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권 17화
167화
턱 끝까지 차오른 공포에 시그나 투스가 황급히 말을 이었다.
“말하겠네. 알고 있는 것 전부! 우리 교황청이 천사와 비밀리에 교 류하고 있던 것은 알고 있었나? 자 세하게 듣고 싶지 않은가? 응? 그, 그래. 교황청이 왜 자네 가족을 위 협하려 했는지, 그것도 궁금하지 않은가? 뭐든 말하겠네. 제발 살려 만 주시게나……
쏟아진 말들에서준의 눈매가 가
늘어진다.
“그 말들 전부 책임질 수 있겠 어?”
“이래 봬도 나는 추기경일세, 교 황청의 중요한 업무들은 전부 나를 거처야 통과된다는 말이네. 애초에 교황청이 저지른 일은 이게 끝이 아 니야. 생각보다 악랄한 집단이지.”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있던, 서준의 고개가 주억여진다.
“이 정도면 되겠죠?”
시그나투스를 향해 말을 하는 것 이 아닌, 천장 너머를 향한 말이었다.
기이한 모습이었지만, 뒤이어 밀 실 내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목소리 가 들려온다.
-됐습니다. 정황부터 해서 증언 까지 전부 확보했으니, 일가족 피 습 사건에 대한 책임을 확실히 물 을 수 있겠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시그나투 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 이건……
므네모시아의 염 반지가 존재하 는 만큼, 서준은 시그나투스가 말 을 해주지 않더라도 교황청, 시그 나투스에 관한 정보를 대다수 읽어
낸 상태였다.
그러나 므네모시아의 염 반지는 어디까지나 개인 혼자서만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세간에 교황청의 만행 을 알리는 용도로는 사용할 수 없 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시그나투스가 뱉은 증언은 충분히 교황청을 압박 할 수 있는 자료가 될 수 있었다.
“추기경 정도 되는 자의 증언이 라면 효과는 확실하겠지.”
서준에게 속은 꼴이 되었지만, 분노가 차오르지는 않는다.
오히려 안도감이 차올랐다.
“그, 그럼 나는 그냥 보내주 는……?”
희망이 차오른 눈동자가 된 시그 나투스를 바라보던 서준은 피식-미소를 흘리며 어깨를 으쓱인다.
“그럴 리가.”
서준은 가족들과 관련된 일에는 절대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그리고 지금 시그나투스는 일가 를 위협했다.
용서할 수 없었다.
활로(活路)가 닫히고 희망이 꺼
그러나 여기서 이리 허무하게 죽 음을 맞이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내 고향 시칠리아에 타향살 이하는 아들을 걱정하는 부모님이 계시네. 하루도 나를 걱정하지 않은 적이 없는 분들이시지. 나 하나 죽 는 건 상관없네. 하지만, 남겨진 부 모님의 슬픔을 생각하면 나는……
교황청이 가족을 노린 것은 모두 한서준이 그것에 상당히 민감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벌인 일이었다.
그렇기에 시그나투스는 가족을 이 용하여 감정적 호소를 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큰 실수였다.
오히려 서준의 미간이 깊게 찌푸 려진다.
“가족의 소중함을 알면서 이딴 짓을 벌여?”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타인은 어 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인 간.
서준이 가장 혐오하는 부류였다.
“내, 내가 눈이 멀었었네. 제발, 제발 살려주시게. 슬퍼할 부모를 생 각하면 마음이 도통 편치가 않네.”
제 무덤을 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 채, 시그나투스는 계속 호소 했다.
시그나투스를 응시하고 있는 서준의 눈동자가 어느 때보다도 차갑 게 가라앉는다.
“핑계야. 다른 가족의 평화를 깨 려 했다면, 네 평화도 깨질 수 있 다는 것을 알아야지.”
서준은 냉정하게 시그나투스를 쳐냈다.
솔직히 말하자면, 동정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용서해줄 수 는 없었다.
무슨 말을 하든, 서준의 선택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것을 느낀 시그나투스의 표정 이 더욱 사색이 되어간다.
자연스레 동정에 호소하던 눈동 자에는 분노가 치솟기 시작했다.
“나를 죽인다면 위대한 종족, 천 사들께서 네놈을 끝까지 추적하고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마음대로 하라 해.”
“저주! 평생 저주할지어다! 한서준 네놈을 비롯한 역겨운 일가까 지! 평생을 행복하지 못하도록! 어 느 순간에도 불행이 함께하도록! 컥, 커억.”
시그나투스의 목을 한 손으로 휘 어잡아 들어 올린 서준의 눈동자에 엄청난 분노가 치솟는다.
“절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두 번이나 넘어섰네.”
가족을 습격하고 납치하려 했던 것만으로도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시그나투스는 지금 실성 하여 저주까지 퍼붓고 있었다.
“한순간 연민이라도 들었던 내 잘못이다. 이젠 정말 널 편하게 보 내줄 수는 없겠어.”
원래 증언을 확보한 후에는 홉성
대법으로 단전을 파괴하고 미치광 이로 만들기만 했을 것이었다.
이제는 그러한 안식조차 주지 않 을 생각이었다.
“뭐‘?”
서준의 눈동자에 차오르는 분노 에 시그나투스가 기겁한 목소리로 되묻는다.
“걱정하지 마, 미치도록 고통스 럽겠지만 절대 죽을 일은 없을 거 야.”
죽음이 존재치 않는다는 말.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처럼 안도하는 자도 있겠으나,
그건 모르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죽고 싶어도 죽 을 수 없게 될 거라는 말이기 때문 이었다.
“대, 대체 날 어떻게 할 생각인 거냐?”
불행 중 다행히도 시그나투스의 궁금증은 오래가지 않았다.
서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흐 른다.
“직접 겪어보면 알 거야.”
이윽고, 서준의 손에서 분근착골 이 펼쳐져 시그나투스의 몸이 파르
르- 떨리고 눈동자가 뒤집히기 시 작한다.
“끄아아악-!”
고통에 몸부림치는 시그나투스의 목을 놓아준 서준이 등을 돌린다.
“평생 그 고통 속에서 살면서, 속죄하고 반성하도록 해.”
마지막 말을 남긴 서준은 문밖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커헉—!”
고통에 몸부림을 치는 시그나투 스가 간절한 표정이 되어 바닥을 기어서 이동하고는 서준의 발끝을 잡고 애원한다.
“제, 제발, 차라리 죽여……
죽음을 갈구하고 있었지만 아쉽 게도 서준은 그럴 마음이 전혀 없 었다.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선을 넘은 죄.
마음 같아서는 사지를 찢어버렸 을 것이다.
그러나 이성을 잃어서는 안 되었다.
‘이들과 같은 사람이 될 수는 없 지.’
하지만 그를 대신하여 죽는 것이
나을 정도로 끔찍한 고통을 선사해 줄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가족’과 관련된 죄는 용서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말했잖아, 절대 죽을 일은 없을 거라고.”
고통에 붉게 충혈된 시그나투스 의 눈동자에 후회가 폭풍처럼 몰아 친다.
욕심에 눈이 멀어 한서준과 그의 가족을 위협했던 것은 자신이었다.
‘그때 한 번만 더 생각하고, 침착 하게 행동을 했었다면……
후회가 밀려왔지만, 하지만 이미
지나간 과거일 뿐이다.
쿵-!
문이 닫혔고, 시그나투스는 지옥 에 던져진 것 같은 끔찍한 고통에 홀로 남았다.
‘용서…… 잡혀 온 뒤에라도 계 속 용서를 빌었다면……
어쩌면 이런 상황까지 오지 않았 을지도 모른다.
결국 무수히 많은 선택의 실수가 시그나투스를 이 끔찍한 지옥의 고 통 속에 밀어 넣은 것이었다.
“끄윽, 끄으윽.”
시그나투스는 후회와 미련과 함께 고통이 가득 찬 비명을 연신 쏟 아냈다.
시그나투스를 방치해놓은 밀실을 빠져나온 서준은 생각에 잠긴다.
‘일단 교황청은……
정황 증거와 시그나투스, 추기경 의 증언들이 확보된 만큼 머지않아
서 무너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서준은 그렇게까지 합당 한 절차들을 밟아줄 생각이 없었다.
‘먼저 공격을 해온 것은 저쪽이 다.’
이렇게 당하고도 가만히 참고 있 는 것은 바보 같은 행동이었다.
그렇다고 서준 본인이 직접 나설 생각은 없었다.
‘이런 자잘한 단체 하나 무너뜨 리자고 내가 직접 움직일 필요는 없지.’
레잉가, 이세디아, 광무혈마 정도 면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그마치 반신에 올라있는 자가 하나, 현경에 오른 강자가 둘,
현재 지구상에서는 이만한 전력 을 막아낼 수 있을 집단이 없다고 말할 수 있었다.
교황청이 대격변의 초기부터 천 사들의 지원을 받아가며 큰 세력을 구축한 조직이라고 할지라도 감당 할 수 있을 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셋을 다 보낼 필요가 있나 싶다만……
확실하게 처리를 하기 위해서는 이편이 좋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이런 상황을 대비
하기 위하여 연합을 만들고 인재들을 모아놓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확실하게 해야지.’
서준은 여유롭게 걸음을 옮기면 서 스마트폰을 품 안에서 꺼내 연 락을 걸었다.
교황청.
그들의 입장에서 대격변의 시대 는 정말 이로운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설로만 전해져 왔던 천사들이 모습을 드러냈으니 어찌 좋지 않을 수 있겠는가.
천사란 종족 자체가 모습을 드러 냈을 때 교황청은 더 견고해지고 강해졌다.
그렇기에 그들이 바라는 것, 이 상은 하나뿐이었다.
천사가 주도하는 질서 아래 절대 지배적 세상을 만들어내는 것.
수많은 교인도 교황청의 생각에 동의했다.
교황청은 삽시간에 세력을 불려 갔고, 세계 최대의 종교 집단이 되 어 밝은 미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거대한 걸림돌이 나 타났다.
별안간 나타난 한서준이 천사를 적으로 간주하고 인간만의 연합을 만들려고 한 것이다.
천사를 지지하는 교황청의 입장 에서는 당연히 반가울 리가 없었다.
“시그나투스 이 멍청한 놈, 정예 십자군들을 이끌고 풋내기 각성자 조차 잡아 오지 못하다니.”
교황청의 수장인 요한 페그나노
프 3세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혀를 찼다.
사실, 요한은 그리 신실한 종교 인이 아니었다.
진정한 믿음도. 헌신도 없었을뿐 더러 개인의 욕심을 채우기 바빴으 니 말이다.
그러나 이제 믿음 따위는 상관이 없었다.
대격변의 시대.
그 속에서 요한의 세 치 혀는 매 우 뛰어난 성능을 발휘했다.
가장 먼저 천사에게 접촉하여 교 황이란 직위를 얻어내게 해주었을
정도로 말이다.
이어, 천사들이 내려준 은총까지 더해져 강한 힘까지 얻게 되었다.
교황이라는 높은 직위, 포스 시 스템과 더불어 천사들이 내려준 은 총까지.
완벽하게 자기 세상이 된 것이었다.
무서울 것은 없었고 모든 것이 막무가내 였다.
실로 편안한 인생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었다.
요한은 더 많은 권력과 힘을 가 지고 군림하기를 바랐다.
천사를 지지한다는 명목하에 많 은 순진하고 신실한 교인을 끌어모 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생각했던 대로 계획은 완벽하게 진행되었고, 원하는 권력과 힘을 쥘 수 있는 순간이 머지않은 듯했다.
그러나 말했듯, 한서준이라는 걸 림돌이 등장하며 모든 게 틀어지게 되었다.
절대적인 존재인 그가 나타나서 는 계획을 단숨에 물거품으로 만들 어 버렸다.
몇몇 강경파는 한서준과 리벨리 온을 두려워하지 말고 나가 개혁을 이루자고 외치고 있었지만, 요한은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런 앞뒤 없는 돌진은 죽음을 앞당길 뿐이다.’
그렇기에 한서준 본인이 아닌, 그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족을 목 표로 삼았고 오랜 기간에 걸쳐 확 실하게 무대를 만들어냈다.
리벨리온에 밀려 교황청이 수세 에 몰리는 와중에도 신중하게 준비 를 해왔다.
그런데 그 계획이 실패했다고 말
아니, 단순히 실패한 것도 아니 었다.
추기경인 시그나투스가 놈들에게 사로잡힌 것으로 정보와 명분을 제 공해주게 되는 꼴이 되어버렸다.
최대한 시치미를 떼고 부정하겠 지만, 세간에서 쏟아지는 의심의 눈총을 피할 수는 없게 되었다.
이는 곧, 교황청의 몰락의 시작 이란 말이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