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권 14화
164화
다음 날 이른 오전.
서준이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탓 인지 가족 모두가 게이트 사냥을 잠시 멈추고 짧은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가족과 함께 마음이 노곤 해지는 평화를 잠시나마 만끽하며, 소파 위에 널브러져 있던 서준의 입에서 별안간 감탄이 흘러나왔다.
“다들 정말, 많이 강해졌는데요.”
뜬금없는 말처럼 들릴지도 모르 겠지만, 당연한 반응이었다.
적어도 반년은 더 걸릴 것이라 생각했던 서연이 불과 한 달 만에 현경까지 도달한 것은 굳이 말할 것도 없었고, 양친 또한 조화경의 끝자락, 현경의 초입에 도달해 있었다.
과연, 천무지체라고 불려도 손색 이 없을 정도의 무골의 피가 대단 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 게 두 눈으로 목도하고 있자니 또 감회가 새롭고 너무나 놀라울 수밖 에 없었다.
“우리가 뭐 한 게 있나. 우리 아 들이 하라는 대로 했을 뿐인데.”
“이 나이 먹고 다시 젊음을 찾은 거 같아 살맛이 난다니까.”
가족 입에서 나오는 말에서준의 입가에도 자연스럽게 미소가 피어 났다.
“그러면, 다들 시간 괜찮을 때 협회의 훈련장으로 가요. 여행 겸, 무공도 전수해 드릴 테니까.”
순간, 서연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정말?!”
“그럼 가짜게? 서연이, 너도 이
제 슬슬 새로운 무공이 필요할 테 고.”
서연의 입에 숨길 수 없는 환한 미소가 흐른다.
“역시 우리 오빠가 최고다!”
“좋긴 하다만, 요즘 아들 많이 바쁘지 않니?”
“시간이 나겠어?”
중원 대륙과의 교류를 준비하느 라 다소 바쁜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다른 것도 아닌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중원 대륙의 교류에 관한 일들 도 결국 행복하기 위해서니까.’
많은 돈을 벌고 여러 종족을 규 합시켜 연합을 만들고, 개인의 무 공을 수련해 강해지는 것 모두 가 족과 즐거운 생활을 위해, 스스로 가 행복하기 위해 하는 일이었다.
무엇이 되었든 가족과의 삶, 행 복이 존재치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 가 없는 법이었다.
그런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족의 성장과 건강은 상당히 중요 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상태를 유지, 나아가
개선시킬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무공 수련이었다.
미뤄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이 다.
“오늘 시간만 괜찮다면 지금 당 장도 가능한걸요.”
서준의 돌발 발언에 가족이 눈치 를 살피기 시작했다.
“……지금 바로 말이니?”
“어제 막 돌아왔는데, 안 피곤하 겠어?”
“피곤은요, 이미 충분히 쉬었는 걸요. 저 체력 하나는 끝내주는 거 아시잖아요. 걱정 말고 편하게 말
씀하세요.”
서준의 배려 담긴 말에 가족의 입가에는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웃 음이 피어났다.
집안 내력으로 내려오는 것은 무 골과 천무지체뿐만이 아니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는 서준의 성정 을 가족 또한 똑 닮아 있었다.
처음에는 서준의 컨디션도 있었 기에 다소 걱정스럽게 얘기하고 눈 치를 봤던 부모와 서연이었지만, 거듭되는 서준의 권유에 마음을 한 시름 놓고는 곧장 훈련에 돌입한 것이다.
“자, 내공을 뽑을 때 기존처럼 해서는 안 돼. 활활 타오르는 불. 그 이미지를 확실하게 떠올려. 발 현시켜. 그리고 변환시켜서 단숨에 구현하는 거야.”
서준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있 던 서연은 마침내 팔을 내뻗고 손 바닥을 넓게 펼치더니 위로 내공을 응집시켰다.
잠시 후, 지그시 두 눈을 감은 채로 서 있는 서연의 손바닥 위에 묵색의 불꽃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이내, 하늘로 높게 치솟아 오르 며 일대를 집어삼키려 했다.
화르륵-!
손바닥 위에 타오르는 묵색의 불 꽃을 바라보는 서연의 입가가 호선 을 그린다.
“이렇게 펼치는 게 맞는 거지?”
서준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인다.
“아주 훌륭해.”
빈말이 아니었다.
현경에 이르러 내공의 속성을 바 꾸어낼 수 있는 모든 준비를 끝마 쳤다지만 이렇게 단기간에 성공해 낸 것은 상당히 훌륭한 일이었다.
“그럼, 나머지 속성도 비슷하게 만들어내면 되는 거지? 번개나 물 같은.”
“원리 자체는 똑같지.”
“대충 어떤 느낌인지 알겠어. 지 금 바로 연습할 테니까.”
한바탕 소요(懸ffi)를 빚어낸 서 연이 자리를 비우기 무섭게 서준의 옆으로 한석훈, 양정화 양친이 다 가왔다.
“이게 한 점에 집중을 시킨다는 게 너무 어렵구나.”
“너무 많이 모으려면 제멋대로 흩어져 버리는 게 과유불급인지도 모르겠네.”
이어진 질문에서준이 턱에 손을 괸 채로 잠시 고민에 빠진다.
“흐음……. 그러시면 눈을 굴려
내듯이 처음에는 천천히 모은다고 생각하시다가 폭발하기 전의 그 막 대한 양의 기를 단번에 쏟아 방출 해내시면 될 거에요.”
가족에 대한 강한 믿음 덕분일 까?
계속 벽에 부딪히고 막히고 있었지만, 한 치의 의심도 존재치 않았다.
서준의 말을 전적으로 믿으며 따 랐다.
옳은 길과 천무지체라 불릴 정도 의 뛰어난 가족의 내력이 하나가 되어 양친의 성장에도 마침내 눈에 띄는 결과가 나타났다.
우웅-
한 점에 응집된 기운이 일대를 진동시킨다.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틀림없 는 일심본각의 묘리가 담겨있었다.
‘이 상태라면 다들 머지않아서 벽을 넘어설 수 있겠네.’
서준이 귀환 이후 가장 먼저 바 랐던 가족의 불로장생(不老長生) 계획이 완성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 었다.
순탄하게 펼쳐져 가는 성장에서준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흐르고 있을 때였다.
우웅- 우웅-
품 안에 넣어두었던 전화기가 요 란한 소리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강석호 협회장.]
가족들과 함께 있는 소중한 시간 을 보내고 있는 만큼 평소라면 못 본 척 외면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서준은 지금 강석호에게 중원 대륙과의 교류에 관한 일과 광무혈마의 신변, 그리고 교육까지 부탁해놓은 상황이었다.
고개를 잠시 돌려 가족들의 상태 를 확인해본다.
모두들 두 눈을 감은 채 내공의 운영에 집중하고 있었다.
‘지금 당장 신경 써야 할 일은 없겠네.’
가족들의 집중이 깨지지 않게, 조심스레 걸음을 옮겨 훈련장을 빠 져나온 서준은 곧장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강석호 의 이야기를 듣던 서준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진다.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전 화로 들은 이야기는 서준조차도 전 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 이었다.
“저를 찾아왔다고요?”
연합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마지 막 이종족, 드워프들이 직접 찾아 온 것이었다.
-예, 방금 전 드워프의 왕, 휘노 소프의 사절이 찾아와 한서준 각성 자 님을 꼭 뵙고 싶다는 말씀을 전 달했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방문이었던 만 큼 강석호의 목소리에도 상당한 당 황스러움이 묻어나고 있었다.
“잘됐네요.”
어차피 직접 찾아가서, 담판을 지어야 할 종족이었다.
그 시간을 이렇게 아꼈으니, 찾
아와준 것 자체는 환영할 일이었다. 거절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서준은 곧장 여의도에 있는 협회
건물로 향할 준비를 하였다.
갑작스러운 방문이었지만, 앞선 엘프족의 선례가 있는 만큼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자고로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파 는 법이지.’
이렇게 직접 찾아왔다는 것은 드 워프도 요구할 것이 있다는 것이었다.
서준의 입장에서도 실로 반가운 방문이긴 하였지만 적어도 리벨리 온, 지구가 꿀릴 게 없었다.
‘어떤 요청을 할지는 자세히 모 르겠다만……
기본적으로 상황을 가정하고 그 에 따른 행동을 정리해 나간다.
그렇게 머릿속을 정리하며 이동
하자, 여의도에 있는 각성자 협회 의 최상층, 협회장실의 방문이 눈 앞에 들어왔다.
“안쪽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비서가 안내와 함께 쥐고 있던 문고리를 당겼다.
그렇게 활짝- 열린 문 너머로 곧 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강석호 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일찍 오셨 군요. 인사 나누시지요, 제가 방금 전화로 말씀드렸던 드워프족의 사 절입니다.”
고개를 돌리어 드워프의 얼굴을
마주한서준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우르누이 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드워프 사 절, 우르누이가 지구의 왕, 인왕 한서준 님을 알현합니다.”
잠시 넋이 나간 듯한 표정을 지 었지만, 이내 서준도 손을 앞으로 내밀어낸다.
“이렇게 다시 뵙게 될 줄은 몰랐 지만, 정말 반갑습니다.”
“이런 갑작스런 방문에도 반겨주 시어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는 서준 의 눈에 진한 흥미가 깃든다.
‘생각보다 더 대단한 드워프였 네.’
언급했듯, 무조건으로 연합에 합 류하겠다고 찾아왔을 확률은 희박 했고, 무언가 바라는 것 혹은 요청 해야 할 것이 있을 확률이 컸기에 사절도 상당히 신중히 뽑혔을 가능 성이 컸다.
지금 상황에서는 아쉬운 건 드워 프였기에 당연히 사절을 수준 미달 인 자로 뽑았을 리가 만무하다는 말이다.
‘아마 드워프의 기준으로 치자면 이세디아와 비슷한 수준의 강자겠
지.’
물론, 우르누이의 개인의 무력, 무위는 이세디아와 견줄 수 없는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드워프들의 강함의 기준은 단순한 무력에서 비 롯되는 것은 아니었다.
‘얼마나 뛰어난 대장 기술을 가 지고 있는가.’
우르누이의 실력을 의심할 여지 는 없었다.
실제로도 과거, 우르누이의 가게 에 방문했을 때 전시되어 있던 무 구들 하나하나가 명장급에 달한 작
품들뿐이었다.
그렇기에 더욱더 연합, 리벨리온 에는 드워프라는 종족이 필요했다.
‘병사들의 장비는 전쟁의 승패의 큰 영향을 끼친다.’
일정 경지에 오른 고수라 할지라 도 무구의 보조는 그 누구도 무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물며 평범한 각성자, 병사들은 구태여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연합의 병사들이 강해진 다는 것은 서준이 직접 나설 일이 줄어드는 것임과 동시에 대규모 전 쟁이 발발할 시에 최후의 결전을
생각해서 힘을 비축할 방도가 생긴 다는 것을 의미했다.
서준이 한창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해나가던 찰나, 우르누이가 조 심스레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라 연합, 리벨리온 의 가입 권유에 대한 저희 드워프 의 왕이신 휘노소프 님의 의견을 전달해드리기 위해서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잘 오셨습니다. 휘노소프 님께 선 어떻게 말씀하시던가요.”
“왕께서는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 신데, 오랫동안 트리니티에 몸을
담근 원로 회의에서는 반발이 심한 상황입니다.”
처음 수인족을 병합할 때도 자칼 이 했던 말이었던 만큼, 서준의 표 정에는 조금의 당황도 없었다.
‘오히려 이쪽이 더 편하지.’
어차피 드워프라는 종족을 거저 규합할 생각은 없었기에서준은 흔 쾌히 고개를 주억인다.
“그럼 제가 가서 드워프족이 준 비한 시련을 극복하거나 과제를 해 결해드리면 되는 겁니까?”
“원래는 그런 조건을 걸기로 했 습니다만, 지금은 그러실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의문이 드는 우르누이의 말에서준의 고개가 갸우뚱- 젖혀지려 하 였지만, 다행히도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저 저희의 수도 아누키스로 가셔서 원로들에게 인왕께서 이룬 업적과 위용을 눈으로 확인만 시켜 주면 될 것입니다.”
입가에 피식- 미소를 흘리고 있 는 우르누이의 시선이 서준의 손에 장착된 정복왕의 수투로 향하고 있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