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권 20화
120화
사홀 후.
패황의 탑은 예상대로 호락호락 한 상대가 아니었다.
‘정말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네.’
30층을 넘어선 시점에서 지구 기 준 재앙으로 분류된 하이리치가 한 두 마리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후, 40충을 넘어서자 수많은 하이리치와 더불어 대군세를 거느 린 고블린 로드 그리고 그를 지휘
하는 한 쌍의 뿔과 검은 날개를 가 진 악마들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끝없이 쏟아지는 군세와 강력한 악마의 협공까지 더해지자 생사경, 반신의 영역이라고 해도 버거워지 기 시작했으나 진정 고난은 45층을 넘어설 때부터였다.
“이번엔 독인가.”
46층과 47층은 갑작스럽게 눈앞 에서 불길이 솟거나 발밑의 땅이 꺼지는 등의 주술이 전투를 방해하 면서 끊임없이 변수를 만들어냈다.
48층과 49충은 기이한 현상을 일으키는 결계가 감각을 마비, 혼
란 시켰다.
그리고 현재, 50층에 이르러서는 앞선 주술과 결계에 더불어 독까지 추가되고 있었다.
당연히, 평범한 독이 아니었다.
조잡한 독처럼 코끝을 찌른다거 나 급격히 고통이 밀려오는 수준이 아니었다.
무색무취(無色無臭)로 홉수되어 내부의 신장, 혈관들을 천천히 녹 여 부지불식간에 죽음을 선사하는 극독(劇毒) 이었다.
“까다롭긴 하네.”
계속해 방해 공작을 펼치는 주술
과 감각을 혼란, 마비시키는 결계, 그리고 소리 없는 죽음으로 인도하 는 독까지.
전투는커녕 목숨을 부지하는 것 만으로도 버거운 일이었다.
게다가 패황의 탑이 요구하는 바 는 고작 생존이 아니었다.
크르르…….
눈앞에 펼쳐져 있는 숫자를 헤아 리는 것이 무색할 정도의 많은 재 앙급 몬스터, 그리고 다섯에 달하 는 악마들을 모두 처치하는 것.
제아무리 생사경의 경지에 이른 강자라 할지라도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서준의 입가에는 1층에서 보았던 여유로운 미소가 가시질 않 고 있었다.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지.”
중원 제패가 막바지에 이르러 천마신교의 승리가 거의 확정되어가 자 각 문파에서 은거하고 모습을 감추었던 진정한 고수들이 하나둘 씩 모습을 드러냈고, 무림연맹에 합류했다.
그리고 제갈세가, 사천당가의 전 설이라 불리는 이들 제갈용과 당호 연도 모습을 드러냈었다.
당연하지만 오랜 시간 수련과 연 구를 거듭한 제갈용의 주술과 결계 들은 기존의 문주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변수, 혼란을 만들어냈고, 당호연의 독은 지독할 정도로 끔찍했다.
당시, 지금과 같은 반신의 경지 로도 몇 번씩 죽음의 위기를 겪었 을 정도였었다.
‘그때에 비한다면 이건 귀여운 수준이지.’
고작 이 정도의 방해에 발목을 잡힐 일은 없다는 말이었다.
‘우선 가장 성가신 독부터 몰아
낸다.’
체내에 스며든 독을 제어하고 내 공과 조화를 이뤄내어, 체내로 흡 수한다.
당연히 쉬운 일은 아니었다.
홉수 과정의 끔찍한 고통은 말할 것도 없었고, 순간의 실수로 신장 이 녹아내리는 끔찍한 죽음을 맞이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두려울 것은 없었다.
당호연의 독들에 비한다면 한참 이나 부족한 수준.
‘더군다나 이미 한번 성공했던 일이야.’
자연스레 내공이 독들과 어우러 지며 체내에 흡수된다.
[무색무취의 독을 모두 흡수해 저항력을 높입니다!]
[SSS급 스킬, 만독불침(萬毒不侵) 을 습득합니다.]
[스킬, 만독불침이 패황의 탑의 독에 저항합니다!]
성가시게 괴롭히던 고통이 가셨 지만, 난관이 전부 사라진 것은 아 니었다.
시야를 가리고 있는 진한 안개와 귓전에서 계속 울려 퍼지는 환청 소 리, 갑작스레 나타나는 환영들까지.
결계가 끊임없이 정신을 갉아먹 으려 하고 있었다.
‘전부 허영에 불과한 것들이다.’
눈앞에 보이고 들리는 것에 흔들 리지 않는다.
진실을 마주하려 하되 평정심을 유지한다.
이내, 진했던 안개가 증기처럼 흩어졌고, 환청과 환영들이 자취를 감춘다.
[강인한 정신력이 올곧은 정신을 유지합니다.]
[SSS급 스킬, 명경지수(明鏡止水) 를 습득합니다.]
[활성화 스킬 명경지수가 일정 수준 이하의 정신 관련 공격을 방 어합니다!]
[몽환(夢幻)의 결계, 무중(露中) 의 결계가 파괴됩니다!]
이제 남은 것은 전투 도중 변수 를 만들어내는 주술들뿐이었다.
언제 어디서 발동될지 알 수 없 고, 대응하기 힘든 것이었지만 아 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저런 몬스터들과 나는 격(格) 자 체가 다르다.’
어떤 변수도 생기지 않을 정도의 압도적인 힘으로 찍어 누르면 그만 이었다.
서준은 몸을 공중에 띄워 하늘로 높게 날아오르고는 넓게 펼쳐낸 내 공, 천마의 불꽃을 빚어내기 시작 한다.
이윽고, 하늘에서 피어나는 서준 의 불꽃, 묵염에 몬스터들의 두 눈
동자에 당혹이 어린다.
크륵-?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하늘에서 빚어지고 있는 불꽃은 대항할 수 없는 압도적인 힘이었다.
도망쳐야만 했다.
하지만 도망칠 곳이 없었다.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 공격으로부터 어찌 벗어날 수 있단 말인 가?
몬스터 군세들이 경외, 절망에 어린 눈동자들로 하늘의 불꽃을 바 라보고 있던 그 순간, 서준이 내뻗
은 손을 아래로 내리긋는다.
“천마제, 쌍(雙) 멸염붕효.”
하늘에서 불꽃들이 쏟아지며 군 세들을 뒤덮는다.
크륵, 크르륵-!
고통을 호소하던 몬스터들이 불꽃 을 끄기 위하여 바닥을 나뒹굴었지만, 아무런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지금 몸에 붙은 것은 멸(滅)하기 전까진 사라지지 않는 불꽃.
눈앞의 적을 파괴하고 집어삼킬 때까지 꺼지지 않을 것이었다.
크르륵-!!
몬스터들은 졸도하듯 비명을 내 지르며, 자신들의 육신이 녹아내리 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하이리치, 고블린 로드, 몽환의 악마, 극독의 악마 등의 다섯 마리 의 악마를 처치하셨습니다!]
[초대량의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레벨이 가파르게 상승합니다!]
[필요 경험치를 충족함에 따라 레벨이 122로 상승하였습니다!]
[축하합니다! 50충의 시련을 클 리어하셨습니다.]
다소 고되기도 했지만 층을 정복 할 때마다 주어지는 보상들을 보고 있으면 피곤이 전부 가셨다.
‘벌써 122레벨.’
끝도 없이 쏟아지는 몬스터들 덕 분에 탑을 등반하는 동안 자그마치 레벨이 17계단의 성장을 이뤄냈다.
모든 스테이터스가 오십 이상씩 상승했다는 말이었다.
불과 사흘 만에 국보, 보구급 아 티팩트를 착용한 수준의 스테이터 스 성장이 이뤄졌다는 말과도 같았다.
게이트를 찾아다니고 귀찮은 절 차들을 밟아야 하는 지구에서는 상 상도 못 할 성장 속도였다.
실로 엄청난 성과였고, 자칼이 요청했던 목적지에 이르렀지만, 이 미 서준의 시선은 새로 떠오른 홀 로그램 창을 보고 있었다.
[탑의 꼭대기, 51층에 도전하시 겠습니까?]
[※경고! 51충의 난도는 매우 어 렵습니다! 충분한 준비를 끝마친 이후 도전할 것을 권장합니다.]
앞선 시련들도 결코 쉽다고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서준도 경험이랑 지식이 없었다 면 상당히 고생했을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황의 탑은 이런 경고 메시지를 보내온 적이 없었다.
‘탑이 경고할 정도면 도대체 어 떤 시련이 기다리고 있길래.’
어째서 자칼이 50층에서 도전을 포기했는지 알 수 있었다.
물론, 서준은 이곳에서 물러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오히려 서준의 입가는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어려운 만큼 보상도 확실하겠 지.’
물론, 막연한 기대가 아니었다.
여태껏 보고 겪은 패황의 탑의 시스템을 보자면 높이 올라갈수록 그에 합당한 보상을 내주었다.
게다가 탑이 마지막에 내어줄 보 상이 어떤 것인지도 예상을 할 수 있었다.
우웅-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으나, 탑을
오를수록 차고 있는 정복왕의 수투 의 반응이 격해지는 것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40층 이후로부터 수투가 지금처 럼 마치 재촉하듯 울어대고 있었다.
‘이 위에 정복왕의 파편이 있다.’
단순히 압도적인 위용과 뛰어난 기(氣)의 양 때문에 시선을 사로잡 혔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것이 아니 었다.
탑의 꼭대기에는 정복왕, 가이사 가 남긴 파편의 조각이 존재했던 것이다.
파편을 흡수한 정복왕의 수투가
얼마나 큰 상승폭을 보이는지 서준 은 익히 알고 있었다.
‘이번에는 얼마나 대단한 성장을 보여줄까.’
꿀꺽.
서준이 군침을 삼킨다.
만약, 여태까지 그래 왔던 것처 럼 상상했던 것 이상의 성장을 보 여 준다면.
‘반신 내의 벽을 부숴낼 수 있 다.’
최강이라 불린 마선의 시작점, 하늘을 가르고 등선했던 그 경지에 다시 도달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억제력을 가질 정도의 강한 힘, 무력을 바라고 있는 서준의 입장에서는 절대 물러날 수 없는 상황이 었다.
때문에, 서준은 발걸음을 옮겨 마침내 계단을 올랐다.
레사스펠트는 패황의 탑에서 40 층이라는 기록을 세워 수인족 원로
회의로부터 서열로 따지면 네 번째 에 버금가는 대장군이라는 직위를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상당한 실력 자였다.
대장군이라는 높은 직위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레사스펠트는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다.
태어났을 때부터 강력한 육신과 천재라 불릴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15살이 넘어선 시점부터 마을, 헬베스트 내에서 겨룰 자가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이후로는 수인족이 기본적으로
하는 수련도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하지 않았지만 당시 마을 내에서 수련을 지도하는 교관보다 강력했 기에 막을 이가 존재치 않았다.
다소 불손한 레사스펠트의 태도 에 좋지 않은 시선을 가진 이는 여 럿이었지만, 그 누구도 직접적으로 표출할 수는 없었다.
강한 힘을 숭상하는, 따라야 하 는 수인족의 규율이 존재했기 때문 이었다.
때문에, 레사스펠트의 행보는 성 년이 된 이후로도 거침이 없었다.
노동과 일을 하기보다는 주민,
약자들의 것을 약탈하며 호의호식 한 것이다.
그렇게 레사스펠트는 수인족의 도 시 중 한 곳인 헬베스트에서 왕이 된 듯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다.
레사스펠트는 원하는 것들을 모 두 얻었고 앞으로도 거머쥘 수 있 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이 설령 수인족의 왕좌라 할 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착각이 부서지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자칼, 레잉가, 치프.’
듀로타, 수도에 입성한 이후로 만난 자칼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
그들과의 만남은 충격적이기 그 지없는 일이었다.
처음으로 패배를 겪고, 원하는 것을 손에 넣지 못했던 날이기 때 문이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알 수 있었다.
고작 헬베스트라는 작은 세계에서 군림했던 것은 우물 안 개구리 와도 같았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후회를 하기에는 너무 늦 어 버렸다.
게을리 보냈던 시간들로 인하여 격차가 생겨버렸기 때문이었다.
결국에는 레사스펠트는 원했던 왕이 아닌 신하가 되어버렸다.
심지어 두 번째 가는 인물도 아 니었다.
고작해야 네 번째, 대장군의 직 위에 앉게 된 것이다.
항상 자신이 최고인 줄 알았던 레사스펠트에게는 너무나도 모욕이 었다.
‘드디어 이 치욕을 씻을 수 있는 날이구나.’
레사스펠트는 아까 전, 굳은 얼굴이 되어 자칼이 했던 말들을 떠 올리며 비릿한 미소를 홀렸다.
‘트리니티를 탈퇴하는 게 진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하위권의 종족 값을 가진 지구의 인간에게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모 르겠다만 종족 값은 절대적인 것이 었다.
약자를, 국민을 챙기는 정책을 펼칠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지독 하게 멍청한 놈이었다.
그래서 정말 다행이었다.
‘불경죄로 자칼과 그의 측근들을 쳐낸다면 나보다 강한 수인족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토록 원했던 왕이 될 수 있다 는 것이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절 로 미소가 번진다.
“이러고 있을 게 아니지.”
레사스펠트는 곧장 고래고래 소 리를 내질러 비서를 호출했다.
“어이, 지금 당장 천사님들께 보 낼 전서구를 가져오도록 해라!”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