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권 1화
151화
“크읍......
복부에서 밀려오는 아찔한 고통 에 정신이 나가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 느껴지는 고통 따위 는 사실, 아무것도 아니었다.
‘괴, 괴물……
눈앞의 한서준의 모습은 흡사 사 신(死神)과 같았고 거대한 낫을 들 고 자기 목덜미를 반 틈 정도 파고 드는 것 같은 환상마저 보이는 듯
현 중원 대륙의 지배자이자 혈교 의 주인인 총대교주를 처음 마주했 을 때도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 었다.
그저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전신을 억누르는 압박감과 차오르는 공포심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당장 이라도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혁운은 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아니, 벗어날 수 없었다.
‘내, 내가 어떻게 일궈낸 자리인 데.’
혁운이 혈풍단장에 오를 수 있었 던 것은 뛰어난 재능은 말할 것도 없었고, 강한 탐욕만큼이나 갖은 노력들을 해왔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혁운은 중원 대륙을 지배 하고 있는 혈교, 그곳에서도 혈풍 단장이라는 명망 있는 직위를 얻을 수 있었을뿐더러, 누구에게도 꿀리 지 않는 강력한 육신과 마의 유혹 에 이끌리지 않는 탈마(脫魔)의 경 지에 이른 강인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었다.
끝을 모르는 탐욕, 강한 육신과 정신력이 지금 혁운을 버티게 했다.
‘존재감에 속지 마라. 견뎌, 버티 는 거다!’
단순히 발 하나 디딘 것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뿜어지는 무 게감과 압박은 실로 경이롭다고밖 에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허(虛)인지 실 (實)인지는 무력을 직접 다퉈 봐야 하는 것이었다.
물론, 천마 한서준은 중원 대륙 의 패권을 쥐어 잡은 전설로 회자 되고 있었다고는 하나, 대부분의 이야기는 과장되고 와전되기 마련 이었다.
‘아니, 애초에 천마 한서준도 구 시대의 유물에 불과하다……
지금 중원 대륙의 패자는 누가 뭐라 해도 자신들, 혈교(血敎)였다.
실제로도 이미 중원 대륙의 모든 문파뿐만 아니라, 관군들마저 혈교 의 이름하에 무릎 꿇지 않았는가?
눈앞의 존재가 강한 것은 부정할 수는 없었으나, 싸워보지도 않고 지 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이건 기회이기도 하다.’
눈앞의 천마 한서준을 쓰러뜨려 낸다면 과거의 허영(虛榮)을 밀어 내고 진정한 대혈교의 시대를 열
수 있는 도화선이 될 것이었다.
마음에서 일어난 탐욕이 공포심 을 몰아내 투지를 되살렸다.
계속해서 혁운을 응시하고 있던 만큼 서준은 그 변화를 눈치챘다.
“천마여래의 압박을 극복해낸 거 야‘?”
“네놈의 간악한 수는 다 파악했 다. 더는 나에게 그런 잔재주는 통 하지 않는다!!”
말뿐인 허세가 아니었다.
자세를 다잡은 혁운의 기세는 상 당히 훌륭한 편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대가 좋지 못 했다.
아직 인간의 영역에 들어서 있는 혁운이 신(神)에 도달한서준을 상 대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방금 혁운이 천마여래를 밀어낼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서준이 손속에 자비를 두었기 때문이었다.
가늠해보았을 때, 혁운의 경지는 현경.
그것은 과거, 중원 대륙 내에서 도 손꼽히는 상당한 강자라고 말할 수 있었기에 혈풍대는 혈교 내에서
도 중요하면서도 상당한 전력을 차 지하는 집단인 것을 반증했다.
달리 말하자면 혈풍대, 혈풍단장 을 쓰러뜨리는 것은 천마신교의 부 활을 알리기에는 안성맞춤인 제물 이라는 것이었다.
서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피 어난다.
“그렇게까지 자신 있다면, 어디 한번 이것도 받아내 봐.”
사실, 어떤 무공을 쓰더라도 혁 운을 단번에 쓰러뜨릴 자신이 있었다.
인간과 신, 말 그대로 차이가 하
늘과 땅 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 었기에 삼재검법과 같은 무공 따위 로도 혁운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삼재검법을 사용할 생각은 없었다.
선전을 기대하기 위해서라도 써 야 할 무공은 정해져 있었다.
천마신교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천마의 무공, 그중에서도 가장 화 려하면서도 눈에 띄는 것을 펼칠 필요가 있었다.
생각이 닿자 자연스레 몸이 움직 인다.
두 다리는 어깨너비만큼 벌려지
고, 두 팔을 가슴 앞으로 가져다 대 주먹을 말아 쥔다.
내뻗고 있는 주먹 위로 만물을 내려다보는 천마의 힘이자 중원 대 륙을 제패했던 패왕(B王)의 기운 이 어리기 시작한다.
서준의 주먹에 모여든 막대한 양 의 내공과 힘에 일대가 비명을 토 해내기 시작했다.
쿠구궁....
“내가 전처럼 멍하니 서 있을 것 이라 생각한 것이냐?!”
두 번이나 같은 실수를 반복할 생각은 없었다.
곧, 극강기가 둘린 검날이 서준 의 목을 노리고 날아든다.
올바른 판단이었지만, 서준의 속 도들을 쫓아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주먹에 둘린 힘은 삽시간에 응집 되고 부풀어가며 덩치를 키워나간 다.
어느덧 거대한 묵색의 구체가 완 연한 형상을 갖추어 내더니, 모여 든 기운에서 불길이 치솟는다.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서준이 손을 앞으로 내민다.
“파천수라권 절초, 극흑염룡권(極 黑炎龍 초).”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이 무공 의 모티브는 용.
신성하고 장엄하기로는 둘도 없 는 무공이었기에 지금 서준이 가장 바라는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무공 이라는 말이었다.
주먹에 둘려 있던 내공에서 불꽃 이 일어나 이윽고 마룡(魔龍)의 형 태를 취하는 순간, 서준은 망설임 없이 오른팔을 앞으로 내뻗는다.
쾅-!
무섭게 쏘아지고 있는 혁운의 검 날에 어린 극강기와 서준의 주먹, 염마룡이 맞부딪친다.
일반적인 극강기와 의지가 담긴 기운.
결과를 볼 필요도 없었다.
쩌저적-!
극강기가 흩어지고, 검날에 금이 가며 부서져 내리기 시작한다.
강기의 끝이라는 극강기를 재로 만들어 버린 무공의 위력에 혁운의 입에서 경악이 터져 나온다.
“의념기……?!”
경악을 금치 못하는 혁운을 비릿 한 미소를 띤 채로 바라보고 있던 서준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이제는 주제를 좀 알겠지?”
피식 홀린 서준이 왼손을 내뻗어 그대로 혁운의 멱살을 쥐어 잡고, 바닥에 내리찍었다.
쾅-!
굉음과 함께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길 만큼 거대한 충격이 일대를 휩쓸었다.
당연하지만, 혁운의 육신이 온전 할 리가 만무했다.
“커헙-!”
온몸의 뼈가 으스러지는 감각과 함께, 아득한 고통이 밀려온다.
그러나 이 고통은 시작에 불과한 것이었다.
비릿한 미소를 지은 서준이 가볍 게 발을 놀리며 혁운의 바로 앞으로 다가선다.
“오, 오지 마!!”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천마의 이름은 과거의 허영 따위 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과소평가되고 있었다.
천마, 한서준은 감히 인간의 상 식과 시선으로는 평가할 수 없는
존재였다.
“괴, 괴물!”
숨이 턱- 하고 막혀올 정도의 공 포감에 혁운이 팔과 다리로 바닥을 기어가듯 도망치려 했다.
그러나 혁운이 전력을 다해도 벗 어날 수 없는 서준을 상대로 육신 과 정신이 무너진 채로 서준의 손 아귀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서서히 좁혀지는 거리에 혁운의 전신이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려온 다.
“잘, 잘못했습니다. 제발 목숨만
은 살려주십쇼!”
혁운이 체면을 모두 버린 채로 서준의 발끝을 잡고 애원했다.
“걱정하지 마. 죽이지는 않을 거 니까.”
천마신교의 부활을 알리는 포고 가 확실하게 퍼지기 위해서는 혁운 은 반드시 살아있어 줘야 했다.
물론, 당연하게도 몸 성히 살려 둘 생각은 없었다.
대륙 전체에 이름을 날리고 있던 현경의 고수가 반폐인이 되어 몰락 해가는 모습을 똑똑히 세상에 보여 주고 공포를 심어 줄 생각이었다.
어느덧, 혁운의 앞에 당도한 서준의 손에는 회색빛 기운이 일렁거 렸다.
퍼억-!
회색빛 기운이 서려있는 서준의 팔이 아랫배를 가격하는 순간, 혁 운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끄으읍-!”
고통에 몸부림을 치던 혁운은 얼 마 가지 못하고, 의식을 완전히 잃 어 바닥에 고꾸라진다.
경지의 차이가 아득한 탓에 내공 이 상대적으로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만큼 흡성대법을 통하여 혁
운으로부터 홉수된 내공의 양은 시 스템 창에 표기되지도 못할 정도로 미미하기 그지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아쉬워할 것은 없었다.
애초에, 서준이 바라던 것은 이 런 내공 따위를 얻기 위함이 아니 었다.
천마신교의 화려한 부활, 그리고 귀주를 찾아온 결정적인 이유.
“무명신의……
널브러져 있는 혁운의 신형을 들 어 올리고 있는 서준의 손가락에서 므네모시아의 염 반지가 빛을 발산 하기 시작했다.
10년 전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던 천마, 한서준의 재림.
서준은 말 그대로 중원 대륙에서 전설, 신화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많은 이야기를 써놓고 간 존재였다.
그러나 끊임없이 흐르는 장강의 뒤 물결은 앞 물결을 밀어내는 법
이었다.
실제로도 과거 천마, 한서준이 활 동하던 시절에 비해서 중원 대륙의 무인들은 많은 성장을 이루어냈다.
특히 그중에서 가장 큰 성장을 보인 것은 누가 뭐라 해도 혈교의 무인들이 었다.
“그런데 대체 이게 무슨……
과거 천마, 한서준의 명성, 위용 들을 직접 봤었기에서준이 패배하 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대인 혈풍단장 혁운은 혈교 내에서도 서열 5위 안에 드는 초강자로 현경의 경지에 오른 고수
였고, 쉽게 승리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두 눈으로 직접 지켜본 결과에 광무혈마는 놀람을 숨기지 못했다.
‘과거보다 더 성장하셨다고?’
측근으로서 서준이 싸우는 모습, 펼치는 의념기를 보아왔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지 않는가?
지금의 경지로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방금 전의 염마룡은 전 에서준이 펼쳤던 의념기들보다 한
층 더 정교한 위용을 보이고 있었다.
자연스레 광무혈마의 두 눈에 희 망이 어린다.
‘드, 드디어 혈교 놈들의 손아귀 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일전에도 이야기했었지만, 광무 혈마는 스스로가 원해서 혈교에 발 을 들인 것이 아니었고 마지못해 억지로 가입한 것에 불과했다.
물론, 과거에도 혈교였고 서준한 테도 억지로 잡혀 일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능력과 직급에 걸맞은 대우 와 존중을 해줬기에 큰 불만 없이
따랐고 본인이 좋아서 일을 자행했 었다.
하지만 지금의 혈교, 정확히 말 하면 총대교주란 자는 미치광이에 가까웠다.
피, 인신공양을 숭배하고 집착하 는 광기에 잡아먹힌 괴물이었다.
절대로 엮이고 싶지 않았지만, 혈교에 인질로 잡혀있는 가족들과 지인들 때문에 억지로 명령을 따르 고 있을 뿐이었다.
실제로도 혈교와 엮이고 싶지 않 아, 사 대 금지라 불리는 지옥에서 근무를 자처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런 고생 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진정한 중원의 패자이자 광무혈 마의 진정한 주인.
최강이라 불렸던 천마, 한서준이 더 강해져 되돌아왔다.
힘으로 눌러지고 마지못해 명령 을 따르게 되는 일 따위 이제 없어 질 것이라는 말이었다.
천마, 한서준이라는 희망을 본 광무혈마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우 렁찬 소리가 터져 나온다.
“천마신교 만세, 만만세!”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