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권 23화
123화
말을 끝맺은 미카엘라가 검을 좌 에서 우로 그어 백색의 기운들이 실린 검격을 쏘아낸다.
자칼이 팔을 X자로 교차하며 막 아서고 있었지만, 미카엘라는 다음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제자리에 선 채로 코웃음 을 칠 뿐이었다.
“어리석은 짓을 하는군.”
자칼은 하등종인 수인 주제에 대
천사들과 같은 반신의 경지에 도달 한 존재.
수인족의 왕, 자칼이라는 놈은 이레귤러 (Irregular)라고 불릴 정도 로 뛰어난 재능을 가진 존재이긴 했으나 딱 거기까지에 불과했다.
반신(半神)에 오른 존재라고는 하나 아직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말이다.
지금 휘두른 것은 의지가 실린 기 운, 의념기로 반신 내의 벽을 넘어선 이만 펼칠 수 있는 공격이었다.
그리고 의념기를 막아 낼 수 있 는 것은 똑같이 의지가 실린 기운
뿐이었다.
자칼의 운명은 정해졌다는 말이 었다.
“우선 한 마리.”
미카엘라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 리로 선고를 내리며 둥을 돌리려 한다.
그러나 예상했던 것과 다른 상황 이 펼쳐졌다.
“크읍……. 더럽게 아프군.”
자칼의 육신이 뒤로 밀려나 흙바 닥에 일자로 긴 자국을 남겼으나 미카엘라의 생각대로 죽음을 맞이 한 것이 아니었다.
공격을, 의념기를 막아냈다는 말 이었다.
“어떻게……?”
두 눈이 휘둥그레진 미카엘라의 모습에 자칼의 입가에 피식 미소가 흐른다.
“고귀한 척해가며 스스로를 포장 하는 네놈, 천사들보다 진짜로 고귀 한 분을 만나서 기연을 얻었거든.”
오만한 표정, 천사들을 조롱하는 자칼의 말에 미카엘라의 미간이 와 락- 일그러진다.
“사형! 감히 천사를 모독한 죄! 즉결 사형에 처한다!”
“아까부터 계속 조잘조잘, 싸움 을 입으로 하는가?”
자칼은 미카엘라의 두 눈동자를 응시한 채로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 며, 검지와 중지를 까딱- 거린다.
“덤벼라.”
높은 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갖은 준비가 필요하듯이, 반신이라는 지
고한 강자의 경지에 도달했기에 그 위의 벽을 부숴내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한 게 당연했다.
그렇기에서준도 한 번 걸어봤던 길임에도 불구하고 반신 내의 벽을 부수기 위해 오랜 준비 시간, 성장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운이 좋게도 패황의 탑이 주는 보상들 덕분에 단기간에 벽을 부술 준비를 어느 정도 마쳐 내는 데 성공했다.
‘다소 재촉하는 감이 있긴 하다 만……
앞서 말했다시피 육체가 강인해
졌다고는 완벽한 준비를 마친 것은 아니었다.
시간을 두고 레벨 업을 통한다면 보다 완벽하게 준비를 해낼 수 있 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안전한 길만을 걷 기에는 신경 쓰이는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악마도 모자라서 천사들까지 신 경 써야 하는 꼴이니.’
최상위종인 두 종족을 상대로 전 쟁을 벌여야 한다는 말이었다.
패배를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으 나, 백 퍼센트의 확률로 승리를 장
담할 수 없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 다.
말 그대로 만에 하나의 확률로 인하여 패배를 겪게 될 수 있었으 니 말이다.
그리고 서준은 그 작은 확률도 간과할 수 없었다.
‘패배는 곧, 멸망으로 이어진다.’
당연하지만, 서준은 연합이라는 대사(大事)를 단순한 유희로 즐기 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억이 넘는 사람의 삶이라는 무게 를 자신이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고, 이들 한 명 한
명에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천사, 악마, 설령 그 누구라도 내 동료들과 나의 행복을 해치지 못하게 하겠어.’
정의 따위의 대의(大義)는 아니 었다.
항상 믿음을 보내고 따라오는 동 료들,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가족 들을 지켜낼 뿐이었다.
어렵게 쟁취한 행복이었기에 희 박한 확률마저 배제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다소 발걸음을 재촉할 필요가 있었다.
‘오늘, 이곳에서 반드시 벽을 넘
어선다.’
결단을 내린 서준은 자세를 다잡 으며, 가부좌 자세를 취했다.
“ 후우......
깊은숨을 몰아 내쉰 서준은 체내 의 천마신공을 운용한다.
고도의 기(氣) 혹은 기술이나 특 별한 운용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무식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 의 내공을 한 자리, 머리 위에 응 집, 응축시켜낸다.
쿠구궁-!
막대한 양의 내공에 대지가 공포 에 몸서리치며 요동을 친다.
비단, 대지뿐만이 아니었다.
서준의 강력함 앞에 고개를 조아 리고 있을 뿐, 천마신공은 절대적 인 마(魔)였기에 제 주인마저 집어 삼키는 힘이었다.
천지를 덮고 남을 양의 기운은 서준의 한계, 제어를 벗어나 제 주 인을 집어삼키려 한다.
통제를 벗어나려는 천마신공과 그를 억지로 휘어잡으려는 서준의 싸움이 벌어진다.
하나의 기운에 두 개의 의지가
충돌한다.
“끄읍......
계속되는 힘 싸움에, 육신이 비 명을 내지르며 비명에 신음이 새어 나왔지만, 두려움을 느낄 필요는 없었다.
‘거쳐야 할 과정이다.’
초월(超越)의 경지에 들어서고 반신에 도달함으로써 육체의 재구 성을 이뤄냈다지만 결국 근간은 인 간의 육신.
수용 가능한 힘, 내공에는 한계 점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그걸 알면서도 왜 이렇게까지 내 공을 웅집시켰냐고 묻는다면.
‘이것이 벽을 넘어서기 위한 필 수과정.’
반신 내의 벽을 넘어서기 위해 필요한 것은 심(心).
당연하지만, 단순한 내공을 말하 는 것이 아니었다.
‘한계점을 부숴낼 수 있을 정도 의 강력한 의지, 마음을 보인다.’
자칼처럼 끊임없는 단련을 통해 얻은 강력한 육신, 막대한 양의 내 공을 가진 것만으로는 반신 내의 벽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애초에 지금 응집하여 부유시킨 막대한 양의 내공은 단순히 체(體) 만으로는 절대 제어해낼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심(心), 마음의 힘은 달랐 다.
‘내가 너의 주인이다.’
꺾이지 않는 마음과 의지는 한계 라는 것을 모르는 존재.
어린아이의 투정 혹은 순간의 결 심과 같은 마음이 아니다.
항시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는 소 나무와 같은 굳은 마음, 의지를 담 아낸다.
‘나의 것들이여 내 의지를 받들 고 따르라.’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찰나의 흔들림, 변심만으로도 모 든 것이 무너질 수 있었기에 난이 도를 따지면 극악 극강이었다.
그렇기에 반신 내에서도 이 경지 를 벽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벽을 넘어서지 못했던 가?
아니, 이보다 난해하고 어려운 일들도 해내었다.
수많은 미혹이 다가오려 하였지 만, 어떠한 잡념도 품지 않는다.
오직 단 한 가지, 굳은 마음과 의지를 보인다.
‘경배하고 조아려라.’
서준의 꺾이지 않는 강한 의지가 머리 위로 응집된 구체에 흘러간다.
끼긱, 끼기긱…….
요란한 마찰음이 터져 나오고는 있었으나, 완벽하게 제어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반항이라도 하듯이 전보 다 더 거세게 날뛰려 하는 기운이
었지만 여전히 서준의 자세와 표정 은 적정(寂靜)하기 그지없었다.
애초에 고작 한 번으로 제어하고 다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의지가 닿고 있다는 것, 이것 하 나만으로도 충분한 성과라고 말할 수 있었다.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명상에 잠긴 서준은 다시 한번 응집된 기운을 향하여 다시금 강한 의지를 실어 보낸다.
끼기긱…….
여전히 거센 반항을 보였지만,
당황할 것은 없다.
애초에 쉽게 의지를 받들어 주리 라 생각하지 않았다.
‘조아려라.’
계속해서 의지를 보낸다.
응집된 천마신공과의 기세 싸움 에 온몸에서 작열과도 같은 고통이 느껴지고 숨이 벅차오르지만, 서준 은 잔잔한 호수처럼 한 치의 흔들 림도 보이지 않는다.
통제할 수 있다, 제어할 수 있다.
내가 너의 주인이다.
경배해라.
키직-!
조아려라!
혼들리지 않는 마음, 불굴의 의 지.
일념(一念)을 쏘아낸다.
끽…….
일념이 닿은 내공이, 서준의 의 지를 받들고는 잔잔하게 가라앉기 시작한다.
‘ 해냈다.’
입가에 피식- 미소가 흐르는 순 간, 시스템도 화답을 해온다.
띠링-!
[SSS+급 스킬, 천마신공의 기운 속에, 강한 의지를 담아내는 데 성 공해 10성, 대성(大星)에 도달해내 셨습니다.]
[SSS+급 무공 천마신공이 진화합 니다.]
[축하합니다! 천마신공이 Ex급 무공으로 둥급 향상되었습니다!]
[신화적인 업적입니다!]
[칭호, 화신(化神)을 획득합니다.]
[보유 중인 칭호 중 가장 뛰어난 능력을 가진 ‘화신’ 칭호가 자동으
로 적용됩니다.]
[화신 (化神)]
모든 스테이터스가 +200씩 상승 합니다.
새로운 의지, 의식의 세계를 열 어낸 서준의 눈동자에는 진한 이채 가 어려 있었다.
서준이 수련을 하고 있던 시각.
미카엘라, 천사들과 자칼과 수인 족의 싸움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 었지만, 승자는 이미 정해져 있다 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자칼은 서준의 도움으로 반신 내 의 벽 너머를 보고 온 덕에 대천 사, 미카엘라의 일격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그렇다고 아직 호 각을 이룰 정도로 성장한 것은 아 니었다.
실제로도 의념기를 다루는 미카
엘라의 공격들에 속수무책으로 무 너져 내려가고 있었다.
착-!
자그마한 자상이나 호흡의 흐트 러짐 없이 여유롭게 검을 휘두르는 미카엘라의 모습과 달리 자칼의 몸 곳곳에는 상처들이 나 있었고, 호 홉은 거칠기 그지없었다.
‘ 빌어먹을……
대천사급에 오른 존재들은 반신 의 경지에 오른 존재로서 상당한 강자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같은 경지에 도달해 있는 존재가 그렇게 큰 격차가 있올까
의문을 품었고, 그것은 크나큰 오 만이 됐다.
‘고작 막아내는 게 전부라니.’
심지어 이마저도 한계에 다다르 고 있었다.
검격을 막아내는 두 팔은 넝마와 다를 바 없는 상태였고, 육체를 지 탱하는 다리에는 서서히 힘이 풀려 가고 있었다.
제대로 된 반격조차 해보지 못하 고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는 자 신의 모습에 환멸이 밀려온다.
‘고작 천사 한 마리조차 상대하 지 못하면서 대체, 뭐가 왕이란 말
이냐.’
자칼은 스스로를 질책하고 절망 에 빠져있었지만, 정작 적인 미카 엘라는 진심으로 감탄을 토하고 있었다.
“하등종이 벽 너머의 세계를 보 고 오다니, 실로 대단하구나.”
본래 수인족의 한계점은 반신의 초입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당대 자칼이라는 왕은 의 념기를 막아내고 있었다.
‘넘어서지는 못했으나, 어느 정도 길을 열어내어 너머를 보고 오긴 했다는 거지.’
유례없던 일이었으며, 이것은 미 카엘라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참으로 훌륭하구나, 네놈의 능 력을 높게 사서 특별히 제안을 한 가지 하겠다. 나의 개가 되어라. 그 렇다면 죄는 사해질 것이오, 함께 구원의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다, 어떠냐?”
대답할 필요도 없는 질문이었다.
보고 겪은 천사들의 성정을 생각 한다면 지금 당장 사냥개가 목숨을 건진다 할지라도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동족, 국민을 죽이고
있는 천사들에게 고개를 조아리는 구차하고 비굴한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혼자서 단순히 살 아남는 게 목적이었다면 그냥 도망 쳤을 것이었다.
‘왕으로서, 나의 잘못들을 책임져 야 한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담을 수는 없었지만, 다행히도 수인족 모두가 생존할 수 있는 길, 활로(活路)가 한 가지 존재했다.
자칼은 조심스레 눈을 흘기며 패 황의 탑을 바라본다.
‘탑 내부에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어.’
수인족의 날카로운 감각과 더불 어 오랜 시간 그 누구보다도 패황 의 탑의 기운을 가까이서 느껴왔던 경험과 지식이 있기에 감히 확신할 수 있었다.
‘한서준이라는 인간이 벽을 넘어 서고 있다.’
미카엘라를 처치할 수 있는 존재 로 거듭나고 있다는 말이었다.
한 가지 걸리는 점이라면, 아직 은 한서준이 완전히 벽을 넘어선 것은 아니었다.
제아무리 영혼의 격이 높다 할지 라도 성장 과정 중에 외부의 간섭, 공격을 당한다면 크나큰 피해, 내 상을 입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 해야 할 일이 명 확해졌다.
‘미카엘라가 탑 내부에서 일어나 는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도록 내가 시선을 끌어야 한다.’
자칼은 넝마가 되어있는 주먹을 겨우 들어 올려 손가락, 그중에서 도 중지를 치켜세우며 입을 열었다.
“개소리 말고 이거나 처먹게나.”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