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권 4화
129화
“주제를 알거라.”
누가 누구에게 ‘감히’라 한단 말 인가?
최강의 마선으로서 선계를 제패 하고 그 지고하다는 선계의 옥황마 저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존재,
평범히 내뱉는 말이었지만 영혼 에 각인된 격(格)이 무게를 더했다.
형용할 수 없는 압박감이 일대에 퍼져나간다.
경비를 서고 있던 천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나…… 나는 고귀하고 위대한 천사족이다! 이러고도 무사할 수 있을 것 같나?”
천사의 입장에서는 나름 최선의 위협을 가하고 있는 것이었지만, 서준은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감당하지 못할 일이라면 벌이지 도 않았겠지.”
아니마 차원에서 천사족의 군대 를 쓰러뜨리는 더한 일도 벌였었다.
고작 이런 문지기 하급 천사 하 나의 협박에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는 것이다.
자신감 넘치던 천사의 표정이 떫 은 감을 씹은 듯 일그러졌다.
이내, 얼굴빛이 사색이 되었고, 눈동자는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거 세게 흔들린다.
“인간 주제에……!”
공포에 떨리고 있는 몸과 달리 천사는 본연의 자긍심을 지키기 위 하여 목청을 한껏 높여 무기를 뽑 아들었다.
실로 가상한 태도였지만, 무능력 한 자의 용기는 만용에 불과한 것 이었다.
서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흐 른다.
“네놈의 눈에는 내가 아직 평범 한 인간으로 보이느냐?”
감추고 억눌렀던 기운을 흩뿌리 며 존재감을 키워나가는 서준의 모 습에 천사의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
“이제 내가 누구인지 알겠느냐? 비둘기야.”
말을 내뱉은 서준의 시선이 닿고 있는 것은 눈앞의 천사가 아니었다.
건물, 빌딩의 현재 가장 최상층
을 바라보고 있었다.
허공에 돌아오지 않을 메아리를 뱉었다고 생각했겠지만, 그건 모르 는 말이었다.
“하하하-!”
서준의 말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건물의 옥상에서부터 하얀 의복을 입은 천사가 두 쌍의 날개를 우아 하게 펼치고는 내려온다.
허공을 가로지르며 빠른 속도로 떨어진 사키엘은 이윽고 서준의 머 리 위로 착지했다.
“지구를 거머쥔 인왕(人王)이 나 타났다 하여 어떤 인간인가 궁금했
는데, 상당히 건방진 자로구나.”
흩뿌리고 있는 반신의 기세와 위 엄이 전혀 위협되지 않는지, 사키 엘은 하늘에 뜬 채로 피식- 여유로 운 미소를 홀리며 서준을 바라본다.
자연스레 서준의 시선도 사키엘 에게로 향했다.
‘생사경의 경지이긴 하나 아직 벽을 넘어서지는 못한 수준.’
경지만 놓고 보자면 사실 대단한 수준이었으나, 서준의 입장에서는 의념기의 실마리조차 잡지 못한 애 송이에 불과했다.
패배를 생각하기는커녕 제대로
된 적수라고도 볼 수 없었기에서준은 다소 편하게 질문을 던졌다.
“강석호 협회장님과 이곳에서 일 하고 있던 사람들은?”
“공사를 한다고 너무 소란스럽게 하여 잠시 안에 가두어뒀지.”
“전부 풀어 줘라.”
“내가 왜 그래야 하지?”
“내 사람들이니까.”
“그게 나한테 중요한가?”
“지금까지는 아니었지만, 앞으로 는 중요해질 거야.”
서준의 입에서 낮게 가라앉은 목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사키 엘의 입가에는 여전히 여유로운 미 소가 흐르고 있었다.
“한낱 하찮은 존재가 미물들의 왕이 되었다고 해서 위대한 종족에 맞서겠다는 건가? 오만에도 정도가 있다고.”
대답할 가치도 없었다.
이미 수도 없이 생각해 왔고, 대 답했던 말이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말하겠 다, 여기 있던 사람들을 풀어라.”
“ 싫다면?”
“좋아하게 만들어 주지.”
말을 내뱉고 있던 서준의 신형이 그림자처럼 흩어진다.
어느새 사키엘과의 거리를 지근 까지 좁힌 서준이 손을 내뻗는다.
“같은 경지에 있다고 다 똑같다 고 생각하다니, 어리석군, 어리석 어. 난 위대한 천사종, 상급 천사 사키엘! 네놈 같은 미물의 인간과 같은 취급을 하면 곤란하지.”
사키엘이 가볍게 손을 들어 올리 며 여유로운 미소를 흘리는 순간, 서준의 입가에도 비릿한 미소가 흐 른다.
“같은 경지?”
내뻗는 주먹에는 부숴내고 뚫어 내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실린다.
놀란 사키엘이 황급히 날개를 젖 히며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한발 늦은 대처였다.
뿌득-
뻗고 있던 팔이 기이한 방향으로 꺾이고는 사키엘의 표정이 일그러 졌다.
“끄으읍-!”
신음을 흘리는 사키엘의 모습에서준의 눈동자가 빛난다.
‘ 빈틈.’
서준은 상체를 최대한 앞으로 기 울이고는 사키엘의 품속으로 바짝 파고든다.
사키엘이 왼손을 휘두르며 저항 하려 했으나, 팔경성보를 이용한 움직임을 쫓아올 수는 없었다.
어느새 지척 거리에 다다른 서준 은 말아 쥐고 있던 왼손, 주먹을 내뻗는다.
퍼억-!
육중한 소리와 함께 사키엘의 허 리가 기역 자로 꺾이며, 붉은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온다.
“커헙!”
터져 나온 붉은 피 너머 날카로 운 눈매, 먹이를 노리는 포식자의 눈동자를 한서준의 모습에 사키엘 의 동공이 거세게 흔들린다.
“인간이 어찌……
의념기를 다룰 수 있는 것은, 반 신 내의 벽을 넘어선 존재.
대천사급의 천사들만이 다뤄낼 수 있는 힘이었다.
즉, 눈앞의 인간은 대천사와 같 은 경지에 도달해있다는 것이었다.
‘말도 안 돼.’
두 눈으로 보고도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에 당혹이 가득 차오를 때였다.
“어금니 꽉 깨물어.”
서준의 선고가 떨어졌고, 이어지 는 난타에 몸 곳곳에서 아찔한 고 통이 느껴진다.
몸 곳곳에 낭자한 상처들로 말 그대로 넝마가 된 사키엘이 황급히 소리를 내지른다.
“그, 그만!”
진심이 닿았는지 서준의 주먹이 멈춘다.
하지만 그를 대신하여 손가락들 이 전신을 난타했다.
그것은 주먹에 비하면 그리 큰 충격은 아니었다.
잠시나마 안도했지만, 그것은 혈 도(穴道)를 모른다는 무지에서 온 착각이었다.
‘이건 대체?’
어떠한 사술(邪術)을 부렸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몸이 얼음처럼 바 싹 굳어진다.
의도한 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몸 은 흡사 악마, 그중에서도 군단장 급이나 부릴 수 있는 기이한 마술 에 속박당한 듯했다.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못한 사키
엘의 표정에서준의 입가에 피식-미소가 흐른다.
“혹시나 싶었는데 비슷한 육체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점혈이 먹히 네?”
단전을 대신하여 날개에서부터 기가 솟아오르고 혈맥을 타고 흐르 고 있었지만, 기본적인 육체 구성 은 인간들과 다를 바 없었다.
때문인지, 점혈에 대한 효과가 확실했다.
“대, 대체 무슨 짓을 벌인 거 냐?!”
본래 생사경, 반신에 오를 정도
의 강자 정도만 되어도 그 답을 쉽 게 찾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적이나 다름없는 존재의 앞에서 무기력해진 것에 적잖게 당 황해서인지 답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애초에 가진 종의 힘을 믿 고 여태 포식자로 군림해왔기에 이 런 ‘세심’한 기의 운용 방식을 이해 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어떤 쪽이든 나중에 전투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겠네.’
확실한 것은 처음 겪어보는 점혈 을 풀기 위해서는 찰나의 틈이 생
길 수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서준은 그 찰나의 틈을 놓치지 않고 승리를 이끌어 낼 존재였다.
물론, 지금 중요한 것은 있을지 도 모르는 전투가 아니고 사키엘에 게도 점혈이 먹힌다는 점이었다.
“이제는 주제를 좀 알겠지?”
비릿한 미소를 홀리며 걸음을 옮 기는 서준의 모습에, 사키엘이 황 급히 말을 내뱉는다.
“잠, 잠깐!”
사지가 봉쇄되어 내뱉는 말이 다 급하기 그지없었지만, 여전히 기세
는 조금도 움츠러들지 않고 있었다.
“근처 아니마 차원에 대천사 미 카엘라 님이 와 계신다!”
“미카엘라?”
“그래! 대천사 미카엘라 님과 그 군대가 와 있지! 지금이라도 구속 을 풀어주고 용서를 빈다면 특별히 네놈의 죄를 조금은 감형시켜 주도 록 하마.”
사키엘은 지금 상황을 벗어날 최 적의 수를 떠올린 것이겠지만 오히 려 서준에게 정보를 넘겨주는 꼴이 되었다.
‘생각했던 것이 맞았어.’
천사족은 아직 아니마 차원, 듀 로타에서 벌어진 미카엘라의 패배 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동시에 지금 벌어지는 상황도, 사키엘의 일도 알지 못할 것이었다.
이 상황을 잘 이용한다면 연합을 창설하고, 힘을 기르는 시간을 벌 어낼 수 있었다.
물론, 그를 위해서는 사전 작업 이 조금 필요할 것이지만 이미 사 키엘을 사로잡았기에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자연스레 서준의 입가에는 피식-미소가 흐른다.
“미카엘라, 그 비둘기 이곳에 못 올걸?”
“뭐라고?”
“못 올 거라고.”
서준의 입가에 피어난 미소를 바 라보던 사키엘의 두 눈이 휘둥그레 진다.
“설마......?!”
강석호라는 인간에게 한서준을 데려오라 시켰을 때, 분명 5일 전 에 아니마 차원으로 갔기에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미카엘라와 연락이 끊긴
것은 2일 전, 그것도 아니마 차원 에서 말이다.
전쟁을 이어가는 중이거나 후속 처리로 바빠 연락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 었다.
방금 전, 인간이 보여준 공격은 분명 대천사, 미카엘라 님과 같은 경지에서 펼칠 수 있는 의념기였다.
‘미카엘라 님이 1:1로 패배하지 는 않으셨겠지만, 자칼의 존재도 무시할 수 없다.’
거기에 더불어 듀로타에 있는 수 많은 수인족들이 더해진다면.
서서히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한 다.
“뭘 상상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 다만, 얼추 맞을 거야, 네가 믿는 미카엘라는 내 손에 죽었어.”
“말도 안 돼……
서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흐 른다.
“결과가 나왔는데 왜 현실을 부정 하는 거지? 비둘기 머리라 그런가?”
여유로운 서준의 모습에 사키엘 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진다.
“감히, 위대한 종족을 살해한 죄!
위대하신 천신(天神)님의 천벌이 있을 거다-!!”
구태여 지금 사키엘의 말에 대꾸 를 해주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지독할 정도로 뿌리 박혀있는 선 민사상과 천사족이 기본적으로 가 지고 있는 재수 없는 말투를 고친 후 대화를 나누어도 늦지 않을 것 이다.
오랜 시간 군림하며 살아온 종족 이었기에 그 성격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혈도, 점혈이 통한다는 것은 분근착골이 가능하다는 말이
었다.
확실한 교육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일단 예절부터 주입받자.”
서준의 손가락이 분주히 움직여 사키엘의 전신을 난타하기 시작하 자 근육들이 기이한 방향으로 꺾이 고, 뼈가 뒤틀어지며 끔찍한 고통 이 사키엘을 맞이하기 시작한다.
“끄아아악-!”
이윽고, 사키엘은 천사의 품위 따윈 내다 버린다.
사키엘은 횐자위를 드러낸 채로 흙바닥을 나뒹굴기 시작했다.
30분후.
사키엘은 천사라는 종족의 육신, 정신력 덕분인지 생각했던 것 이상 으로 오랜 시간 분근착골을 버텨내 었다.
물론, 혈도가 제압되어 몸을 움 직일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계속되는 분근착골을 견딜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얼마 가지 않아서 고통에 몸부림 치며 항복을 선언했다.
덕분에, 사키엘이 알고 있는 정 보들을 쉽게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빼먹은 거나 거짓말 없는 거 맞 지‘?”
“알고 있는 건 전부 말했다.”
“했다? 말이 짧다?”
“……전부 말한 것입니다.”
예절이 확실하게 주입된 사키엘 의 모습에서준의 입가에 흡족스러 운 미소가 흘렀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