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권 9화
134화
‘삼라만상을 제 발아래 두었으니 순리마저 거슬러 이제는 역천(逆 天)의 경지에 이르나니.’
입으로 외고 뇌리에 박혀있는 천마신공의 구결이 치천마역천지공의 것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굴복하게 만들고 완전히 휘하에 두었던, 천마신공의 기운이 순식간 에 부풀더니 발끝으로 빠르게 떨어 져 내린다.
순리를 거스르는 천마무공, 그렇 기에 역천(逆天)이었다.
그래서 다른 내공심법과 달리 운 기의 순서가 반대로 되어 있었다.
때문에, 상반신의 혈관부터 회전 하는 것이 아닌 완전한 바닥, 발바 닥으로 떨어져 내린 것이다.
“흐읍......
내공을 운용하던 서준은 심호흡 을 들이마시고는 마음의 준비를 마 쳤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당연하게도 법칙을, 순리를 거스르
는 운용은 상당한 고통을 동반했다.
이미 한번 겪어 그 고통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기에 더욱 주저할 법도 했으나, 전신을 짓누르는 중 압과 땅에 얼굴이 박힌 것처럼 숨 막히는 긴장과 함께 아찔한 고통이 밀려올 것을 알면서도 서준은 멈추 지 않는다.
‘치천마역천지공은 순리를 거스 르는 힘.’
올곧은 성장은 따라가기에는 편했 으나, 결국에는 그 강함의 정도가 순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법이었다.
그렇기에 법칙을 무시하고 진리
를 도려내는 치천마역천지공은 예 외적인 강함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었다.
물론, 상식을 벗어난 행동인 만 큼 지금 행위는 어느 것과도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할 수밖에 없었다.
‘한 발 내디딜 때마다 형극(꿰M) 의 위를 걷는 것과도 같다.’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았다.
순간의 실수로 주화입마, 지옥의 고통과 함께 사신이 서준을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서준의 표정에는 한 치의
초조함도 존재치 않았다.
‘이미 도달했던 경지다.’
뭐든 처음보다는 두 번째가 쉬운 법이었다.
게다가 치천마역천지공을 만들어 냈던 당시와 달리 수백 년 동안 쌓 인 경험과 지식이 더해진 상태였다.
“크읍……
때문에서준은 신음을 삼키며, 정신이 아찔해지는 감각 속에서도 결코 집중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
‘시작이 제일 중요해.’
천마신공이 근간이었기에, 그것이
설사 주인이라 할지라도 집어삼키려 는 패도적 성향을 지닌 위험한 내공 심법을 지금 다루는 상황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호시탐탐 목숨을 빼앗아갈 기회를 노리고 있던 놈들 에게 일말의 틈을 보여준 상태란 말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놈들을 길들여 내기만 한다면……
치천마역천지공으로 만든 내공은 순리를 거스를 수 있는 새로운 힘 을 내어줄 것이다.
‘최강, 최악의 마선이라는 명칭을 얻었던 그 힘을 되찾아내는 거야.’
과거의 무위를 되찾기 위해서라 도 몇 배나 더 거칠어지고 난동을 부리는 천마신공의 기운을 어떻게 든 발아래로 두고 의도한 대로 이 끌어야 했다.
이미 마음의 준비를 끝내둔 만큼 망설임은 없다.
“ 후우......
내뱉는 심호흡과 함께 천마신공 을 거꾸로 회전시킨다.
기존의 상식, 순리를 벗어난 운 용에 혈관이 타들어 가다 못해 끊 어지는 듯한 고통이 전신을 후끈 달아오르게 한다.
“크읍..
그러나 서준은 이러한 극심한 고 통이 찾아올 것을 모르고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경험과 지식의 문제가 아 니었다.
애초에 지금 육신으로 이 고통을 쉽게 감내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체 모를 악마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이고 확 실한 수단만 사용할 수 없었다.
‘두 번 다시는 잃지 않을 거다.’
천 년에 달하는 염원을 지금에서 야 간신히 이뤘다.
그 오랜 시간 누구보다 절실히 바라고 수천, 수만의 다짐을 해왔다.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가족 과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내가, 든든한 우산이 되어 주겠다고, 우 리 가족을 이 손으로 지키겠다고!’
이 일이 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렵게 쥔 작은 행복에 자그마한 위협, 균열조차 용납할 수 없었다.
프리실라는 물론이고 침공해오려 는 악마들과 스스로 고귀하다고 포
장하는 역겨운 비둘기, 그리고 최 고의 종족이라는 용족조차도.
한서준이라는 이름만 들려도 벌벌 떨게 만들어 덤벼들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만들어 버릴 생각이었다.
선계에서 다짐하고 다짐했던 천 년의 염원과 집념, 의지가 서준의 버팀목이 되어준다.
‘으아아아-!’
비록, 목마저 잠겨 튀어나오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비명이 머리끝 까지 치솟았다.
영겁과 같은 고통이 이어지던 순 간.
콰광-!
요란한 소리와 함께 막혀있던 길 이 뚫려 거꾸로 내달리던 기운들이 자유롭게 체내를 회전하기 시작한 다.
전신에 넘치는 활력에 감고 있던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서준의 눈동 자에는 환한 이채가 어려 있었다.
‘……됐다.’
정방향으로만 흐를 수 있었던 천마신공이 역방향의 순환까지 터득 하는 순간이었다.
천마신공을 한 단계 진보시켜 치 천마역천지공에 도달해낸 것이다.
서준이 머릿속으로 확신을 가지 는 순간, 시스템도 그에 따른 응답 을 해왔다.
띠링-!
[법칙을 부수고 상식에 어긋나는 새로운 순환을 발견해 Ex급 스킬, 10성, 천마신공을 성장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Ex급 무공 천마신공이 진화합니 다.]
[Error e+10293!]
[등록되지 않은 스킬입니다!]
[포스 시스템이 사용자 ‘한서준’ 이 창안해낸 무공에 대한 재측정에 돌입합니다.]
[파괴력, 확인. 웅용력, 확인. 요 구 난이도, 확인. 경지의 정도, 확 인. 요구 내공량, 확인.]
[10……20……65……94% 진행.]
[재측정을 완료했습니다.]
[재측정한 스킬의 등급 : Ex+]
[Ex급 무공 천마신공이 Ex+급 치천마역천지공(治天魔逆天之攻)으로 진화합니다.]
[신화적! 우주의 역사에 기록될
무공을 창안해내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새로운 신화가 발아합니다!]
[보유 중인 신화에 억년지재(僞 年之才)의 신화가 추가됩니다!]
눈앞에 끊임없이 떠오르는 메시 지 창과 희소식에서준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흘렀다.
프리실라, 세계수의 중심.
돌연 초록 나뭇잎이 가지에서 뚝 떨어져 나와 바닥으로 힘없이 추락 했다.
바깥에서는 지극히 평범한 일이 었지만, 이곳은 자연의 생기가 넘 쳐흐르는 세계수의 중심이었다.
일어날 수 없는 일, 아니, 일어나 서는 안 되는 일에 에우레시아의 입가에 씁쓸함이 묻어난다.
“마의 기운이 본격적으로 범람하 기 시작했네요.”
정확한 날짜는 알 수 없었지만,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다.
종족의 명운이 걸려있는 일인 만 큼 평소 항상 의견을 따라주던 이 세디아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정말 지구의 인간, 아니 인왕을 믿어보시려는 겁니까?”
세계수의 핵에 자신의 편린을 심 어 놓은 악마는 상상조차 할 수 없 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방심했다고는 하나 그날 저희는 그 악마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지도 못했습니다.”
세계수는 엘프의 요람이라고 불리
는 곳이었기에 항시 에우레시아와 이세디아가 경계를 서는 곳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마는 세계 수의 핵에 편린을 심어 넣는 데 성 공한 것이다.
목격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너무나도 재빠른 움직임을 가졌 기에 막지 못한 것이었다.
한서준이라는 존재가 약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아주 강한 자였다.
그러나 그 악마를 상대로 승리를 거머쥘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지 고 있냐 묻는다면, 입을 열 수 없
“한서준이 인간이라는 종족 내에서는 이레귤러이긴 하나, 그 악마 또한 종족 내에서 이레귤러일 겁니 다.”
이레귤러, 종족이 가진 한계점을 벗어난 비정상적인 존재.
결국, 같은 이레귤러라면 종족값 이 높은 쪽이 이기게 될 확률이 지 대했다.
지금이라도 다시 한번 천사들에 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하다못해 다른 상위권의 종족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게 현명한 판단이라고 볼
수 있었다.
타당한 의견이었지만. 에우레시 아는 단호히 고개를 내저었다.
“이세디아, 그대도 아시지 않습 니까, 상위권의 종족들은 도움을 대가로 저희 엘프들을 노예처럼 부 리려고 할 것이란 걸.”
“그래도 명운을 다하는 것보단 살아 있는 것이 좋은 게 아닙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이세디아. 저 희는, 한서준 님은 지지 않을 겁니 다.”
계속되는 에우레시아의 말에 이세 디아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다.
“……결코 순리를 거스를 수는 없을 겁니다.”
저주 같은 말이었지만, 에우레시 아는 이세디아를 타박하지 않는다.
저 말을 내뱉기 전에 얼마나 많 은 생각을 하고, 스스로의 마음에 도 상처를 입혔을지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에우레시아는 온화한 미소를 띤 채로 입을 연다.
“이세디아, 그대가 걱정하는 것 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요. 그가 미 덥지 못하다면 부디 저를 믿어 주 시겠어요?”
사실, 에우레시아도 처음에는 확 신을 가지지 못했었다.
그러나 서준를 직접 만나고, 대 화를 나누자 확신을 할 수 있었다.
‘그 기운은 모든 것을 잡아먹는 패도의 기운……. 그러나 그 기운 을 다루고 있음에도 잡아먹히지 않 았어요.’
인왕, 한서준은 이세디아가 생각 하고 있는 것보다 더 강인한 존재 라는 말이었다.
단순히 전사로서의 육체적인 능 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세계수를 노리고 있는 적이 어
떠한 존재인지 알았음에도 조금도 움츠러드는 기색이 없었다.’
그렇다고 허세를 부리는 것도 아 니었다.
분명, 그는 대화를 나누는 내내 견주고 계산하고 있었다.
정확하게 필요한 만큼 생각을 하 고, 행동할 때는 누구보다도 과감 하게 할 뿐이었다.
‘자신감은 있지만 그렇다고 무모 하지는 않습니다.’
스스로를 과신하는 전사는, 만용 으로 죽음을 자초하기 마련이었다.
자신을 알지 못하는 전사는, 적
의 기세에 움츠러들어 본래의 실력 도 다 내지 못하는 법이었다.
‘무(武)를 단련하는 작자들은 여 태 이 틀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는 데.’
물론, 무를 폄훼하는 것은 아니 었다.
그저 선택의 문제일 뿐이었다.
한 우물을 파기에도 시간이 부족 했기에 지혜를 포기하고 무(武)에 집중하길 선택한 것이었으니 말이 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갖춘, 문 무(文武)를 겸비한 완벽한 존재였다.
짧은 대화였지만 흡사, 어릴 적 보았던 고대 엘프님들이 남긴 문헌 에 기록된 그분을 보는 듯한 느낌 이었다.
그래서인지 계속해서 기대감이 부푼다.
‘특히 지금 이 힘은……
에우레시아의 시선이 서준이 머 무는 방 쪽으로 향한다.
보호해달라는 요청 때문에 계속 감시하고 있어 가늠할 수 있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그에 게 내어준 방에서 엄청난 힘이 터 져 나오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때 세계수의 핵에 편린을 심어 놓은 그 악마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말이다.
에우레시아가 종족의 명운이 걸 린 문제를 단순히 고집이나 부릴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에우레시아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을 내뱉을 수 있었다.
“인왕, 한서준 님은 기존의 상식 과 순리를 부숴내서라도 저희 엘프 들을 반드시 구원하실 거랍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