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권 7화
182화
불카누스로의 귀환은 어렵지 않 았다.
들어왔던 게이트의 입구로 되돌 아가는 것이 전부였으니 말이다.
문득 관문의 게이트를 넘어, 불 카누스로 되돌아가고 있는 서준의 입가에는 씁쓸함이 묻어난다.
‘차원을 넘는 게 이렇게 쉬운 일 이었나.’
중원 대륙뿐만 아니라 선계에서
도 지구로 귀환하기 위하여 노력하 였던 나날이 떠올라 괜스레 허망한 감정이 밀려온다.
근래 들어 인간 혹은 비슷한 아 인(亞人), 그리고 중원 대륙에 다녀 온 뒤로는 이러한 감정이 더 강해 지고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누군가가 강 제로 막으려 했던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다.
‘아니다, 어차피 지나간 일인데 묻어두자.’
서준이 고개를 내젓는 것으로 잡 념을 털었다.
어느덧, 얽혀있던 기운의 흐름이 제자리를 찾아가며 어지럽던 시야 가 환한 빛을 되찾는다.
이후, 서준의 고개가 갸웃 젖혀 진다.
“여기서 뭐하고 계세요?”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서준이 보고 있는 것은 게이트에 들 어가기 전과 똑같은 상황, 휘노소 프가 게이트를 지키고 그대로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드, 드디어 나오셨군요!”
“에이, 제가 안에 있어 봤자 얼 마나 있었다고.”
수문장의 처치와 관문의 격파, 그리고 거인왕 키케르와의 전투까 지.
기껏 보낸 시간이라고 해 봐야, 한 시간 남짓이었다.
“한 달이 넘게 소식이 없으셔 서……
“한 달이요?!”
“예에……
저도 모르게 반문이 홀러나왔지 만, 사실 대답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애초에 휘노소프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머리를 분주히 굴려 보자 그 이유가 어느 정도 납득이 갔다.
‘키케르의 처소에 둘렸던 환몽계 가 원인인가.’
신격에 올라 있는 뛰어난 술법, 결계사가 펼칠 경우에는 외부와 내 부의 시간이 완전히 다르게 흘러가 게 할 수도 있었다.
‘괜히 시간이 느리게 가는 곳에 악인들을 가두어두었다는 신화나 전설들이 나온 게 아니지.’
실제로도 팔선, 장과로도 시간의
흐름을 지연시키거나 빠르게 하는 결계들을 펼쳐 둔 적이 있었다.
다소 복잡해지는 일이었으나, 어 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는 현실이 라는 것이었다.
서준이 천천히 고개를 주억이며 현실을 수용하던 찰나였다.
“아니, 아니 지금 이런 말을 할 때가 아닙니다.”
다급하기 그지없는 왕의 말에 잠 시 접어두었던 의문이 다시금 피어 나는 순간이었다.
“천사들이 군단을 이끌고 지구를 침공해왔습니다!”
서준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진다.
“ 뭐라고요?”
서준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듯 했다.
혼란스러웠지만 지금 중요한 건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는 것 이었다.
서준은 제멋대로 날뛰려는 심장 을 억지로 부여잡으며 입을 연다.
“언제 들어온 소식이죠?”
“불과 세 시간이 채 되지 않았습 니다. 지구에서 전서구를 받아 저 도 알게 된지라.”
불행 중 다행으로 침공을 벌인 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되지 않았고 리벨리온 또한 아직 건재했다.
‘아직 늦지 않았어.’
애써 긍정적인 생각을 일궈낸다.
물론, 가족의 신변에 대한 것을 직접 확인하기 전에는 완전히 안심 할 수는 없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사치였 다.
“지금 바로 지구로 돌아가 보도 록 하겠습니다.”
서준은 곧장 발걸음을 돌리어 지
구로 향하는 게이트의 입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서준이 게이트 내부에 있을 당 시.
아니마, 중심에 있는 거대한 왕 궁의 수련장에서 단련하고 있던 수 인족들은 누구보다도 빠르게 움직 이기 시작했다.
서울 상공에 생긴 거대한 게이 트, 천사의 침공에 대한 소식은 삽 시간에 차원에 전해지기에 충분했 다.
북한에 위치한, 리벨리온의 본부 에 종족의 정보원들을 파견해놓은 이들은 특히나 더욱 빠르게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모두, 소식을 접하여 알고 있겠 지만, 지구에 천사의 대침공이 벌 어지려 하고 있네.”
천사의 침공.
이미 한번 겪어보고, 싸워봤기에 그들의 무서움을 누구보다도 잘 알
고 있었다.
자연스레 회의장에 무거운 공기 가 내리 앉는다.
그 분위기 속에서 자칼이 다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리고 우리가 충성을 맹세한 의장께선 지금 오랜 시간 연락이 끊긴 상태지. 방관한다고 한들 지 구는 우리에게 책임을 물지 못할 것이다만……
말끝을 흐리고 있는 자칼의 눈동 자에는 강한 투지가 어려 있었다.
“허나, 우리 수인족은 은혜는 잊 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겠지?”
“그걸 말씀이라고 하십니까.”
“왕위 대리께서 가지 말라고 하 셔도 갈 것이었습니다.”
이야기를 길게 끌 필요가 없었다.
회의장에 모여 있는 귀족들의 눈 동자에는 굳은 의지가 가득 차 있었다.
“우리 듀로타, 수인족을 구한 은 인이자 작금 우리들의 왕, 한서준 님의 고향이다. 우리는 은혜와 충 성을 모른 척하는 파렴치한으로 남 지 않는다. 알겠나!”
귀족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힘찬 목소리로 답하며 고개를 숙인다.
“따르겠습니다.”
“부디 왕께 받은 은혜의 일부나 마 갚을 수 있으면 좋겠군요.”
목표가 정해졌다.
해야 할 일이 정해졌다는 것이었다.
“우리 수인족은 곧장 대한민국, 서울로 향한다.”
엘프들의 조치는 수인족보다 한 발 더 빨랐다.
정보원으로부터 백색의 게이트, 천사의 침공 소식을 접한 엘프의 왕, 에우레시아는 무언가에 쫓기기 라도 하듯이 곧장 지원을 보내왔다.
서준의 도움 덕에 세계수를 지켜 낼 수 있었던 만큼, 엘프들의 투지 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전례 없는 단합을 보여주며 군단 을 집결해 발 빠르게 서울로 도착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서울에 도 착한 엘프군은 이세디아가 이끄는 일화단(一花團)이었다.
“다행히 아직은 침공이 시작되지 않았군요.”
시민들이 대피한 서울 도심의 한 복판, 하늘 높이 열려 있는 백색의 게이트를 바라보며 투지가 가득 담 긴 시선을 보내는 각성자들이 보인 다.
‘과연……. 황도군(皇都軍)이라
불릴 만한 위상.’
엄청나게 놀라운 일이었다.
최상위권의 종족값을 가진 천사
들의 침공.
심지어 게이트의 규모로 보아서 는 만반의 준비를 한 것이 틀림없 었다.
자칫, 종말에 가까운 피해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구의 각성자들에게는 큰 두려움이란 것이 존재치 않는다.
오히려 어떠한 종류의 신앙마저 느껴지는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이게 진정한 왕의 군대구나.’
대표, 왕이란 존재는 이래서 중 요한 것이었다.
‘공포마저 이겨내는 용기를 줄 수 있는 자라니……
이세디아의 고개가 자연스럽게 주억여진다.
엘프들 또한 이미 느껴 본 감정 이었다.
이세디아 본인조차도, 악마군과 싸우는 동안 이상할 정도로 용기가 넘쳐흘렀었다.
천사라는 종족이 대단하긴 했지 만, 한서준이라는 왕의 존재감은 그를 압도할 정도로 강력했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왕의 자 질을 갖추신 분이셨군.”
이세디아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감탄이 흘러나오고 있을 때였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검은 정장을 입은, 덩치가 큰 남 자가 걸음을 옮겨오며 다가와 손을 내민다.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한국 각 성자 협회, 아니 리벨리온의 부의 장, 강석호라고 합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세디아의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던 강석호가 살짝 고개를 숙인다.
“이번 도움을 주신 것은 정말 고
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를 잊 지 않고 반드시 은혜를 갚도록 하 겠습니다.”
“저희 엘프들이 모시고 있는 왕 의 차원을 돕는 것은 지극히 당연 한 일입니다. 감사까지 표할 필요 는 없습니다.”
서로 간의 격식을 차리기 위한 짧은 말을 끝으로, 고개를 든 강석 호가 미소를 보인다.
“어찌 되었든 이렇게 도움을 주 러 오셔서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주제 넘는 말이지만 의장님이 지금 부재중이신지라. 서울의 지리를 잘 아는 제가 임시적으로 총지휘관을
맡으려고 합니다. 괜찮으실까요?”
“현명하십니다. 저희는 어떤 역 할을 하면 되겠습니까?”
“이동하면서 설명을 드리지요.”
고개를 끄덕인 이세디아가 강석 호의 옆을 걷는다.
그 뒤를 일화단이 따랐다.
“최우선의 행동은 서울의 방위 위주의 지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 다. 하지만 아마 급박한 전투가 될 만큼 보고를 할 틈이 없을 확률이 높을 테니 범위를 벗어나지만 않으 신다면 단독 행동을 하셔도 괜찮습 니다. 다만, 주요 초점이 서울의 방
위라는 것을 잊지 않아 주셨으면 합니다.”
“수비만으로 괜찮겠습니까?”
“우선은 천사의 침공을 막아내는 데 집중하고, 공격은 의장님께서 오시는 대로 시작할 것입니다.”
“과연, 그렇군요.”
리벨리온의 이름 아래 많은 인원 이 모이긴 했지만, 천사들의 병력 과, 게이트 내부의 전력에 대해서 는 아는 것이 없는 만큼 섣불리 공 격을 감행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확실한 공격이 불가하다 면, 우선은 방어, 피해를 최소한으
로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판단은 실로 훌륭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중원 대륙 쪽에서는 별말이 없 었나요?”
이세디아가 물었다.
광무혈마라는 인물로 보아서는 중원 대륙 역시 상당한 강자들이 있는 차원일 확률이 높았다.
다소 야만적이었기에 함께 어울 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새로 받들게 된 왕, 한서준이 머무는 지구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는 지금의 상황을 반드시 극 복해야 할 필요가 있는 만큼 상당
히 듬직한 전력인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중원 대륙에서도 상당한 지원을 보내왔습니다, 물론, 그중에는 아주 강한 분도 계시지요.”
“아주 강한 자……?”
이세디아의 고개가 갸웃 젖혀졌 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의문에 대 한 해답이 풀렸다.
아주 거대한 기운이 중원 대륙 무인들의 선두에 선 파리한 얼굴을 한 사내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흘러나
오는 기운으로 그 경지가 대단하다 는 것은 쉽사리 알 수 있었다.
“ 반신?”
“예, 중원 대륙의 대표이자 반신 의 경지에 오르신 무명신의님 또한 전력을 다해 지구를 돕겠다고 합니 다, 여러모로 정말 안심이 되지 않 습니까?”
강석호의 말에 이세디아의 입가 에 헛웃음이 흐르기 시작했다.
‘정말, 우리의 왕께서는 매번 감 탄을 금치 못하게 하시는군.’
수인족과 엘프족의 절대 충성을 받아내고 규합한 것만으로도 대경
할 일이었다.
그런데, 지구의 인간과 똑 닮았 으면서도 훨씬 강한 중원 대륙의 인류마저 완전히 힘의 지배하에 두 고 충성을 받아낸 것이었다.
아니, 이건 단순한 충성 정도가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중원 대륙 무인들의 눈동자에는 강한 투지, 그리고 절 대적 신앙에 가까운 믿음이 어려 있었다.
‘이번에는 천사들이 큰 실수를 저지른 것 같군.’
멸시했던 종족들에서 강자가 속
속들이 나타났고, 한서준이라는 왕 의 이름 아래 끈끈하게 결집했다.
그로 인해 엘프와 수인족 인간들 은 더 이상 과거의 천사들이 알고 있던 나약한 종족에 머물러 있지 않게 됐다.
천사들. 아니, 그 누구도 예상하 지 못한, 예상할 수 없었던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모습에 이세디아의 입가에 활짝- 미소가 피어나고 있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