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권 5화
155화
서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흐 른다.
“이제야 조금 주제를 안 것 같 네.”
단 한 번 기세를 맛보게 해준 것 이었지만, 옥문혈마와 악비혈마 두 사람 전부 현경에 이른 고수였기에서준과의 아득한 격(格)의 차이를 여과 없이 느끼고 말았다.
‘이건 대체……
‘이게 정녕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압력이란 말인가?’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 머릿속 은 혼란해지고 몸은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리기 시작한다.
신(神)의 영역을 논하고자 하는 혈교의 수장, 일월대마조차 이런 존재감을 가지지 못했다.
무언가 일이 잘못되었음을 인지 한 옥문혈마와 악비혈마는 서로 시 선을 교환하며 눈치를 본다.
눈동자로 서로의 의사를 확인한 옥문혈마와 악비혈마가 황급히 등 을 돌리고 자리를 벗어나려던 순간
이었다.
“뛰어봤자 벼룩, 날아봤자 내 손 바닥 안인 것을 알 텐데. 헛고생하 지 말라고.”
서준의 압도적인 힘을 피부로, 혈관으로 느낀 두 사람이었기에 누 구도 함부로 발을 떼지 못한다.
꿀꺽-
결국, 마른침을 겨우 삼키며 눈 치를 보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 다.
서서히 몸을 옥죄여오는 압박감 과 공포에 옥문혈마와 악비혈마의
얼굴빛이 사색이 되어가던 찰나였 다.
“그래, 내가 특별히 너희들에게 구미가 당기는 제안을 하나 해주 마.”
하늘에서 떨어진 동아줄에 두 혈 마의 눈동자에 희망이 차오르기 시 작한다.
“……감히 무엇인지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너희들이 각자 맡은 상대를 이 긴다면 살려서 보내주도록 할게.”
“저, 정말입니까?”
“믿기 싫다면 믿지 마. 단 제안
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선을 넘 은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
서준의 서슬 퍼런 말에 다시 한 번 옥문혈마와 악비혈마가 시선과 전음을 주고받기 시작한다.
눈을 찡그렸다 폈다, 대화와 고 민을 이어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 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 봐도 무 방했다.
애초에 이들 또한 알고 있을 것 이다.
‘내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 말고 는 이 상황을 벗어날 방도가 없다.’
처음부터 두 사람에게 선택권은
없었다는 말이었다.
실제로도 옥문혈마와 악비혈마의 두 눈에 강한 투지가 어리기 시작 한다.
“부디 이 약속, 꼭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한 차례 포권을 취하며 예의를 취한 두 혈마가 고개를 무명신의에 게로 향한다.
그렇게 무명신의와 두 혈마의 시 선이 허공에서 맞부딪히며 날이 선 긴장감이 일대에 내려앉는 순간이 었다.
“죽여주마!”
어느새 무명신의의 앞으로 다가 선 옥문혈마와 악비혈마는 극강기 가 둘린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에 맞춰 무명신의가 품에 숨기 고 있던 통을 꺼내고는 암기(暗器) 를 비처럼 쏟아낸다.
“옥문혈마 님과 악비혈마 님을 도와라!”
이어, 혈후단이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하려던 찰나, 서준이 아직도 다소 멍하니 서 있는 광무혈마를 바라보며 입을 연다.
“뭐 해, 안 가‘?”
“예, 예!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황급히 대답을 마친 광무혈마는 곧장 20명의 혈후단에게 달려든다.
두 사람 모두 계속되는 수련과 이동으로 다소 지쳐있는 탓에 조금 불리할 수밖에 없었지만 크게 걱정 하지 않았다.
‘원래 한계 끝에 다다른 인간은 더 강해지는 법이지.’
뒤로 물러난 서준이 팔짱을 끼며 전황을 관망한다.
‘싸움이 힘들긴 하겠다만……
일월대마가 이렇게 애써 성장 도 우미들을 보내줬는데, 허무하게 기 회를 날려 먹어서는 안 되었다.
애초에 무명신의와 광무혈마의 재능, 능력들을 고려한다면 패배를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아니, 처음부터 패배를 염두에 두거나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 다면 그들에게 제안을 건네지도 않 았을 것이었다.
결과는 이미 정해진 싸움이라는 것이었다.
혈후단(血局團).
혈교에서도 손에 꼽히는 단체이 자 천하를 공포를 떨게 했던 집단 의 정예들이 고작 반나절이 되기도 전에 다수가 쓰러져 나간다.
일방적인 패배는 아니었다.
싸움은 처절했고, 상대했던 적 또한 큰 부상을 당한 상태로 서로 절박한 상황이었다.
“허억……. 허억……
혈후단, 그리고 자신의 피를 뒤 집어써 온몸을 붉게 물들인 광무혈
마가 검을 바닥에 내리꽂으며 거친 숨을 몰아 내쉰다.
내리꽂힌 검날의 중심을 따라 핏 물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 빈틈을 놓치지 않은 혈후단 몇몇이 곧장 접근해 양팔을 크게 휘두른다.
“죽어라-!”
검날에서린 강기가 번쩍이고 광 무혈마의 목을 노리고 날아든다.
그 어디도 피할 만한 공간이 존재치 않는 완벽한 공격이었지만, 애석하게도 광무혈마의 목을 베어 내지는 못했다.
챙-!
강기가 둘러진 검날이 튀어나오 다 못해 부러진 모습에 혈후단의 눈이 커다랗게 변했다.
“극강기?!”
서준 역시 짧은 감탄을 토했다.
“오......
극강기를 만들어 냈다는 것은 전 투 도중 벽을 넘어서고는 현경의 영역에 도달했다는 말이었다.
사지를 헤매는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 일어난 기적 혹은 대운이라 볼 수 있는 경우겠지만, 어쨌든 광
무혈마는 누가 뭐라고 해도 벽을 넘어선 것이었다.
“우웨에엑-!”
제대로 준비를 갖추지 못한 채 로, 벽을 넘어서고 급히 사용한 힘 때문에 내상을 입었는지 피를 토하 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른 혈후 단의 검이 광무혈마를 향해 날아든 다.
황급히 몸을 굴려 자리를 벗어나 려 했지만, 오랫동안 고된 훈련을 받아온 정예, 혈후단은 광무혈마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쫓는 데 성
공했다.
“크아아악-!”
어깻죽지를 파고든 검날이 주는 아찔한 고통에 광무혈마의 입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온다.
“질긴 새끼야! 제발 좀 죽어라!”
혈후단의 무인 중 한 명이 질린 듯한 소리와 함께 다시금 검을 내 질러오는 순간이었다.
“뒤지는 건 내가 아닌 네놈들이 다-!”
이를 악문 광무혈마의 눈빛에 삶 에 대한 열망 그리고 진한 투지가 어린다.
강한 의지만큼이나 두껍고 거대 한 형상의 극강기가 광무혈마의 검 에 깃들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광풍혈염(狂風血炎), 필살초, 극 혈룡난무(極血龍亂舞)!”
자신이 창안한 무공은 아니었다.
서준이 펼쳤던 무공을 본 떠 모 티브를 가져온 무공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위력은 훌륭하 기 그지없었다.
화악-!
대기를 가르고 뻗어간 검의 난무 가 용의 형상을 그려내며, 혈후단
의 육신을 가르고 도륙 낸다.
“고생했다.”
서준의 치하하는 말에 광무혈마 는 피식- 미소를 홀리더니, 천 근 처럼 무거운 몸을 가누지 못하고는 바닥으로 쓰러졌다.
“감, 감사합니다……
물론, 육체의 기력이 다해 생명 을 잃은 것은 아니었다.
내상을 입고, 기존의 한계를 넘 어선 힘을 발휘한 만큼 육체와 정 신력이 그를 감당하지 못한 것뿐이 었다.
“고생 많았어. 오늘은 그만 쉬어
도 좋다.”
어느덧, 광무혈마의 옆으로 다가 선 서준이 손가락을 빠르게 놀려 회복술을 펼친다.
하얗게 질려 사색이었던 광무혈 마의 안색이 생기가 돌기 시작하고 는 빠르게 활기를 되찾아나간다.
광무혈마의 치료를 마친 서준은 옥문혈마와 악비혈마를 홀로 상대 하고 있는 무명신의를 바라보았다.
“저쪽도 마냥 쉽지만은 않나 보 네.”
무공의 경지만 보자면 무명신의 가 한 단계 더 높았다.
그러나 옥문혈마와 악비혈마는 오랜 시간 합을 맞춰 온 사이인 탓 인지, 공수의 전환, 연격이 물 흐르 듯이 이어지고 있었다.
‘저런 수준급의 연계면 이제 갓 반신에 오른 무명신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버거울 수밖에 없지.’
심지어 무명신의는 앞의 수련과 이동으로 많이 지친 것인지, 평소 와 달리 움직임이 상당히 둔해져있었다.
아니, 애초에 무명신의는 전투계 가 아니었다.
무공과 내공을 사용하긴 하였지
만, 전투를 일삼는 일반적인 무인 들과 달리 치료를 전문으로 두는 의원에 가까운 자였다.
기존의 무인들처럼 이런 공방을 주고받는 것이 다소 익숙지 않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도 무명신의는 처음에는 연신 공격을 허용했고, 옷이 찢기 고 자상들이 줄지어 생겨난 상태였 다.
“그래도 걱정할 정도는 아니네.”
시간이 지날수록 격차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어느새 두 혈마의 합 공에도 밀리지 않으며 대등함을 유
지하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무명신의……. 역시 천재라 불릴 만한 재능이야.’
바로 얼마 전 익혔던 힘을 다뤄 내는 방식을 전투 도중 학습하고 습득해내고 있었다.
이제는 완연한 반신의 경지에 이 르러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빠른 속도로 극강기를 빚어내고, 수십에 달하는 암기들에 불어넣고 있었다.
전투를 이어가던 두 혈마의 눈동 자에 경악이 어리는 게 훤히 보이
기 시작한다.
“지쳐! 제발 지치란 말이다!”
“우리를 위해 희생하란 말이다!”
서준은 무명신의에게 아직 반신 의 장점, 단전들의 이용 방법과 효 율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아직은 이르다고 판단을 했기 때 문이었다.
그러나, 짧은 싸움 동안 무명신 의는 빠른 속도로 성장을 했고, 스 스로 수많은 단전의 활용법을 확실 히 이해하고 학습을 해나가기 시작 한다.
실제로도 무명신의가 사출하는 암기에 불어넣는 극강기의 숫자가 빠른 속도로 늘어가기 시작한다.
다소 무식하긴 하였지만, 많은 내공을 확실하게 사용할 수 있는 만큼 서준이 보기에도 제법 괜찮은 운용법이었다.
“이렇게 되면 곧 결과가 나오겠 네.”
지금 무명신의는 반신에 이른 강 자였다.
처음부터 고작 현경밖에 이르지 못한 옥문혈마와 악비혈마가 상대 하기에는 벅찬 상대였다.
지금처럼 무명신의가 전투 중, 힘을 다루는 법을 알아가고 익숙해 져 가고 있다면, 승자는 정해져 있 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잉-
무명신의의 품에서, 허공으로 사 출된 암기들 하나하나에 칠흑빛 강 기가 어리기 시작한다.
“말도 안 되는…… 이렇게 내 공이 많을 수 있다고?”
구태여 결과를 볼 필요도 없었다.
승자가 정해졌다.
서준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이 었다.
때마침, 무명신의의 눈동자가 반 짝이며 가진 암기들을 모두 펼쳐낸 다.
“천수천안(千手千眼)!”
사방으로 뻗어진 칠흑빛 극강기 가 둘러진 암기들이 하늘을 뒤덮어 옥문혈마와 악비혈마의 머리 위로 폭우처럼 쏟아져 내렸다.
“훌륭해.”
서준의 입가에 피식- 미소가 흐 른다.
중원 제패 때 당시, 사천당가의 서패왕(西W王), 당화용이 펼쳤던 만천화우와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뻗어지는 암기들의 숫자 와, 둘린 극강기의 위력이 엄청난 만큼 만천화우와는 파괴력이 궤를 달리한다.
흡사, 강화판 만천화우를 보는 것 같았다.
눈을 휘둥그레 뜬 옥문혈마와 악 비혈마가 극강기가 둘린 병장기를 휘두르며 받아치려 하였지만, 쏟아 지는 폭우를 겨우 손 가리개로 모 두 막아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단전이 수십 개라도 된단 말인 가?!”
“대체 내공이 몇 갑자나 되기 에……. 아아아악-!”
쏟아진 극강기의 폭우를 피하지 못한 옥문혈마와 악비혈마의 육체 는 벌집이 되어 끝내는 바닥에 쓰 러졌다.
굳이 상태를 확인해볼 것도 없는 즉사였다.
치열했던 싸움의 승자가 마침내 정해졌다는 말이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