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권 5화
130화
비단 서준을 흡족하게 하는 것은 사키엘의 공손한 태도뿐만이 아니 었다.
‘상당히 많은 것을 알 수 있었 어.’
사키엘은 천사 내에서 그렇게 높 은 지위는 아니었기에 구체적인 정 보, 내부 기밀 사항까지는 자세히 알고 있지 않았다.
그래도 마냥 수확이 없는 건 아
니었다.
오히려 생각 이상의 수확이었다 고 말할 수 있었다.
‘다행히도 감시자로 온 것은 여 기 있는 천사들뿐이다.’
터무니없는 숫자와 나약한 전력 에 처음에는 조금 의심스럽긴 했지 만, 사키엘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먼저 만난 미카엘라도, 사키엘도 서준이 같은 경지인 반신에 있음에 도 인간이라는 이유로 한없이 얕잡 아보고 있었다.
하물며, 그간 단 한 명도 반신에
도달하지 못한 나머지 인간들을 어 떻게 생각할지는 불 보듯 뻔한 것 이었다.
‘습관같이 내뱉는 말처럼 미물로 여기고 있겠지.’
천사들은 생각한 것보다 더 오만 한 종족이었다.
그렇기에 자연스레 의문이 피어 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천사의 행보 가 이상해.’
본디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 는 법이었다.
‘보고 겪은 천사의 성정상 절대
로 선의(善意)로 차원 연합을 솔선 해서 만들 족속들이 아니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사들은 차 원 연합을 만들고 운영하고 있었다.
턱에 손을 괸 채로 생각에 잠겨 있는 서준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그렇다면 이유는 한 가지뿐.’
백 퍼센트 확신은 할 수 없었으 나, 옛말에서당 개 3년이면 풍월 을 읊는다고 했다.
서준은 천마신교의 교주를 역임 하고 천마로서 펼쳤던 치국(治國) 활동과 천 년에 달해 쌓아온 지식 과 경험올 지니고 있었다.
그 지혜를 바탕으로 분주히 회전 하던 머리가 서서히 답을 도출해내 기 시작한다.
‘천사들도 우리 인간과 크게 다 를 바 없는 종족이야.’
스스로를 고귀하고 위대한 척 포 장했지만, 흔한 인간과 다를 바 없 는 탐욕과 욕망이라는 욕심을 가진 존재란 말이다.
실제로도 천사들은 지금도 악마 와의 싸움을 정의, 대의 같은 감정 으로 이어가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들이 이득을 취하고 기득권 을 유지하기 위해 연합을 만들고
악마와 이어가고 있을 뿐이 야.’
당장 겪은 사건들만 보아도 천사 들은 연합 내의 차원에 큰 위기, 악마들의 침공이 벌어진다고 할지 라도 손해 볼 것이 없다는 판단이 들면 여유롭고 느긋하다 못해, 둔 하게 느껴질 정도로 느릿하게 움직 였다.
하지만 반대로 본인들이 쥐고 있 던 이득, 기득권이 뺏길 위험에 처 하거나 손해가 발생할 상황이 생긴 다면 즉각 빠른 움직임을 보인다.
이번 지구, 그리고 아니마 차원 의 일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인간, 아니 악마보다도 더 오만 하고도 욕심이 많은 종족이야.’
물론, 모든 천사가 이런 성향을 지녔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서준이 만난 천사라는 종족은 악마보다 더 추악한 욕망의 집합체 그 자체였다.
선민사상으로 뭉친 오만함과 끝 을 모르는 탐욕을 가진, 이례 없는 추잡한 종족의 모습에 의문이 피어 날 정도였다.
‘대체 엘리시움이라는 차원과 천 신(天神)이라는 놈의 정체와 최종 목표가 뭐지?’
분주히 머리를 굴려 보았지만, 허가를 받은 이들만 갈 수 있는 ‘엘리시움’의 정보는 상당히 한정되 어 있어 아무리 서준이라 할지라도 쉽게 답을 내릴 수는 없었다.
‘일단은 생각을 접자.’
의심암귀(疑心暗鬼), 괜한 망상 이 스스로를 갉아먹을 수 있는 법 이었다.
어차피 정보, 진실 또한 힘을 기 르고 나아가다 보면 머지않아 알 수 있게 될 이야기들이었다.
지금은 그저 그때를 위하여 천사 들의 침공이 벌어지지 않도록 시간
을 벌고, 계획을 수립해나갈 뿐이 었다.
‘어떤 방식이 좋을까?’
가장 좋은 것은, 세계 각성자 협 회 간부 때 일처럼 계약을 맺는 것 이긴 했으나, 애석하게도 술사로서 의 역량이 너무나 부족했다.
‘확실하게 반신, 천사족을 종속시 킬 만한 방법이 없을까?’
서준이 머리를 긁적이며 고민을 이어가던 찰나, 귓전에 경쾌한 소 리가 울려 퍼졌다.
띠링-!
[사용자 ‘한서준’이 요청한 ‘천사 족을 종속시킬 방법’에 대한 정보 열람을 시작합니다.]
[천사족을 종속시키는 최선의 방 법은 ‘성흔의 계약’입니다.]
[성흔의 계약은 천사족에게 가장 우선시되는 계약이며, 이를 어길 경우 존재가 부정되어 소멸하게 되 므로, 천사를 종속시키기 위한 최 고의 수단이 될 것입니다.]
내용을 읽어 가던 서준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진다.
‘역시 포스 시스템은 최고야.’
생각 이상으로 편리하고 유용했 다.
서준은 속으로 새어 나오는 웃음 을 삼키며 가라앉은 목소리를 내뱉 었다.
“사키엘.”
부름에 사키엘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서준이 다시 한번 입을 연다.
“나와 성흔의 계약을 하자.”
“성흔의 계약을 어찌……
“질문이 잘못된 거 아닐까?”
서준의 입가에 흐르는 비릿한 미 소에 불안감을 느낀 사키엘의 몸이
흠칫- 떤다.
“조건이 정확하게 어떻게 되는 거지...요‘?”
“간단해, 내 말에 충실히 복종하 는 종이 되는 거야. 일단 첫 번째 임무로는 이곳에는 아무런 일이 없 었고 지구의 인간들은 신중히 고려 를 해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대답을 뒤로 미루었다 정도로만 전달해주 면 된다고.”
언급했듯, 감시자로 온 것은 사 키엘 하나뿐이었다.
사키엘이 거짓 보고를 한들, 알 아챌 수는 없었고, 성공만 한다면
천사의 침공을 꽤나 뒤로 미룰 수 있었다.
‘당장 엘리시움과 맞부딪혀도 내 가 패배할 일은 없겠다만.’
허세가 아니었다.
이미 선계, 옥황과의 전투로 증 명했으니 말이다.
천신인가 뭔가 하는 놈이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계속해서 싸워가 고 성장하다 보면 결국 승기를 거 머쥘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방법을 쓸 수 없었다.
‘지금은 지켜야 할 사람들과 소
중한 가족들이 있다.’
과거, 선계 때처럼 막무가내식의 싸움을 벌여서는 안 됐다.
그렇기에 천사의 침공을 미루고, 연합을 만들고 힘을 기를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지금 눈앞의 사키엘이 그 방법의 핵심이었다.
“무슨 그런 불공정 계약에 내가 응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사키엘이 목소리를 한껏 높여 거 칠게 반발하는 모습에서준도 고개 를 주억인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불공정한 계약이고 억울할 만했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니고 천 사들이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이 어 불성설이 었다.
서준의 싸늘한 눈빛이 사키엘을 응시한다.
“불공정? 너희들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나?”
오히려 지금의 계약은 그간 천사 들이 벌여 온 타 차원, 중죽들을 기만해왔던 것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와도 같은 조치였다.
“그리고, 착각하지 마. 왜 네가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처음부터 거부권은 존재치 않았다.
이것은 강요이자, 절대적인 명령 이었다.
“미 X놈이……!”
분개한 음성을 흘리는 사키엘의 모습에서준은 묵묵히 고개를 주억 인다.
“예절 주입이 조금 모자랐네. 아 님, 비둘기라서 금세 잊어버렸나?”
천사라는 종(種)의 뛰어난 육신, 정신력 덕분인지 분근착골을 당했
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자존심을 세우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서준의 신형이 그림자처럼 자취 를 감춘다.
까득, 까드득!
뒤이어, 무언가 찢기고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사키엘의 다리 가 으깨진다.
형체를 잃은 두 다리에서 끔찍한 고통이 밀려온다.
“OOO OOOO_r
.-----9 -------- .
서준을 향하고 있는 사키엘의 두
눈동자에는 분노와 살기가 넘실거 린다.
노골적이고 진한 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지만, 서준의 입가에는 피식- 미소가 흐르고 있을 뿐이다.
“아직 예절 주입이 조금 더 필요 하겠네.”
반대쪽 다리도 으깨지고 부서진 다.
“끄아아악-!!”
사키엘이 이를 악물고 괴성을 토 했다.
완전히 부서지고 으깨진 다리뼈 와 근육이 주는 고통도 충분히 괴
로웠지만, 뒤이은 서준의 말은 이 보다 더 크나큰 절망을 안겼다.
“아니다, 이럴 게 아니라 분근착 골을 한 번 더 하자.”
비명을 토해내기 바쁘던 사키엘 이 다급히 소리를 내지른다.
“안, 안 돼!!”
“그럼 이제 예의를 좀 지킬 수 있겠어?”
사키엘이 아랫입술에서 피가 터 져 나올 정도로 질끈- 깨문다.
지금 당장의 고통은 천사라는 우 월한 종족의 강인한 육신과 회복력 이라면 감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키엘을 미치게 만드는 것은 미물이라 여겼던 인간에게 겪 는 모멸감이었다.
“대, 대체 왜 이렇게까지 이 나 를 괴롭히고 짓밟는 것이냐!!”
“왜 이러냐고?”
사키엘의 원망 어린 절규의 말에서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흐른 다.
“주제를 모르고 내 사람들을 멋 대로 건드린 것, 그 죄악에 대한 형벌일 뿐이야.”
“대체 저딴 인간, 미물들이 무엇 이라……
언성을 높이며 소리를 내지르던 사키엘의 입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꾹- 닫힌다.
“잘 들어. 내 사람들을, 아니 우 리 인간을 한 번만 더 그딴 식으로 불렀다가는 평생토록 말을 하지 못 하게 만들어 주겠어.”
말을 내뱉는 서준은 의도적으로 천마신공을 개방해 존재감을 부풀 린다.
삽시간에 부풀어 가는 서준의 존재감에 사키엘은 마른침을 삼킨다.
꿀꺽-!
천사라는 종족이 가진 뛰어난 육 체 능력, 감각들이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이 인간의 그릇은 흔히 알고 있 던 그 미물들과 격이 다른 존재라 고.
아니, 이것을 인간이라 부를 수 있단 말인가?
악마들을 이끈다는 마왕에게조차 도 이런 공포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마치 절대적인 존재, 천신(天神) 님을 코앞에서 마주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사키엘의 눈동자를 잠식한 공포 를 확인한서준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묻는 말에, 대답만 해. 나와 계 약을 할래? 아니면 여기서 죽을 래?”
자존심이 상당히 강했으나, 천사 도 인간과 같은 욕망, 탐욕을 가진 존재.
삶을 쉽게 놓을 족속들이 아니었 고, 형용할 수 없는 공포에 정신이 사로잡힌 상황이기도 했다.
사실 이미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받…… 받아들이겠습니다.” 대답을 내뱉은 사키엘의 눈동자 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사키엘과 계약하자 보다 빠르고 편하게 일이 진행되었다.
이미 서준의 압도적인 무력을 두 눈으로 목도한 탓도 있었지만, 무 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천사들에게
있어 계급이란 곧 권력의 상징이란 점이었다.
감시대의 대장 격이라 할 수 있 는 사키엘이 복종을 한 이상 하위 천사들은 아무런 불만을 품지 못했 으며, 서준과의 계약을 진행할 수 밖에 없었다.
서준의 계약에 종속된 천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묵묵 히 지시를 따르는 것뿐이었다.
“여기 모셔 왔습니다.”
천사들의 등 뒤로 수많은 사람이 줄줄이 걸어 나왔다.
당연하지만 구출해냈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한 명, 한 명 직접 상태를 확인 해야지.’
거듭 말하지만, 순간의 재미를 위하여 연합을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에 따른 책임감을 절실히 느끼 고 있었고 서준은 연합, 길드에 가 입되어 있는 사람들 한 명, 한 명 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다행히 특별한 일은 없었나 보 네.’
감금되어 있긴 했지만, 심한 핍 박이나 고문을 받은 것은 아닌지
걸어 나오는 사람들 모두 자잘한 상처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도 만에 하나의 상황을 생각 하여 연합원의 몸 상태를 면밀히 체크해 나간다.
그렇게 한 명, 두 명, 수십 명의 사람들을 확인하고 마침내, 끝을 향하던 갈무리의 순간.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한서준 각성자님-!”
강석호가 손을 흔들며 웃어 보인
다.
서준은 활짝 미소와 함께 손을 들어 올리는 것으로 강석호의 인사
에 화답한 후, 고개를 돌리어 사키 엘을 바라본다.
당연하지만, 사키엘 쪽으로 고개 를 돌린 서준의 표정에는 따뜻했던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지 오 래 였다.
싸늘하다 못해 시릴 정도의 차가 운 눈동자가 사키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사람들이 전부인가?”
사키엘이 조심스레 고개를 주억 인다.
“이것으로 가두어뒀던 사람들은 모두 풀어 줬……습니다.”
계약, 그리고 공포에 짓눌렸음에 도 불구하고 여전히 존댓말을 사용 하는 것이 영 어색하였지만 상관없 었다.
애초에서준이 바라는 것은 사키 엘의 진정한 충성 같은 것이 아니 니 맡은 임무만 잘 처리해주면 그 만이었다.
“고생했고, 엘리시움에 가서도 알지?”
“말했던 대로 보고를 올리긴 하 겠……습니다만, 의심을 완전히 피 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런 자잘한 일들은 내가 알아
서 처리할 테니까, 너희들은 입단 속만 잘하면 된다고. 아니, 알아서 잘하겠지.”
서준이 고개를 내저으며 말을 끊 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 구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전부 발설 할 시 죽음에 이른다는 제약을 걸 어두었기에 천사들도 함부로 이야 기를 꺼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럼 저희는 엘리시움에 보 고를 올리러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수고해라.”
서준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천 사들은 날개를 활짝- 펼쳐 비행을 시작하더니 이내,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천사들 쪽은 처리가 끝난 것 같 고.’
서준의 고개가 돌아가며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강석호에게로 향한 다.
이제는 지구, 연합에 대한 추후 계획을 진행해나갈 때였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