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권 12화
137화
이마 위로 길게 뻗은 두 쌍의 뿔 이 뿜어내는 위압감이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늪에 가라앉는 것처럼 숨 이 막히고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다.
그런 압도를 지닌 존재의 미간이 별안간 구겨졌다.
[제일, 제이 군단의 군단장이란 것들이 아직 입구조차 정리를 끝내 지 못한 건가?]
내뱉은 말에 실린 카리스마부터
가 달랐다.
말에 담긴 무게가 일대 생명체의 어깨를 마구잡이로 짓눌렀다.
그 지배적인 위용에 일대의 마물 과 엘프들은 말할 것도 없었고, 대 악마라 불리고 있는 존재들마저 고 개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고르고 님. 예상치 못했던 변수가 하나 존재하여…….]
오만함이 몸에 배어있던 아파테 시스의 급공손해진 태도에 추측은 점점 확신으로 변해간다.
‘고르고……. 놈이 이 군단의 사 령관.’
이 일대를 중심으로 존재하는 모 든 기운이 마치 고르고를 숭배하듯 따르고 있다.
고르고가 시선을 주면 누구 먼저 할 것 없이 자동으로 눈을 깔고 조 아렸고 그가 발을 내딛는 자리에는 어느 하나 시킨 적이 없어도 그가 편할 수 있도록 형태를 바꾸어 받 들었다.
서준도 한때 그 경지에 도달했었 기에 알 수 있었다.
‘신의 경지……
비록 초입에서 그친 것처럼 보였 으나, 엄연히 반쪽이 아닌 완전한
신의 영역.
천하를 넘어 역사에 이름을 새기 는 절대적 수준이 바로 고르고가 발을 들인 경지였다.
서준이 고르고의 전력을 파악하 고 있던 찰나, 고르고 또한서준을 흘겼다.
[호오?]
고르고의 눈동자에 진한 호기심 이 어린다.
신(神)의 경지에 오른 존재이자 판데모니움, 그중에서도 탐욕의 근 원을 쥔 마몬의 수많은 군단을 통 솔하는 사령관.
대악마들조차 고개를 조아리기 바빴던 자신을 고작 인간인 서준이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그것도 고개를 빳빳이 세운 채로 말이다.
[너무 간만의 상황이라 적응이 안 되는군.]
이런 무모를 얼마 만에 본단 말 인가?
자연스레 심장 한구석에서 탐욕 이 일어난다.
[탐이 나, 아주 탐나는 인간이야.]
그러나, 이내 고르고는 흐르는
침을 닦고는 아쉽다는 듯 말했다.
[마몬 님의 명만 아니었으면 내 가 거두어 길러주었을 텐데……. 아쉽게 됐군. 너희들이 알아서 처 리하도록 해라.]
말을 끝맺은 직후 고르고의 신형 이 검은빛에 감싸지더니 앞으로 길 게 쏘아졌다.
‘저긴?’
에우레시아의 거처, 세계수의 핵 이 있는 방향이었다.
놀란 서준이 황급히 발을 놀리며 뒤쫓아 가려 했지만, 아파테시스의 검날이 서준이 가는 길을 베어내고
막아낸다.
[감히……. 나를 두고 한눈을 팔 려고 하는 것이냐?]
고르고가 신의 경지에 오른 강적 이라지만, 눈앞의 아파테시스 또한 반신 내의 벽을 넘어선 강자였다.
한눈을 팔며 상대할 정도의 약자 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조바심을 보여 빈틈을 보여서도 안 됐다.
‘왕의 처소를 지키는 엘프들도 있고, 세계수의 비호를 받는 에우 레시아 정도면 시간 정도는 끌 수 있겠지.’
무책임한 낙관론이 아니었다.
엘프와의 인연은 그리 깊지는 않 았으나, 한번 약속한 것은 지키는 것이 서준이었고 그에 책임을 느끼 고 있었다.
‘반드시 지켜주겠어.’
서준은 멀어지는 고르고에게서 시선을 떼고는 아파테시스를 응시 한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지금 골라야 할 최선의 선택지는 최대한 빠르게 눈앞의 대악마들을 정리하 고, 고르고와 고군분투 싸우고 있 을 에우레시아를 돕는 것이었다.
곧장 자세를 다잡은 서준이 아파 테시스를 응시한 채로 검지와 중지 를 까딱인다.
“너 같은 조무래기를 상대하고 있을 시간 없으니까, 빠르게 덤벼.”
[그 주둥이를 얼마나 나불댈 수 있을지 궁금하구나!]
두 자루의 검을 손에 쥔 아파테시 스가 쇄도해오는 서준을 맞이한다.
전과 같은 재빠른 검격.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다잡은 덕분에 발휘되는 고도의 집중력 덕 분일까?
제법 훌륭하다고 생각했던 아파 테시스의 공격이 터무니없이 느리 게 느껴졌다.
아니, 기분 탓이 아니다.
아파테시스의 공격들이 완벽히 읽히고 있었다.
실제로도 아파테시스의 검날들은 단 한 번도 서준의 몸을 스치지도 못했다.
[대체 무슨 짓을 벌인 거지?]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격차가 그리 크지 않았었다.
그런데 불과 몇 분, 몇 수만에
그 격차가 메꿔졌고 이제는 더 높 은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놀랄 것 없어, 애초에 너 같은 조무래기와 난 격이 다른 존재였으 니까.”
앞선 싸움은 그저 오랜만에 사용 하는 치천마역천지공에 적응하는 기간을 가졌을 뿐이다.
그렇지 않아도 일전의 접전에서 도 우위에서 있었는데, 지금처럼 몸이 풀리고 신경이 날카롭게 벼려 진 상태를 감당해낼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감히 인간 주제에……!]
제공 내에 검게 휘날리는 선, 그 곳으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아파 테시스의 격앙된 검날이 날아온다.
감정이 실린 공격.
빈틈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허리를 살짝 비트는 것으로 가볍 게 공격을 피해낸 서준은 말아 쥐 고 있던 주먹을 앞으로 내뻗는다.
턱-!
가슴에 주먹이 맞닿는 순간, 서준의 치천마역천지공의 기운이 물 결치더니 이내 해일이 되어 아파테 시스의 내부부터 퍼져나간다.
내부에서부터 터지는 충격에 아 파테시스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지 만, 다시 정신을 차리고는 고래고 래 소리를 내질렀다.
[고작 이 따위 공격으로는 절대 나를 죽일 수는 없을 거다-!!]
애초에 알고 있었다.
아파테시스를 죽이기 위해서는 이 세디아가 상대하고 있는 대악마를 함께 죽여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에 일단은 내가중수법을 선택한 것이었다.
한 번에 죽일 수 없다면 지속적 으로 기의 운행을 뒤틀어 내상을
입혀 움직임을 봉쇄해놓은 후 다른 대악마를 처치하는 방법이 있었다.
계획의 물꼬를 트자, 곧 아파테 시스를 처치하기에 적합한 무공들 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마침내 모든 계획을 수렴해낸 찰 나, 어느덧 눈앞에서 검을 뻗어오 는 아파테시스의 모습이 시야에 들 어왔다.
[제2군단장이자 대악마인 나, 아 타락서스 님을 상대로 여기까지 버 텨내다니 하등 종족인 엘프치고는 제법이었다.]
어느덧 미간 앞으로 다가온 대악 마, 아타락서스의 검을 바라보는 이세디아가 황급히 손을 내뻗는다.
‘막아내 줘.’
그녀의 생각은 자연, 정령으로 흐르듯 전달됐고 내뻗은 검지에서 기운이 일어나 돌풍을 일으킨다.
갑작스레 몰아친 돌풍에 아타락 서스의 몸이 잠시 휘청였다.
악마가 놀란 표정이 되어 균형을 잡으려 하였지만, 이세디아의 손동 작이 한발 더 빨랐다.
‘춤추자.’
내뻗고 있는 손가락을 높게 치켜 올리자 폭풍이 휘몰아치며 아타락 서스의 육체가 실 풀린 연처럼 하 늘을 종횡무진 누볐다.
그를 보며 차가운 눈을 빛낸 이 세디아가 손가락을 다시 아래로 내 리꽂는다.
‘떨어뜨려.’
콰광-!
몰아치는 돌풍이 주는 압박에 아 타락서스의 신형이 순식간에 바닥 으로 추락해 굉음을 일으킨다.
그러나 아타락서스가 괜히 대악 마의 자리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웬만한 자는 즉사할 큰 충격을 줬음에도 죽지 않았으니 말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런 방 법으로는 아타락서스를 죽일 수 없 었다.
‘놈과 심장을 공유하고 있는 다 른 대악마를 함께 죽여야 한다니.’
아타락서스와의 고된 접전을 통
하여 알아낸 귀중한 정보였지만, 육신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어 실행 에 옮길 수가 없었다.
계속된 전투로 다른 대악마는커 녕, 당장 눈앞의 아타락서스조차 상대하기 버거운 상태였다.
이대로 가면 패배는 확정적인 상 황이었다.
그러나 절대로 무릎을 꿇을 수는 없었다.
‘내가 패배하면 전선이 붕괴된다.’
단순한 의지만으로는 실현이 불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정말 다행히 도 정령들이 자신을 지켜주고 도와
주고 있었다.
덕분에 한계점에 다다른 육체를 가지고도 전선을 유지해낼 수 있었다.
‘ 오른쪽.’
지면에 내다 꽂힌 아타락서스가 사각을 파고 들어오는 것을 바람의 흐름을 통해 읽었다.
그러나 정령들의 도움으로 미리 아타락서스의 움직임을 알아냈어도 다리가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마침내 육체가 한계에 다다른 것 이었다.
분했지만, 지금 고를 수 있는 선
택지는 차선책, 정령의 도움에 기 대는 것뿐이었다.
‘밀어내 줘.’
고개를 돌리며 검지로 아타락서 스의 육체를 가리키자, 다시 한번 바람이 몰아치며 그의 진격을 방해 했다.
그러나 전처럼 매서운 돌풍은 아 니었다.
한계에 다다른 육체가 뿜어낼 수 있는 기운은 전과 비교하자면 너무 나도 나약하기 그지없었다.
정령들의 도움을 받아서 바람을 억지로 빚어내 간신히 유지하고 있
었지만, 그럴수록 이세디아의 머리 도 하얗게 질려갔다.
[잔재주도 끝이 보이는 것 같구 나.]
아타락서스의 입가에 조소가 흐 른다.
[네년의 목에서 죽여 달라는 말 이 나올 때까지 고통에 울부짖게 해주마.]
귓전에 울리는 아타락서스의 불쾌 한 목소리가 역겨울 정도로 싫었다.
‘방법이 있을까……?’
남은 힘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쥐어짜 내면서 분주히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답을 도출해낼 수 없었다.
그사이, 정령들의 힘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패색이 짙어지는 상황에 이세디 아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제길......
처음부터 대악마들이 심장을 공 유했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렇게 허 무하게 당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때문에, 너무나도 화가 났다.
물론, 당장 싸움에서 패배했다는 것에 대한 분노뿐만이 아니었다.
악마 놈들의 간계로 패배하고 그
때문에 동족, 엘프들이 멸족된다는 것이 너무나도 사무쳤다.
‘고대 엘프님들의 문헌에 적혀 계신 위대한 존재시여. 저를 보고 있다면 긍휼히 여겨 부디 한 번만 도와주시옵소서……
절박한 상황에 평소라면 절대 기 대지 않았을 신적 존재에게 간절함 을 보내는 순간이었다.
쌔액-!
일대에 처음 느껴보는 바람이 몰 아친다.
이세디아의 시선이 재빠르게 바 람의 진원지로 향했다.
“ 인왕?”
바람의 중심에는 차가운 는을 빛 내고 있는 한서준이 홀로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기운이 응축되어 있는 서준의 주먹들이 움직이기 시 작한다.
콰쾅-!
이어진 연격에 아타락서스의 육 신이 형체를 잃고 으스러진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이세디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당신이 어떻게?”
아니, 이런 의문을 가질 때가 아 니었다.
도움을 받은 것은 실로 기적과 같은 일이었지만 인왕, 한서준이 상대하는 아타락서스는 심장을 반 공유해서 홉사 불사(不死)의 은총 을 누리고 있는 존재였다.
한가롭게 한눈을 팔고 있을 때가 아니란 말이었다.
“인왕이시여! 악마 놈들을 죽이 려면 이런 방법으로는 되지 않습니 다! 놈들은 심장을 공유……
가진 정보를 힘껏 뱉고 있었지만, 다 전하기도 전에 바람 소리와
함께 서준의 신형이 다시 흩어진다.
그러나 워낙 거대한 기운을 가진 존재였기에 그의 위치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위치가 참 오묘했다.
바람의 정령들을 타고 이동해도 수 분은 걸릴 거리에서 한서준의 위 치가 감지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언제 저곳에?”
흡사, 공간을 도약한 것처럼 느 껴지는 속도에 머릿속이 혼란스러 워지려 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한서준이 어떻게 이동했느냐 따위 가 아니었다.
곧장 바람에 소리를 실어 정보를 전달해야 했다.
황급히 입을 끔뻑여 소리를 전달 하려던 찰나, 기묘한 장면이 시야 에 들어온다.
“이게 뭐야?”
한서준과 맞서 싸우고 있던 대악 마가 손가락 하나 꿈쩍할 수 없을 정도로 움직임들이 봉쇄되어 있었다.
이세디아도 나름 반신에 오른 강 자였기에 그 이유를 찾는 것은 어 렵지 않았다.
“말도 안 돼.”
이세디아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또 다른 악마, 아파테시스는 살 아있지만 살아있는 게 아니었다.
악마족의 재생 능력은 모든 종족 을 통틀어 최상임에도 불구하고 내 부를 돌아다니고 있는 한서준의 막 대한 양의 기운들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고, 기능을 잃은 상태였다.
‘대체 어떻게?’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아왔고, 많 은 전장을 헤쳐 온 이세디아였지만, 저런 방식의 기의 운용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인왕, 한서준이 인간치고는 강하 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첫 대면에도 인왕은 엄청난 기의 운용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상위 종인 악마들보다 강 하리라고 누가 생각을 했겠는가?
‘부족한 건 나였군.’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었다.
자신의 부족함으로 인물을 제대 로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렇게 두 눈 앞에 펼쳐 지게 되자 시야는 강제로 트이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이제는 인정하고 납득 할 수밖에 없었다.
악마족이 상식 이상의 힘을 가진 존재라면, 한서준은 그 틀에 박힌 상식을 부수고 순리마저 거스를 말 도 안 될 정도의 재능을 가진 자.
아니, 고작 그 정도로는 한서준 이라는 인물을 표현할 수는 없었다.
상식과 순리를 벗어난 존재를 칭 할 수 있는 단어는 하나뿐이었다.
“괴, 괴물……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