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권 18화
168화
물론, 요한은 가만히 앉아 교황 청의 몰락을 지켜만 보고 있을 생 각은 없었다.
“일단 손실은 최소한으로 해야겠 어. 목소리가 잠잠해질 때까지 한 동안은 숨을 죽이고 있어야겠는데.”
이런 요한의 결정에 회의장에 앉 아 있는 스물에 달하는 인물 절반 이상이 눈을 찌푸렸다.
“언제까지 과업을 미뤄야 하는
겁니까?”
“차라리 그를 암살하는 게 어떻 겠습니까?”
“교황청의 전력을 쏟아야 할 때 라고 생각합니다. 교황님께서 직접 나서면 승산은 충분합니다.”
쏟아지는 간부들의 아우성에 요 한이 미간을 좁히며 소리쳤다.
“헛소리! 그 위대한 천사조차 패 배했다. 엘리시움의 전폭적인 지원 이 있는 것이 아닌 이상, 암살은 꿈에도 못 꿀 소리지. 그대들은 우 리가 힘들게 일군 교황청이 한순간 에 사라지는 걸 바라는가?”
“어차피 이대로 가면 교황청의 몰락은 기정사실이 된 게 아닙니 까?”
요한이 최대한 이성적으로 말했 지만, 강경파라 말하는 이들은 여 전히 목소리를 드높이며 불만을 표 출하고 있었다.
‘그의 무서움도 모르고, 멍청한 것들.’
요한은 알고 있었다.
기존에 세계 각성자 협회를 주무 르고 있던 자들이 얼마나 지독하고, 영악한 인물이었는지 말이다.
그런 세계 각성자 협회를 단 하
루 만에 와해시킨 인물이 바로 한서준이었다.
지금의 요한이라고 해도 불가능 한 일, 심지어 한서준은 그날보다 더욱 강해진 힘과 권력을 지닌 상 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경파는 싸 움을 주장하고 있었다.
참으로 우둔하고 멍청하다고 생 각한 요한이었다.
‘원래 수준의 차이가 아득하면 그 차이를 보지 못하는 법이지.’
그리고 지금 간부들의 꼴이 딱 그러했다.
하늘과 땅의 격차를 알지 못하 고, 제 손으로 무덤 파기를 재촉하 고 있었다.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헛소리하 는 꼴을 보고 있자니 하루살이와 다를 바가 없어 골이 아파왔다.
당연하지만, 요한은 그런 무식한 일에 동참할 생각이 없었다.
“일단은, 엘리시움의 협조가 우 선이네. 조금은 진정들 하시게나.’’
요한이 최대한 어르고 달랬지만, 그동안 쌓여온 간부의 푸념을 모두 억압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
“대체 언제까지 생각만 해야 합
니까?”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가만히 있기만 한다면, 저는 더는 교황청에 몸담고 있을 수 없습니다.”
회의장이 소란스러워질수록, 요 한은 지끈거리는 두통을 느낀다.
“쓸모없고 멍청한 것들, 그냥 이 자리에서 그냥 다 죽여 버릴까?”
그편이 훨씬 더 현명한 판단일 수도 있었다.
본래 내부의 적은 외부의 적보다 무서운 법이다.
요한이 저도 모르게 흘려버린 진 심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던 이들이 동공이 휘둥그레진다.
“지금 뭐라고……?”
“말이 샜군. 뭐 어때, 어차피 죽 고 싶어 환장한 그대들, 괜히 시간 끌 거 없이 이 자리에서 내 손으로 죽는 게 서로 좋을 거 같아서 해본 말이네.”
생각을 정리한 요한이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려던 찰나였다.
쨍그랑-!
따사한 일광이 쏟아지던 교황청 의 창문이 별안간 굉음과 함께 박
살 나더니, 유리 조각이 쏟아져 내 리기 시작했다.
놀란 간부들의 눈이 휘둥그레지 는 순간이었다.
쿠구구궁……. 콰광!
건물이 무너지는 듯한 굉음이 울 려 퍼졌고, 천장 위에서부터 거대 한 기척 하나가 무겁게 내려섰다.
“어디 숨어 있었나 했더니, 이런 곳에 있었군.”
스산한 목소리가 회의장 내부에 울려 퍼짐과 동시에, 예리한 극강 기가 교황청 간부들의 목을 썩둑
잘라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습격, 아니 알 고 있다고 할지라도 교황청에서 극 강기를 막아낼 수 있는 인물은 없 었을 것이다.
허공에 피분수가 잔혹하게 흩뿌 려지는 순간, 간부들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린다.
“허억, 허어억!”
“도, 도망쳐!”
실로 신속하고 현명한 판단이었지만, 애석하게도 그 상대가 좋지 못했다.
“감히 누구한테서 도망치려 해.”
간부들의 도주로에서도 붉은 극 강기가 둘린 검이 휘둘러졌다.
서걱-!
일격에 열이 넘는 머리가 땅으로 굴러 죽음을 맞이했다.
탁상공론이나 펼치는 도중에 받 아들일 수 없는 거대한 공포가 회 의장을 가득 채운다.
절대적 힘 앞에 항거할 수 없는 공포가 전신을 옭아맨다.
정신을 차리자, 소란스러웠던 것 이 차라리 평화로웠다고 느껴질 정 도로 끔찍한 피로 물든 회의장이 시선이 들어왔다.
죽음을 가까이하고 있던 각성자 들이라 할지라도 이런 광경을 보게 된다면 정신이 견딜 수 없을 것이 다.
하물며, 상대의 강함을 알지 못 하고 무모했던 교황청의 간부들은 구태여 말할 필요도 없었다.
턱 끝까지 차오른 공포에 미동조 차 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우후죽순 쓰러지는 간부들의 모 습에 요한이 아랫입술을 질끈- 깨 문다.
‘ 빌어먹을……
요한은 다른 간부와 달리 탁상공
론만을 벌여온 것이 아니었다.
포스 시스템의 선택을 받아 각성 자가 되었을 뿐더러, 천사의 은총 까지 받은 몸이었으니 말이다.
웬만한 S등급 각성자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아니 그를 능가하는 강자라고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시체로 산을 만들고 나 서야 상황을 파악한 다른 이와 다 르게 요한은 레잉가가 주먹을 휘두 르는 순간부터 알고 있었다.
‘도망쳐야 한다.’
자그마치 셋.
이런 괴물들이 어째서, 갑자기
찾아왔는지 고민을 할 필요도 없었다.
‘한서준이란 인간, 상상 이상으로 난폭하고 위험한 인물이었군.’
아니, 지금 중요한 것은 한서준 의 성정 따위가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현재로써는 이 강자들을 이길 방도가 없다는 것이 었다.
그렇다면 지금 내릴 수 있는 선 택지는 하나뿐이었다.
‘도망쳐야……
여기까지 힘들게 달려온 교황청 이 몰락하겠지만, 상관없었다.
‘교황청은 다시 한번 세워 내면 그만이다.’
그러나 목숨은 한 번 잃으면 끝 이었다.
요한은 곧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 났다.
이 강자들을 상대할 방도는 없었지만, 도주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디멘션 크룩스.’
한순간 공간을 찢고 넘어갈 수 있는 천사들에게 하사받은 은총을 발현시킨다.
일종의 공간 도약이라 볼 수 있
는 스킬이었기에 제아무리 강한 자 라고 할지라도 보통 방법으로는 뒤 를 쫓아올 방도가 없었다.
그야말로 도망치기 위한 능력.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최고의 카 드라는 말이었다.
실제로도 요한을 도륙내기 위해 달려오던 광무혈마의 극강기가 애 꿎은 허공만을 갈랐다.
“두 번 다시 보지 말자고.”
갈라진 공간 사이로 상체만을 내 민 요한이 피식- 미소를 흘리며 자 리를 벗어난다.
단숨에 교황청을 벗어나 도시의
바깥으로 이동한 요한은 머리를 분 주히 굴렸다.
‘숨을 곳, 들키지 않을 수 있는 곳이 필요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교황 청이 무너졌다.
더불어, 요한의 권력의 상징이었 던 교황청이 멸망하고 있는 지금, 그런 자신을 받아주고 환영하고 숨 겨줄 곳이 존재할 리가 없지 않은 가?
하지만 여기서 삶을 포기할 생각 이었다면 자리를 박차고 떠나오지 도 않았을 것이다.
생각이 닿자 머릿속을 번뜩- 스 쳐 지나가는 곳이 존재했다.
‘빛의 성소.’
연합, 트리니티가 만들어둔 비밀 통로이자 천사에게 산 제물들과 황 금을 바칠 때 사용하는 제단.
교황청의 빛의 성소를 알고 있는 사람도 지구에선 요한 하나뿐이었다.
본래라면 천사의 허락 없이는 입 장해선 안 되는 곳이었지만, 그런 것을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우선은 목숨을 부지한다.’
무단 출입에 벌을 받게 될 수는 있다고 생각한 요한이었지만, 적어 도 목숨을 잃는 일은 없을 거라고 단언했다.
요한은 곧장 침을 한 번 삼킨 후 발걸음을 옮겼다.
바람이 자신을 감싸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말이다.
레잉가, 광무혈마.
단숨에 교황청을 쑥대밭으로 만 든 그들은 홀로 자리를 벗어난 요 한의 행방을 뒤쫓으려 했다.
하지만 문제는 요한이 어디로 갔 을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는 점이 었다.
능력을 써서 도주했기에 흔적을 쫓을 수도 없었다.
“분명, 저 녀석이 교주님께서 말 씀하신 교황이란 작자가 확실했는 데……
광무혈마의 미간에 내 천이I) 자 가 자리 잡는다.
가능하다면 생포를 해오라는 서준의 말이 있었다.
때문에, 난입했을 때 단칼에 목 을 베어내지 않았었다.
문제는 놈의 도주 능력이 생각보 다 뛰어났다는 점이었다.
‘제갈세가 놈들도 그런 주술을 단숨에 펼치지는 못했는데……
그러나 이것들은 핑계에 불과한 것이었다.
처음부터 마음먹고 교황을 노렸 다면 분명 생포를 할 수 있었을 것 이다.
분명 방심이었고 실수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미간을 찌푸린 채로 광무혈마가 놈이 찢어낸 공간에 남아있는 기 (氣)의 흔적을 추적했다.
주술의 시작점과 끝에는 흔적이 옅게나마 남게 되는 걸 이용하는 것이다.
감으로 그 흔적을 추적하다 보면 결국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 는 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나도 오래 걸 린다는 것이 흠이었다.
“그렇게 해서 대체 언제 찾아낼
생각이지?”
레잉가가 답답하다는 듯 광무혈 마의 뒤에서서 불만을 토했다.
“개처럼 생겨 가지고 일부러 개 같이 말하는 건가?”
“너무 무식하게 찾으려 해서 답 답해서 한 말이다.”
“너는 뭐 달리 방도가 있어서 그 딴 말을 지껄이는 거냐?!”
광무혈마가 언성을 높이는 순간, 하늘에서 고운 은발을 흩날리며 이 세디아가 우아하게 착지했다.
그녀의 등장에 레잉가의 입가가 호선을 그린다.
“위치를 알아냈겠지?”
“바람은 어디에든 존재하는 법이 다.”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은 이세 디아는 뒤를 바라보며 입을 연다.
“따라와.”
광무혈마의 입장에서는 다소 이 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지금 은 서준의 명령을 완수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렇기에 별다른 질문을 던지지 않고 이세디아의 뒤를 쫓았다.
이세디아는 빠른 속도로 질주를
해 도시의 최외곽 지대로 향했다.
계속되는 이동에 광무혈마의 눈 에 의심이 차오르기 시작할 때였다.
“교황은 저 안에 있어.”
황폐한 황무지의 바닥을 가리키 고 있는, 이세디아의 눈동자가 흔 들린다.
“내가 진입해서 제압할 테니, 너 희들은 입구를 막고 있어.”
이세디아의 동요를 눈치채지 못 한 광무혈마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들며, 극강기를 뿜어내려 던 찰나였다.
황급히 발을 놀린 이세디아가 광
무혈마가 앞길을 가로막으며 고개 를 내젓는다.
“안 돼!”
“......뭐?”
“이제 교황은 그렇게 쉽게 볼 상 대가 아니게 됐어.”
“말도 안 되는 소리, 본좌는 현 경에 이른 고수, 광무혈마다.”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어 보 인, 광무혈마가 이세디아를 지나쳐 지나가려는 순간이었다.
쌔액-!
바닥에서부터 거대한 기(氣)의
폭풍이 치솟아 오른다.
바로 앞에서 일어난 거대한 폭발 에 모두의 눈이 커다랗게 변한다.
이어, 바닥에서부터 새하얀 백색 의 날개를 가진 존재가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 이건......
난생 처음 보는, 기이한 행색이 었지만, 얼굴은 일전에 회의장에서 보았던 교황과 똑 닮아 있었다.
그러나 일전에 보았던 같은 교황 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분 명,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높게
쳐줘봐야 조화경에 머물고 있던 요 한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압박감을 내뿜고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경지를 헤아릴 수도 없는 강자,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된 교황, 요 한의 모습과 위용에 광무혈마는 저 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