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권 6화
181 화
지구, 대한민국 서울.
서연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일 상을 보내고 있었다.
여태 그랬듯 수련을 마치고 서울 에 나타난 골칫덩어리 게이트들을 클리어한 후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었다.
‘탑의 정복……
서준과 약속했던 패황의 탑에 대 한 문제는 서연에게 많은 생각을
들게 할 수밖에 없었다.
고된 수련들과 끊임없는 도전으로 힘겹게 45층을 넘어서는 데는 성공했지만, 결국 그곳까지였다.
이후의 층계는 상상 이상으로 어 려웠다.
갖가지 함정, 독, 주술까지.
여태껏 치렀던 시험들과는 말 그 대로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이 상태로는 안 돼.’
서연의 미간이 깊게 파였다.
당장에라도 스승 역할을 맡아준 자칼에게 연락해 다음 경지로 갈
수 있는 방법을 묻고 싶었다.
하지만 자칼은 스마트 폰을 가지 고 있지도 않았다.
아니, 애초에 아니마 차원에는 지구의 전파가 닿지도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아니마 차원 으로 넘어가고 싶었지만, 근래 들 어 매우 바빠진 자칼이 왕궁에 계 속 머물고 있을 거라는 보장 또한 없었다.
“지금 당장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겠네.”
내일 협회를 통하여 전서구를 보 내둔다면, 시간이 나는 대로 답장
을 해올 것이다.
그렇게 약속을 잡은 후, 그때 돼 서 생각하는 게 나았다.
‘우선 지금은……
어느덧 해가 지평선 아래에 깔려 가는 저녁이 다가오고 있었다.
사람들의 고되었던 하루가 끝나 가고 있는 시점이라는 말이었다.
‘그래,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 가족이지.’
마침, 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한 석훈과 양정화의 기척이 느껴졌다.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
서연은, 집 문 앞으로 마중 가기 위해 걸음을 옮긴다.
‘소중한 가족.’
항상 가슴 속에 남아있는 단어였 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애정과 행복이 어려 있었다.
말 못 하는 짐승마저도 자기 혈 육 소중한 걸 아는데, 인간이라면 야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고생은 없는 거야.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하겠어.’
능력을 키워 홀로 힘겹게 짐을 짊어지고 가고 있는 서준의 고생을
덜어주고, 정말로 모두 행복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서연이 다시금 다짐하는 순간, 어느덧 평범한 사람의 시야에도 보 일 만큼 근처로 다가온 양친을 향 해 손을 흔들었다.
“아빠! 엄마!”
“딸!”
한석훈이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말한다.
“오늘은 일찍 들어왔네?”
서연의 얼굴을 확인한 양정화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얼굴에는 반가운 미소가 가득 피 어나고 있었다.
“응, 처리해야 하는 게이트의 핵 을 생각보다 빨리 발견해서. 일찍 돌아왔어.”
“우리 딸 장하네요.”
양정화가 손을 꼬옥- 잡으며 서 연의 앞장을 서며 걸어간다.
“그것보다 어서 들어가자. 요즘 밤바람이 많이 추워.”
뒤이어 따라오던 한석훈이 자연 스럽게 이야기를 꺼낸다.
“그런데, 네 오빠한테는 연락이
없니?”
“그러게요. 나도 매일 아침 협회 에 물어보는데 답변이라곤 여전히 게이트에 입장한 후 나온 적이 없 다는 말뿐이야.”
“어휴, 엄마는 걱정이구나. 아무 리 우리 아들이라고는 하지만……
양정화의 걱정에 공감하는지 서 연도 고개를 주억인다.
“그니까. 너무 혼자 짐을 지려고 하는 거 아냐? 조금 나눠도 되는 데……
서연은 괜히 마음이 아파왔다.
행복을 지키기 위함이라며 힘든
일에 몸을 불사르는 서준에게 너무 미안했기 때문이었다.
심각해지는 분위기 속 한석훈의 입가에는 여유만만한 미소가 피어 난다.
“걱정이 안 된다고 하면 거짓말 이겠지. 하지만, 나는 우리 한씨 가 문의 자랑스러운 아들을 믿겠어.”
막연한 믿음이 아니었다.
서준을 보고 있자면 묘한 기대감 과 함께 굳건한 믿음이 생기곤 했 으니 말이다.
“아빠는, 누구는 못 믿는대?”
“그럼요.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양정화가 씩 웃으며 큰 문 앞에서 비밀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오빠 오면 맛있는 데 가서 가족 끼리 외식이라도 하자꾸나. 그 정 도는 해줘야지.”
“꼭 그렇게 해요, 오빠도 엄청 좋아할 거예요.”
서연이 활짝 핀 웃음을 보이며 고개를 주억이는 순간이었다.
날카롭고, 거대한 기운이 서연의 감각에 걸려든다.
찌잉-!
이윽고 잡음과도 같은 거대한 이
명이 귓가에 울려 퍼진다.
단순한 착각이 아니었다.
웃는 얼굴로 현관문 앞에서 있 던 가족들의 시선이 모두 하늘로 향한다.
“조금 쉬나 했는데, 아무래도 할 일이 생긴 거 같은데요.”
“그런 것 같구나.”
말을 끝맺은, 서준의 가족은 건 물 외벽을 타 옥상을 향해 뛰어 올 라간다.
“맙소사……
마침내,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된
풍경에서연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대 한민국 수도 서울의 드넓은 하늘의 상공을 뒤덮을 정도의 거대한 백색 의 게이트가 열려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어떤 곳이길래……
현경에 이른 고수인 서연의 머리 가 울릴 정도의 이명과 함께 포털 이 열렸다.
규모가 심상치 않을 것이라는 짐 작은 했지만, 상상을 아득히 벗어 난 수준이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지던 찰나,
품 안에 넣어 놓은 스마트폰이 요 란한 소리를 토해내는 것이 들리기 시작했다.
S급 각성자의 핫라인을 통하여 협회, 강석호와의 음성이 연결되었다.
-보셨습니까?
“ 네.”
-추정 등급은 현재 지구의 기술 력으로는 판독 불가입니다, 우선 현재 마나의 양과 성질을 기반으로 추측해본 결과…….
말끝을 흐리던 강석호의 목소리 가 여태 없을 정도로 암울해졌다.
-천사 군대가 움직인 것으로 추 정됩니다.
서연의 고개가 절로 주억여졌다.
저 거대한 게이트 내부를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었으나, 서연 역 시 기운의 성질이 천사들과 완벽히 닮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고 있었 으니 말이다.
‘어쩐지, 그간 조용하다 했어. 군 대를 준비하고 있었네.’
천사들은 자존심이 매우 강하면 서도, 철저한 이분법에 점철된 집 단이었다.
이러한 성정상 트리니티를 탈퇴
하고 천사들과 척을 지고도 대한민 국만 다소 멀쩡하다는 점에서 의문 을 제법 느끼고 있었는데, 그 결과 가 이런 식으로 벌어진 것이다.
‘한 번에 끝장을 보겠다는 거겠 지.’
서울 상공 위에 펼쳐진 거대한 백색의 포털, 서연이 겪은 일 중 단연 최악이라 할 수 있었다.
‘오빠도 연락이 끊긴 상태인데.’
연합의 구심점인 서준이 있었다 면 자신 있게 맞서 싸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서준은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우선 지구 내의 모든 협회와 리 벨리온 소속 종족들에게 소집령을 내렸습니다만……. 의장님이 안 계 신 지금, 이종족이 어떤 태도를 보 여 올지는 확답 내리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리벨리온.
한서준이라는 이름하에 모인 만 큼 서준의 존재감이 클 수밖에 없 었다.
그 구심점인 서준이 근래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어쩌면 과거, 트리니티와 다를
바 없는 구색뿐인 연합이 될 확률 도 배제할 수가 없었다.
좋지 못한 상황에 다소 쓴웃음을 흘리는 것 같은 강석호의 표정이 눈앞에 그려지려 할 때였다.
[……맙소사!]
갑작스러운 감탄을 흘린 강석호 의 음성에 활기가 넘쳐흐른다.
[의장님께선 정말 진정한 영웅의 자질을 타고나셨군요.]
“네?”
별안간 터진 서준을 칭찬하는 문 구에 의문을 표하는 서연에게 석호 가 한껏 들뜬 목소리로 입을 열었
다.
“정말로요?”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서연의 입 에서도 감탄이 터져 나왔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염 려하고 걱정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었다.
“이종족들이 자처해서 지원군을 보내오고 있다고요?!”
신념의 관문.
모든 시험을 통과해낸 서준의 입 가에는 숨길 수 없는 미소가 피어 나고 있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시 험으로 입장하기 전 달성하고자 했 던 목표를 모두 이뤄내는 데 성공 했기 때문이었다.
‘레벨도 자그마치 250으로 올랐 어.’
근래 레벨 업을 이뤄낸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스무 계단이 상승 하여 대성장을 이루어냈다.
심지어 이것은 시험에서 얻은 극 히 일부의 보상에 불과했다.
‘중간 보상으로 얻은 예속의 보 석.’
은은한 은광(銀光)을 뿜는 것을 제외하고는 길가에 구르는 돌과 다 를 게 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고유라는 높은 등급에서 도 알 수 있다시피, 그 능력은 절 대로 평범하지 않았다.
[예속의 보석.]
등급 : 고유(固有)
분류 : 반영구 아이템
전 차원을 정복해냈던 가이사가 함께 싸워 온 친위대의 노고를 치 하하기 위해 영혼을 불어넣어 만들 어낸 상등급의 아티팩트입니다.
특수 효과.
1. 고유 등급, 천명(薦名): 최대 10명의 친위대의 임명이 가능하게 됩니다. (친위대에 임명된 이들은 군주의 스킬(무공)을 한 가지를 즉 시 전수받을 수 있습니다.)
2. 고유 둥급, 소환(石換) : 서로 가 원할 경우, 정신 교감을 통한 통신이 가능하며 군주가 원할 시
친위대를 자신의 곁으로 소환할 수 있습니다.
비록 본인의 능력을 상승시키지 는 못했지만, 가족과 동료에게 스 스로를 지킬 수 있는 무공을 전수 해줄 수 있다는 것은 서준에게는 상당한 메리트였다.
아니, 애초에 이 예속의 보석의 진가는 따로 있었다.
“흐흐.”
입가에 호선을 그리고 있는, 서준의 눈동자가 자연스레 수투로 향 한다.
[정복왕(征服王)의 수투(手휴)]
등급 : 신화(神話)
분류 : 반영구 아이템
가이사가 직접 영혼의 일부를 담 아 신념의 관문에 봉인시켜두었던 파편을 흡수하는 데 성공해 정복왕 의 수투가 본래의 모습을 거의 되 찾는 데 성공했습니다. 홑어져있는 영혼의 파편을 추가적으로 모으면 수투의 진정한 모습이 개방될 것입 니다.
특수 효과.
1~9번, 특수 옵션들은 전과 동일 합니다.
10. 신화(神話)급, 가이사의 지도 : 10분 동안 예속의 보석을 통하여 친위대로 임명한 이들의 스테이터 스만큼 본인의 스테이터스를 상승 시킬 수 있습니다.
정복왕의 수투의 옵션을 다시금 확인하고 있는, 서준은 입을 다물 지 못했다.
“정말 미쳤어.”
어째서 고된 시련이 주어졌는지 납득이 가는 능력이었다.
중간 보상에서 얻어낸 예속의 보 석의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긴 하였지만, 새로이 생긴 가이사의 지도의 능력은 실로 뛰어 난 옵션이었다.
‘친위대의 스테이터스만큼 내 스 테이터스를 상승시킬 수 있다니!’
여태 정복왕의 수투가 보여주었 던 어떠한 스테이터스 상승보다도 뛰어난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만약 친위대로 임명되는 이의 스테이터스가 천 단위에 달한다 면……
지금 당장 효용은 구태여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하물며 친위대는 성장까 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군주의 스킬과 일부의 능 력치를 받을 수 있는 만큼, 그 성 장세도 아주 매서워질 것이었다.
머잖아 더더욱 뛰어난 상승의 효 과를 누릴 수 있다는 말이었다.
특히나 항상 가족의 안전을 생각 해왔던 서준의 입장에서는 가이사 의 지도는 특히나 빛이 나는 옵션 이었다.
“정복왕 가이사……. 대체 어떤 존재이길래.”
이렇게 감탄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당장 가서 옵션을 사용해야겠 어.’
숨길 수 없는 미소를 홀리고 있 던 서준은 등을 돌려 관문의 출구 로 향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