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권 7화
132화
가족과의 호화롭고 만족스러운 저녁 식사가 끝난 저녁.
예상외의 손님이 집을 방문했다.
[그……. 입주자님을 찾아온 손님 이라고는 하시는데, 외국인 같으셔 서 일단은 확인차 연락을 드렸거든 요? 한서준 님을 꼭 뵙고 싶다 고…….]
고가의 아파트인 탓에 아파트를 지키는 경비원이 인터폰으로 직접
서준에게 연락한 것이었다.
그 너머에서 사소한 잡음이 들리 는가 싶더니, 이내 기기를 사이에 두고도 청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세디아라고 합니다. 한서준 님 을 뵙고자 찾아왔습니다만.]
호출을 받은 서연이 처음 들어보 는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서준을 바라본다.
“오빠, 혹시 이세디아라는 분 알 아‘?”
카일 크리스토퍼, 칼리번 하이드 리히를 비롯한 외국 각성자들이 길 드나 연합에 관련된 업무 보고를
위해 이따금 서준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물론, 앞서 방문했던 각성자들과 달리 이세디아는 완전히 처음 듣는 이름이었지만, 혹시 몰라 서준에게 질문을 던진 것이었다.
그러나 서준의 반응도 서연과 그 리 다르지 않았다.
“이세디아?”
고개를 갸웃거리는 서준의 모습 에서연은 인터폰 쪽으로 고개를 돌리어 입을 연다.
“아마도 잘못 찾아오신 것……
단호히 거절하려던 서연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대박! 완전 예뻐!”
넓은 집 안에 울려 퍼지는 서연 의 목소리에서준의 호기심이 동한 다.
“대체 누군데 그래?”
소파 위에 몸을 던져놓았던 서준 이 발을 딛고 일어서 인터폰 앞으로 향했다.
그렇게 화면 너머의 존재를 확인 하게 된 서준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인 터폰 너머의 여성은 황금빛 생머리 에 청아한 눈동자, 백옥같이 하얀
피부, 그리고 뾰족한 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엘프?’
서준이 눈으로 인터폰 너머의 존재를 홅고 있던 사이. 화면을 바라 보고 있던 엘프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한서준 각성자 님 맞으신가 요?]
엘프의 말에서준은 경계심을 유 지한 채로 고개를 주억인다.
연합 가입 권유의 공문을 보내긴 했으나, 대놓고 말하자면 엘프들과 서준의 관계는 그리 좋다고 볼 수
는 없었다.
현재 엘프족은 연합, 트리니티에 몸을 담고 있었기에 오히려 사이가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제법 강한 녀석이야
맞붙어보지 않았기에 정확한 경 지를 가늠할 수는 없었으나 뿜어져 나오는 막대한 기의 양은 적어도 생사경, 반신의 초입에 든 강자임 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어쩌면 적으로서 상대할 수도 있 는 반신을 상대로 서준이 한껏 경 계 어린 눈이 되어 인터폰을 바라
보고 있을 때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이번에 사절단의 단장으로 파견된 이세디 아 파렌호프라고 합니다.]
이세디아가 정중한 태도로 인사 를 건네 오고 있었지만 방심할 수 는 없었다.
이곳은 가족들과 함께 사는 집.
“무슨 일로 찾아오신 거죠?”
위치가 위치인 만큼 서준의 입에서는 잔뜩 날 선 목소리가 흘러나 오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염려했던 상황 은 벌어지지 않았다.
[보내주셨던 공문, 잘 받아보았습 니다. 그에 대한 엘프들의 답변을 드리려고 합니다.]
목소리는 온화하기 그지없었고, 피어나는 분위기 또한 조금의 위협 도 존재하지 않는다.
눈 녹듯 사라진 경계심을 대신하여, 이번에 싹을 틔워낸 것은 호기 심이었다.
“공문의 답변을 하기 위해서 이 시간에 직접 저한테 찾아오셨다고 요?”
[네, 왕의 진언이라 반드시 직접 전달해드려야 하는데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연합 결성을 위해서 이종족 차원 들을 직접 찾아가서 대화를 나눠볼 생각이었는데, 왕의 전언을 전달하 는 엘프가 알아서 방문해준 것이었다.
귀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지금 바로 나가겠습니다.”
대답을 끝마친 서준은 곧장 외투 를- 걸치며 외출 준비를 한다.
이후 곧장, 현관을 빠져나가 집 앞에 있는 경비실로 향하자 온화한
미소를 피운 엘프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네 온다.
“정식으로 다시 한번 인사드리겠 습니다, 이번 사절단의 단장이자 장로회 소속 일화(一花) 이세디아 파렌호프라고 합니다.”
“한서준이라고 합니다.”
인사를 나누고 있는 서준의 눈에 진한 흥미가 깃든다.
‘ 일화(一 花) 라.’
그도 그럴 것이 화(花)라고 하는 것은 엘프족의 서열을 가늠하게 하 는 가장 객관적인 지표였고, 그 앞 에 붙는 숫자는 강함의 순서였기
때문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지금 눈앞에서 있는 이세디아는 엘프족 최강의 전 사라는 것이었다.
‘상당히 강하다 했더니만 이유가 있었네.’
이세디아에 대한 짧은 탐색을 마 친 서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
“공문에 대한 답변이 있다고 해 서 왔습니다만.”
“ 그게......
이세디아는 줄곧 공손한 태도였 기에 말끝을 흐리는 것이 기 싸움 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서준
도 알고 있었다.
실제로도 끝말을 홀리고 있는 이 세디아의 행동들에 특별한 것은 존재치 않았다.
그저 기운을 퍼뜨리고 눈을 홀기 며 계속해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이렇게 눈치를 살피 면서 이야기를 꺼내는 데는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애초에 엘프 최강의 전사가 고작 공문에 대한 답변을 하기 위해 올 리가 없지.’
지금 이세디아가 할 이야기는 외 부에는 절대 알리고 싶지 않은 중
요한 정보가 포함되어 있는 아주 비밀스러운 이야기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서로가 가장 빠르게 친해 질 수 있는 방법은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서준이 손바닥을 펼치자 거대한 기운들이 일대에 퍼져나간다.
뿜어져 나온 기운들이 삽시간에 구체의 형상을 취하며, 이윽고 바 깥과 완전히 단절시키는 장막을 만 들어내는 모습에 엘프의 입에서 감 탄이 흘러나온다.
“역시나, 들었던 대로 기운들을 다루는 데 일가견이 있으신 분이로
군요.”
“그냥 하나의 잔재주죠, 그것보 다 이제 저희 둘뿐이게 됐으니, 편 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이세디아가 한 차례 고개를 주억 이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다름이 아니라 연합 제의에 대 해서는 저희 엘프족도 상당히 긍정 적인 의견이었습니다만, 만약 받아 들이게 될 경우, 추가적인 조건을 하나 제시하고 싶어 이렇게 찾아오 게 된 것입니다.”
처음 이야기를 나눴던 대로 단순 한 답변이라고 하기보다는 역으로
제안하는 것이었지만, 서준의 표정 에는 조금의 당황도 없었다.
‘연합에 들어오는 대신 엘프족에 필요한 것들을 요구하려는 거겠지.’
중원 대륙에서도 이따금 겪었던 협상법이었다.
어차피 엘프라는 종족과 그들이 살고 있는 차원, 프리실라를 날로 집어먹을 생각은 없었기에서준은 흔쾌히 고개를 주억인다.
“최대한 수용할 수 있도록 약속 하겠습니다. 그 조건이라는 것이 무엇이죠?”
편안한 마음으로 내뱉은 말이었
지만, 뒤이어진 이세디아의 말은 결단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부디 저희 엘프와 차원, 프리실 라를 구해주십시오.”
예상치 못한 이세디아의 말에서준이 마침내 눈이 커지고야 말았다.
다소 당황하긴 했으나, 서준의 대답은 당연히 ‘수락’이었다.
어차피 가야 할 곳이었고, 연합 하려 했던 종족이었다.
지금 은혜를 하나 만들어 두는 것도 나쁠 것이 없었다.
‘은혜를 논하고자 할 때면 목숨 을 살려준 것만 한 게 없지.’
성공한다면, 수인족과 마찬가지 로 연합 내의 관계에서도 확실하게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기왕이면 이들이 내 휘하에 있 는 것이 더 편리하지.’
수인족, 특히 이번 패황의 탑의 건으로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단순히 같은 선상, 동료로서 연 합에 있는 것이 아닌 지도자, 패황 의 자격으로 확실하게 패권을 쥐고 있는 것이 훨씬 더 이롭다는 것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엘프의 이번 제안 은 거절할 이유가 없었고, 곧장 발 걸음을 재촉해 프리실라로 향하는 게이트가 있는 노르웨이로 이동했 다.
“꽤나 준비를 철저하게 하셨네 요.”
“그만한 예를 갖췄을 뿐입니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갑작스러운 출발이었지만 엘프 쪽에서 사전준비를 철저하게 해온 덕인지 노르웨이에 입국 시 검문 없이 통과되었을뿐더러 프리실라의 입구를 지키는 협회의 직원들도 존재하지 않았다.
덕분에서준은 아무런 방해 없이 이세디아의 뒤를 따라 걸어 프리실 라로 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일순간 시야가 암전되고, 공간이 왜곡, 전이되는 느낌과 함께 주변 의 풍경이 삽시간에 바뀌었다.
“지구의 인왕(人王), 한서준 님의 프리실라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
니다.”
허리를 기역 자로 꺾어 인사를 건네는 이세디아의 뒤에 보이는 푸 른 세상에서준의 눈이 휘둥그레진 다.
수인족이 살고 있는 아니마 차원 처럼 광활한 영토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높은 고.지에서 있다고는 하나, 한눈에 들어오는 자그마한 땅.
그러나 시야를 가득 메우는 푸른 숲과 하늘이 품고 있는 생기는 아 니마 차원에도 뒤지지 않았다.
특히나 차원의 중심에 우뚝 솟
은, 모든 것을 품고 있는 생명들의 어머니와도 같은 절대적 생기를 뿜 어내는 세계수는 그 패황의 탑과 견주어도 될 정도로 엄청난 에너지 를 축적하고 있었다.
서준의 입에서는 저도 모르게 감 탄이 흘러나온다.
“대단한 곳이네요.”
“우선 곧장, 왕궁으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그냥 뒤쫓아 가기만 하면 되는 거죠?”
“아니요, 굳이 이동하실 필요 없 이 이 자리에서 계시기만 하시면
됩니다.”
이세디아의 의미심장한 말에서준이 잠시 주춤하던 순간이었다.
드드드득...
지상에서 일어난 나무뿌리가 바 닥을 감싸더니 이윽고 세계수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지구의 기준으로 엘리베이터 혹 은 에스컬레이터와 비슷하다고 보 시면 될 겁니다.”
“ 굉장하네요.”
비단, 이 나무줄기뿐만이 아니었다.
일생 한 명도 보기 힘들다는 엘 프들이 세계수의 커다란 잎사귀, 나무줄기들에 걸터앉아 휴식하거나 잡담을 나누는 둥의 모습이 보였다.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진기한 광 경들에서준이 넋을 놓은 채로 바 깥의 풍경들을 구경하고 있던 찰나 였다.
계속 움직이던 줄기가 마침내 이 동을 멈췄다.
서준의 시선이 자연스레 세계수 가지의 끝자락에서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있는 한 여자에게로 향했 다.
“저분이?”
물음에 대한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하여 이세디아가 한쪽 무릎 을 꿇고, 고개를 숙인다.
“일화, 이세디아가 위대하신 에 우레시아 왕의 명에 따라 인왕, 한서준 님을 모셔 왔나이다.”
엘프들의 오랜 지도자이자 최강, 왕이라 불리는 에우레시아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에우레시아를 마주한서준의 눈 동자가 가늘어진다.
눈에 비치고 있는 엘프의 왕, 에 우레시아는 매우 신비한 존재였다.
무공이나 무예를 익힌 것 같지는 않아 정확하게 경지를 읆을 수는 없었다.
‘굳이 비교한다면 반신에 도달한 존재.’
하지만 벽을 넘어선 것은 아니라 고 장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일대를 휘감 고 있는 세계수의 기운들이 그녀를 비호하고, 의지를 받들며 움직여 주고 있었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네.’
서준의 눈에 진한 호기심이 피어 나던 순간이었다.
또각.
우아하면서도 품격 있는 걸음으로 다가온 에우레시아가 인사를 건 네 온다.
“어서 오세요, 지구의 인왕이시 여. 저는 이 세계수의 인정을 받은 자이자 프리실라의 통치자, 에우레 시아 파렌호프라고 합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