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권 25화
175화
맞은편에 앉아 있는 휘노소프의 입가에도 서준과 같은 밝은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모든 게 인왕님 덕분이었습니 다……. 대체 어떻게 감사드려야 할지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만, 다 시금 진심을 담아 감사드립니다.”
“저도 보수를 바라고 한 일인데 요. 고마워하면 오히려 제가 죄송 하죠.”
“요청하신 대로 옥새를 찍어 리 벨리온 쪽에 전언을 보내두었습니 다.”
불카누스, 드워프 차원의 리벨리 온 가입.
이번 도움을 준 것으로 서준이 요청한 것이었다.
했던 말 덕분인지, 아니면 서준 을 신뢰해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휘노소프는 곧장 그것을 수락해 전 언을 보내었고, 서준이 추진한 일 인 만큼 리벨리온에서도 이를 곧장 받아들였다.
계획했던 일이 모두 이뤄졌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정말 이것이 부탁의 전 부입니까?”
“음, 굳이 더하자면, 하나 더 부 탁드리고 싶은 게 있긴 합니다.”
“제 능력 안의 일이라면 무엇이 든지요. 편히 말씀해 주십시오.”
휘노소프의 대답에서준은 가볍 게 웃어 보이고는 입을 열었다.
“연합의 일원으로서 최선을 다해 주길 바라요.”
“……그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 니다. 굳이 부탁하시지 않아도 그 러려고 했습니다.”
“그거면 저는 됐습니다.”
“그렇지만……
서준이 없었다면 원로파에게 당 해서 죽었을지도 모르는 휘노소프 였다.
그에게 서준은 목숨을 구해준 은 인이라는 말이다.
한낱 짐승도 생명의 은혜는 알고 있는데, 왕이란 작자가 이런 은혜 를 그냥 넘겨서는 천리를 거스르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제대로 된 보답을 해주 고 싶은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문제는 서준이 너무 뛰 어나다는 것이었다.
본연의 능력은 물론, 보유한 아 티팩트의 훌륭한 성능까지.
지금 휘노소프가 가진 능력으로 는 도움을 주려고 해도 줄 것이 없 었다.
‘내가 이렇게 무력했다니.’
휘노소프가 미간을 찌푸린 채로, 무슨 보답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였다.
순간,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정복왕의 수투……
생각이 닿자 불현듯 머리를 스치 는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어쩌면 인왕, 한서준에게 받은 은혜를 보답할 기회가 생길지도 몰 랐다.
간신히 보이는 희망에 휘노소프 는 곧장 입을 열었다.
“혹시……! 괜찮으시면 정복왕의 수투를 제가 확인해 봐도 되겠습니 까?”
“수투를요?”
“제가 함부로 개조할 수준의 아
티팩트는 아닙니다만, 드워프족에 대대로 내려오는 전설을 토대로 수 투에 대한 추가 조사 정도는 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이렇게 말씀을 드 리는 것입니다.”
정복왕 가이사.
그가 남긴 유산, 파편들을 흡수 할 때마다 수투가 괄목할 만한 성 장을 해왔다.
쉽게 발견할 수 없는 것이 유일 한 흠이었지만, 서준은 불카누스에 입장하기 전, 파편의 이끌림을 느 낀 적이 있었다.
‘분명 불카누스 차원에서도 정복
왕과 관련된 물건이 존재한다.’
휘노소프의 조사를 거절할 이유 가 없다는 것이었다.
서준은 흔쾌히 고개 주억이며 입 을 열었다.
“그래 주시면 감사하죠.”
약한 달 후.
수투에 관련된 조사로 인해 생각 했던 것보다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래도 다행히 불카누스는 지구 와 왕복하기 어렵지 않은 차원이었 기에 매일매일 보고를 받으면서 담 화를 주고받을 수 있어 걱정을 덜 수 있었다.
그렇게 뜨거운 태양이 정수리를 따갑게 하던 여름이 끝을 맞이하고 서늘한 바람과 단풍잎이 떨어지는 가을이 다가올 때쯤이었다.
서준이 머물고 있는 왕궁 객실에 휘노소프가 황급히 문을 박차고 들
어왔다.
“드, 드디어 찾았습니다!”
주어가 생략됐지만, 조사하던 것 은 정복왕의 수투 하나뿐이었던 탓 에서준은 곧장 휘노소프의 저의를 이해하곤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드디어 말입니까?”
“예, 바로 이 돌입니다.”
휘노소프는 품 안에 넣어놓았던 목함에서 자줏빛 돌 하나를 꺼내보 였다.
“이건?”
“맞습니다, 테메누가 가지고 있
던 꺼지지 않는 불꽃을 다룰 수 있 는 아티팩트에 있던 겁니다.”
“ 흐음.
서준은 고민했지만, 휘노소프가 설명을 이었다.
“역사서에서 마침내 찾았습니다. 기록에서 이 돌은 권한의 보석이라 고 불려, 위대한 존재, 정복왕이 착 용하고 있던 수투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역사서에 적혀있는 이야기와 더 불어 수투와 비슷한 성질의 기운.
휘노소프가 이렇게까지 열을 올 리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
그러나 그 노력이 무색하게도, 권한의 보석이라도 불리는 이 돌 자체에선 여태 보았던 정복왕의 파 편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확실히, 닮긴 했습니다만, 정복 왕의 파편 중 하나라고 말하기엔 힘이 너무나 옅네요.”
“그렇군요……
“그래도 조사를 해볼 가치는 충 분한데요.”
낙심하고 있는 휘노소프를 북돋 아 주기 위해 환한 미소와 함께, 돌올 집어 올리려던 순간이었다.
[파편의 조각 일부가 수투와 사 용자 ‘한서준’의 능력 검중에 들어 갑니다.]
[수투 및 사용자 ‘한서준’의 시험 의 관문으로 갈 수 있는 ‘신위’의 자격 검중이 완료되었습니다.]
[가이사의 시험 관문으로 향하는 문을 개방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 됩니다.]
[※주의! 자격 검중이 되지 않은 자가 관문에 입장할 시 높은 확률 로 사망할 수 있습니다. 동행자가 없도록 주의하십시오.]
[관문으로 향하는 게이트를 개방 하시겠습니까?]
[※경고! 난이도 매우 어렵습니 다. 상당한 실력을 갖춘 후에 입장 하시길 권합니다. 입장 시 시험 통 과 전까지 퇴장은 불가능하니 신중 히 입장하십시오.]
‘게이트를 생성한다고?’
눈앞에 떠오른 초록빛 홀로그램 창을 바라보는, 서준의 눈동자에 이채가 어린다.
“ 대박……
어째서 희미하게 느껴졌는지, 정 확하게 찾을 수 없는지 알 수 있었다.
여태껏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던, 이 돌은 파편 그 자체가 아닌 단순 한 연결 통로였던 것이다.
메시지 창 덕분에서준은 모든 퍼즐을 맞췄지만, 그것을 보지 못 하는 휘노소프는 고개를 젖힐 수밖 에 없었다.
“왜 그러시는지요?”
“역사서에 적혀있던 내용이 정확 히 맞았네요.”
“정말입니까?”
고개를 젖히는 휘노소프의 모습 에서준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백문불여일견.
이런 것은 직접 보여주는 게 빠 른 법이었다.
‘ 개방하겠다.’
서준이 떠오른 메시지 창을 바라 보며 속으로 외던 순간이었다.
지잉-
눈앞에 나타난 자줏빛 균열.
이것이 시작이었다.
우웅…… 우웅…….
처음에는 자그마한 균열에 불과 했던 입구가, 어느덧 손바닥만 해 졌고, 뒤이어 성인 남성이 들락날 락할 수 있을 정도 거대해져 있었다.
“ 이건......
휘노소프의 의문에 답하듯, 서준 이 읊조리듯 말한다.
“정복왕 가이사의 시험 관문.”
휘노소프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 들린다.
그에게 있어서는 전설로만 치부 되었던 이야기가 두 눈앞에 벌어진 것이었다.
‘말 그대로 신화의 세계.’
서준도 심장이 멋대로 날뛰려 하 였지만, 억지로 마음을 가라앉혀 내고는 입을 열었다.
“그럼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혼자 가셔도 되겠습니까?”
“저도 아쉽지만, 자격이 되지 않 는 자가 가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 다네요.”
“그러면 준비라도 만반으로 가시 는 게 어떻습니까?”
휘노소프가 걱정이 가득 담겨 있 는 말을 홀린다.
당연한 걱정이었다.
게이트에서 홀러나오는 기운은 살갗이 아릴 정도로 엄청나게 매서 웠기 때문이었다.
은인이 위험에 처하는 꼴은 누구 라도 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충분히 이해 가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서준은 이 렇게 강렬한 기운이 너무나도 좋았다.
“전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않으 셔도 돼요.”
오히려 이것은 서준에게 기회라
고 말할 수 있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가이사가 내어준 시련들은 보통 고난스러울수록 보상도 그에 따라 커졌다.
이렇게 대놓고 시험이라고 언급 하면서 강렬한 기운을 뿜어낼 정도 라면 분명 극악의 난도를 가지고 있을 테고 그만큼 보상도 상당할 것이란 말이었다.
‘지금 나에게는 최고의 성장 무 대라는 거야.’
어쩔 수 없이 불카누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지만, 여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천사족은 지금 명백히 지구와 서준을 노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신격을 대표하는 신들은 모두 대신(大神)에 이른 존재.’
우리엘과의 전투를 통해 직접 느 끼고, 확인하게 된 사실이었다.
직접 만나본 것은 아니기에, 함 부로 확정 짓는 것은 금물이었지만, 나머지 직위의 천사들 또한 대신에 올라있을 거라는 말이었다.
불안감이 차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들과 맞서기 위해서는 지금보
다 더 강한 힘이 필요해.’
상격 신위라는 높은 벽.
지금 마주하고 있는 벽을 넘기 위해서는 웬만한 성장으로는 기별 도 가지 않을 상황이었다.
그런데 만약 이번 시련으로 생각 한 것만큼, 여태껏 수투가 보여주 었던 뛰어난 성장세를 다시 한번 이뤄낼 수 있다면?
‘단번에 상격의 신위를 노려볼 수도 있을 테지.’
오만한 것이 아니었다.
이미 한번 넘은 벽이었기에 나아 갈 방향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다만 필요한 것은 성장할 계기였 다.
여태껏 보아온 수투의 성장은 그 만한 계기가 되어줄 확률이 높았다.
“최대한 빠르게 돌아오긴 할 겁 니다만, 혹시 모르니 지구에도 소 식을 전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 다.”
서준의 굳은 의지에 휘노소프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대답 대신 입가로 웃음을 보인 서준이 자줏빛 차원 속으로 몸을 던졌다.
‘무엇이 있든 각오해. 싸우고 부 숴버릴 테니까.’
정복왕, 가이사가 준비해놓은 시 험의 관문에 투신, 한서준이 강림 하는 순간이었다.
[60초 후 정복왕 가이사의 시험 이 시작됩니다.]
[만반의 준비를 하십시오.]
떠오른 메시지 창을 확인하고 있 던 서준은 마른침을 꿀꺽- 삼킨다.
앞서 말했듯 가이사의 시험은 대 부분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었다.
성공하면 엄청난 보상을 얻을 수 있을 테지만, 실패하면 결과를 장 담할 수가 없었다.
몸이 최상의 컨디션이 될 수 있 도록 집중력을 이끌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 후우......
심호흡을 내뱉은 서준은 지그시
두 눈을 감고 명상에 빠졌다.
자그마치 천 년을 마선으로 살았 던 기억과 그 경험을 잊지 않은 만 큼 여태 그래 왔듯 무사히 시험을 잘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 이 들었다.
정확히는, 실패는 생각지도 않고 있었다.
그러나 서준은 방심하지 않는다.
‘방심은 곧 독이다.’
순간의 방심이 언제 죽음으로 자 신을 몰아넣을지 모른다.
서준은 마음속에서 야금야금 피 어나던 방심들을 흩어내고 마음을
통일시켰다.
집중된 정신이 ‘시험’이라는 단어 를 뇌리에 각인시키고는 적당한 긴 장감을 이끌어 낸다.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서는 과하지도 않은, 그렇다고 덜 하지도 않은 적당한 긴장감이 필요 했다.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서준은 적 절한 감정의 중심을 찾아간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수없이 해 왔던 일인 만큼, 순식간에 그 중심 을 찾았다.
나른했던 근육에 적당한 긴장감
이 차오르는 순간, 마침내 서준의 감고 있던 눈이 떠졌다.
치켜뜬 서준의 눈동자에는 선계 와 옥황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천마, 최강의 마선의 기세가 번뜩 어렸다.
그렇게 서준이 모든 준비를 끝마 친 순간, 눈앞에 메시지 창이 떠올 랐다.
[정복왕, 가이사의 시험을 시작합 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