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권 8화
158화
양강관을 제외하고도 망월관, 무 승관, 협중관까지 총 4개의 관문과 혈옥군을 지키는 병사, 무인이 있 었지만, 그 누구도 서준의 앞길을 막아설 생각을 하지 못했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가는 법 이지.’
혹마의 처형에 관한 이야기가 빠 르게 퍼진 덕에, 그 어떠한 관문에서도 감히 서준과 싸울 용기를 내 지 못했다.
반대로, 소식을 듣고 음지에 몸 을 숨기고 있던 천마신교의 교인들 이 서준이 있는 위치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육검(7느劍), 지존을 다시 뵙습니 다! 충!”
“지존을 뵙습니다, 충!”
이렇게 합류한 천마신교의 일원 들과 혈옥군에서 구출해낸 교인들 이 더해지자 서준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은 어느덧 군세에 가까워진 모양을 취하게 되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무명신의에 눈 동자에는 감격이 차오르기 시작한
다.
“이건 마치, 과거 중원을 제패했 을 때를 떠올리게 하는군요.”
혈교, 현재 대륙의 패자이자 중 원 대륙 그 자체라고 봐도 무방한 집단과 천마신교의 싸움.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과거 와 같은 형상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 상황이 불편하거나 어색하지는 않다.
생각해보면 지구로의 귀환, 가족 들과의 생활들로 인해 잠시 잊고 있었을 뿐이었다.
중원 대륙에서 서준의 삶은 투쟁
(Ml 爭)의 연속이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 때문일 까?
기억 속에 묻어놓은 감정이 되살 아나 심장이 거세게 날뛰기 시작한 다.
쿵! 쿵!
오랫동안 억압해두었던 중원 대 륙의 패자, 천마의 본능과 감각이 고개를 들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고양감에서준의 입가에 피식- 미소가 흐른다.
“결과도 물론, 그때와 같을 거 야.”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수십여 년이 홀러 세월의 흔적인 주름이 생겨나 있었지만, 무명신의 의 눈빛에는 그때의 소년과 같은 강한 투지가 반짝인다.
그렇게 각자의 투지를 불태우며 걸음을 옮겨가자, 어느덧 본거지를 지키는 관문이자 혈교의 요새의 앞 에 도달했다.
“이곳이 말씀드렸던 옥문난관입 니다.”
옥문난관(獄門難關).
이름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혈교 가 집권한 이후 한 번도 공략된 적
이 없는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관 문의 양옆으로는 조화경급의 고수 라 할지라도 높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절벽이 세워져 있었고, 소위 말하는 바람길에 지어 놓은 관문이 라 그런 것인지 태풍과도 같은 강 풍이 계속 몰아치고 있었다.
심지어 꼭대기는 발 디딜 틈도 없는 좁은 경사길로 이루어져 있기 에 어떻게든 절벽의 꼭대기에 오른 다고 하더라도 무사히 관문을 넘어 서기란 쉽지가 않게 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옥문난관을 지키고 있는 이들은 대교주와 혈지군단(血池軍
團)으로 지금의 혈교를 상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최정예 무력 집 단이었다.
성벽 위에서 위압감을 내뿜고 있 는 대교주와 혈지군단을 바라보는 무명신의의 눈이 가늘어진다.
“대교주와 혈지군단이라, 정말 오랜만입니다.”
당연하지만, 혈지군단이 괜히 혈 교를 상징하는 집단이 아니었다.
비록 숫자는 스물에 달하는 적은 인원이었지만, 그들 한 명, 한 명이 최소 조화경에 오른 혈교의 최고수 로 천마신교를 몰락시킬 때 주축이
되었던 빼어난 강자들이었다.
실제로도 무명신의 또한 대교주 와 혈지군단에 수없이 많은 패배를 겪었고, 끝내는 사로잡히기까지 했 었다.
무명신의의 입장에서는 원수와 같은 집단이라는 것이었다.
“여태 상대했던 조무래기들과는 다를 겁니다.”
놈들의 힘을 알고 있는 탓일까?
무명신의의 긴장을 숨기지 못하 고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모습에서준이 입을 연다.
“그렇게 긴장할 거 없어……
말끝을 흐리고 있는 서준의 입가 에 자신감 넘치는 미소가 흐른다.
“내가 있잖아.”
무명신의를 바라보며 미소를 흘 린 서준은 고개를 돌리어 옥문난관 을 바라본다.
어느덧 서준의 눈동자는 겨울날 의 한파보다 시린 눈동자로 변해 있었다.
뒤이어, 서준이 평소처럼 앞으로 발을 내뻗으며 관문을 향해 나아가 려던 순간이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교주 님께서 괜찮으시다면 저희가 나서
도 되겠습니까?”
“갑자기?”
“혈교 놈들도 아직 수장이 모습 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가능하시다 면 힘을 비축하시고 전력(全方)인 상태로 싸우시는 게 좋다고 판단이 되어 감히 아룁니다.”
“어차피 내공은 소모되어도 금방 회복되기도 하고, 애초에 이 정도 는 아무 문제 없어. 애초에 힘을 비축하려 했으면 처음부터 나서지 도 않았겠지.”
나름 타당한 말이었지만, 무명신 의도 물러서지 않고 조심스럽게 입
을 열기를 계속했다.
“교주님께서 저보다 더 잘 아시 지 않습니까, 전투의 승패는 내공 과 기술만으로 갈리는 것이 아니라 는 걸요.”
무명신의의 말에 뭐라고 반박하 고 싶었지만 차마 할 수 없었다.
흔히 세간에서 말하는 기적, 이 변이라고 불리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모두 ‘정신력’ 때문이었다.
‘극(極)에 달한 정신력이라면 일 시적이라지만 한 단계 너머의 경지 에 있는 존재들과 대등하게 겨룰 수 있는 힘을 내게 해줄 때도 있
지.’
이렇게 큰 간극을 메꿀 수도 있 는 힘을 가진 요소인 만큼, 초고수 간의 싸움에서는 정신력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곧바로 무 명신의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일 수 는 없었다.
“괜찮겠어?”
언급했다시피 무명신의는 대교주 와 혈지군단에 많은 패배를 겪은 적이 있었다.
기억 속에 각인된 경험과 공포들 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 것이었다.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모두 과 거의 일에 불과합니다. 지금의 저 는 교주님의 도움으로 새로 태어나 지 않았습니까?”
그들에게 패배를 겪었던 때와는 달리, 지금의 무명신의는 벽을 넘 어서고 반신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그렇기에 무명신의는 자신감이 넘치는 말을 내뱉을 수 있었다.
“대교주와 혈지군단 그리고 옥문 난관을 무너뜨려 천마신교의 부활 과 교주님의 위대함을 만천하에 알 리도록 하겠습니다.”
이토록 자신감이 넘치는데 어떻 게 거절할 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경지의 차이가 있었기 에 승산은 차고 넘친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럼, 믿고 맡겨보도록 할게.”
“성은이 망극합니다.”
서준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무명신의가 앞으로 발을 내딛는다.
자연스레 무명신의 등 뒤에, 군 세를 이루게 된 천마신교의 교인들 이 뒤따르기 시작한다.
“천마의 위대함을 세상에-!”
무명신의가 내지른 외침은 기폭 제가 되어 수많은 천마신교 교인들 의 아픈 기억을 떨쳐 내게 했다.
어느덧 천마신교의 교인들의 눈 동자에는 강한 전의와 투지가 불타 오르기 시작했고, 옥문난관을 향해 내뻗는 걸음에는 망설임 따위는 존재치 않게 되었다.
무명신의에게 믿음을 준다고 한 만큼, 서준은 괜한 걱정으로 자리 를 지키지 않기로 했다.
‘차라리 잘됐어.’
지금 옥문난관, 너머에서 기다리 고 있는 에노스는 중격에 오른 신 이었다.
신의 경지에 도달한 존재와 본격 적인 전투를 치르게 된다면 주변에 여파가 상당할 것이기에, 천마신교 의 교인들을 이끌고 가기에는 너무 나도 위험했다.
그렇기에서준은 천마신교의 일 원들이 옥문난관에서 전투를 치르
는 사이, 곧장 걸음을 옮기어 운남 성, 그 중앙에 위치한 황금 지붕을 얹은 거대한 혈교의 본거지 앞에 당도했다.
눈에 보이는 면적만 수만 평이 넘는 보도 위를 당당히 걸어 나갔 고, 이윽고 제단이 자리 잡은 대궐 의 내부로 당당히 발걸음을 딛고 있던 순간이었다.
“머저리들이 말귀도 못 알아먹나 보군. 분명 내가 목만 가져오라고 했거늘……
대궐을 울리는 위엄 있는 목소리 와 함께, 에노스의 강렬한 기운이 전신 곳곳을 바늘로 찌르는 듯 따
갑게 느껴진다.
권좌 위에 몸을 뉜 에노스가 서준을 보며 비릿한 웃음을 흘린다.
“뭐, 상관없지, 목이야 직접 베어 내면 그만이니까.”
구태여, 대화를 나눌 필요도 없 었다.
대궐 내부를 가득 메우고 있는 진한 혈향과 수많은 사람의 장기들 이 널브러져 있는 제단, 피로 물든 권좌까지.
무엇 하나 불쾌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서준의 손에 의념강기가 응집되
었고, 내뻗어진다.
쾅-!
폭발과 함께 붉게 물든 제단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황금으로 만든 혈교의 권좌 또한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한시라도 더 빠르게 죽고 싶다 고 애원을 하는데, 내가 청을 들어 주지 않을 수가 없겠구나-!!”
에노스의 목소리가 이어 머리 위 에서 들려온다.
그러고는 에노스의 검 끝에 실려 있던 의념강기들이 한여름의 폭우 처럼 쏟아져 내린다.
‘팔경성보.’
서준의 신형이 바람에 휘감기며 쏟아지는 의념강기들을 회피해낸다.
그러나 에노스의 신형이 그 뒤를 바짝 쫓아온다.
“잔재주 부려 봤자다-!”
뻗어진 검격이 서준의 옷깃을 자 른 후, 거대한 대궐의 벽면을 세로 로 갈라놓았다.
쿠구궁-!
대궐이 무너지는 소리와 혼란을 틈타, 발을 놀린 서준이 에노스와 의 거리를 좁혀 주먹을 내뻗는다.
손끝에 감각이 닿았다 싶은 순 간, 에노스의 모습이 마치 환영처 럼 사라지고, 홑어진다.
....
움직임을 놓쳤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준의 몸 이 채 반응하지 못할 때였다.
“느리구나.”
둥 뒤에서 섬뜩한 에노스의 음성 이 들려온다.
다소 놀라운 움직임이었지만, 당 황할 것은 없었다.
‘단순 육신의 차이일 뿐.’
서준에게는 그 간극을 메꿀 방법 이 존재했다.
[투신(하급) 신명 효과가 발동됩 니다!]
[자신보다 강한 적을 만나, 모든 스테이터스가 2배 증가합니다!]
스테이터스가 폭발적으로 중가하 는 순간, 에노스의 움직임이 시야 에 훤히 들어오고 읽힌다.
움직임을 읽어낼 수 있다면 전투 에서 밀릴 이유가 전혀 없었다.
가늘어진 서준의 눈매가 에노스 의 움직임을 낱낱이 포착했다.
날아오던 검이 내뻗어지기 전 오 른손으로 손등을 쳐내고, 남은 왼 손으로 에노스의 가슴팍을 가격한 다.
쾅-!
순식간에 제공권을 되찾아내는 서준의 매서운 움직임에 에노스의 눈가에 진한 흥미가 깃든다.
“호오? 단순히 벌레는 아닌가 보 군.”
“너도 생각했던 것보다는 제법이 네.”
한 번의 짧은 격돌이었지만 공방 을 이었던 만큼, 상대의 수준을 가 늠하기에는 충분했다.
에노스는 앞서 상대했던 아파테 시스나 고르고처럼 무늬만 신에 도 달한 존재가 아니었다.
거대한 기운은 말할 것도 없었으 며, 그를 다뤄내는 전투 기술 자체 도 굉장히 뛰어났고, 잘 정립된 편 이었다.
지구로 귀환한 이후 만났던 존재 중 가장 강력한 자라는 말이었다.
물론, 패배는 염두에도 없었다.
‘그래 봤자 결국 중격의 신.’
마선 시절의 서준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강력한 강자, 지고한 신격 을 가진 존재들과의 전투에서도 수 없이 승리해냈기 때문이었다.
고작 중격의 신인 에노스에게 겁 먹을 리가 만무했다.
오히려 서준의 입가에는 피식-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지루하지는 않겠네.’
벨리드, 혈교가 불쾌하고 정리해 야 된다는 생각으로 이 자리에 당 도한 것이었지만 서준의 근간은 무 인 (武人) 이었다.
무(武)를 나누는 행위 그 자체를 즐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신격의 싸움 을 즐길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되었 는데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겠는 가?
자연스레 서준의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피어났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