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권 10화
160화
내려치는 벼락이 두 눈에 선명히 각인되고, 주변으로 퍼지는 전류와 고통에 몸부림치는 에노스의 모습 이 훤히 들어온다.
이내, 몸을 부르르- 떨던 에노스 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정도로는 어림없다-!!”
사도화(使徒化).
벨리드에게 선택받은 사도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힘이 개방된다.
이미 악마종인 에노스에게 날개 나 뿔이 솟아나지는 않았다.
대신하여 에노스의 전신이 검게 물들어가기 시작한다.
이윽고, 칠흑을 머금은 듯한 검 은 형체가 된 에노스의 눈동자에 붉은빛 광기가 넘실거린다.
얼굴은 마치 지옥에 있는 악귀와 같은 형상을 취하는 순간이었다.
띵-!
[※주의! 대신(大神)에 이른 벨리 드의 권능과 그 힘의 일부가 두 번
째 사도, 에노스를 통해 발현되려 합니다!]
[※경고! 현재 사용자가 감당하 기 힘든 힘입니다. 피신을 추천합 니다!]
시스템이 서준에게 메시지를 전 달했다.
그것은 평소와 같은 기쁜 메시지 와는 확연히 달랐다.
서준의 입가에 헛웃음이 피어난 다.
‘나보고 도망을 치라고?’
굴복하지 않고 혈교를 무너뜨릴 것이기에 이 자리에 선 것이다.
그런데도 시스템은 도주를 추천 하고 있었다.
현명한 선택을 위한 조언일 수도 있다.
그런데 대체 어디로 도망을 친단 말인가?
지금 당장 지구로 도망을 쳐 중 원과 연결된 게이트를 닫아내어 목 숨을 부지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 었다.
‘어차피 벨리드와 악마들은 나를 놓아주지 않겠지.’
물러날 수 없는 싸움이라는 말이 었다.
지구에 있을 가족들을 생각한다 면 더더욱 물러날 수 없었다.
만약 에노스와 같은 신격과 지 구, 서울 한복판에서 전투를 치르 게 된다면 가족 혹은 소중한 사람 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서준은 눈앞에 떠오른 초록빛 홀로그램 창을 무시한다.
‘감당하기 힘들다고 해서 내가 진다는 뜻은 아니야.’
애초에서준은 이런 강자와의 싸 움을 수도 없이 벌여왔다.
심지어 지금 에노스가 사용하려 는 벨리드의 권능과 힘도 아직 발 현된 것은 아니었다.
발현되기 전에 막아내거나 상당 한 치명상을 입힌다면 승산이 존재 한다는 소리였다.
‘여러모로 싸움을 피할 이유가 없다는 거지.’
생각을 정리한서준의 입가에 회 심의 미소가 흐른다.
가족들과의 생활도 물론 무엇과 도 바꿀 수 없는 것이었지만, 근간 이 무인(武人)인 서준에겐 지구의 생활이 조금은 따분할 거라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대격변의 시대를 통해 수많은 차 원과 연결되었고, 넓은 우주에는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의 많은 강 자가 존재했다.
‘각자의 무(武)를 겨루고 성장한 다……
행복한 생활과 끝없는 새로움을 느낄 수 있는 무(武)의 성장.
두 마리 토끼가 넝쿨째 굴러들어 온 것이었다.
이보다 더 즐거운 일이 어디 있 단 말인가?
물론, 감정에 취해 있을 여유 따 위는 존재치 않았다.
서준은 16갑자에 달하는, 넘치는 내력을 몸 전체에 둘러내며 발을 내딛는다.
폭발하듯이 터져 나오는 내력의 힘에 육체의 흐름을 따라 사고가 급가속한다.
마침내 완전한 음속의 세계에 들 어선 서준은 단숨에 에노스의 등 뒤를 점한다.
이어, 손을 앞으로 내뻗고는 에 노스의 목을 움켜쥐려는 순간.
에노스의 눈에서 붉은빛 광기가
폭발하듯 터져 나온다.
콰앙-!
광기에 물든 바람이 통제를 벗어 나 서준을 거칠게 밀쳐낸다.
“위대하신 벨리드 님의 힘을 직 접 느껴 봐라!”
에노스가 거칠게 검을 휘두르며 서준을 향해 광기를 발산한다.
주먹과 검이 부딪치며 세상의 일 부가 일그러지고 좁혀 가기를 반복 한다.
붕괴하고, 재생하기를 여러 번.
콰쾅-!
폭음과 함께 밀려난 쪽은 서준이 었다.
그러나 서준의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반짝이고 있었다.
‘놈도 아직 힘을 완벽히 다뤄내 는 건 아닌가 보네.’
에노스가 다루는 광기는 강력하 기는 하나, 완벽하다고는 볼 수 없 었다.
실제로도 중격에 오른 신으로서 더 뛰어난 육체를 가지고 있음에도 공격의 발현이 오히려 더 늦어지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짧지만 분명 틈이
존재한다는 거다.’
물론, 에노스가 상당한 강자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메꿀 수 없는 간격이냐고 물어본다면 단호히 고개를 내저을 것이다.
서준에게는 그 짧은 틈을 파고들 명확한 방법이 존재했다.
‘팔경성보, 지수〈止水).’
팔경성보의 마지막, 여덟 번째 걸음 지수(止水).
극의(極意)에 달한 팔경성보의 발걸음이 펼쳐진 것이었다.
팔경성보의 극의를 추구했기에 속도와 변화 그 어떤 것도 놓칠 수 없었다.
두 가지의 힘을 모두 충족해야 했기에 내공의 제약도 컸다.
달리 말하자면, 모든 능력 강화 스킬을 펼친 서준에게는 아무런 문 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서준이 전신에 칠흑과 같은 어둠 을 두른 채로 당당히 앞으로 걸음 을 내딛는다.
타닥. 탁.
이윽고 한 발, 두 발, 마침내 여 덟 번째 걸음이 땅에 닿는 순간,
팔경성보의 지수가 펼쳐지고, 일대 에 바람이 완전히 멎는다.
바람이 불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일대의 모든 바람이 서준의 제어 와 통제 아래 놓인 것이다.
몰아치는 바람을, 세상을 둥에 업은 서준이 발을 앞으로 내딛는다.
동작은 빠르지 않았지만, 주변의 바람이 서준을 따르고 보호한다.
이윽고, 전신에서 터질 것같이 폭발하는 내력을 쏟아내며 포효한 다.
“으아아—!”
몰아치는 바람 소리보다, 육체가 먼저 움직인다.
초음속(超音速).
단순한 음속을 넘어서 또 다른 세계로 접어든 서준의 주먹이 에노 스가 펼치고 있는 광기의 틈을 비 집어내고 파고든다.
“……
육중한 소리와 함께 에노스의 신 형이 지면에 내다꽂힌다.
팍-!
세상을 타고 이동하듯이 에노스 의 앞으로 다시 한번 다가선 서준
의 주먹이 다시금 폭발하듯 뻗어진 다.
특별한 무공이나 초식은 없었다.
지금의 육신으로는 어떠한 운용 을 할 여유조차 없었다.
그러나 초음속에 들어선 속도가 주는 힘은 압도적으로 빠르고 강력 하다.
쌔액-!
다시 복부에 주먹이 꽂힌 에노스 가 두 눈을 부릅뜨며 피를 왈칵 쏟 았다.
“크읍-!”
신음을 흘린 에노스의 입가로 피 식- 미소가 흐른다.
“이 와중에도 한 단계 더 나아가 다니, 실로 대단한 재능이다!”
입에서 한 움큼 피를 쏟아내고 있었지만, 에노스는 여전히 여유를 보이고 있었다.
초음속.
비록 그 세계에 아직 에노스는 도달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아가려면 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지 않
는 것은 이를 악물고 고통을 억누 르고 있는 서준처럼 한계를 맞이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근육이 끊어질 듯 늘어지고 뼈가 부러지는 것 같은 아찔한 고통이 밀려온다.
허락되지 않은 영역으로 함부로 몸을 내던진 대가였다.
대신(大神)의 자리에 오른 존재 가 내어주는 힘에 실시간으로 강해 지는 에노스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무리해가며 힘을 쓸 필요가 없었다.
“발버둥 쳐봤자 소용없다! 인간. 너의 패배다!”
“아니. 네 패배다.”
서준이 고개를 내저으며 입을 열 었다.
붉게 물든 광기의 틈을 파고든 주먹을 활짝 펼치며 가진 내력을 쏟아내고 폭발시킨다.
쾅-!
.....
내부에서부터 시작한 폭발은 에 노스의 머리에서부터 시작하여, 발 끝을 단숨에 휘감는다.
굳이 피할 필요 없다고 판단 내 린 에노스의 방심이 부른 실수였다.
“죽어.”
서준이 팔을 거칠게 휘두르려는 순간이었다.
콰광-!
에노스의 주변으로 붉은 광기가 허공으로 치솟더니, 거대한 회오리 를 만들어내며 서준을 밀어냈다.
“크아아악-!”
에노스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 온다.
이제는 눈동자뿐만 아니라 전신 이 붉다 못해 피 칠갑을 두른 것 같은 육신이 된 에노스는 허락되지
않은 벨리드의 힘을 망설임 없이 쏟아내며 초음속의 영역에 들어선 다.
콰광-!
서준의 주먹이 에노스의 가슴팍 에 내리꽂혔고, 에노스의 검은 서준의 옆구리를 깊게 파고든다.
푸욱-!
칼날에 베인 상처에서 화끈- 거 리는 고통이 전신을 달구었다.
띵-!
[정복왕 진가 스킬의 지속 시간
이 1분 남았습니다.]
[가이사의 능력 지속 시간이 1분 남았습니다.]
그 순간 서준의 시야가 핑- 돌며 메시지가 들려온다.
“네 패배다! 인간!”
수투의 효과들이 끝을 알렸고 육 체는 당장에라도 무너질 것만 같았다.
‘내가 진다고?’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아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다.
서준은 이를 악물고 몸을 앞으로 더 내밀었다.
차가운 검이 깊게 파고들며, 아 찔한 고통이 몸올 태울 듯이 달군 다.
이윽고, 에노스와의 거리가 지척 에 다다른 순간이었다.
“이대로 반으로 갈라 죽여주마!”
에노스의 검이 허공으로 치솟는 다.
후웅-
복부에서부터 솟구친 검날이 서
준의 어깨 위로 치솟는다.
촤아악-!
잘려진 팔에서 붉은 핏물이 쏟아 져 내리지만, 가이사의 활력이 빠 르게 재생을 해낸다.
“커헉!”
고통과 육체의 반동으로 서준의 입가에서 피가 폭포처럼 흐르고 있 었지만, 입가에는 회심의 미소가 피어나고 있었다.
‘드디어 열렸다……
방어에 치중하고 힘에 적응해나 가던 에노스가 일순간, 위기감을 느끼고 주제를 넘은 힘을 사용했다.
물론, 그를 보조해주는 육체가 훌륭했기에 이에 따른 리스크가 크 지는 않았다.
하지만 숙련도가 부족한 만큼 공 수의 균형을 완벽히 이뤄낼 수는 없었다.
초음속에 다다른 움직임을 쫓아 오기 위하여 속도에 치중하려다 보 니 자연스레 방어가 허술해질 수밖 에 없다는 것이었으며, 기존에 존재했던 틈이 더 크게 벌어졌다.
완벽한 공격의 기회, 놈의 빈틈 을 벌려낼 기회가 왔다는 것이었다.
“ 천존마선근원류 (天尊魔仙根源
流), 염천(炎天)
화르르륵-!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이건 마선, 천마의 근간이 되는 힘.
최강이자 최악의 마선이 피워낸 불꽃이라는 것이다.
실제로도 하늘 끝까지 치솟은 백 색의 불이 세상을 뒤덮을 듯 새하 얗게 물들인다.
서준은 그 거대한 천마의 불꽃 을, 사방으로 흩뿌리듯이 휘둘렀다.
마구잡이로 흩뿌려지는 것 같지 만, 16갑자나 되는 내공을 자유자 재로 조절하고 있는 지금이라면 충
분히 원하는 형태를 만들 수 있었다.
의도한 대로 방어가 풀린 에노스 주변으로 거대한 불의 장벽을 만들 고 덮쳐내려 한다.
일대를 휘감고 조여오는 불꽃, 지옥의 업화보다 더 뜨거운 열기에 에노스의 눈자위가 크게 떨리기 시 작한 것은 그 순간이었다.
붉은 광기가 이를 밀어내려고 하 였지만, 펼쳐지기도 전에 불꽃에 집어삼켜지고 태워진다.
“무, 무슨……!”
당황한 에노스의 음성에서준의
입가에 그려진 미소는 더욱 짙어졌 다.
“아쉽겠어, 네가 그 힘을 조금만 더 능숙하게 다뤄낼 수 있었다면 네게 승산이 있었을지도 몰랐을 텐 데.”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가 따로 없었다.
빌려온 힘에 휘둘려 다니며, 자 유자재로 다뤄내지 못하고 있었다.
대신에 이른 존재가 빌려주는 거 대한 힘인 만큼 제대로 발현해내기 만 한다면 이 불꽃을 잡아낼 수도 있겠지만, 지금 에노스의 능력으로
는 이미 타오르고 있는 천마의 불 을 제압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에노스는 공포에 잠식되 거나 절망에 빠지지 않는다.
“건방진 놈! 벨리드 님의 직속 사도인 나를 능멸하려는 것이냐!”
거칠게 외친 에노스의 눈동자에서 붉은빛이 흘러나오더니 손에 쥐 고 있던 검으로 흘러들어간다.
“날뛰어라!”
이내, 서준을 노리고 날아들던 검이 하늘로 향하더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미쳐 발작하게 만들어라!”
기운이 몰아치고 있던 불의 장벽 위로, 녹아내린 검이 만든 붉게 물 든 광기들이 쏟아져 내린다.
화륵-!
이어서 세상을 미치게 할 광기가 쏟아져 내린다.
놀랍게도 쏟아진 광기는 불꽃을 뚫고서 집어삼키려 했다.
광기와 불꽃의 팽팽한 대결.
아직 승자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일대를 휘감았던 불꽃이 서서히 누 그러진다.
에노스는 하늘에서 다시 되돌아
온 검을 움켜쥐며 오만한 웃음을 보인다.
“말하지 않았느냐! 네놈 따위가 아무리 발악해봤자 위대한 벨리드 님의 힘 앞에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후두둑-!
타오르는 불길과, 쏟아지는 붉은 광기 사이로 서로를 바라본 서준과 에노스가 동시에 몸을 던졌다.
콰광-!
허리를 비트는 것으로 날아드는 검을 어깨 위로 홀리고, 품으로 파 고든 서준의 주먹이 아슬아슬하게
에노스의 볼을 스치고 지나갔다.
“허세 부리지 마.”
“정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면, 내 불꽃을 막아내려 하지 않았겠 지.”
정곡을 찌르는 말에 에노스의 동 공이 혼들렸고, 그를 응시하고 있 던 서준의 입가에는 자연스레 비릿 한 미소가 흘렀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