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권 16화
116화
요한 슈나이더로부터 세계 각성 자 협회의 성명이 갑작스럽게 발표 됐다.
그 내용은 세계 각성자 협회 본 부가 한국으로 이전한다는 것, 또 한 그 전권을 서준에게 위임한다는 말로 시작되었다.
또한, 그동안의 업무 태만과 저 지른 비리들을 제 입으로 밝히면서 그 죄의 무거움을 평생 안고 죄인 으로 살겠다는 말과 함께 자진해
새로운 세계 각성자 협회 건설의 노역을 자처하겠다는 내용도 포함 됐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발표였기에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귀와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하지만 카메라에 찍힌 얼굴과 목 소리는 분명 세계 각성자 협회장, 요한 슈나이더 였다.
애초에 의심할 수 있는 일이 아 니었다.
감히 트리니티, 천사들을 등에 업고 있는 세계 각성자 협회를 누 가 조종할 수 있단 말인가?
다소 혼란스럽긴 했지만 받아들 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었다.
한국에 되돌아와 이러한 광경을 한국 각성자 협회장인 강석호의 사 무실에서 함께 확인하던 서준의 입 가에 피식 미소가 흐른다.
“방금 이야기 들으셨던 대로 한 국이, 제가 창설할 길드가 세계 각 성자 협회를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대체 어떤 방법을 쓰신 겁 니까?”
사실 강석호는 서준이 세계 각성 자 협회로 이동한 순간부터 파견된 요원으로부터 현지의 상황들을 중
계받고 있었다.
단체의 규모가 규모인 만큼, 서준이 세계 각성자 협회의 경비들을 뚫고, 임원들이 모여 있는 회의실 로 진입했다는 소식을 접한 이후로 부터는 조금은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 각성자 협회의 모략이 비겁 하고 분노를 일으켰지만, 그들이 쥐고 있는 권력들은 여태까지 그랬 듯이 단순히 무력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연합, 천사들이 배후에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고, 세계 각 성자 협회는 국제 정세를 쥐고 있
었기 때문이었다.
요한 슈나이더가 말했듯, 분쟁과 마찰을 중재하고 의견을 조정하는 단체라는 개념이 걸리기 때문이었다.
막강한 배후와 권력들을 가지고 있는 탓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것 이라 생각했었다.
때문에, 강석호는 최악의 상황까 지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한서준 각성자님이 세계 각성자 협회, 지구 전체와 척을 지 게 된다면?’
서준의 성정상 본인이 벌인 일은
스스로 감당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 었지만, 분명 국가적인 피해가 생 길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강석호는 이 시점에서, 본 인이 할 일은 한서준 각성자가 세 계의 적이 되지 않게끔 만드는 것 이라 여겼다.
그를 위하여 현실적인 부분에서 갖은 준비를 해가며 마음의 준비,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과 달리 사건 이 너무나도 깔끔히 해결되었다.
미리 준비했던 것들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세계 각성자 협회
임원들의 태도는 너무나도 정중했 다.
“옛날에 익혀 뒀던 잔재주를 좀 이용해서 정신을 고쳐줬죠.”
대수롭지 않다는 듯 내뱉는 서준 의 말에 강석호의 두 눈동자에 경 외심이 어린다.
“정신 조작 계열 스킬은 상당히 습득하기가 어렵다고 들었는데……. 역시 대단하십니다.”
경외 어린 강석호의 반응에서준 이 정확한 진실들을 고백하려 했다.
하지만 곧 머릿속에 의문이 떠오 른다.
‘분근착골의 고통이면 정신 조작 수준이긴 하지.’
따지고 보면 거짓이 아니었고, 존경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는 강 석호의 기분에 초를 칠 필요는 없 었다.
무엇보다도 하나하나 설명하기에 는 확인 및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그것보다 이제는 길드와 연합에 관련된 일을 차질 없이 진행할 수 있게 된 거 맞죠?”
강석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혼쾌 히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워낙 확실하게 일 처리를 해주셔서 이제는 지구에서 는 신경 쓰실 문제가 없으실 테죠.”
길드는 말할 것도 없고, 연합을 수용할 수 있는 본부의 건설도 시 작할 수 있게 되었다.
가장 위험한 과정인 자재를 옮기 는 운송 과정은 서준이 데려온 세 계 각성자 협회의 임원들로 해결 가능해졌다.
원래라면 공사 과정에도 불만이 여럿 터져 나왔겠지만, 세계 각성 자 협회의 권한을 전부 위임받은 덕에 다룰 수 있는 각성자와 인부
들도 많아지게 됐다.
공사 현장에 각성자들을 24시간, 365일 상주시켜 보호해줄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확실한 안전이 확보되고 높은 임 금을 보장하게 되면, 많은 인력이 지원해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면 이제는 이종족들에게서 연합 창설 제의의 수락을 받아내기 만 하면 되겠네요.”
지금까진 계획을 실현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진 것에 불과했다.
본부를 만들고 연합을 창설해봤
자 가입된 차원이 지구 하나뿐이라 면 그저 세계 각성자 협회와 다를 바가 없었다.
말했듯, 허울뿐인 연합은 서준이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네, 알고 있으시겠지만 쉬운 일 은 아닐 겁니다.”
계속해서 밝은 얼굴로 이야기를 이어가던 강석호의 얼굴에 사뭇 진 지함이 깃든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동 의는 마지막 과정이라고 볼 수 있 었지만, 제일 중요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과제였기 때문이었다.
오랜 기간 유지되었고 상위종인 천사들이 만든 트리니티, 그리고 이제 갓 창설된 하위종이라 분류된 인간이 세운 연합.
어느 쪽에 붙는 게 이득이 되어 줄지는 굳이 머리를 굴려 가면서 잴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서준의 표정에는 걱정이 보이지 않는다.
“걱정하실 거 없어요, 제가 있잖 아요.”
서준의 입가에 걸린 여유로운 미 소는 믿음을 주었고, 그것은 곧 큰 확신이 돼 석호에게 막연한 기대를
안겨주기 시작했다.
쿠 쿠
꿈 많던 20대 초반의 과거, 청년 강석호의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심 장이 거세게 날뛰고 입가에 자연스 레 미소가 피어난다.
“믿겠습니다.”
기분 좋은 강석호의 미소에서준 이 고개를 주억인다.
“제가 보낸 공문들에 대해서 이 종족들의 답장은 왔나요?”
“아직은 어느 쪽도 답을 내주지 않았습니다.”
“굳이 더 기다려 볼 필요는 없겠 죠.”
“백 퍼센트 확신은 할 수 없지 만……. 아마 그 어디도 답장을 주 지는 않을 겁니다.”
말했다시피 천사, 트리니티를 두 고 서준이 만드는 연합에 붙을 이 유가 하나도 없었던 탓이다.
답장을 기다려 봤자, 아무런 소 득이 없을 거라는 말이었다.
서준의 성정상 이런 기다림을 좋 아하지는 않았다.
아니, 이번 일로 척을 지게 될 천사, 그리고 이미 적대 관계가 된
악마들을 생각하면 여유를 부리며 기다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때문에, 서준은 과감히 결정을 내린다.
“내일 아침 해가 뜨는 대로 제가 직접 아니마 차원으로 향할 테니 공문을 띄워 주시면 감사드리겠습 니다.”
서준이 의지를 보였다면 강석호 가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었다.
“지금 바로 공문을 발송해놓도록 하겠습니다.”
고개를 주억인 강석호는 곧장 공 문 작업에 돌입했다.
서준이 본격적으로 결속된 연합 의 결성, 타 차원을 향한 움직임을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서대문구, 아니마 차원으로 향하 는 게이트의 입구.
서준은 마지막 이동 절차를 끝마 쳤지만, 곧장 게이트를 넘어서지는 않았다.
“뒷일들을 좀 부탁할게.”
강석호 협회장이 존재하기는 하 나,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존재하는 법이었다.
다행히도 지금의 서준에게는 제 법 유능한 동료들이 많았다.
등을 돌리자, 카일과 칼리번이 고개를 주억이며 입을 연다.
“네, 길드 창설과 관련된 문제들 은 말끔하게 처리해놓겠습니다.”
“연합 본부도 최대한 빠르게 건 물을 완성시켜 내도록 하겠습니다.”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두 사람인
만큼 능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특히나 지금처럼 길드, 공사와 같은 지구의 행정적인 측면에서는 서준보다 뛰어나다고도 말할 수 있 었다
그렇기에 두 사람이라면 분명 강 석호와 함께 길드, 연합에 관한 일 들을 빠르게 추진할 수 있도록 해 줄 것이었다.
“그럼 믿고 갔다 올게.”
서준의 말에 카일과 칼리번이 자 신감 넘치는 미소를 흘린다.
“지구 쪽은 걱정하지 마시고, 시 간이 조금 걸리시더라도 마음 편히
목적을 이루고 돌아오시면 됩니다.”
서준은 두 사람의 말에 대답 대 신 미소로 화답을 한 뒤, 아니마 차원으로 이어지는 게이트를 향하여 발을 내디뎠다.
마침내 도착한 아니마 차원의 풍 경에서준의 입가에는 저도 모르게 미소가 흐르기 시작한다.
“좋네.”
처음 귀환했던 날 보았기 때문일 까?
울창한 숲, 푸른빛의 맑은 하늘 은 조금도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칙칙하고 매캐했던 매연
들과 다르게 산뜻하게 퍼지는 풀 내음이 상쾌함을 선사한다.
숨을 들이마신 것만으로도 온몸 에 힘이 차오르는 것만 같았다.
“흐으읍-!”
서준이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자 연이 주는 생기를 만끽하고 있던 때였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백과 패기가 잔뜩 실려 있는 힘이 넘치는 목소리가 서준의 귓전 에 울려 퍼진다.
아니마 차원에 도착한 순간부터 기척을 느끼고 있었고 그 대상이
누군지 알고 있었기에서준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린다.
130cm가량밖에 되지 않는 작은 키와 화려한 금빛 갈기털과 꼬리뼈 를 뚫고 나온 기다란 꼬리까지.
마주한 금빛 눈동자에는 강인한 의지가 비추어지고 있었지만, 그 속 깊은 곳에는 분명 반가움도 존재했다.
“오랜만이네요, 레잉가 님.”
웃으며 인사를 건넨 서준의 눈동 자가 레잉가의 육신을 빠르게 훑는 다.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
만……
본래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었다.
과거에도 엄청난 기백과 패기를 느꼈었던 만큼 레잉가가 상당한 고 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 이상이네.’
그러나 레잉가의 강함은 처음 만 남 때 유추했던 것 이상이었다.
작고 앙상해 보이는 육체는 그저 응시생들이 뿜어지는 기백에 움츠 러들고 겁을 먹을까 봐 힘을 억눌 러 뒀을 뿐이었다.
강제로 압축해놓을 뿐이지 실제
레잉가의 육신은 어느 곳 하나 울 퉁불퉁한 곳이 없는 순도 백 퍼센 트의 근육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반박귀진의 외공 형태인가?’
본래 반박귀진은 일정 수준 이상 에 오른 강자들이 내공, 기운을 갈 무리하여 평범한 사람처럼 느껴지 게 만드는 거였다.
하지만 레잉가, 수인족은 반박귀 진을 내공, 기운이 아닌 외공, 육신 에 적용을 해내고 사용을 하고 있었다.
‘신기하네.’
이종족의 땅에 온 만큼, 어느 정
도 진귀한 광경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시작부터 이렇게 특이 한 것을 보게 줄은 몰랐다.
‘기대했던 것보다 더 흥미롭겠 네.’
서준이 레잉가를 훑으며 특이하 면서도 강한 힘에 홍미를 느끼고는 흡족스러운 미소를 흘리고 있던 순 간.
마찬가지로 서준을 훑고 있던 레 잉가의 입에서는 감탄이 어려 나온 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훌륭 하게 성장을 하셨군요.”
처음 시험장에서 마주했을 때부 터 다른 지구인들과는 그릇이 다르 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반년도 되지 않은 시간 동안에 그릇을 부숴내고 위대한 왕 과 같은 경지, 반신(半神)의 경지에 도달해낼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 지 못했다.
‘수인족의 위대한 왕께서도 이런 성장을 보이시지는 못했는데.’
엄청난 서준의 성장 속도에 경외 심과 동시에 수인족의 본능인 투쟁 심마저 피어난다.
‘무(武)를 나누고 그 성장한 힘을
온전히 느껴보고 싶군.’
구태여 결과를 보지 않아도 승자 는 정해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본래 수인족은 강한 무를 숭상하고, 그 힘을 나누고 견주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과 즐거움을 느 끼는 종족이었다.
그렇기에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 장 대련을 벌여보고 싶었으나 아쉽 게도 서준은 지구의 귀빈으로서 아 니마 차원에 방문해온 존재였다.
안내자의 역할로 온 자신이 결례 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레잉가는 차오르는 투지를 억지
로 눌렀다.
“안내역이 필요하시다고 하셔서 한걸음에 달려왔습니다.”
서준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제가요?”
당연하지만, 갑작스럽게 출발을 정했기에 이렇게 세세한 부분을 신 경 쓴 적이 없었다.
“직접 말씀하신 것은 아니었지만, 지구에서 온 공문에 그리 적혀 져 있었습니다.”
레잉가의 말에 퍼즐들이 맞춰진 다.
서준이 아니마 차원으로 오기로 결정한 것을 가장 먼저 알렸던 인 물은 강석호였다.
아무래도 타 차원, 그것도 종족 을 대표하는 수장, 왕을 만나러 가 는 여정인 만큼 필요한 부분을 쉽 게 챙기기 위해서다.
다행히 그런 서류적 절차는 강석 호가 깔끔히 처리를 해주었다.
딱 그 정도인 줄로 알았는데, 아 니마 차원 내에도 연락을 넣어 놓 았던 것이다.
첫 타 차원 방문인 만큼 곤란한 상황들을 겪게 하지 않기 위해 안
내자를 붙여준 것이었다.
언제나 깔끔하고 훌륭한 강석호 의 일 처리에 저도 모르게 감탄이 또 흘러나왔다.
“그래도 레잉가 님 정도의 강자 가 직접 마중까지 나오시다니 좀 놀랍네요.”
기본적으로 강한 힘에는 큰 책임 이 따랐다.
그리고 레잉가 정도의 강자라면 필연적으로 중요한 직책과 많은 업 무를 떠맡게 된다.
실제로도 레잉가는 가장 강인한 전사로서 많은 업무를 도맡아 처리
하며, 하루하루 전쟁처럼 바쁜 일 상을 보내고 있었다.
“본래 능력에 맞는 대우를 받아 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수인족은 이종족 중에서는 한국, 지구와 가장 많은 교류를 하고 있 는 종족이었다.
서준의 소식을 수없이 접해왔고, 지구의 왕과 같은 존재에 도달했다 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의 한서준 각성자, 아니, 지 구의 왕이시라면 이 정도의 대우는 당연한 법입니다.”
추후 이루어질 협상, 제안에도
서준은 수인족들을 상대로 다소 강 경한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었다.
레잉가의 말에 굳이 겸손히 고개 를 숙일 필요는 없었다.
“그런 거라면 사양치 않겠습니 다.”
“수인족의 수도인 듀로타와는 거 리가 제법 되는 관계로, 비행조(飛 行鳥)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고개를 주억이는 서준의 모습을 확인한 레잉가가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과연 푸른 하늘에서 비행 조가 레잉가의 앞에 착지했다.
자연스럽게 새에 놓인 안장에 안
착한 후, 고삐를 손에 쥔 레잉가가 뒷자리를 바라본다.
자연스레 서준도 거대한 새의 등 에 놓인 안장 위에 엉덩이를 붙인 다.
“떨어지지 않게끔 꽉 잡으셔야 할 겁니다.”
레잉가의 당부의 말을 끝으로 비 행조가 하늘로 높이 날아오르며 수 도, 듀로타를 향해 나아갔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