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권 15화
165화
한석훈과 양정화 그리고 서연까 지.
S급 각성자에 도달했다는 것은 단순히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여러모로 짊어져야 할 책임이 생 기고 해결하기 어려운 일들도 많아 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나름의 즐거 움은 있었다.
주변인들로부터 쏟아지는 존경의
시선, 레벨 업을 하고 무공을 익혀 강해지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따금 위험한 일이 생명을 위협 하기도 했으나, 무언가를 이루어냈 다는 성취감과 사람들이 건네는 감 사의 말과 함께 받는 선망 어린 시 선은 그 위험마저 감수하게 만드는 기쁜 일이었다.
그래서 서연을 비롯한서준의 가 족은 아침마다 인근 고등급의 게이 트나 처치가 곤란한 몬스터를 사냥 하는 것을 즐겼다.
그리고 이번 수련 도중, 협회 쪽 에서 온 연락도 그에 속했다.
‘늪지대 트롤이 서식하는 B급 게 이트라.’
세 곳 모두 등급 자체는 그리 높 지 않았지만, 늪지대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공략하기가 힘든 곳인 만큼 직접 나서는 것이 옳다는 판 단을 내렸고, 갈라져 행동하기 시 작했다.
가족끼리 잠시 떨어진 셈이었으 나 모두 S급 각성자, 강자에 도달 한 만큼 괜한 걱정은 하지 않는다.
그저 여태껏 그래 왔듯이 공략 방법에 대해서 고민할 뿐, 덤덤히 협회 쪽에서 건네준 위치를 향해
걸음을 옮겨갔다.
그렇게 목표 위치에 도착한 서연 의 고개가 갸우뚱 젖혀진다.
“이게 끝인가요?”
“……네, 급한 일인 만큼 약식으로 입장 절차를 진행했습니다.”
“그래요?”
“그, 그렇습니다.”
말을 더듬으며, 식은땀을 비 오 듯이 흘리고 있는 협회 직원의 모 습에서연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뭔가 이상해.’
본래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
은 법이었다.
고등급의 각성자라는 이유로 건 성으로 입장 절차를 밟다 보면 결 국 체계가 무너지게 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강석호는 제아무리 S급 각성자라고 할지라도, 특별한 상황 이 아닌 이상, 다른 각성자처럼 까 다로운 입장 절차를 거치도록 했다.
실제로도 서연은 S급 각성자에 도달한 이후로도 계속해서 그런 까 다로운 절차들을 거쳐 왔었다.
그런데 지금, 전과 달리 그 까다 로운 입장 절차를 생략하고는 무엇 보다도 눈앞의 협회 직원이 초조함
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무언가 있어.’
서연은 조심스레 내공을 실어서 눈앞의 협회 직원에게 전음을 날려 보낸다.
‘동하 씨.’
가슴 앞에 달린 명찰로 직원의 이름을 확인한 서연이 조심스레 직 원의 이름을 부르자 동하의 두 눈 이 휘둥그레져서 주변을 살핀다.
‘제가 말하는 거 맞아요. 주변을 살피면 괜히 오해받을 수도 있으니 잠시.’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믿을 수
없는 일에, 서연을 응시하고 있는 동하의 는동자가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린다.
‘놀란 기색 취하지 말고 침착하게 행동해요. 몇 가지만 물어볼 테 니 대답 대신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내젓기만 해주세요.’
여전히 두 눈은 놀람을 숨기지 못했지만, 협회 직원 또한 한 명의 각성자.
최대한 침착하게 상황을 받아들 이며, 표정을 숨기려고 노력하기 시작한다.
그 모습에 홉족한 미소를 지은
서연이 다시 한번 전음을 날린다.
‘누군가의 협박 때문에 강제된 상황인가요?’
두 눈을 마주하고 있던 동하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인다.
확신을 가지고 나자 주변 건물 옥상에서 자그마한 기의 파장들이 느껴진다.
숫자가 그리 많지 않은 만큼 당 장 처리하려면 할 수 있을 것이지 만, 섣부른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행동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었다.
만약 협회 직원, 동하 씨 혼자서
위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지인들과 가족이 연관되어 있다면?
그들을 모두 구해낼 수 있을 거 라는 장담을 할 수 없다.
책임지지 못할 섣부른 행동은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말이었다.
우선은 침착하게 상황을 정리해 나가고 놈들의 정확한 목적을 알아 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들이 동하 씨를 이용해 나를 노리고 있구요?’
뒤이어진 질문에도 동하는 고개 를 주억이고 있었다.
‘설마, 부모님도 같은 상황인가 요?’
당연하지만, 절대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던진 질문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나도 냉혹했 다.
다시 한번 동하가 위아래로 고개 를 주억인다.
서연이 질끈-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감히......!’
누구나 그렇듯 서연에게도 가족 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였
다.
그런데 정체를 알 수 없는 불한 당들이 감히 그런 부모를, 가족을 건드리려 하고 있었다.
속에서 뜨거운 것이 왈칵- 솟아 오르더니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치솟으려 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일수록 이성 을 잃어서는 안 되었다.
가슴은 불같이 뜨겁게 치솟고 있 었지만, 머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차갑게 유지했다.
‘S급 각성자가 있나요?’
이번에도 동하의 고개가 위아래
로 흔들렸다.
서연은 떨리는 목소리를 억지로 가다듬으며 다시 한 번 질문을 던 진다.
‘부모님 쪽에도?’
그리고 처음으로 동하가 고개를 내젓는 모습에서연이 속으로 안도 의 한숨을 삼켰다.
‘다행이다.’
양친 또한 S급 각성자이자 조화 경에 오른 고수들이었다.
제아무리 기습을 당한다고 할지 라도 S급 각성자가 존재치 않는다 면 문제 될 것이 없을 것이다.
물론, 만에 하나의 상황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만큼 완전히 마음을 놓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일단 이쪽을 확실하게 정리한 후 엄마 아빠가 있는 곳으로 가야 겠어.’
머릿속으로 지금 해야 할 일에 대한 계획을 세운 서연이 발을 앞 으로 내디디며 입을 열었다.
“절차 끝나셨으면 안에 들어가 볼게요.”
“최, 최대한 빠르게 협회 쪽에 지원을 넣어 놓겠습니다.”
동하의 말의 저의를 읽어낸 서연
은 피식- 미소를 홀린다.
“여기는 도움 필요 없으니 부모 님이 계신 곳에 지원을 보내 주시 겠어요?”
“상당히 위험한 곳인데 정말 지 원이 없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문제없어요.”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한 서연의 모습에 동하가 마지못해 고개를 주 억인다.
“……알겠습니다.”
협회 직원의 어깨를 두드려 준 후, 게이트 내부로 발걸음을 옮기 자, 기(氣)의 흐름이 뒤엉키고, 시
야가 뒤틀린다.
본래라면 이어 눈동자에 들어와 야 할 것은 휑한 늪지대였겠지만, 지금 서연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새하얀 백색의 의복을 입은 인영들 이었다.
자그마치 여섯에 달하는 백색의 의복을 입은 이들.
그들 사이로 상당히 낯익은 사내 의 얼굴이 보인다.
“십자군 소속의 시그나투스?”
“이렇게 실물로 뵙는 건 처음이 군요. 반갑습니다, 한서연 각성자 님.”
교황청, 천사를 전적으로 지지하 는 단체.
천사들을 열렬히 지지하는 곳인 만큼 당연하지만, 지금 세계 각성 자 협회, 아니 리벨리온과 계속 다 툼을 벌이고 있었다.
이렇게 교황청 소속의 추기경, 시그나투스를 마주하고 나자 어째 서 협회 직원이 그리 겁을 먹고 있 었는지, 이런 식으로 습격을 해왔 는지까지 모든 퍼즐이 맞춰져 서연 의 미간이 깊게 파였다.
“리벨리온의 본거지인 한국에서 이런 일을 벌이고도 괜찮을 것 같
나요?”
“그러니까, 이렇게 몰래 납치하 러 온 거 아니겠습니까?”
비릿한 미소를 홀린 백색의 의복 을 입은 사내들이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오더니 서연을 붙잡기 위해 손 을 뻗는다.
그 순간, 일대에 매화꽃 향기가 퍼지더니 서연의 신형이 흐릿해지 고 사내들의 손을 우아하게 흘려낸 다.
“ 어딜......!”
고함을 내지른 사내가 몸을 트는 사이, 단숨에 발을 놀려 포위망을
비집고 나온 서연이 거리를 벌렸다.
“어떻게?!”
신묘한 서연의 움직임에 놀란 사 내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러나 지휘관인 시그나투스는 큰 동요를 보이지 않는다.
“그만. 십자군의 명예에 누가 되 지 않도록 침착하게 행동하십시오. S급 각성자이긴 하나, 아직 경험이 부족한 풋내기에 불과합니다.”
괜한 자신감이 아니었다.
십자군은 최소 B급에서 A급에 달하는 각성자들로 구성된 단체 최 고의 무력 집단이었다.
한서연이 엄청난 성장세를 보이 기는 하나, 각성자로서 활동 기간 이 적은 탓에 실전 경험이 한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대격변의 시대 초기부터 경험을 쌓아온 십자군의 협공을 당해낼 수 있을 리가 없다는 말이다.
“입구를 봉쇄하십시오. 그리고 그 상태로 천천히 압박하는 겁니 다.”
시그나투스의 명령에 따라 여섯 명의 사내가 서연의 주변으로 퍼져 나가 포위망을 구축해나간다.
그러나 서연의 표정에는 한 치의
당황도 존재치 않았다.
“계획은 그럴싸하긴 한데……
시그나투스의 생각대로 서연은 다소 경험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천무지체라고 불릴 정도 로 뛰어난 재능은 서연의 부족한 경험들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서연의 눈동자가 집단의 움직임 속에 드러나는 빈틈을 속속히 잡아 낸다.
“너무 허술하잖아.”
피식- 미소를 흘린 서연이 다시 한번 발을 앞으로 내딛는다.
한 발, 세 발, 이윽고 다섯 번째 발걸음이 서연의 발걸음이 땅에 닿 는 순간이었다.
전과 같은 매화향이 퍼져나가지 는 않았지만, 일대에 바람이 몰아 치기 시작하며 방금까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던 서연의 신형이 자 취를 감춘다.
콰직-!
무언가 부서지고 으깨지는 소리 가 터져 나온 곳으로 고개를 돌리 자, 십자군 소속의 각성자의 신형 이 허공을 노닐고 있었다.
“일단 하나.”
분명, 목소리는 들려왔지만, 고개 를 돌린 곳에서연의 신형은 보이 지 않았다.
“이게 무슨……
예상을 아득히 넘어서고 있는 서 연의 몸놀림에 십자군을 비롯한 시 그나투스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 다.
그러나 절망은 시작에 불과했다.
“끄아악-!”
계속해서 주변에 울리는 각성자 들의 비명에 시그나투스는 흔들리 는 눈동자를 잡지 못한 채 당황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 있어 하던 집단의 일원들이 우후죽순 쓰러져나가고 있는데 자 신은 적의 움직임조차 읽어내지 못 하고 있었다.
“말, 말도 안 돼.”
각성자가 된 이후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었던 무력감과 거대한 공 포가 시그나투스의 전신을 옭아매 었다.
귀갓길.
우르누이와의 대화를 끝마친 서준이 속으로 웃음을 삼킨다.
‘이거, 너무 쉽게 풀리는 거 아 냐?’
정복왕의 수투가 가진 뛰어난 성 능 덕분인지, 아니면 설명에 적혀 있는 위대한 업적 덕분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 금 성장을 한, 정복왕의 수투가 드 워프들에게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 다는 것 정도였다.
‘그저 성장한 수투를 보여주기만 하면 자기들이 아주 쉽게 설득을 도와주겠다니.’
한 차원, 종족을 규합하는 데 단 순히 무구 하나를 보여주면 된다는 것은 솔직히 말하자면,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였다.
그런데 따지고 보자면 못 믿을 이야기도 아니었다.
‘우르누이가 굳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지.’
아니, 애초에 이렇게 고민할 문 제도 아니었다.
‘어차피 직접 불카누스로 가 드
워프의 왕과 원로들을 만나려 했었 으니까.’
그저 그 시기가 조금 앞당겨졌을 뿐이다.
물론,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계속해서 들려오는 통화 안내음 에서준의 고개가 젖혀진다.
“다들 어딜 간 거지?”
불카누스에서 얼마나 시간을 보 내야 할지 확언할 수 없는 만큼, 가족에게 그 소식을 전하려 했었다.
그러나 아무도 연락이 닿지 않고 있었다.
‘훈련장에서는 모두 나왔다고 했 는데……
홀연히 자취를 감춘 가족의 행방 에서준의 미간이 깊게 파이고 있 던 찰나였다.
우웅-
“ 전화?”
난생 처음 보는 전화번호였다.
그러나 시기가 미묘한 만큼 느낌 이 좋지 않았기에, 그냥 홀려보낼 수 없었다.
“ 여보세요?”
-연합 의장, 한서준 맞나?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건방지기 짝이 없는 목소리에서준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대체 누구길래 이렇게 함부로 반말을 할까?”
-말 함부로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가족들이 무사한 꼴을 보고 싶다면 말이지.
“뭐라고?”
질문을 던지는 서준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사내가 한층 더 스
산한 목소리가 되어 협박을 가해온 다.
-상황을 아직도 이해 못 했나? 좋아, 한 번만 설명해주지. 지금 네 가족은 우리 교황청 최고 무력 집 단인 십자군의 B등급 이상 고등급 각성자들에게 습격을 받고 있는 상 태다.
수화기 너머의 사내가 자신감 넘 치는 어투로 말을 내뱉는 모습에서준의 입가에 헛웃음이 흘러나오 기 시작했다.
“누가 누굴 습격했다고?”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