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권 3화
128화
지구로 돌아온 서준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우선 가족이 있는 집이 었다.
‘길드나 연합의 일도 급하지만, 우선순위를 잊어선 안 되지.’
애초에서준이 강력한 힘을 갈구 하는 것과 연합을 창설하는 것은 결국은 지구의 평화를 지켜 가족과 의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였 다.
‘그리고 그간 휴식을 취하지 못 한 것도 있고.’
디아볼로스, 데메이아와의 싸움 을 벌인 이후로는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삶이었다.
‘전진을 위해서는 쉬는 것도 필 요하다고 하니까.’
그리고 서준이 마음 놓고 편히 쉴 곳은 바로 우리 집, 가족의 품 뿐이었다.
띠리릭-
“다녀왔습니다.”
집 안에 머물고 있는 따뜻한 온
기와 달리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아무도 없나?”
고개를 갸웃 젖힌 서준이 방 내 부를 샅샅이 돌아다녔지만, 정말로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준의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다행이네.’
그동안 가족이 집에서 가슴 졸이 고 있는 것이 계속해서 마음에 걸 렸었다.
그러나 이렇게 가족이 맘 놓고 개인의 시간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 다면, 서준의 걱정도 필요 없었다.
물론, 지구가 아닌 타 차원, 아니
마에서 벌어진 일이었기에 소식을 접하지 못해 벌어진 오해일 수도 있지만, 어떻게든 서준의 입장에서 는 긍정적인 일이었다.
유일하게 문제가 되는 것이 만에 하나 있을 사고, 즉, 안전이었지만 그것도 크게 걱정할 것도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다면 협회 쪽에서 연락이 있었겠지.’
품 안에 넣어 놓은 스마트폰의 전원 버튼을 혹시나 눌러보았지만, 수신된 메시지는 0통이었다.
그래도 가족들과 관련된 일이었 기에 마지막까지 남은 꺼림칙함을
지우기 위해 전화번호부에 등록된 서연의 이름을 누르고 통화 버튼을 누른다.
다행히, 예상했던 대로 아무 일 도 없었다.
-어, 오빠! 나는 경호 오빠랑 A 급 게이트 사냥 왔지. 엄마, 아빠도 게이트로 가셨고.
“갑자기?”
-응? 오빠가 그랬잖아. 게이트로 가서 사냥도 하고 레벨 업 하는 게 건강에 좋다고?
“그래, 그랬었지.”
가족 불로장생 프로젝트.
그 원대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가장 빠르면서도 쉬운 방법은 바로 게이트에 있는 몬스터를 사냥하고 레벨 업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저 할 일이, 주변의 적들이 너 무 많아 미루고 있을 뿐이었다.
‘그 와중에도 이렇게 알아서 잘 해주면 너무 고맙지.’
그런 가족에게 한없이 고맙고 기 특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피어 나기도 했다.
신공(神功)이라 불릴 만한 내공 심법과 집안 내력인 무골(武骨)을 믿고 있었지만, 게이트란 어떤 일
이 벌어질지 모르는 곳이었다.
“ 괜찮으실까?”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내뱉는 서준과 달리 수화기 너머의 서연의 태도는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오빠가 아니마 차원에 가서 지 구 소식을 잘 모르나 본데 걱정할 거 하나도 없거든.
“소식?”
-전화 끊으면 보내 줄 테니까 봐.
서연과의 짧은 통화를 끝내고, 도착한 메시지를 확인하던 서준의 입에서 헛웃음이 흐른다.
[이례적인 다수의 만점자 발 생……. 협회에서는 이번 기수의 수석을 두 명으로 하기로 결정.]
[영응 한서준의 부모(父母), 정식 과정으로 최단기 D랭크 달성, 피는 못 속이는 천재 각성자 집안인가.]
이외로도 화려한 포트폴리오를 자랑하는 기사들이 우후죽순 쏟아 지고 있었다.
“안전 문제는 없을 것 같네.”
부모님이 가진 재능도 특출 난
만큼 과욕을 부리지 않는다면 특별 한 위험이 생길 리 만무했다.
뿐만 아니라, 협회 내의 은밀스 러운 경호와 그림자처럼 뒤를 지키 고 있는 분신이 존재하기까지 하니 괜한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다.
물론, 다른 누구도 아닌 가족들 의 일인 탓에 완전히 걱정을 덜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상대가 몬스터라고는 하나 무언 가를 죽이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러 울 수 있을 텐데.’
누적되는 부담감은 자칫하면 마 음을 좀먹고 정신적으로 충격을 가
해 결국에는 족쇄처럼 스스로를 옭 아매게 될 것이었다.
걱정스러운 마음 때문인지 어느 새 손가락은 단축키로 저장한 부모 님의 번호를 터치하고 있었다.
-아들 집에 돌아왔니?
“네, 그런데……
-미안한데 지금 게이트에 입장해 야 해서 이따가 통화하자꾸나.
“......네?”
뚝-!
수신이 끊기는 소리와 함께 바로 통화가 끊긴다.
“허허......
다소 당황스럽긴 하였지만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목소리가 상당히 밝으셨어.’
어떠한 방식으로 마음의 짐을 덜 어내고, 심마(心魔)를 견뎌낸 것인 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으나 어머 니의 목소리에는 부정적인 감정이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들떠 있는 수준이 었지.’
아버지도 확인할 필요가 있었지만, 어머니랑 같이 입장했을 테니 연결해봤자 무의미했다.
처음과 비교해서 확연하게 변한 가족들의 반응에 입안이 다소 씁쓸 했다.
그러나 불만을 표할 수는 없다.
‘오히려 걱정하지 말고 편히 있 어 달라고 계속 부탁했던 것은 나 였으니까.’
그래도 조금은 걱정해줬으면 좋 겠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사람 마음이 이래서 간사하다는 소리를 듣는 듯했다.
‘아니지, 아니야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지.’
고개를 내젓는 것으로 잡념을 털 어 낸 서준은 화장실에 들어가 기 본적인 세신을 끝마친 후, 소파에 몸을 던져 휴식을 취할 준비를 마 쳤다.
우웅-
스마트폰의 소리에서준 고개가 7우뚱- 젖혀진다.
“누구지?”
머리를 회전시키자 의문은 오래 가지 않았다.
방금 전, 가족들과의 통화로 모 두 게이트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알 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연락을 취해올 사 람은 한 명뿐이었다.
‘강석호 협회장.’
서준이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스 마트폰을 꺼내어 화면을 확인하자 예상이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급한 일이 아니라면 연락을 취하 지 않는 석호였기에서준은 곧장 통화 버튼을 눌렀다.
“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강석호 의 이야기를 듣던 서준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누가 왔다고요?”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선 민의식으로 뭉쳐있는 비둘기, 아니 천사들이 지구에 찾아온 것이었다.
-예, 몇 시간 전에 갑작스레 찾 아와서는 한서준 각성자님을 데려 오라고……. 최대한 설득해보려 했 지만 계속 난동을 피우고 있어서 상당히 난감합니다.
과연, 항상 자신감 넘쳤던 강석 호의 목소리에 난처함이 가득했다.
“잘됐네요.”
어차피 한 번은 만나고, 결판을 내야 할 상대였다.
오히려 서준의 영역인 지구로 찾 아와줘서 편히 대화가 가능해져 좋 았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서준은 곧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 나 집을 나섰다.
갑작스러운 천사의 방문이 있었지만, 긴장되지는 않았다.
‘아니마 차원에서 있었던 일을 따지러 온 건 아닐 거야.’
이런 생각을 하는 데는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실제로도 미카엘라가 죽고 나서 는 데메이아 때와 달리 감시하거나 주시하고 있다는 메시지가 떠오르 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자신들의 동족을 죽인 대상에게 이렇게 대화를 시도할 만 한 종족이 아니지.’
그간 보고 겪은 천사들의 성정을 생각한다면 군대를 이끌고 와서 전 쟁을 벌이고도 남을 종족이었다.
그렇다면 남은 이유는 하나뿐이 었다.
‘지구의 연합, 트리니티의 탈퇴 건 때문이겠네.’
과거, 세계 각성자 부협회장인 델루스를 통해 공식 성명을 전달했 다지만, 천사도 바보가 아니었다.
‘세계 각성자 협회의 간부들이 갑자기 연합을 탈퇴할 이유가 하나 도 없지.’
배후가 있는 것을 알고 조사했을 것이란 말이다.
‘결론적으로 내가 배후라는 것을 알아내는 데 성공, 그렇다면 이번
대화의 목적은 회유겠지.’
물론, 대가 없는 호의는 아닐 것 이다.
중급 이상의 종족값을 가진, 수 인족 아니마 차원과는 달리 지구는 최하위 값을 가진 인간이 거주하는 곳이었으니 말이다.
‘천사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최하 위 종족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 자체가 귀찮은 일이겠지.’
천사의 주적이자 숙적은 악마.
그리고 그런 천사와 악마는 그 누구도 우위에 설 수 있다고 말할 수 없올 정도로 동수를 이루고 있
었다.
고작 이런 하위종, 지구의 일에 괜한 힘을 빼고 싶지는 않을 것이 다.
‘큰 마찰 없이 대화로 푸는 것이 간결하면서도 깔끔하다고 생각했겠 지.’
적어도 성급히 싸우려고 들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내가, 우리 지구가 꿀릴 게 없다 는 거지.’
물론, 상대의 태도에 따라 이것 도 꽤나 달라지겠지만, 기본적으로 상황을 가정하고 그에 따른 행동을
정리해둘 필요는 있었다.
그렇게 머릿속을 정리해가며 이 동하자 나름대로 천천히 이동했는 데도, 강석호가 말한 건물이 눈앞 에 들어왔다.
“저기네.”
처음 오는 곳이었지만 의문을 가 질 필요는 없었다.
애초에 처음 서준이 바랐던 연합 건물의 조경도대로 지어졌을뿐더러, 아무것도 없는 한적한 평야 위에 지어지고 있는 거대한 빌딩은 뭘 해도 눈에 뜨일 수밖에 없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빠르게 진
행되고 있는걸.’
마정석으로 인한 기술의 진보에 강석호 협회장의 추진력이 더해지 며 빠르게 진행되는 일 처리에 기 분이 좋아졌지만, 얼마 가지 않아 서 서준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건 물 내부에서부터 홀러나오는 천사 들의 묵직한 존재감이 사방으로 번 져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힘을 감추지 못해 뿜어내고 있 는 건 아닐 거고……:
의도적으로 압박을 가하고 있다 는 것이었다.
대상을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이곳으로 올 사람은 한정적이었 고, 특히 지금은 오직 한 명, 자신 을 향한 것이었다.
“어이가 없네.”
혹시 몰라서 천사들이 우호적으로 나올 때를 생각하고 그에 따른 행동 방침을 정해뒀지만 무의미해 졌다.
앞으로 천사들에게 보일 언행에 대한 노선을 확실히 정한서준이 건물의 입구를 향해 달려간다.
거리를 좁히자 입구를 지키고 있 는 경비가 보인다.
놀랍게도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것 은 천사였다.
가늘어진 서준의 눈매가 천사의 전신을 훑는다.
‘미카엘라가 이끌던 천사들보다 도 못한 수준이네.’
능력만 보자면 천사라는 것이 의 심이 들 정도였지만, 등 뒤에 달린 하얀 날개가 천사임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이윽고, 서준이 입구에 당도하는 순간, 천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시선을 보낸다.
“인간? 네놈이 사키엘 님께서 말
한 한서준인가?”
서준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 다.
확실하게 의사 표현을 하였지만, 천사에게서 돌아오는 말은 없었다.
무의미한 침묵, 기다림에서준의 미간 좁혀지려던 찰나 천사가 입을 열었다.
“지금 뭐 하는 거지‘?”
“그건, 내가 묻고 싶은 건데?”
서준의 물음에 천사의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젓는다.
“쯧, 쯧, 하등 종족이라 그런지
기본 예의도 모르는군, 즉결 처형 감이지만 특별히 지구에서 네놈의 직책과 명성을 고려해서 한 번 용 서해주도록 하겠다. 지금 당장 고 개를 숙이며 예를 표하도록 해라.”
“내가 너한테?”
반신 내의 벽을 넘어선 서준이 이야기를 잘못 들었을 리는 없었다.
그저 너무나도 어이가 없고 황당 한 나머지 반문이 흘러나왔을 뿐이 다.
하지만 이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경비 천사는 서준의 질문에 쐐기를 박아 넣고 있었다.
“당연한 것 아닌가! 우리 천사, 위대한 종족을 보았으면 응당 고개 를 숙이는 것이 예도다.”
서준의 입가에서 헛웃음이 흐른 다.
“혹시 미쳤어?”
“감히…… 인간 따위가……! 고 개를 숙이며 예를 표하지 못할까!”
이어지는 고함에 천사를 바라보 는 서준의 눈매가 가늘어지며, 잘 벼린 칼날처럼 날카로워졌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