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권 14화
114화
당황스럽거나 놀랍지는 않았다.
일전에 카일과 칼리번의 이야기 를 통하여 미를 움직이게 만들었 던 뒷배가 세계 각성자 협회라는 것을 어느 정도 유추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눴던 것이 일 주일이 지난 탓인지 므네모시아의 염으로 기억을 읽을 수가 없었다.
확신할 수가 없었던 만큼, 손을
쓰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 일로 손을 써야 할 이유가 생겼다.
서준이 이빨을 보인 적을 방치할 리가 만무했다.
‘생각해보면 차라리 잘됐지.’
현재 지구를 대표하여 연합이라 불리는 트리니티에 가입되어 있는 것은 세계 각성자 협회였다.
허나, 하나의 지구에 두 개의 차 원 연합이 존재할 경우 인원, 힘들 이 분산되는 만큼 결단코 좋다고는 볼 수 없었다.
특히나 연합이 허울뿐인 ‘트리니
티’라는 곳이라면 아예 존재해서는 안 되었다.
‘이번 기회에 교육을 철저히 끝 내 완전히 굴복시킨 다음 트리니티 에서 탈퇴하게 만들고 흡수하거나, 아니면 완전히 지워낸다.’
어두워지고 있는 서준의 얼굴에, 강석호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허리를 기역 자로 꺾는다.
“죄송합니다. 한서준 각성자님에 게 이런 말씀을 전하게 되다니…….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아니에요, 이건 협회장님이 사 과할 일 아니잖아요.”
EU 때도 그렇지만, 서준이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걸 알고 일부러 강석호를 이용한 것일 터였다.
하지만 그것이 세계 각성자 협회 의 실수였다.
‘나를 건드리는 것도 모자라 내 사람들을 이용하려 하다니.’
선을 넘어선 이번 일에 대한 죗 값을 치르게 해줄 것이었다.
“이번 기회에 세계 각성자 협회 의 임원들도 확실하게 처리해놓고 오도록 할게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려는 서준 을 강석호가 황급히 만류했다.
“지금 당장 출국을 하셔도 임원 들을 만나실 수는 없으실 겁니다.”
S급 각성자들보다 무력이 부족한 세계 각성자 협회의 임원들이 실권 을 쥐고 휘두르며 신경전을 벌일 수 있던 데는 이유, 특별한 방식이 존재했다.
“그들은 도망의 프로입니다.”
세계 각성자 협회의 임원들은 본 인들의 장점과 단점을 명확하게 이 용해가며 영리하게 행동해왔다.
“무력으로 위협을 가해올 것 같은 상대라면 직접적인 만남을 절대적으로 피해가며 시간을 끌어냅니다.”
그렇게 벌어낸 시간으로 여론을 조성, 조작하며 상대방을 밀어붙여 서 트리니티의 수장인 천사족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오랜 추격 끝 에 지친 추격자가 제풀에 나가떨어 져 포기를 선언하게 만들었다.
“아마 한서준 각성자님의 출국 소식을 들으면, 아니 몇 시간만 한 국에서 움직임이 보이지 않아도 곧 장 위치를 이동할 겁니다.”
실제로도 여태껏 대다수의 S급 각성자들은 이와 같은, 세계 각성 자 협회 임원들의 방식 때문에 상 당히 골머리를 앓았고, 그들의 의 도대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서준은 자신감 넘치는 목 소리로 말했다.
“괜찮습니다.”
허세나 오만 따위가 아니었다.
정말로 서준에게는 문제될 게 없 었다.
“도망을 치기 전에 도착할 거니 까요.”
서준은 피식 미소를 홀리며 오른 팔을 흔들었다.
“그건……?! 케리케이온 암슬릿!”
“이거라면 문제없겠죠?”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 바로 세계 각성자 협회의 건물, 임원들이 있는 곳에 도착해 낸다면 놈들도 손을 쓸 방도가 없 을 것이었다.
강석호의 입가에 씨익- 미소가 흐른다.
“돌아오시는 대로 길드 창설에 대한 공표를 진행할 수 있도록 준 비해놓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갔다 올게요.”
마지막 말을 끝으로 서준의 신형 이 신기루처럼 흩어지더니,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스위스, 베른, 세계 각성자 협회.
80층에 달하는 높이로 그 대단한 위용을 보여 주는 마천루이자 연합 트리니티의 한국 지부로, 대격변의 시대를 상징하는 대표 건물인 이곳 의 최상층에 임원급의 인사들이 하 나둘 들어선다.
그렇게 비어있던 자리가 하나씩 주인을 찾아가, 어느덧 빈자리가
없어진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부 협회장, 델루스가 입을 연다.
“정, 정말 괜찮을까요? 지금이라 도 창설을 승인해주고 용서를 구하 는 게 어떨까요?”
몸을 벌벌 떨어가며 질문을 던지 고 있는 델루스와 달리, 가장 상석 에 앉은 협회장, 요한 슈나이더의 입가에 여유로운 미소가 흐른다.
“괜한 걱정을 하는군, 우리의 뒤 에 누가 있는지 잊었는가? 우린 엔 젤, 천사들로부터 선택받은 인간, 세계 각성자 협회의 임원들이지 않 은가?”
세계 각성자 협회의 임원들은 능 력이나 투표로 뽑힌 것이 아니었다.
대격변 초기, 천사들에게 직접 선택받아 뽑힌 자들이었다.
현재와 같이 평화로운 지구에서 이런 불공정한 과정이 있었다면 불 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겠지만, 당시 대격변 초기는 그야말로 혼란 의 시대였다.
몬스터를 상대하며 생존해나가는 것도 급급했던 세상이었던 탓에 별 다른 소리가 나올 수 없었고 덕분 에 천사들의 선택을 받았다는 이유 만으로도 임원 자리를 손쉽게 차지
해낼 수 있었다.
“세계 제일이라고 해봤자 결국 지구, 우물 안의 개구리, 위대한 종 족이자 트리니티의 중점인 천사들 에게 반기를 들지 못할 테지.”
요한의 말에 나란히 앉아 있던 대다수의 임원이 신이 나서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협회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무 력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우리의 방 식대로 시간을 끌어가면서 트리니 티에 도움을 요청하면 되니 걱정할 거 없지요.”
“특히나 한서준같이 제 마음대로
날뛰는 난봉꾼 같은 놈들은 길드 창설 초장에 확실히 휘어잡아놓고, 반기를 들지 못하도록 요직에 우리 가 앉아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회의장에 모여 있는 임원들이 약 속이라도 한 것처럼 요한의 뜻에 동의하고 있었지만 델루스는 불안 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 그래도 만에 하나의 일들이 벌어져 저희의 계획들이 어그러지 면 저희는 정말 끝장입니다.”
델루스가 괜히 이런 공포를 느끼 는 것이 아니었다.
누구보다도 한서준 각성자에 관 한 정보를 많이 수집해왔다고 자부 할 수 있었기에 이런 반응을 보이 는 것이었다.
‘한서준은 담대함을 넘어서 막무 가내의 성정을 가지고 있다.’
누구의 비호를 받든, 누가 엮여 있든 크게 개의치 않아 하며 굳건 하게 자신의 신념을 펼치고 끝내는 이뤄낸다.
뿐만 아니라, 무슨 수를 썼는지, 한서준에게 불순한 의도로 접근했 던 이들은 모두 뼈와 근육들이 뒤 틀리는 끔찍한 모습이 되어서 고통
을 호소했고, 이후에는 미치광이가 되거나 삶의 의지를 잃게 되는 일 이 파다했다.
영상과 사진으로 보는 것만으로 도 끔찍하고 괴로울 수준에 델루스 는 자신만은 절대 그렇게 되지 않 겠다고 다짐했었다.
그래서 델루스는 처음 이 계획이 수렴될 때도 적극 반대를 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한서준의 행보를 모르는 것인지 임원들은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이 친구 왜 이렇게 걱정이 많 나. 그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처리해놨으니 걱정할 거 없네, 확 실하게 준비를 해놨다니깐.”
혹여나 한서준이 움직임을 보인 다면 바로 정보, 소식을 들을 수 있도록 한국의 각성자 협회부터, 공항의 인력들뿐만 아니라 한서준 이 거주하고 있다는 주택 경비원의 일부까지 매수해놓은 상태였다.
“한국에서부터 소식이 전해지게 되면 바로 도망을 치면 그만이라는 걸세.”
아무리 한서준의 무력이 괴물 같 다 할지라도 이곳은 스위스. 한국 과 거리가 상당히 있는 곳이었다.
전용기로 바로 이동을 한다고 할 지라도 어림잡아 반나절은 걸리는 거리.
도달하기 전에 미리 점지해놓은 안전가옥 혹은 완전히 정반대의 위 치로 도망을 쳐내면 그만이었다.
“계속해서 도망을 다니면서 시간 을 끌다 보면, 늘상 그래 왔던 것처 럼 우리가 승리하게 되지 않겠나?”
비릿한 미소를 짓는 요한의 모습 에 임원들이 물개박수를 치며 호응 했다.
“역시나 요한 님! 천하의 한서준 도 별다른 수를 내지 못하겠군요.
크하하-!”
“원래 아무리 무력이 뛰어나봤자 결국 지혜로운 자가 승리하는 법이 죠, 요한 님 같은 분이 진정한 승 리자가 아니겠습니까!”
“하하, 과찬은, 항상 해오던 방식 아닌가.”
내뱉는 말과는 달리 요한의 입꼬 리는 계속해서 호선을 그린다.
얼굴에 묻어나는 표정으로 요한 의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확인한 임원들이 서로 나서서 아양 부리기 시작했다.
“이런 시스템을 정립해놓은 것이
요한 님이지 않습니까, 새삼 정말 대단하십니다.”
“암요, 지구의 평화가 누구의 손 에서 나왔겠습니까! 하하!”
계속되는 찬사에 요한의 기분이 하늘을 찔러 입꼬리가 귀에 걸릴 것처럼 찢어진다.
“됐네, 됐어, 그것보다 오랜만에 이렇게 모이게 된 김에 한잔씩 하 겠나?”
임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흔쾌 히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침 좋은 술을 구해뒀습니다,
입구에 대기시켜 놓은 비서에게 시 켜서 바로 가져오라 하겠습니다.”
당당히 말한 상무가 품 안에 넣 어두었던 스마트폰을 꺼내 비서에 게 연락했다.
뚜루루…….
그러나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 하고 연결 음은 들려오지 않고, 수 신에 실패했다는 안내 음성만 흘러 나온다.
한창 달아오르던 흥이 깨져버리 기 시작한 것이었다.
“크홈......
요한이 헛기침을 내뱉으며 불편 함을 표하는 모습에 다른 임원이 재빠르게 말을 내뱉는다.
“상무님의 비서는 영 준비성이 없나 보군요, 요한 님 걱정하지 마 십쇼. 제 비서에게 시키도록 하겠 습니다.”
말을 내뱉은 임원이 빠른 손놀림 으로 스마트폰을 조작했다.
그러나 결과는 상무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통화 연결음은 들려오지 않고, 안내 음성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하지만 상무처럼 완전히 연락에
실패한 것은 아니었다.
콰과광-!
부서진 출입문과 함께, 애타게 찾던 비서가 회의실 내부로 날아 들어왔다.
“이게 무슨?!”
임원들이 당황하고 있는 사이, 입구 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온다.
“드디어 찾았네.”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 돌린 임원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한, 한서준!”
한국에 심어놓은 스파이를 통하여 불과 몇 시간 전에 한국 각성자 협회로 갔다는 한서준이 스위스 베 른에서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것이 었다.
“히이익—!”
처음부터 한서준을 겁내고 두려 워하던 델루스는 악마라도 본 것처 럼 경기를 일으키며 비상구를 통하여 도망치려 했지만, 얼마 가지 못 하고 회의장으로 되돌아오며 바닥 을 나뒹군다.
순간의 틈을 타, 빠르게 상황을 인지한 몇몇 임원들이 다급하게 책
상 위의 붉은색, 긴급 호출 버튼을 연신 눌러대며 소리를 내지른다.
“경, 경비!! 침입자다!!”
우렁차면서도 간절한 목소리가 애석할 정도로, 아무도 회의실로 찾아오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지 못한다는 것이 맞았다.
“입구 지키던 애들 찾는 거면 지 금 전부 다 바닥을 기고 있어.”
씨익- 야차(夜义)의 미소를 흘리 며 서서히 다가오는 서준의 모습에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가 차오른다.
그러나 임원들도 이런 기세에 지
레 겁을 먹을 평범한 조무래기들이 아니었다. 나름대로 실력을 갖춘 A 급 각성자였을뿐더러, 각성자 협회 를 운영하며 이와 같은 위기를 이 따금씩 겪어본 적이 있었다.
요한은 떨리는 목소리를 빠르게 가다듬어내며 말을 내뱉는다.
“지금 자네가 무슨 짓을 벌이는 지 알고 있는 건가?! 이곳은 각성 자 협회의 가장 높은 곳! 가장 위 대한 장소인 세계 각성자 협회이자, 차원 연합 트리니티의 지구 지부란 말이다!”
나름 위협을 가하기 위하여 내뱉 은 말이었지만 서준의 입가에는 피
식- 미소가 흐를 뿐이었다.
“그래서?”
여유로운 서준과 달리 요한의 다 급한 반응과 떨리는 음성에는 공포 가 느껴진다.
“이, 이곳에서 무력을 사용하는 것은 트리니티, 천사들에게 반기를 드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게 뭐가 문제인데?”
“멍, 멍청한 놈 같으니라고. 트리 니티, 천사들에게 반기를 드는 행 위로써 신의 사자들께서 심판을 내 리러 오신다는 거다!!”
서준의 고개가 갸웃거린다.
“그건 좋은 일이잖아?”
천사들과는 연합에 관련된 문제 로 언젠가는 한 번 만남을 가져야 했다. 그러나 천사들은 악마와 동 급의 상위종, 강력한 종족인 만큼 놈들의 땅에 직접 방문하는 것은 지금 서준이라 할지라도 위험할 수 도 있었다.
그런데 사자들이 알아서 찾아와 준다니 오히려 고마운 일이었고, 생각한 것보다 더 과감하면서도 확 실하게 정리해야 할 이유가 하나 생긴 것이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