함께 연합군과 천 사가 마침내 격돌하기 시작했다.
연합 리벨리온과 천사의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치열한 싸움이 계속 된다.
얼핏, 서로 전력이 비등한 상황 처럼 보이기도 했으나, 실상은 그 렇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공격만 하면 되 는 천사와 달리, 리벨리온 연합군 은 지켜야 할 것이 존재했다.
당연하게도, 지킬 곳이 존재하는 연합군의 입장이 절대적으로 불리 할 수밖에 없었다.
“죽어라! 우매한 것들아!!”
엘프가 도심 전체에 결계를 펼쳐 놓긴 하였지만 결계도 감당할 수 있는 한계가 존재하는 법이었다.
쏟아지는 공격들을 흘려 내거나
피해낼 수 없었다.
연합군은 오로지 그것을 막아내 고 파훼해내야만 했다.
뿐만 아니라, 섣불리 공격조차 가할 수 없었다.
천사들은 이러한 연합군의 상황 을 철저히 이용해가며 전투를 벌이 고 있었다.
“등 뒤에 도시가 있는데, 그렇게 함부로 공격해도 되겠어?”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 한 해법은 압도적인 힘으로 천사들을 제압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강자들로부터 지원을 바
랄 수는 없었다.
천사들 또한 자그마치 다섯에 달 하는 반신을 대동해왔다.
강자들은 모두 반신의 경지에 달 해 있는 대천사들과의 싸움만으로 도 버거운 상태였다.
심지어 연합은 반신에 오른 강자 가 넷밖에 존재치 않았다.
오히려 숫자가 밀리는 상황이었 고 반신에 달한 천사 중 한 명인, 카마엘을 상대할 강자가 존재치 않 아 현경의 경지밖에 도달하지 못한 광무혈마, 서연, 레잉가가 막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셋이 힘을 합쳐 최선을 다해 고 군분투하고 있었지만, 본래 현경에 이른 이들이 반신의 벽을 넘어선 존재와 맞서 싸우는 것 자체가 말 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실제로도 계속해서 쏟아지는 카 마엘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무너 져 내려가고 있었다.
털썩-
서연을 비롯한 현경의 존재들은 힘들게 내공을 짜내느라 지친 기색 이 역력한 데 반해 넘치는 기운들로 쉼 없이 공격들을 토해내는 카마엘 의 모습은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 제길......
반신의 경지에 오른 이들과의 격 차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는 것 은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셋이서 합공한다면 그 격 차를 메꿀 수 있을 것이라 희망을 품었었고, 결국 결과적으로 그른 일이 되어버렸다.
‘설마 공격을 막아내는 것도 벅 찰 줄은……
방어마저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광무혈마와 레잉가, 셋에 달했던 인원 중 둘은 무리하게 내공을 뽑
아낸 탓에 두 다리는 사시나무처럼 흔들리고 있었고, 각혈을 토해낸다.
서준 앞에서 잘난 척 내뱉었던 말들이 불현듯 떠오르고는 지난날 의 스스로를 환멸했다.
‘고작 이런 대천사 한 명조차 못 이기면서,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오 빠한테 짐을 내려놓으라 했던 건데.’
하지만, 정말 다행히도 이 상황 을 타개할 수 있는 길, 방법이 한 가지 존재했다.
‘카마엘과의 차이는 단순히 육체 의 강도, 그리고 내공량이 부족한 것에 기인해.’
그리고 서연은 이러한 격차를 단 번에 메꿀 방법을 알고 있었다.
‘선천지기.’
생명의 근원이 되는 기운.
이 생명의 불씨를 태워낸다면 순 간적이지만 엄청난 힘을 얻어낼 수 있다고 했다.
그건 즉, 카마엘과의 격차를 단 번에 메꿀 수 있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큰 힘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르는 법이었다.
선천지기를 사용하게 되면 죽음
으로써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치명 적인 단점이 존재했다.
하지만 어차피 다른 방도는 없었다.
카마엘에게 패배를 겪게 된다면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는 이 힘의 균형이 무너지게 될 것이다.
‘오빠가 돌아오기 전에 연합이 패배하겠지.’
이는 곧, 서울의 함락을 의미했 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족마저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더 이상의 고민은 사치다.
아니, 애초에 고민할 시간조차 없었다.
“죽어라!”
카마엘이 쓰러져가고 있는 광무 혈마를 향하여 거세게 검을 휘두른 다.
광무혈마와 레잉가 한 명이라도 무너지게 된다면 선천지기가 타오 르는 시간 안에 카마엘을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나 한 명이 희생하는 것이 옳은 판단이야.’
결단을 마친 서연이 아랫배에 자
리 잡은 생명의 기운, 선천지기를 불태워내려던 순간이었다.
“그만.”
익숙한 목소리, 동시에 아주 따 듯한 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구태여 고개를 돌리어 정체를 확 인해 볼 필요도 없었다.
이렇게까지 믿음직하게 느껴지는 목소리를 가진 사람은 단 한 명뿐 이었다.
“잘 버텨준 덕분에 한시름 놓을 수 있었어, 고생했어.”
이어진 목소리에서연의 입에서 숨길 수 없는 미소와 함께 벅찬 말
이 터져 나왔다.
“오빠!”
리벨리온의 의장이자 지휘관인 서준이 마침내 지구로 온 것이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