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권 11화
161 화
솔직한 심정으로, 권능, 환시(幻 視)의 밤을 상쇄했을 때만 해도 이 미 승리를 점했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에노스가 빌려온 벨리드 의 광기는 생각 이상으로 상당히 강력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에노스가 그 힘을 제대로 다뤄내지 못하고 있다 는 점이었다.
지금도, 쏟아지듯 잠식하는 광기
들이 서준의 타오르는 불꽃을 완벽 히 제압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이것은 즉, 에노스가 부리는 광 기가 불꽃을 완벽히 넘어서지 못하 고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 환시의 밤을 사용할 때처 럼, 세계의 법칙 자체를 비틀어 내 는 막강한 힘을 사용하지는 못한다 는 말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네가 정말로 권능에 가까운 광 기를 자유자재로 다뤄낼 수 있었다 면, 단순한 사도로 남아있지는 않 았겠지.”
바람을 가르는 서준의 발길질을 양팔로 막아낸 에노스가 고개를 끄 덕인다.
“인정하지! 그러나, 그렇다고 지 금 네놈이 벨리드 님의 힘을 하사 받은 날 넘어설 수 있을 것이라 생 각하는 것이냐?”
“두고 보면 알겠지.”
가이사의 보조가 남은 시간은 30 초 남짓.
그에 비해 에노스의 능력은, 시 간제한이 존재치 않아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모자란다고 생각 하거나 조바심을 내지 않았다.
에노스의 검과 서준의 주먹, 혹 은 발이 부딪치며 연신 폭발이 일 어난다.
이어지는 공방 속 서준은 단 하 나에만 집중했다.
사실, 이쯤 와서까지 승부는 비 등한 수준이다.
벨리드의 힘을 빌려 온 에노스는 정말로 강했다.
천년에 달하는 기억과 경험들을 빌려왔음에도 지쳐 쓰러지는 쪽이 서준, 본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렇지만, 기억과 경험에만 의존
할 생각은 없었다.
무인(武人)의 길을 걷기 시작했 던 처음부터 간절히 원했던, 단 하 나.
‘더 빠르게! 더 강하게!’
오직 강한 힘만을 추구하고 바란 다.
서준의 눈동자에는 과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선인의 앞에 홀로 섰 을 때와 같은 강력한 투지 (K志)가 일어난다.
그 순간, 서준이 내지르는 주먹 과 발이 에노스의 얼굴 혹은 몸에 상처를 남긴다.
무색하게도, 치명상은 하나도 남 기지 못했다.
지쳐버린 육신으로 에노스의 단 단한 육신을 뚫어내기에는 부족했 기 때문이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10초 남짓.
“벌레답게 한계에 부딪혀, 지쳐 쓰러져가는 것이 눈에 훤하구나!”
에노스가 조롱 섞인 말을 내뱉고 있었지만, 지금의 서준에게는 그조 차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에노스를 쓰러뜨릴 생각 일 념뿐이었다.
이미 집념(執念)에 다다른 의지 가 감각들과 내공 운용능력을 한계 까지 끌어올린다.
‘어차피 놈도 한계다.’
체내의 내공을 한계까지 끌어 올 려 체내에 남은 마지막 힘을 짜내 며 한계를 폭발시킨다.
전신이 쩌릿하게 울렸고, 체내의 힘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이길 수 있어.’
육체를 붕괴시킬 듯 몰아붙일수 록 자신감이 차오른다.
차오르는 자신감이 확신이 되는
체내의 남아있는 모든 내력을 쏟 아내고, 내지른다.
너무나도 지쳐버린 육신으로 무 공, 기술이라고 할 것을 펼칠 수는 없었다.
무식하기 짝이 없는 공격이었지만 에노스 또한 고된 전투로 상당 히 지쳐 있는 상황이었다.
제대로 된 방어를 펼칠 수 있을 리 만무하다는 것이었다.
키잉-!
이명과도 같은 소리가 귓전에 울 려 퍼졌고, 뭐라고 입을 벌리며 말
하는 에노스의 경악한 표정이 시야 에 들어온다.
쾅, 콰과광-!
이어서 거대한 폭발이 들려오더 니 하늘에서 절대지고(絶代至高)의 마(魔)가 강림한다.
“거짓말……! 아직도 이 정도의 힘이 남아있었다고……?! 아아악 -I”
마지막 유언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한 에노스는 비명을 내지르며 가 루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전력을 쏟아낸 공격에 제대로 된 방어조차 하지 못한 채, 즉시 소멸
한 것이다.
이윽고, 주변을 폭풍처럼 몰아치 던 기운이 잦아들고 서준의 몸이 휘청 이더니 끝내, 쓰러진다.
“하악-!”
숨을 거칠게 토해내고 있었지만, 입가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환한 미소가 걸려있었다.
“ 이겼다.”
기쁨을 만끽하고 있던 순간, 귓 전에 경쾌한 메시지가 들려온다.
띠링-!
[벨리드의 두 번째 사도, 중급 광 기의 신 에노스를 처지 했습니다.]
[극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투신 신명의 효과가 발동합니 다.]
[추가 경험치를 500% 획득합니 다.]
[레벨이 가파르게 상승합니다!]
[필요 경험치를 충족함에 따라 레벨이 200으로 상숭하였습니다!]
[대단합니다! 한 단계 높은 격의 신을 처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대우주의 역사에 남을 신화적
업적입니다!]
[차원 ‘중원’에서의 싸움에 대한 숭리의 이야기가 신위에 오른 존재 들에게 알려집니다.]
시스템이 신화적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평가받은 싸움에서 승리를 거머쥐었다.
때문인지, 서준에게 전달되는 메 시지는 여태껏 봐왔던 것 중에 가 장 길었다.
[다수의 신이 경악합니다!]
[소수의 신이 당신을 경계합니 다.]
[포스 시스템의 판단 눙력이 사 용자 ‘한서준’의 신위 등급의 조정 이 필요하다고 판단을 내리고 투표 에 들어갑니다.]
[대신(大神)에 오른 존재들이 투 표 권한을 가집니다.]
[총투표 80, 찬성 : 40 반대 : 40]
[동수를 이룸에 따라 포스 시스 템이 자체 판단에 들어갑니다.]
[사용자 ‘한서준’의 자격이 충분 하다고 판단이 내려집니다.]
[중격, 투신의 신위에 오릅니다.]
[투신과 관련된 스킬의 레벨이 상승되고 추가적인 권한들이 부여 됩니다.]
메시지의 파도 속, 서준의 시야 를 사로잡는 문구들이 몇몇 존재했 다.
‘ 대신.’
일전에도 보았듯, 하급 신위에 이른 자들이 물론 약한 것은 아니 었으나 세계의 법칙을 비틀어 낼 정도로 굉장한 무력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대신에 이르러 있는 이들 부터는 신에서도 그 격이 달랐다.
세계의 법칙 자체를 뒤틀어내는 것으로 세상을 창조해내고, 파괴해 낼 수 있는 규율 그 자체.
말 그대로 차원이 다른 존재들이 란 말이다.
천년에 달하는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서준도 그런 존재를 한 두 번 볼까 말까 했었다.
그러나,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 은 대신이 존재한다고 시스템은 말 하고 있었다.
‘80이 넘는다고?’
심지어 이조차도 정확한 숫자가 아니었다.
권한 상승에 대한 투표 권한을 모든 대신에게 주었지만, 모두가 참여했을 리가 만무했다.
당장 한국의 대통령 선거 또한 모든 성인이 투표권을 가지지만, 투표율이 백 퍼센트는 아닌 것처럼 말이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80이 전부가 아니라면, 어쩌면 100이 넘는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생각 이상으로 재미있는 우주였 네.’
솔직히 말하자면, 상당한 강자인 중격의 신위에 오른 만큼 더는 상 대할 만한 적수가 극히 적을 거라 예상했었다.
무(武)를 겨룰 상대가 없다는 것 은 무인으로서 아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강자, 대신 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무인으로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물론, 반대표가 40에 달했다는 것은 적이 상당하다는 것을 의미했 기에, 마냥 좋아할 수는 없는 사실
이었다.
하지만 괜한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다.
‘반대만큼 찬성한 신도 많았으니 까.’
어떠한 이유로 동의했는지는 서준 자신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건 크게 중요한 것 이 아니었다.
‘중요한 건 모든 대신(大神)의 뜻 이 일치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
서로를 견제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렇다면, 대신이라고 할지라도
곧장 직접 위해를 가해오지는 못할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조금이라도 벌 수 있다면.
‘나 또한 대신의 경지에 이를 수 있어.’
한 번 걸었던 길이고, 시스템의 도움을 받았다지만 남들은 몇 번의 윤회를 거쳐도 이루지 못하는 중격 의 신위에 불과 몇 개월 만에 올라 선 서준이었다.
과연, 우주가 경악할 만한 성장 력이 었다.
앞으로 몇 개월 후면 지금 평가
를 하고 표를 던지고 있는 대신들 과 같은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자 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같은 대신의 경지에 오른 상태에서 다른 대신과 싸우게 된다 면, 그 결과는 구태여 말할 필요도 없었다.
“앞으로 정말 재미있겠는데.”
빠르게 강해지는 것도, 강자와의 싸움도 즐길 수 있다는 말이었다.
쿵 쿵!
무인 인생 최고의 상황에 심장이 거세게 뛰고 있었지만, 일단 지금 당장 뭘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너무 피곤해서 할 수가 없었다.
속이 뻥 뚫리는 웃음을 한번 지 은 서준은 바닥에 곧 널브러졌다.
벨리드의 두 번째 사도이자 중 격의 신위에 오른 에노스가 죽었다.
서로를 견제하고 감시하고 있던
72마왕들은 누구보다도 빠르게 이 러한 사실을 눈치챘다.
물론,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벨리드의 종인 에노스가 죽었다 고?”
피와 살로 만들어진 왕좌 위, 피 처럼 붉은색의 머리를 가진 사내가 헛웃음을 흘린다.
그 모습에 발아래 엎드려 있는 악마들은 조심스럽게 사내의 눈치 를 봤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 금 왕좌 위에 앉아 있는 사내, 악
마는 분노를 상징하는 대신(大神) 이자 72마왕 사탄.
언제 화가 폭발해 자신에게 피해 가 올지 모르는 존재라는 것이다.
실제로 과거에도 폭발한 사탄의 분노에 머리가 으깨져 죽은 악마도 존재했었다.
그렇기에 부하들이 다들 벌벌-떨며 몸을 사리고 있었지만, 다행 히도 우려했던 사태는 벌어지지 않 았다.
왕좌에 몸을 완전히 기댄 사탄의 입에서 너털웃음이 터져 나온다.
“크하하-!! 정말 어이가 없는 일
이군.”
에노스가 사망한 것까지는 충분 히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었다.
같은 경지의 신위, 혹은 대신 급 에 이르러 있는 천사들의 사도 혹 은 용족과 싸우다가 죽었다면 충분 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고작 인간에게 패 배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다소 황당하긴 하였지만, 이것은 곧 기회였다.
“드디어! 드디어 이 따분하고 지 루했던 평화가 무너지겠구나.”
과정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벨리드의 사도인 에노스가 죽었다.
심지어 근래 벨리드는 새로운 사 도를 임명했었고, 그 사도 또한 허 무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사도, 직접 계약을 맺고 연결되 는 존재들인 만큼 그들의 죽음은 벨리드에게도 적지 않은 피해를 주 었다.
심지어 벨리드는 무리하게 한서준이라는 인간을 추적하기 위해 움 직이다가 천사들에게 견제까지 받 아 3개의 군단이 괴멸을 한 상황이 기까지 했다.
벨리드의 전력이 상당히 줄어든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각자의 구역을 나누어 살아가고 있던 판데모니움 차원에 큰 변수가 생겨 난 것이었다.
본래도 72마왕들은 서로를 견 제하고 있는 차원이었지만, 이제 는 단순한 견제로 끝나지 않을 것 이다.
본격적인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이들이 필시 있을 것이다.
“재미있겠구나, 재미있겠어! 탐정 (探頂)! 지금 다른 마왕들의 동태가 어떻게 되지?”
“전부는 아니지만, 몇몇 마왕들
이 갑작스레 출정 나갔던 군단을 황급히 소집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 려오고 있긴 합니다.”
“영악한 것들.”
한 차례 고개를 내저은 사탄이 왕좌에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우리도 당장 군단을 소집해라, 무료했던 시대는 이제 끝이다!”
약해져 있는 틈을 타, 벨리드를 처치하고 가진 힘을 흡수해낸다면.
엇비슷했던 마왕들의 힘 때문에서로 눈.치를 보기 바빴던, 평화의 시대를 종식시키고 판데모니움의 패권(顧權)을 쥘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생각이 깊었던 만큼, 행동은 신 속하게 이루어진다.
“벨리드를 처치하고 광기의 힘을 흡수해내어, 나 사탄이 차원, 판데 모니움의 패자로써 군림을 해내겠 다.”
사탄의 선언에 신하들의 눈이 휘 둥그레진다.
다소 감정적이라 볼 수 있는 분 노의 마왕, 사탄이 이런 생각을 했 다면 영악한 몇몇 마왕들이 이와 같은 생각을 하지 못했을 리가 없 었다.
오랜 과거의 판데모니움처럼 마 황의 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악마 들의 전쟁이 시작되려 하는 것이 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