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권 19화
144화
죽음의 땅이라 불리는 북한 영 토.
그곳에 생긴 연합의 본부 앞에 새하얀 빛의 날개를 자랑하는 무리 들이 도열해 있었다.
예고도 없이 돌연 군대를 이끌고 모습을 드러낸 천사들 때문에 북한 수복을 위해 대기 중이던 연합군에 긴장이 고조돼, 숨조차 조심스럽게 뱉을 정도로 무거운 공기가 일대에 내리깔렸다.
그렇게 두 개의 군대가 서로를 마주한 채로 긴장감이 극에 달해가 던 찰나, 군단의 중심에서 있던 존재, 세 쌍의 날개를 가진 천사가 입을 연다.
[차원 단위의 반역, 즉각 처형하 는 것이 응당 옳으나, 친히 이 몸, 치천사 라구엘이 너희들의 무지몽 매함을 특별히 사면해 선택의 기회 를 주도록 하겠다.]
분명, 아주 작게, 그리고 낮게 읊 조리고 있었지만, 세상은 신의 영 역에 도달해 있는 라구엘을 지배자 로 받들어 그 소리를 뇌리에 박힐 만큼 선명하게 전한다.
[한서준, 그는 악이고 어리석은 자다. 그대들은 여태껏 선동당하고 있었다! 우리 천사는 선(善)을 지향 하고 수호하는 존재. 욕심 많은 인 간이 개인의 부와 명예를 위해 그 대들을 이용하고 있을 뿐이란 말이 다.]
인간, 엘프, 수인족까지 모두 보 고 겪은 상황이 있었기에 지금 라 구엘이 내뱉는 말 전부가 헛소리라 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말에 실려 있는 무게감과 아주 오랜 과거부터 세뇌에 가까운 교육을 받은 탓에 생긴 각인된 공 포심은 몸을 사고와 다르게 움직이
게 했다.
[누구보다도 그대들이 잘 알고 있을 터. 안식과 안녕, 안전을 위해 서 우리 천사를, 트리니티를 따라 야 한다는 것을!]
땅을 딛고 있던 두 다리, 병장기 를 다잡고 있던 두 손이 떨려온다.
퍼져나가는 공포를 확인한 라구 엘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흐른다.
[천사야말로 종족의 으뜸, 드높아 우러러보아야 할 존재. 지금 느끼 는 공포와 경배의 감정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니 그대들은 숨기 려 하지 말라. 본능에 충실하라. 한
서준을 죽이고 용서를 구해 구원받 도록 하라!]
라구엘의 말에 담긴 항거할 수 없는 세뇌가 퍼져나간다.
천사들과 대치하고 있던 연합군 들의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리기 시 작한다.
[바로 그 자세다! 무기를 돌리고 한서준을…….]
라구엘이 커져 가는 동요를 분열 로 만들기 위하여 마지막 쐐기를 박아 넣고 있던 찰나였다.
지잉-
한 줄기의 섬광이 라구엘을 향해
쇄도한다.
물론, 신의 영역에 도달해 있는 라구엘의 입장에서는 아주 하찮은 공격이었다.
고작 손짓 한 번으로 공격을 흩 어낼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기분의 문제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천사 중의 천사인 자신을 향해 날아온 공격 때문에 “전도”의 마지 막 말을 끊긴 셈이었으니 말이다.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이윽고 라구엘의 미간이 찌푸려 진다.
[무슨 짓이지?]
살기를 내뿜지는 않았다.
그러나 신의 영역에 발을 들인 존재였기에 말 하나하나, 시선에 담겨있는 무게가 차원이 다른 법이 었다.
단순히 말을 내뱉는 것만으로도 연합군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말에 어린 힘과 살의가 분명히 전달된 탓이다.
주변을 지키던 경호원이자, 각성 자들이 본연의 임무조차 잊은 채로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남자, 경호 의 호칭을 부르며 당혹을 표하고
있었다.
“회, 회장님……?”
항거할 수 없는 공포에 억눌린 것은 비단 경호원들뿐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라구엘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내고 있는 경호는 그 부담 감이 더 심했다.
실제로도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겁에 질려 꼬리를 말 바 에는, 죽기를 택한 것이었다.
오히려 상쾌해진 듯, 우렁찬 목 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역겨운 비둘기! 너희들의 더러 운 입에 형님의 이름을 올리지 마 라!”
일순간에 집중된 수천 개의 시선 과 라구엘을 비롯한 천사 군단이 쏘아내는 살기에 살이 어릴 정도였 지만 경호의 입은 멈추지 않는다.
“형님은 더러운 세뇌로 타 종족 을 지배하려 드는 역겨운 놈들이 함부로 평가할 분이 아니야!”
경호의 외침이 마침내 연합군의 흔들리던 마음을 잡아주고 일깨운 다.
“그, 그래! 인왕께서는 너희같이
필요에 따라 차별하지 않는다고!”
“위선에 더 이상 속지 않겠어!”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하지 않는가?
연합군은 전보다 더 우렁차게 그리고 강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는 더 이상 네놈들의 가축 으로 남지 않겠어! 썩 물러가라 -II”
“이 땅에서 물러가라!”
솟구치는 비난에 라구엘의 미간 이 찌푸려진다.
[벌레들이.... 주제를 모르고 마
지막 기회마저 제 발로 걷어차 버 리는구나.]
라구엘은 팔을 내뻗어 손바닥 위 에 기를 응집시켰다.
노골적인 공격 자세였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라구엘의 속도를 포착 할 수 있는 강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응집된 순백의 기운이 고래고래 소리를 내지르고 있는 연합군의 머 리 위로 떨어지려던 순간.
쌔액-!
갑작스레 몰아친 바람이 라구엘 이 쏘아낸 공격을 튕겨낸다.
쿠웅…….
저 멀리에서도 땅이 뒤흔들릴 만 큼 위력이 강한 공격에 생겨난 크 레이터의 모습에 연합군이 식은땀 을 흘렸다.
“이게 무슨?”
저도 모르게 의문을 흘려내고 있 었지만, 머릿속에는 이미 답이 내 려진 상태였다.
인지조차 할 수 없었던, 라구엘 의 공격을 이리 쉽게 떨쳐낼 수 있 는 존재는 단 한 명뿐이었기 때문 이다.
“고생 많았다.”
바람에 실려 온 따뜻한 목소리에 경호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피어난 다.
“형님!”
경호의 격한 반가움에 대답 대신 미소로 화답을 한 뒤 서준이 고개 를 돌린다.
라구엘에게 고개를 돌린 서준의 얼굴에 머물던 미소는 일절 존재하 지 않았다.
겨울 칼바람보다도 시린 차가운 눈동자가 라구엘과 천사 군대로 향 한다.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발을
붙인 거지.”
서준이 내뿜는 서린 존재감이 라 구엘의 말에 어려 있던 힘을 밀어 낸다.
뒤이어, 라구엘의 압박에 연합군 의 창백했던 안색이 활기를 되찾기 시작한다.
“인, 인왕!!”
“한서준 각성자님이 오셨다!!”
몸에 각인된 공포를 밀어내고, 사기를 되찾는 연합군에 라구엘의 미간이 와락- 일그러졌다.
바람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서준 의 신형에 라구엘이 가늘어진 눈매 로 뒤편에서 있던 사키엘을 쏘아 본다.
[어째서 거짓을 고한 것이지?]
처음 보고를 올렸을 때 거짓을 고한 것은, 성흔의 계약에 묶여 어 쩔 수 없었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성흔의 계약은 라구엘 자신도 함 부로 거역할 수 없는 힘이었기 때 문이었다.
그러나 치천사장의 도움을 받아 계약을 강제로 끊어내 자유를 찾는 데 성공하지 않았는가?
[감히 네놈이 지금 나를 능멸한 것이냐?]
라구엘의 살이 베일 것 같은 살 기에 사키엘이 황급히 손사래를 치 며 부정한다.
“억, 억울합니다! 저는 한 치의 거짓도 고한 적이 없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그럼 하등종인 인간이 불과 일 주일도 되지 않아 반신에서 신의 영역에 도달했다는 거냐?]
차마 긍정적인 대답을 꺼낼 수 없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천 사족의 오랜 역사상에도 불과 며칠 만에 신의 영역에 도달한 자는 없 었기 때문이었다.
그 위대하다는 천신조차도 말이 다.
그렇기에 여기서 긍정을 해버리 면 고작 한낱 인간이 천신의 위용 을 뛰어넘었다고 인정하는 신성모
독과 다를 바가 없는 꼴이었다.
천법(天法)에서도 천신을 욕되게 하는, 즉, 신성모독은 중죄 중의 중 죄로 사형을 면치 못하는 일이었기 에 사키엘이 함부로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결국, 사키엘이 이러지도 저러지 도 못하는 도중, 라구엘이 고개를 내저었다.
[쯧쯧, 반푼이에 불과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지만 설마 적의 수준조 차 제대로 가늠하지 못하다니, 이 렇게 쓸모가 없어서야.]
“죄, 죄송합니다!!”
혀를 차며 아니꼬운 시선으로 보 는 라구엘의 모습에 사키엘은 정말 미칠 정도로 억울하고 울화가 치밀 었지만, 어차피 이건 한순간의 억 압에 불과했다.
예기치 못한 변수에 발목이 잡히 긴 했지만, 라구엘을 통해 군단을 움직였듯이 사키엘은 특유의 언변 이 있는 천사였다.
‘저 인간 놈만 처치하면 얼마든 지 다시 비상할 수 있다.’
우주의 역사상 찾아볼 수 없는 위대한 성장 속도가 실로 믿기지 않을 정도로 대단했으나, 그래 보
아야 하급 신에 불과했다.
‘라구엘 님을 이길 수는 없을 거 다.’
같은 수준이라면 숙련도의 차이, 그리고 기본적인 종족값이라는 육 체 능력이 뛰어난 쪽이 유리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두 가지 사항 모두 라구 엘이 압도적이었다.
‘승자는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 이다.’
라구엘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다 소 짜증을 냈을 뿐, 패배는 아예 상정하지도 않은 듯했다.
아니, 오히려 자신감이 넘쳤다.
[네놈의 죄는 일단 저 벌레를 처 리한 후에 묻도록 하지.]
세 쌍의 날개를 활짝 펼친 라구 엘이 당당한 자태로 비행을 시작하 며, 천사들의 선두에 나선다.
이에 맞춰 라구엘을 응시하고 있 던 서준도 천천히 연합군의 선두로 발걸음을 옮긴다.
[인왕이라 불리는 존재여, 어디 한번 실력……!]
걸음을 옮기는 서준의 모습을 바 라보고 있는 라구엘이 여유 넘치는 미소를 흘리며 입을 열고 있었지만,
말을 끝맺지는 못했다.
타박.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서준의 발 걸음이 일곱 번 땅에 닿는 순간이 었다.
쐐에에엑-!
바람 소리, 아니 그보다 더 빠르 게 움직인 서준의 신형이 어느덧 라구엘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뭐 하냐?”
눈을 휘둥그레 뜬 라구엘이 황급 히 자세를 다잡으려 하였지만, 음 속의 영역에 도달해 있는 서준의
움직임을 쫓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퍼억-!
무방비로 공격을 맞은 라구엘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커헙—!]
신의 영역에 오른 뒤로 처음 느 껴보는 고통이라는 감각에 라구엘 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게 무슨……?!’
단순히 지금 느껴지는 고통이라 는 감각이 문제가 아니었다.
눈앞의 인간은 상상하고 예상했 던 것처럼 이제 갓 하급 신위에 오
른 얼뜨기가 아니었다.
온전히 신의 영역에 다다른 힘을 십분 활용해 음속의 움직임을 보이 고 있었다.
‘인간이 신의 영역에 도달한 힘 을 이리 훌륭하게 다뤄낼 수 있다 고?’
두 눈으로 보았지만, 도저히 믿 을 수 없기에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부정들이 무색하게 도 라구엘의 생각은 오래갈 수 없 었다.
“어딜 보냐?”
다시 한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오고 고통이 밀려온다.
[꺼어억…….]
한 번은 우연, 그것도 아니면, 본 인의 착각이라고 치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두 번이나 연속된 상황은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현실을 직시하고 눈앞의 서준의 제대로 된 위엄을 마주하게 되자, 라구엘의 두 눈동자가 거세게 흔들 리기 시작한다.
‘말도 안 돼.’
고작 하등종, 한낱 인간 주제에 여태껏 상대해왔던 하등종이 아닌, 그 모든 종족의 으뜸, 먹이 사슬의 정점, 최상위 종.
그중에서도 우주의 시작부터 군 림을 해왔다는 용족(龍族)만이 가 질 수 있다는 위세를 내뿜고 있었 기 때문이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