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권 11화
136화
‘아스모네아 수준의 악마?’
아니, 고작 현경(玄境)의 수준에 이른 존재가 아니다.
‘최소 반신(半神).’
생사경(生死境)에 이른 존재가 차원, 프리실라로 넘어오려 하고 있었다.
서준의 가늘어진 눈매가 게이트 로 향하는 순간이었다.
까득, 까드득.
게이트의 안쪽에서부터 두 팔이 억지로 비집고 들어오는 소리가 들 리더니 게이트를 강제로 벌려 내고 찢어 내기 시작했다.
이윽고 벌어진 틈 사이로 두 명 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겉보기는 언뜻, 인간과 크게 다 를 바 없었다.
오히려 장신에 꽤 길쭉한 팔다 리, 훤칠한 외모에 실크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백발을 지닌, 일란성 쌍둥이처럼 서로 똑 닮은 모습을 한 상당한 미형의 남성들이 었다.
시체처럼 창백한 피부, 소름 끼 치다 못해 불길할 정도로 어두운 눈빛, 검은 박쥐의 날개, 머리 위로 높은 솟은 뿔들이 아니었다면 인간 이라 생각했을 정도로 말이다.
[지금 뭣들 하는 거지?]
[이런 하찮은 엘프들 하나 정리 하지 못한 건가?]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두 악마의 섬뜩한 목소리에서준은 확신을 할 수 있었다.
여태껏 마주했던 악마들과는 차 원이 다르다.
“대악마……
천사들에게도 대천사라는 직위가 있듯이 악마들 또한 대악마라는 직 위가 존재했다.
서로 대립하는 종족인 만큼 그 직위가 의미하는 힘 또한 비슷했다.
지금 게이트를 넘어온 악마는 서준이 예상했던 대로 생사경, 반신 의 영역에 도달한 강자라는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중 하나 는 아직 완전히 대악마에 오른 존재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직 반신 내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어.’
자칼 때와 마찬가지로 그 실마리 를 잡긴 했으나 벽을 넘어서지는 못한 존재.
그렇다면 2:1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오른쪽의 악마는 제가 맡겠습니 다.”
바람에 실려 온 이세디아의 목소 리가 뇌리에 울려 퍼진다.
“좋은 판단이네, 그럼 저쪽은 내 가 처리할게.”
작게 읊조리듯이 말한 것이었지만 바람, 정령들을 다뤄 내는 이세 디아라면 들었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실제로도 고개를 주억인 이세디 아가 땅을 박차며 벽을 넘어서지 못한 한쪽을 향해 날아가듯 이동하 고 있었다.
뒤이어, 서준도 곧장 땅을 박차 며 벽을 넘어선 대악마에게로 향한 다.
타닥-
자연스레 대악마의 시선도 서준 을 향한다.
서준을 목격한 검은 눈동자에 호 기심이 가득 피어난다.
[인간?]
“그게 중요한가?”
도발적인 말을 내뱉은 서준이 입 꼬리를 한쪽만 비틀어 올린다.
“어차피 죽을 놈이 말이야.”
차가운 표정을 가진 대악마의 입 가에는 그와는 상반되는 환한 미소 가 피었다.
[크하하! 재미있군, 재미있어. 감 히 대악마인 나, 아파테시스 님에 게 이런 모욕적인 말을 하다니 말 이야!]
그 순간이었다.
아파테시스의 신형이 시야에서
흐릿해진다.
후웅-
그러고는 둥 뒤에서 바람 소리와 함께 난폭한 날갯짓 소리가 들려온 다.
허리를 돌리려고 하는 순간, 날 카로운 장검이 서준을 향해 파고든 다.
팡-!
의념기끼리 맞부딪치는 거대한 충격에 대기가 비명을 토한다.
동시에 애매한 자세로 있던 서준 의 신형이 흐릿해지더니 자취를 감 췄다.
[훌륭하구나.]
눈을 가늘게 뜬 아파테시스가 몸 을 팽이처럼 회전시키며 의념기가 둘러진 칼을 내뻗는다.
챙-!
오른손을 막아선 의념기, 아파테 시스의 칼에서준의 눈동자가 잠시 떨려온다.
[그러나 고작 인간.]
말을 내뱉은 아파테시스의 손에 검은 안개가 모여들더니, 이윽고 한 자루의 검이 더 쥐어졌다.
돌연 생성된 한 자루의 검으로
이어진 연격이 서준의 심장을 노린 다.
푸슉-
몸을 비틀어 급소를 피해 내었지만, 끔찍한 고통이 어깻죽지를 타 고 올라온다.
“실력이 나쁘지는 않네.”
비꼬는 말이 아니었다.
급소를 피하는 데는 성공했다지 만, 팔 하나를 봉쇄당한 셈이니 만 약 수투의 회복 스킬이 없었다면 이후의 전투들이 상당히 고됐을 것 이다.
오랜만에 느껴 보는 감각에 신경
들이 날카롭게 곤두서기 시작하고 머리는 활로를 향해 분주히 회전하 기 시작했다.
‘쌍수를 다루는 검사.’
방어는 생각에도 없는 매우 공격 적인 전투를 펼치는 검객.
이런 성향을 지닌 검사에게서 주 도권을 가져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아파테시스가 휘두르는 두 자루 의 검은 쉴 새 없이 움직이며 목을 베고 심장을 꿰뚫으려 할 것이다.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지만, 다행히도 서준은 가장 확실하면서
도 빠른 파훼법을 알고 있었다.
서준은 곧장 발을 놀리며 아파테 시스에게 돌격한다.
[어디 한번 마음껏 발버둥 쳐 봐 라.]
아파테시스는 미소를 홀리며 두 자루의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서준의 시야는 어느덧 뒤덮여 있 는 수십의 칼날로 가득 차 있었다.
허수는 없었다.
모든 것이 실(實), 의념기가 둘러 진 날카로운 칼날이었다.
그러나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품 안쪽이 검사들의 약점.’
이윽고 팔경성보가 펼쳐지며 아 파테시스의 공격들을 흘려 낸다.
그러나 아파테시스의 검들은 마 치 먹이를 노리는 뱀처럼 휘고, 꺾 여 급소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한다.
쌔액-!
날카롭게 쏘아진 의념기가 서준 의 어깨 위로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다.
“느려.”
한쪽 입꼬리를 비틀어 노골적인 도발을 보이는 서준의 모습에 아파
테시스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오만하군.]
하나를 피해 내기 무섭게 또 다 른 한 자루의 검이 쇄도한다.
팡-!
미리 둘러놓은 의념기의 장막과 맞부딪치며, 서준의 눈 바로 앞으로 빛의 파문이 일어난다.
이번 역시 극히 짧은 간극의 차 로 공격을 흘려낸 서준의 눈썹이 치켜 올라간다.
‘제법이야.’
여태껏 상대해 온 상위 종족, 천
사와 악마들은 대부분 오만할 정도 로 자신감이 넘쳤다.
대부분 스스로의 강함 그리고 종 족값이라는 것을 믿고 인간에게 패 배할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아파테시스도 예외는 아니 었다.
그의 언행 하나하나에도 그런 오 만들이 묻어 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전투에 임해서는 결코 틈 을 보이거나 방심을 하지 않았다.
전투에 상당히 익숙한, 노련한 검투사라는 것이었다.
‘지금의 전투법, 검술을 몸에 익
히기 위하여 상당히 오랜 기간 갈 고닦았을 테지.’
여태껏 만나 본 악마들, 아니, 검 사(劍士) 중에서 가장 훌륭한 적수 라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서준의 기준에서 아파테 시스는 아직 기(技), 그러니까, 기 술적인 측면이 너무 부족했다.
방금의 도발을 듣고도 최대한 감 정을 억누르려 했지만, 완전히 감 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리고 감정에 치우친 공격은 평 소보다 동작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아까까지만 해도 휘두른
공격에 아파테시스의 호흡이 살짝 흐트러져 있었다.
서준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정 확하게 읽어 낸다.
‘길이 열렸다.’
서준이 망설임 없이 아파테시스 의 품으로 발을 내디딘다.
정말 눈 깜빡할 사이, 아니 그보 다 짧은 간극이었다.
그러나 강자들의 싸움에서, 이 종이 한 장 차이는 말 그대로 생사 (生死)를 가르는 순간이다.
[……
지척의 거리, 두 자루의 검이 무 용지물이 된 제공권(制空權).
완벽하게 허를 찔린 아파테시스 의 눈이 휘둥그레진 모습에, 서준 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죽어.”
응축된 마(魔)의 기운에 세상이 뒤흔들리는 순간, 서준은 담긴 주 먹을 아파테시스에게 내뻗는다.
한 점에 집중된 힘, 의지의 위력.
천마제의 절초인 역천(逆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었다.
모여드는 힘, 기운에 아파테시스
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무, =……!]
그러나 당황은 잠시뿐이었다.
아파테시스도 숱한 전투를 거쳐 온 노련한 검투사.
재빨리 뒷걸음질을 쳐 거리를 벌 려내더니, 곧장 두 자루의 칼을 휘 두르며 가진 최고의 공격을 펼쳐낸 다.
[제노 임팩트 소드!]
아파테시스가 치켜 올린 칼에 악 마의 상징인 검은 기운들이 넘실거 리며 일대의 공간을 장악하고 파괴 하려 한다.
그러나 급하게 펼쳐 낸 공격은 위력과 속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법 이었다.
이런 조잡한 공격으로 오직 파괴 만을 바라는 일념이 담긴 역천을 막아낼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창-!
역천과 맞부딪힌 아파테시스의 검이 허무하게 부서졌다.
[크읍-!!]
아파테시스가 숱한 경험을 토대 로 황급히 의념기를 몸에 두르는 것으로 첫 번째 일격의 충격을 상 쇄하고 막는 데까지는 성공해내었
지만, 역천의 저력은 그것을 거스 르는 데 있었다.
서준의 왼손이 앞으로 내뻗어지 며 거대한 어둠, 흑운(黑雲)이 아파 테시스의 신형을 뒤덮는다.
이윽고, 역천은 압도적인 파괴로 아파테시스의 육신을 으스러뜨리고 형체조차 남지 않도록 부숴낸다.
“ 뭐야?”
분명, 손끝에 느껴졌던 감각과 눈앞의 상황은 아파테시스의 죽음 을 알리고 있었다.
그러나 평소와 같은 초록빛 홀로 그램 창, 처치 메시지들이 보이지
않는다.
즉, 아파테시스는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걸 견뎠다고?”
역천은 하늘을 갈랐던, 선인들이 만들어 두었던 결계마저 부숴냈던 무공이 었다.
심지어 지금은 치천마역천지공으로 강화된 상태.
그런 역천을 맨몸으로 견뎌 내었 다는 것이다.
믿기 힘든 현실이었지만, 여태껏 봐온 포스 시스템의 알림을 부정할 수 없었다.
[설마 이런 곳에서 한 번의 죽음 을 겪게 될 줄이야, 기대 이상의 실력을 지니고 있구나.]
아파테시스를 응시하고 있던 서준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재미있는 장난을 쳐뒀네.”
놈의 육신은 확실히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었다.
하지만, 악마 재생 능력의 핵심 이라 할 수 있는 심장이 파괴된 것 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애초에 놈은 ‘하나의’ 심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설마 서로 심장을 반씩 가지고 있었을 줄은 몰랐는걸.”
대기 중으로 흘러온 기운들이 아 파테시스의 육체를 빠른 속도로 수 복해낸다.
똑 닮은 생김새를 가진 것은 단 순한 특성이 아니었다.
방법은 알 수 없었지만 둘은 서 로의 심장을 공유하고 있었다.
다른 종족이라면 반쪽의 심장으로 재생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악마족은 반쪽의 심장만 남아 있다면 몸을 회복할 수 있는 매우 뛰어난 재생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즉, 눈앞의 아파테시스를 죽이기 위해서는 이세디아가 상대하고 있 는 악마를 동시에 처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단 한 번에 그 사실을 눈치챈 것은 흘륭하다만, 내게 두 번의 방 심은 없을 것이다.]
여유로운 미소를 흘리는 아파테 시스의 모습에서준의 미간도 찌푸 려진다.
‘귀찮게 됐네.’
서준이 의식하고 있는 것은 아파 테시스가 아니었다.
정보가 없었기에 실수했을 뿐, 마음만 먹는다면 두 명을 동시에 처리하는 것 따윈 어려운 일이 아 니었다.
‘아파테시스는 이번 일의 흑막 (黑幕)이 아니다.’
조금 까다로운 특성을 가지긴 했 으나, 반신에 오른 이세디아와 세 계수의 도움을 받는 에우레시아가 힘을 합친다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을 수준이었다.
‘구태여 나에게 도움을 요청할 이유가 없었다는 거지.’
대악마, 아파테시스마저 휘하에
두고 부릴 수 있는 강력한 존재, 흑막은 따로 있다는 것이었다.
‘ 누굴까?’
서준의 머리가 분주히 회전하기 시작한 순간, 세상이 찢어지는 것 같은 파찰음이 다시 한번 들려왔다.
찌직, 찌지직!
저 멀리, 검은 게이트를 찢듯이 걸어 나오는 존재가 하나 있었다.
흉흉한 반야(般苦)의 가면을 쓰 고 피로 붉게 물든 깃이 달린 기다 란 창을 든 존재가 마침내 서준의 시야에 들어온다.
압도적인 위엄을 내뿜으며, 등장
하는 것만으로 일대의 분위기를 바 꿔내고 지배해내는 위압감.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악마가 이 군단들의 주 인……
이 전쟁의 시작점이자 동시에 종 전을 알릴 수 있는 열쇠, 악마들의 사령관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것 이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