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권 4화
179화
서준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키 케르가 비릿한 미소를 흘린다.
[이제야 힘의 차이를 알겠느냐, 나으m 자여.]
“아직 붙어 보지도 않았는데 단 정 지으면 안 되지.”
[어리석구나, 어리석어. 이렇게 현저한 격차를 겪고도 현실을 부정 하려 하다니.]
키케르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흐른다.
[좋다, 그렇게까지 현실을 부정하 려 한다면 특별히 짐이 직접 확인 시켜 주도록 하마.]
“그거 재미있겠네.”
서준은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를 보인다.
“할 수 있으면 해 봐.”
키케르의 입가에 어린 미소가 짙 어졌다.
[마음껏 좌절하고 절망하도록 해 라.]
수십에 달하던 키케르가 동시에
발을 놀린다.
사삭-!
사방에서 환영이 달려오고 있었지만 당황하지 않는다.
키케르의 움직임은 여전히 빨랐 지만, 쫓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던 탓이다.
긴장감으로 인해 한층 더 예민해 진 감각이 그들의 움직임을 포착한 다.
서준의 시야가 달려드는 환영들 사이에 존재하는 틈새를 향한다.
이윽고 내딛는 걸음 하나로 전투 가 시작된다.
팍-!
서준이 활짝 뻗은 손, 펼친 손바 닥에서 검은빛이 모여든다.
그러고는 환영들 사이의 공간에 내공을 밀어 넣는다.
우웅-
부푼 내공이 구체의 형상을 띠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을 쏘거나 터뜨리지 는 않았다.
단지 벌어진 균열에 힘을 가할 뿐이다.
그러자 실제로 환영들이 물러서
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공격을 포기한 것은 아 니었다.
[앞만 보아 뭐 하나. 뒤가 훤히 열려 있지 않나.]
전신에 붉은 기운을 휘감은 키케 르 무리의 양팔이 잔영을 그려낸다.
거인의 힘. 그 파괴적인 위력이 비처럼 쏟아져 내린다.
쾅-!
서준은 등 뒤에서 날아오는 기운 을 느끼며 발을 높게 들어올렸다.
다리에서부터 일어난 공간 발작.
뒤집힌 지면과 사방으로 둘린 서준의 천존마선의 힘이 쏟아지던 의 념강기들을 막아낸다.
‘기회다.’
쏟아진 힘은 서준을 타격하지 못 했다.
뿐만 아니라, 지면이 뒤집히고, 치솟아 오르며 촘촘했던 환영들의 포위망에 틈이 생겼다.
그 틈에서준은 팔경성보를 펼치 고는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쌔액-!
초음속의 위력은 잔영을 남기며
서준을 이동시켰다.
그러나 붉은 기운을 휘감은 키케 르의 주먹 여러 개가 복잡한 궤로 를 그리며 서준의 움직임을 봉쇄해 낸다.
두 눈을 휘둥그레 뜬 서준은 헛 바람을 삼키며 쏟아지는 주먹들을 막아야만 했다.
‘ 어떻게……?’
분명, 사방에서 달려들던 환영들 과의 거리를 확보해낸 상태였다.
그런데 지금, 또 다시 다른 환영 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단지 새로 만든 것일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방금 전과는 달리 이번 환영은 만들어지는 순간, 존재조차 느껴지 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등 뒤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키케 르의 또 다른 환영들이 달려든다.
쉭-
힘겹게 공격을 회피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키케르의 환영이 쉴 새 없이 계속 생성되고 있었다.
수많은 공격을 피해냈으나, 이제 는 그마저도 한계에 달하고 있었다.
퍽-!
“크읍-!”
결국, 신음과 함께 서준의 입에서 붉은 선혈이 흘러내린다.
방어는 무너졌고, 드러난 틈을 키케르가 놓칠 리 만무했다.
파바박-!
지독하고 집요하게 파고들어 서준을 밀어붙인다.
[이제야 표정이 좀 볼만해졌군.]
서준은 대답하지 않는다.
아니, 대답할 수 없었다.
환영의 공세에 한번 벌어졌던 틈 은 이제 메꾸기 힘들 정도로 거대 해졌다.
숨이 턱턱 막혀오며, 호흡이 벅 차온다.
퍽-! 퍽—!
몸 곳곳에서 느껴지는 고통, 혼 미해져 가는 정신 속에서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온다.
-결국, 너도 여기까지였을 뿐이 지.
-그러게 왜 주제넘게 상위 종족
에게 대들어? 그냥 평범한 인간들 답게 복종하고 살았으면 되었을 것 을.
-모두 네가 자초한 욕심이고 파 멸이다.
‘닥쳐라.’
-너뿐만 아니라 네 가족, 동료들 또한 너의 욕심으로 이렇게 허무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닥치라고!”
콰앙-!
묵색의 기운이 폭발하듯이 터져 나가며 환영들을 한 번에 튕겨낸다.
피분수가 터져 피 칠갑이 된 육 신은 본인의 다리조차 제대로 지탱 하지 못할 정도로 후들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두 눈동자에는 아직도 꺾 이지 않는 투지가 깃들어 있었다.
‘두 번 다시 잃지 않아.’
어떻게 되돌아온 지구인데, 가족 들과의 평화로운 삶을 잃을 순 없 었다.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여기까지 올라온 서준이었기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힘이 없는 자는 인생이 억울함
의 연속이다.’
처음 중원 대륙에 발을 들였을 때도 그랬고, 선계에 처음 당도할 때도 그랬기에서준의 지침과도 같 은 말이었다.
세상은 힘이 없는 나약한 자의 말을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살아남으려 악을 썼고, 힘을 키우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거쳐 왔다.
-그래 봤자, 지금은 나약한 존재 일 뿐이지.
-제대로 된 신위라고도 말할 수 없는 존재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
-결국, 복종하게 되고 파멸하게 될 거야.
천 년간 그리워했고 생각했던 생 활을 얻어냈는데 이런 허무한 죽음 을 맞이하라니.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벌어질 수 없는 일이었다.
‘최후의 최후까지, 끝까지 발버둥 쳐주겠어.’
그리고 종국에는 모두를 무릎 꿇 게 만들 것이었다.
“으아아-!!”
서준이 포효를 내지르며, 흔들리 던 정신을 다잡는 순간이었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키케르의 신형이 일순간 흐릿해진다.
실은 그랬다.
눈앞의 키케르는 역시나 거짓된 형체.
마침내 마주하게 된 진실에서준 의 입가에 피식- 미소가 흐른다.
“이제야 이해가 가네.”
[힘의 차이를 이제야 받아들였 나?]
“어이없는 장난에 걸려들었네.”
[질리는군. 가엾기 그지없을 정도 야.]
키케르가 느긋한 음성을 홀렸다.
[결국, 네가 가진 힘은 이것밖에 되지 않는다. 너는 시험을 통과할 만한 능력이 없다. 이만 포기하고 현실을 받아들여라.]
서준의 입가에 피어난 미소는 더 욱 짙어졌다.
“거짓된 거인의 왕.”
이명을 읊자, 항시 여유를 보이 던 키케르의 몸이 흠칫 떨린다.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일이었
지.’
확신은 할 수 없었지만, 멀리서 느꼈던 키케르의 힘은 상격에 달하 는 신위를 노릴 정도의 강자였다.
중격에 이르러있는 서준의 입장 에서는 한 명도 상대하기 버거웠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하나하나가 실 체인 환영이 이렇게까지 많은 상황 이라면?
‘진작에 죽음을 맞이했겠지.’
하지만 죽지 않았다.
아니, 죽일 수 없었을 것이다.
‘이건 현실이 아니야.’
지금 벌어졌던 일은 모두가 거 짓, 환상에 불과했다.
‘처음부터 이상하긴 했지.’
처소에 입장할 때, 가이사의 시 험은 은근슬쩍 키케르의 이명을 드 러내 주었다.
의도된 것인지, 아니면 배려인지 알 수는 없었다.
아니, 지금 중요한 것은 가이사 의 시험의 의중 따위가 아닌, 머릿 속에 떠올랐던 추측이 확신이 된 것이었다.
“네놈의 거짓부렁도 여기까지라 고.”
[의지는 실로 대단하군, 네놈이 어째서 투쟁의 신을 자처하는지 알 겠다만…….]
서준은 눈앞에서 떠드는 키케르 에게 일말의 관심조차 주지 않는다.
대신하여 발을 놀려 아까 전 천 존마선공을 발산했던 위치로 향한 다.
분명, 지형이 뒤집혔을 텐데 그 자국이 존재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공방을 주고받았던 작은 흔적들조차 보이지 않고 있었
다.
“ 빙고.”
너무나 현실적인지라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지만, 이것은 서준이 이따금 겪었던 환상(幻像)의 영역 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술법에 능통하지 못한 서준이었기에 이 환술에서 나가는 방 법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었다.
아니, 알 필요가 없었다.
‘이런 결계 따위 부숴버리면 그 만이지.’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흘린 서준 이 주먹을 바닥에 내려찍는다.
쾅-!
지면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묵색의 기파가 사방으로 번져나가 며 일대 처소를 강하게 때린다.
쿠구궁…….
지진이 일어나는 것 같은 굉음과 함께 처소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쏟아지는 파편들 속에서, 서준은 지그시 눈을 감는다.
쿠구구궁……!
요란한 소리와 함께 육신이 뒤혼 들린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세계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휘릭-!
눈을 감고 있음에도, 머릿속이 핑- 도는 것 같은 감각이 느껴진 다.
서준은 지끈- 밀려오는 두통을 억눌러가며, 기운을 퍼트린다.
키케르의 기운이 서준이 흘려내 는 기운을 제멋대로 휘젓고 흩어지 게 만들었다.
상관없었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덕분에 기운이 시작된 지점은
분명히 알아낼 수 있었다.’
감고 있던 눈을 뜬 서준의 눈동 자에는 이채가 어려 있었다.
서준은 그 또렷한 눈망울을 한 채로, 쏟아지는 돌무더기 사이를 향해 달렸다.
콰과과광-!
굉음이 연이어 들려왔고, 세계가 무너지는 것 같은 충격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이제는 완전히 미쳐 처소에 깔 려 자멸하려는 것이냐?]
키케르의 입에서 경멸이 가득 담 긴 음성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서준은 이번에도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발을 내뻗으며, 뛰어간다.
마침내 키케르의 기운이 시작된 지점을 향해 당도한서준은 이를 꽈악- 문 채로 주먹을 앞으로 내뻗 는다.
챙-!
주먹에 걸린 묵직한 감각과 함께, 세계가 깨어지는 소리가 들려 온다.
이윽고, 서준의 머릿속에 하나의 음성이 울려 퍼진다.
띠링-!
[신대결계(神代結界), 환몽계(幻 夢界)를 돌파했습니다.]
[강력한 투지, 정신력이 환몽계 정신오염 공격을 물리쳐냈습니다.]
[SSS급 스킬, 명경지수 스킬의 숙련도가 최대치로 상승해 고유둥 급 유아독존我獨#)으로 진화합 니다.]
[고유등급, 유아독존(푸我獨尊)을 획득합니다.]
[활성화 스킬 ‘유아독존’이 정신
을 완전히 정화합니다.]
쏟아지는 알림음과 함께, 넝마가 되어있던 육체에 활력이 돌아온다.
눈앞의 환상들과 머릿속을 어지 럽히던 혼란이 마치 물로 씻은 듯 사라진다.
‘이건…… 예상외인데.’
의지를 다잡으며 결계를 돌파하 려는 상황에 의외의 소득이 발생한 것이다.
아주 기쁜 일이었지만, 유아독존 의 성능에 놀랄 시간도 없었다.
콰광-!
서준의 주변에는 여전히 장엄함 을 자랑하는 처소가 있었다.
아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왕좌 로 향하는 길목에 거인의 대군(大 群)이 진을 치고 있다는 점쯤이었다.
그 끝에 놓인, 왕좌 위에 앉은 선홍빛 눈을 한 키케르가 오만한 자세로 서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설마 이렇게 단기간에 결계 를 돌파해낼 줄은 몰랐군.]
음성이 처소 내부에 울려 퍼진 다.
진한 흥미가 깃든 키케르의 음색 에서준의 입가에는 비릿한 미소가 피어난다.
“뭘 이 정도로, 지금부터는 더 놀랄 일이 많을 거야.”
말을 끝맺은 서준이 발을 놀리며 오만한 표정을 한 채로 왕좌 위에 몸을 뉘고 있는 키에르를 향해 차 가운 눈빛으로 옹시한다.
[특출한 능력과, 강한 투지는 인 정하나…… 과연 네가 내게 닿을 수 있을까?]
키케르가 가소롭다는 듯 미소를 지은 채로 음성을 흘리는 순간, 주
변에서 있던 거인들이 몸을 움직 이기 시작한다.
이윽고, 처소를 가득 매우고 있 는 무수히 많은 거인들이 기운들을 끌어 올리며, 서준을 향해 쇄도해 온다.
달려오는 거인들을 향해 서준은 피식- 미소를 홀리며 발을 내뻗었다.
가이사의 시험, 거인들과의 마지 막 싸움이 시작된 것이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