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권 20화
170화
고고히 하늘에서 지면을 바라보 던 서준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삼켰다.
‘다행히 다들 무사하네.’
물론, 고전이었기에 크고작은 상처가 몸 곳곳에 나 있는 것은 어 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생명에 위협까 지는 아직 오지 않은 상태였다.
서준의 능력으로 모두 치료할 수
있는 수준이란 말이다.
걱정을 어느 정도 덜어낸 서준은 고개를 돌려 몸을 일으키는 요한을 보고 미간을 찌푸린다.
“신기하네, 신이라고 보기에는 그릇이 너무 작은데, 분명 신위를 논할 힘을 가지고 있다니.”
“한서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서준의 신 형을 바라보던 요한이 마른침을 꿀 꺽- 삼킨다.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설마 신위에 오른 존재일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과연 대단하
군.”
서준의 강함을 눈치챈 요한이 자 세를 다잡고 빛의 장막을 펼쳐 만 반의 전투태세를 갖췄다.
그 모습을 계속 응시하고 있던 서준이 피식- 미소를 흘린다.
“홀륭하기는 하다만……
이어, 손 위에 묵색의 의념강기 를 만들어내고, 휘두른다.
쌔액-!
일대를 뒤덮을 기세로 퍼져나가 던 새하얀 빛들이 너무나 허망할 정도로 검은 기운에 삼켜진다.
요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 신성력을 단 일격에……?”
“다루는 게 너무 어설퍼.”
서준의 눈동자가 요한의 몸 구석 구석을 살핀다.
넘치는 기운은, 지구로 귀환한 이후 마주했던 신 중에서는 으뜸이 었다.
아니, 서준이 전성기 시절에 선 계에서 활동할 때에도 손에 꼽힐 정도의 막대한 양을 품고 있었다.
선계의 수호자 역할을 자처하는 팔선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
로 말이다.
하지만 고작 기운의 양과 힘만으로 강함이 결정된다면, 애초에서준은 지금 이 자리에서 있지도 못 했을 것이다.
실제로 요한이 다시 한번 빛의 장막을 만들어냈지만, 전신에 묵색 의 기운을 두른 서준이 그 장막을 종잇장처럼 찢어발겼다.
“마, 말도 안 돼! 분명 나 또한 신위에 도달했는데 어째서!”
부정할 수 없는 말에서준은 고 개를 주억인다.
“인정해, 확실히 다루고 있는 기
운만 보자면 신위에 다다랐다고 해 도 과언이 아니다만……
그러나 이건 무공으로 따지자면 심(心), 내력에만 해당하는 이야기 였다.
자고로 무공은 심, 기, 체의 조화 가 이루어져야 하는 법.
그리고 지금의 요한에게는 그를 다룰 수 있는 기(氣)가 존재치 않 았다.
요한이 내뿜어내는 빛의 장막은 위력으로만 보자면 천존마선공에 준하는 힘을 품고 있었다.
아니, 그 무공보다도 어쩌면 더
많은 힘을 품고 있다고 해도 과언 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이 천존마선공보다 강하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서준의 무공에는 마선으로서 쌓 아온 경험과 기술로 빚어진 묘리들 이 담겨 있었다.
최강 최악의 마선 전성기에 비한 다면 지금은 턱없이 부족한 수준인 것이 사실이었지만, 이렇게 힘을 빌려와 가짜 신의 행세를 하는 이 들 정도는 압도하고도 남을 정도였 다.
이렇게 무식하게 내공을 보유하
고 있어 봤자 지금의 서준에게는 아무런 해를 끼칠 수 없다는 말이 었다.
“아니다, 신에 도달하지 못한 자 가 어찌 신의 뜻을 알겠어.”
입꼬리를 한쪽만 비틀어 올린, 노골적인 비웃음. 서준의 표정에 요한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진다.
“어서 말해라! 이 몸도 신이다! 신이 된 존재라고! 분명 우리엘 님 께서 그리 말씀해주셨단 말이다!”
요한의 입에서 나오는 ‘우리엘’이 란 단어에서준이 눈매가 가늘어진 다.
“누가 말해줬다고?”
우리엘.
과거 포스 시스템이 전신을 대표 하는 신으로 꼽았던 존재였다.
모든 신위의 정점이라고는 볼 수 없으나, 전신 중에서 가장 강한 신 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제법 대단한 존재라고 볼 수 있 었지만, 달리 말해 요한이 올라있 는 신위(神位)는 포스 시스템의 공 인을 받지 않았다는 말과도 같았다.
서준이 코웃음을 친다.
“내가 말한 그대로잖아, 신에 도
달하지 못한 자가 어찌 진정 신의 뜻을 알겠냐고.”
공인도 받지 못한, 가진 힘을 제 대로 다루지 못하기까지 하는 이런 반쪽짜리 신인 요한을 상대로는 수 투의 힘 따위도 사치였다.
“정말 신위에 걸맞은 힘을 다뤄 내고, 권능을 부릴 수 있었다면 나 조차도 사실 결과를 짐작하지 못했 겠지만, 지금 상태로는 내 옷깃 한 번 스치지 못할 거야.”
“거짓말! 그런 새빨간 거짓말을 믿어 줄 것 같으냐!”
요한이 큰 목소리를 내뱉으며 등
뒤의 날개들을 활짝- 펼쳐낸다.
“죽어라-!!”
막대한 양으로 쏟아지는 새하얀 빛이 서준에게도 쇄도한다.
그 기운의 크기는 일대를 백야 (白夜)로 만드는 수준이었다.
이어 빛을 방패 삼은 채 요한이 돌진해왔다.
째앵-
세상이 빛으로 물들고, 대지진이 라도 난 듯 대지가 들썩이고 갈라 진다.
그러나 그 중심에서 있던 서준
의 모습은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내뱉었던 말처럼 요한은 서준의 옷깃 하나 스치지 못하고 있었다.
이윽고, 서준이 가볍게 손을 뻗 었고 세상을 집어삼킬 것 같은 패 왕의 기운을 피워 내는 순간이었다.
일대의 분위기가 단숨에 암전(暗 轉), 지배당하기 시작한다.
“꿇어.”
서준이 앞으로 내뻗은 팔을 아래 로 내리긋는 순간, 요한은 전신에 만근은 되는 쇳덩이가 누르는 것 같은 압박감을 느낀다.
“큭,
이를 꽈악- 문 요한이 전신을 짓 누르는 압박감을 견뎌내고, 저항하 려 해보았지만 무의미한 행동에 불 과했다.
오히려 고통을 더 늘리기만 할 뿐이었다.
“크아악.”
마침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 아린 요한의 모습을 바라보며 서준 이 비릿한 미소를 흘린다.
“네놈이 말했던 대로 정말 신위 에 오른 존재라면 이렇게까지 압박 을 받지 않았겠지.”
내뻗고 있던 팔을 거칠게 밑으로
끌어내리자, 요한의 몸을 짓누르고 있던 압박감이 곱절에 곱절로 커진 다.
“아아악-!”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고 있는 요한을 차가운 눈으로 응시하고 있 던 서준이 마침내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한, 서주우우운!”
발악에 가까운 비명을 내지르던 요한이 다시 한 번 빛의 장막을 쏘 아내 서준의 움직임을 제지하려 했 다.
물론, 무의미한 발악에 불과했다.
서준은 퍼져나가던 빛의 장막을 가벼운 손짓으로 모두 흩어내고는 유유히 걸음을 옮긴다.
어느덧 요한의 앞에 선 서준이 단숨에 멱살을 잡아 올린다.
“꾜읍......
신음을 토하는 요한을 향해 차가 운 눈빛을 한서준이 물었다.
“말해. 이런 힘을 어떻게 빌려왔 지?”
넘치는 내력에 비해 너무나도 보 잘것없는 기술에서 서준은 지금 요 한이 보여주고 있는 강력한 힘은 본래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이라고
확신했다.
지금 요한이 다루고 있는 힘은 서준의 의념강기마저 꿰뚫어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이었다.
그저, 힘을 다루고 있는 요한의 능력이 부족한 탓에 위력이 줄어들 었을 뿐이었다.
“저, 전부 말하겠, 습니다. 살려 만……
오랜 싸움은 아니었지만 큰 격 차, 거대한 벽을 느끼기에 충분했 기 때문일까?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던 요한이 목숨을 구걸하고 있었고, 번들거리
는 두 눈에는 애처로울 정도의 간 절함이 피어나고 있었다.
“그건 이야기를 들어 보고 판단 하지.”
피식 웃은 서준이 요한을 바닥에 내려놓으려는 순간이었다.
새하얀 빛이 더욱 발광하더니 요 한의 몸에서 눈이 멀 정도의 광채 (光彩)가 뿜어져 나온다.
“크아아아-!”
하나의 빛이 된 요한이 서준을 향해 주먹을 휘두른다.
“소용없다니까.”
서준은 여태까지와 같이, 가벼운 손짓으로 날아오는 요한의 주먹을 쳐내려 했다.
그러나 쉽게 제압할 수 없었다.
일순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당황 한서준이었지만, 바로 의식을 다 잡았다.
이어, 허리를 비틀어 공격을 피 해내고 있는 서준의 눈이 휘둥그레 진다.
“이건 또 뭐야?”
의도적으로 뿜어낸 압박감, 신의 위압에서 벗어났다.
지금껏 보았던 요한이 가진 기술 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벌 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직 서준이 놀란 것은 빙산에 일각에 불과했다.
일대에 퍼져있는 묵색의 기운을 빛이 찢어발기고 들어와 서준을 향 해 쇄도해오기 시작한 것이다.
서준은 급히 호신강기를 펼쳐 다 시 한번 요한을 제압하려 했다.
‘안 돼......
오랜 시간 자신을 위기에서 벗어 나게 해준, 감각이 소리친다.
좋지 않은 느낌이 든다.
불안감을 느낀 서준이 빠르게 발 을 놀리며 자리를 벗어났고 그것이 현명한 판단이었다.
콰광-!
요한이 내지른 주먹이 대폭발을 만들고는 일대에 거대한 크레이터 를 만들어낸다.
깊게 파인 크레이터 내부의 세상 이 일그러지고 붕괴하더니 이내, 완전히 생멸(生滅)을 고했다.
압도적 파괴를 행한 존재, 그저 새하얀 빛이라고밖에 형언할 수 없 는 천사가 서준을 향해 웃어 보였
다.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 것을 보 면 감이 좋군, 인간의 신이여. 칭찬 하마.]
고막을 통통 치는 것 같이 육중 한 목소리가 머리를 아릿하게 울렸 다.
발성하지 않고 빌린 몸으로 말하 는데도 불구하고 묵직한 존재감은 여태까지의 존재와는 차원이 달랐 다.
덕분에서준은 상대의 정체를 어 렵지 않게 짐작했다.
“전신, 우리엘.”
전신, 그리고 천사들을 대표하는, 치천사를 지배하는 대군주(大郡主) 에 속한 천사.
단순한 공격이었지만, 세계를 붕 괴시키는 일격만으로도 우리엘의 강함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괜히 전신을 대표하는 존재가 아니네.’
전쟁은 붕괴와 파괴를 부르는 재 앙적인 힘.
우리엘이 현현(顯現)한 곳에는 틀림없이 시체가 산을 이루고 핏물 로 강을 이루게 될 것이었다.
이렇게 화신체를 빌려 지금 모습
을 드러낸 것만으로 피부가 아릴 정도의 전율이 느껴지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끄어어-!”
당연하지만, 이런 힘을 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요한은 육신에 가득 찬 고통 때문에 신음을 크게 흘린 다.
[이놈의 육신이 너무나도 하찮고 가여워 남은 시간조차 얼마 없구나. 기껏 내어준 신물조차 제대로 활용 하지 못하니 수거할 수밖에.]
신물 (神物).
우리엘의 말을 듣고, 의식하고
나자 요한의 몸에서 특이한 점이 감지되기 시작한다.
날개가 힘을 방출해내는 시작점 이기는 하나 지금 요한이 사용하고 있는 힘의 주체는 아니었다.
‘머리 위의 링.’
그곳에서부터 모든 힘이 시작되 고 있었다.
시선이 향하고 있는 링에서 뿜어 져 나오는 강대한 힘에 확신이 생 긴다.
‘저게 우리엘이 회수할 신물이 다.’
아직 정확한 사용 방법이나 효과
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지만, 일단 회수가 가능했고 자그마치 신물이 라 불리는 물건이었다.
지금 서준의 입장에도 상당히 탐 이 나는 물건이었다.
“꼴을 보아하니 본체가 아닌 일 종의 분신 같은데, 그런 몸으로 가 져갈 수 있겠어?”
서준이 요한의 몸을 향해 발을 놀린다.
그러자 순식간에 피어난 광명들 이 서준을 덮쳤다.
요한이 펼쳐내던 것들과는 다른, 진정한 신격에 오른 존재가 펼쳐내
는 의념강기.
정확히 말하자면, 권능에 가까운 힘들이 품어져 있었다.
물론, 서준은 아무런 준비 없이 몸을 날린 것이 아니었다.
‘권능, 투쟁성취.’
우리엘의 전투법이나 힘에 대해 서는 정확히 잘 모른다.
그러나 분신체로는 한계가 존재 할 수밖에 없었다.
투쟁성취의 힘을 완벽히 파훼해 낼 방도가 없다는 것이었다.
[정면 돌격이라니, 어찌, 나와 전
쟁이라도 벌일 생각이냐?]
대답할 수 없었다.
아니 대답해서는 안 되었다.
괜히 무공을 만들고, 이름을 붙 이고 그 초식을 읊조리며 펼치는 게 아니었다.
말에는 힘이 담겨 있었다.
계속 반복되고 되뇌다 보면 어느 새, 그를 실천하고 종국에는 이를 현실로 만들어낼 만한 강력한 힘 말이다.
하물며 신이 내뱉는 신언(神言)
의 힘은 구태여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곳이 전쟁터가 되겠지.’
분신체라고는 하나 이곳이 전쟁 터가 된다면, 지금의 육신으로는 우리엘을 이길 방도가 없었다.
그렇기에 우리엘이 ‘전쟁’이란 단 어를 의도한 것이었다.
당연하지만, 서준이 이런 얄팍한 잔꾀에 당해줄 리 없었다.
“아니, 이건 투쟁이야.”
우리엘의 꾀를 간파하고 역이용 한서준의 신형은 어느새 요한의 앞에 당도해 있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