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권 25화
125화
침묵한다.
비단 미카엘라를 비롯한 천사뿐 만이 아니었다.
영혼에 새겨진 격(格), 마선으로 서 뿜어내는 위엄은 공기를 얼어붙 게 만들고 세상마저 숨을 참게 만 든다.
그렇게 당장이라도 숨이 멎을 것 같은 무거운 공기가 일대를 잠식하
는 순간, 서준의 낮게 가라앉은 목 소리가 세상에 울려 퍼졌다.
“조아려라.”
난생 처음 느껴보는 거대한 존재 감, 절대적인 마(魔)가 내뿜는 위압 감은 천 근보다도 더 무겁게 느껴 진다.
벗어날 수 없는 압박이 천사들을 전신을 짓누르고 강제로 고개가 처 박힌다.
“끄읍.”
“큿……
몇몇 천사들이 종족의 자부심을 굽히지 않기 위하여 억지로 몸을
세우고 고개를 치켜들려 했다.
그러나 의미 없는 발악에 지나지 않는다.
서준이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꿇어.”
발끝에서부터 의념기, 의지가 담 긴 내공으로 펼치는 무공.
‘마선낙일보(魔仙落日 步).’
선계의 선인들조차도 고개를 조 아리고 경외하도록 만들었던 마선 낙일보, 마선의 군림이 수인족의 도시, 듀로타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전성기에 비한다면 이마저 도 한없이 부족한 수준이었으나, 눈앞의 이들 또한 선계의 선인이 아니었다.
기껏해야 한낱 천사에 불과한 존재들.
마선의 위압을 견뎌낼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콰직-!
절대적인 마기가 내리는 명령에 반항하려 했던 천사들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발끝에서부터 퍼져나간 기파가 일대 천사들의 머리를 폭죽처럼 터
뜨렸다.
콰직-!
결국, 고개를 애써 치켜들려던 천사들의 머리가 순식간에 허무하 리만치 쉽게 산산조각 났다.
띠링-!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축하드립니다! 필요 경험치를 충족함에 따라 레벨이 137로 상승 하였습니다.]
[Ex급 무공, 마선낙일보를 익혔 습니다!]
눈앞에 언제 보아도 기쁜 초록빛 홀로그램 창이 떠오르고 있었지만, 서준의 시선은 전혀 다른 곳을 향 하고 있었다.
“견뎌?”
서준의 눈동자에 호기심이 어린 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기 파의 영향권에서 가장 가까이 있던 천사, 미카엘라가 살아 있었기 때 문이었다.
비록 압박감을 견디기 위하여 바 닥에 꽂아놓은 검에 몸을 기대고
있었지만, 대천사, 미카엘라는 고개 를 숙이지도 죽음을 맞이하지도 않 았다.
완벽한 우위에서있는 서준이 그 사실에 호기심 가득 찬 눈매로 미 카엘라를 관찰하자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벽을 넘어섰구나? 너도.”
살아남은 천사의 몸 주변에 둘린 기막(氣膜)에는 강력한 의지가 깃 들어 있었다.
의념기를 다룰 수 있는 존재, 즉, 같은 경지, 반신 내의 벽을 넘어선 강자라는 말이었다.
다소 놀랍긴 했지만, 문제 될 것 은 없었다.
서준은 미카엘라가 가지지 못한 것, 마선으로서 천 년간 쌓아온 경 험과 지식이 있었다.
‘같은 경지라도, 아니, 설령 한 단계 더 높은 경지라고 할지라도 내가 이겨.’
미카엘라가 마의 지배와 군림을 견뎌낸 반신의 벽을 넘어선 강자일 지라도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 다는 말이었다.
아니, 문제는커녕 오히려 도움이 될 존재였다.
‘내 강함의 정도를 정확하게 파 악할 수 있겠네.’
이미 도달해봤었던 경지지만 앞 서 말했던 대로 천 년에 달하는 경 험과 기억을 가진 서준이었다.
같은 경지라 할지라도 전보다 훨 씬 강하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었지만, 그 정도가 어떤지는 확답을 내리기가 힘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눈앞에 천사는 정 확하게 현재 수준을 판단할 수 있 게 도와줄 훌륭한 교보재였다.
‘오늘 운이 상당히 좋네.’
벽을 넘어선 것도 모자라 그 힘
을 펼치고, 느껴볼 기회가 동시에 생겼다.
그야말로 무인 된 자 최고의 날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에 자 연스레 서준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 졌다.
두 눈으로 직접 보고, 겪었음에 도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 이게 무슨……
단 한 번의 내디딤으로 일대의 천사들이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 었다.
받아들이기 힘든, 받아들이고 싶 지 않은 현실에 머릿속이 혼란스러 워지려 했지만 천사족의 고귀한 혈 통, 강인한 정신력이 간신히 이성 을 유지한다.
시야가 맑아지고 상황이 정리되 어가 눈앞의 적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침착하자……. 결국 인간 따위에 불과하다.’
눈앞에 있는 인간은 기존에 가지 고 있던 ‘인간’이라는 상식을 벗어 난 불세출(不世出)의 천재라 불릴 정도의 존재였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일 뿐이다.
‘결국, 나와 같은 반신의 벽을 넘 어선 존재일 뿐이다.’
생각해보면 일반적인 천사들을 상대로는 자신도 얼마든지 저 정도 의 위력을 낼 수 있었다.
방금, 느꼈던 격(格)에 도달한 존재는 아니라는 말이었으며 지레 겁 을 먹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것 이었다.
‘애초에 처음부터 뭔가 이상했 어.’
당장 인간의 몸으로 반신에 오른 것만 해도 깜짝 놀랄 만한 일이었다.
그런데 처음 마주했을 때 뿜어졌 던 영혼의 격은 천사 중에서도 통 솔자급인 치천사, 아니, 그 위대하 다는 천신(天神)에게서도 느껴본 적이 없던 지고함이었다.
종족값 하위, 지구의 인간이 그 런 영혼의 격을 갖추고 있을 리가 만무했다.
예기치 못한 불청객의 출현에 당
황하고는 지레 겁을 집어먹어 환상 을 본 것이 틀림없었다.
‘좋아, 이제는 겁먹을 것이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방심하지는 않는다.
‘눈앞의 인간이 강자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그렇기에 패배를 생각하지 않는 다.
같은 경지라 할지라도 급(級)이 있는 법이었다.
종족값 하위권인 인간이 최상위 권인 자신, 천사의 육체 능력을 쫓 아올 수 있을 리 없었다.
‘당황하지만 않는다면 승리는 떼 놓은 당상이다.’
오만이나 허세 따위가 아니었다.
‘여차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최후 의 수도 존재하니……
대천사급 이상에게만 내려지는 천신의 은총, 성흔의 힘.
일순간이지만 한계를 넘어서는 힘을 내려주는 능력이자 축복이었다.
하지만 고작 이런 ‘인간’에게 성 혼의 힘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위대한 천신께서 내려주신 축복,
힘인 탓에 사용 후 필히 보고를 해 야 한다는 제약이 붙어 있었기 때 문이다.
‘인간에게 성흔을 개방한 것이 알려진다면 같은 대천사들이 나를 평생토록 놀리겠지.’
최악의 경우, 승격의 기회 자체 를 박탈당할 수도 있었기에 최후의 순간까지 사용할 생각은 추호도 없 었지만, 보험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
침착하게 상황을 정리해나가자 머릿속을 가득 메우던 혼란들이 사 라졌다.
동그랗게 뜨고 있던 미카엘라의 눈빛이 먹이를 노리는 뱀의 그것처 럼 가늘어지는 모습에, 서준이 기 다렸다는 듯이 자세를 다잡는다.
“이제 좀 정신 차렸나 보네.”
“틈이 있을 때 밀어붙이지 않은 걸 후회할 것이다.”
미카엘라의 말에 코웃음을 치며 대꾸해주고 싶었지만, 굳이 입 아 프게 말할 필요 없었다.
어차피 직접 맞붙어보면 알게 될 테니 말이다.
서준이 덤덤한 표정으로 손가락 을 까딱거리는 순간이었다.
쾅-!
미지의 하얀빛을 두른 미카엘라 가 힘을 가득 실은 발로 땅을 내려 찍으며 돌진해오기 시작했다.
서준은 달려오는 미카엘라를 마 주한 채로 대성에 이른 천마신공을 일으킨다.
발끝에 시커먼 어둠을 두른 채로 앞으로 걸음을 내딛는다.
그렇게 한 발, 두 발, 이윽고 여 섯 발째 걸음이 땅에 닿으며 의념 기로 펼치는 팔경성보, 수유청정이 펼쳐진다.
‘빠르게, 더 빠르게.’
의지를 일으키는 순간, 가볍게 땅을 거닐고 있던 서준의 신형이 순식간에 앞으로 쏘아진다.
쌔액-!
평소와 같은 무공이었지만, 그 속도는 과거와는 비교를 불허한다.
갑작스러운 무공의 성장, 빨라진 속도에 당황스러울 법도 하였지만, 서준의 표정에는 한 치의 당황도 보이지 않는다.
천 년에 달하는 세월 동안 마선 으로서 살아온 서준에게 이런 속도 는 당연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는
쪽은 미카엘라였다.
“허업-!”
헛바람을 삼킨 미카엘라가 급히 방향을 틀어가며, 쥐고 있던 검을 휘두른다.
눈앞에 날아오는 날카로운 검날.
서준은 그를 피하지 않고 당당히 주먹을 내뻗는다.
저런 나약한 의지로는 지금 휘두 른 주먹을 막아낼 수 있을 리 만무 했다.
깨창-!
부숴낸다는 일념이 둘러진 서준
의 주먹과 맞부딪힌 미카엘라가 휘 두른 검이 산산이 깨지고 부서진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미카엘라 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어, 어떻게……!”
눈앞 존재의 근간은 고작 인간.
분명, 유희거리조차 되지 못하는 종족값 하위권의 쓰레기일 뿐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내가 지는 거지?’
동수에서 패배한 것도 아니었다.
치욕과 농락을 당하며 더 강력한 힘, 능력을 사용하는 것을 강요당
하고 있었다.
“벽을 넘어섰으면서 이것밖에 안 돼‘?”
솟구친 굴욕감은 곧 거대한 분노 와 살의로 변한다.
모욕, 수모를 받을 훗날의 일들 따위는 더 이상 생각나지 않는다.
지금은 오직 저 빌어먹을 인간을 도륙 내는 것만이 최우선이었다.
“감히! 하등종 주제에!!”
미카엘라가 버럭 외치는 순간.
콰광-!
천신이 하사한 성흔의 힘이 개방
되며 광명(光明)과 같은 새하얀 빛 이 터져 나오더니 이윽고 미카엘라 의 등에 안착하며 한 쌍의 날개를 만들어 낸다.
천사에게 있어 날개란 계급이자, 힘의 상징이었다.
지금의 미카엘라는 한계를 넘어 선 상태라는 것이었다.
실제로도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힘이 몸에 용솟음친다.
“위대한 천사인 나를 모욕하고 수모를 준 죗값, 사형에 처하게 하 겠다.”
비록 애장하던 병기였던 검이 부
서졌지만, 성흔의 힘을 개방한 지 금, 그런 무기는 아무런 의미가 없 었다.
미카엘라가 허공에 손을 내젓는 다.
차라락-!
의념기로 빚어진 광검(光劍)이 수십에서 수백, 이윽고 수천을 넘 어 헤아리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늘어나기 시작한다.
사방을 가득 메울 정도로 생성된 광검들이 허공으로 떠오르고는 서준을 향해 검날을 겨눈다.
하나하나가 위협적인 검, 공격이
었지만 서준의 표정에는 일말의 당 황도 존재치 않았다.
오히려 입가에는 여유로운 미소 가 피어나고 있었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지.”
시스템과 마선의 경험이 더해지 면서 자신이 너무 강해진 것인지 아니면 미카엘라라는 놈이 약한 것 인지 같은 경지임에도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아 스스로의 강함에 대하여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지금, 미카엘라의 기운이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 대해졌다.
이 정도라면 충분한 측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서준의 입가에 피어나고 있는 미 소에 미카엘라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진다.
“그 오만한 표정이 일그러지는 순간이 너무나도 기대되는구나.”
괜한 자신감은 아니었다.
지금 미카엘라가 만들어낸 광검 은 마음, 의지의 검.
중원, 선계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일종의 심검(心劍)으로, 검술의 신 에 달한 존재들이 다루는 힘이었다.
반쪽짜리가 아닌, 정말로 신(神) 을 논할 만한 힘이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두려워할 것은 없었다.
‘어차피 빌려온 힘에 불과하다.’
본인의 주제를 넘어서는 힘을 제 대로 다룰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실제로도 지금 미카엘라가 빚어 낸 심검들은 선계에서 보았던 것들 과 비교하는 것이 미안할 정도였다.
그렇기에 자신할 수 있었다.
‘충분히 받아칠 수 있다.’
판단을 마친 서준이 확신을 가지 는 순간, 미카엘라의 심판이 내린
다.
“죽어라-!!”
수천 자루의 광검들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린다.
그러나 서준은 우두커니 자리를 지켜냈다.
‘애초에 피할 공간은 없다.’
저것은 마음, 의지로 다루는 검.
궤적, 궤도와 같은 법칙에 구애 를 받지 않는 검으로서 어디로 도 망친다고 한들 벗어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 이었다.
‘모두 부순다.’
대상은 하늘을 가득 메울 정도로 수많은 검.
아니, 고작 그 정도 의지로는 저 검들을 다 부숴낼 수 없을 것이다.
‘검, 아니 하늘을 부숴낸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 생각할 수 있지만, 서준은 이미 해본 적 있던 일이었다.
애초에 선계, 등선을 위한 조건 이 하늘을 가르고 길을 열어내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생각이 닿자 자연스레 무공이 떠
오르며 몸이 움직인다.
‘천마제 절초, 역천(逆天)
하늘을 거스르고 부숴내는 힘, 모든 것을 집어삼킬 패황의 무공.
선계로 향하는 등선의 길을 열어 주었던, 하늘을 갈랐던 마선의 무 공이 서준의 손에서 다시 한번 펼 쳐지기 시작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