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권 13화
113화
서준의 소비는 건물 구매로만 끝 나지 않았다.
백화점, 그중에서도 명품 가죽을 이용한 사치품을 만드는 브랜드로 발걸음을 옮기었다.
매장 내부에는 저렴한 것이 몇백 만 원, 비싼 것은 몇천만 원, 억을 호가하는 명품 가방, 시계들이 줄 지어 놓여 있다.
‘그렇게 필요한 물건들은 아니라
고 생각하지만..
집에 있을 가족들을 떠올리자니 마음이 바뀌었다.
놀라운 얘기지만, 사치품 하나로 기가 살고 죽는 것이 인간 세계였 다.
지구는 말할 것도 없었고, 중원 대륙에서도 사치품은 자랑 내지는 과시 용도로 사용되는 것 중 하나 였다.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는 집안이 라면 하나쯤, 여유가 부족한 이들 중에서는 가짜로라도 들고 다니려 고 기를 쓰는 사람들을 만들어 낼
정도로 명품은 자존심과 체면을 세 우는 용도로 사용이 된다.
서준의 입장에서는 다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지만, 그렇다고 그것에 불쾌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나도 이런 것들을 수집한 적이 있었지.’
중원을 제패한 이후, 한참 무료 함을 느끼던 시절 취미로 갖고 싶 은 것을 모두 손에 넣었던 적이 있 었고, 금은보화에 뒤덮여 본 적도 있었다.
‘비록 모두 한순간의 영화(榮華) 에 불과했다지만 그 행위 자체만으
로도 만족감, 행복들을 느낄 수 있 으니까. 중요한 건 이런 휴식, 선물 들이 충분히 삶의 원동력이 된다는 거지.’
그리고 다른 누구도 아닌 가족이 이런 만족을 느낄 수만 있다면, 서준에겐 더할 나위 없이 가치 있는 소비가 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구매의 이유는 충 분했다.
무엇보다도 이 정도의 가격대들 은 지금의 서준에게는 그리 큰돈도 아니었다.
고민을 마치고 결단을 내리자,
행동은 재빨랐다.
천만 원대를 호가하던 가방 두 개, 그리고 시계 하나까지 구매를 한서준은 곧장 백화점을 빠져나왔 다.
양손을 가득 채우고 있는 고가의 브랜드 마크가 찍힌 쇼핑백들 때문 인지 길거리로 나서자 자연스레 사 람들의 시선이 쏠렸다.
그저 시선이 쏠리는 것 정도야 딱히 개의치 않을 일이었지만, 영 웅으로 칭송받을 정도로 명성이 높 은 것이 문제였다.
“야, 야, 저 사람 한서준 아냐?”
만약을 대비하여 입고 있던 후드 트레이닝복의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였지만 이마저도 얼마 가지 못했다.
“어? 맞는 것 같은데?”
“한서준 각성자?”
괜한 소란이 일어나기 전, 서준 이 황급히 자리를 옮겨 낸다.
다행히도 재빠르면서도 신묘한 발놀림으로 어렵지 않게 사람들의 시선이 없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이제 차도 필요하겠네.”
웬만한 연예인들을 압도할 정도
의 유명세 때문에 길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시선이 쏠리고 있었다.
물론, 마음만 먹는다면 방금처럼 빠른 발놀림으로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지만, 타인, 특히나 가족들과 함께 이동하고 있을 경우엔 난감해 질 것이었다.
가족들과의 평안한 생활을 위해 서라도 이동 시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는 차량을 한 대 구매할 필요 가 있었다.
“뭐, 이참에 차량도 한 대 구매 하지.”
한번 마음을 먹고 큰돈을 써서인 지, 소비에 큰 고민이 들거나 두렵 지가 않았다.
더군다나 가족들의 행복을 위한 소비를 한다고 생각하니 만족감도 크게 느껴진다.
이렇게 지출 계획을 비롯한 갖가 지 생각을 하며 이동을 하자 눈 깜 짝할 새에 집 앞, 엘리베이터에 도 착할 수 있었다.
띵-!
활짝 열린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 은 후 익숙하게 층수를 눌렀다.
얼마 가지 않아서, 문이 열리고
집의 현관문이 보였다.
삐삐삑- 띠리리.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 고 집으로 들어가자, 가족들이 평 소와 다름없는 목소리로 인사를 건 네 왔다.
“오빠 왔어?”
“서준이니?”
“생각보다 늦었구나.”
서준은 평온한 모습으로 거실에 모여 TV를 보고 있던 가족들의 앞 에 쇼핑백들을 내려놓는다.
“이건 뭐야?”
고개를 갸웃거린 서연이 바닥에 놓인 쇼핑백들을 가리킨다.
“ 선물.”
서준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쇼 핑백에 담겨 있던 명품 가방과 시 계를 꺼냈다.
“이 시계는 아버지 거, 이 가방 은 어머니 거, 그리고 이건 서연이 네 거.”
갑작스러운 선물 공세에 가족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이, 이거 엄청 비싼 브랜드 아 니냐?”
“이 시계, 대충 봐도 천만 원이 넘어가는 물건이 아니냐.”
“다들 이런 명품을 하나쯤은 가 지고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사 왔어요.”
눈이 휘둥그레져 있는 가족들의 반응과 달리 서준은 대수롭지 않다 는 듯 고개를 으쓱인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수롭지 않은 척을 하는 것이다.
최대한 선물을 받는 가족들이 부 담감을 느끼지 않도록 말이다.
그러나 그런 서준의 노력이 무색 하게도 가족들은 놀람을 감추지 못
했다.
“괜히 가격만 비싼 거를 뭐 하러 사 왔어.”
“아빠는 이런 거 필요 없으니 환 불하자꾸나.”
“맞아, 이렇게 비싼 거를 어떻게 들고 다니라고 그래. 환불하고 엄 마랑 아빠랑 같이 고기나 먹자.”
가족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쏘아붙였지만, 서준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뭘요, 이런 것도 다 기념인데. 부담 가지지 마세요.”
의문이 들게 만드는 서준의 말에
가족들의 고개가 젖혀진다.
“무슨 기념?”
“오늘이 무슨 날이었나?”
씨익- 미소를 지은 서준은 자신 만만한 목소리로 말을 내뱉는다.
“인간 한서준, 오늘부로 건물주 가 됐습니다. 그것도 강남의 40층 빌딩의 건물주요.”
별안간 서준의 폭탄 발언에 가족 들의 눈이 보름달처럼 커지고 말았다.
* *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방 안 침대 에 몸을 눕힌 서준은 방금 선물과 건물 구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가족들의 표정과 반응에 저도 모르게 피식- 미소를 흘렸다.
‘다행이야.’
가격이 가격인 탓에 부담을 느껴 완고히 거부할 줄 알았는데, 자신 의 자신감 넘치면서도 카리스마 있 던 선언 덕분이었는지 그 난리였던 가족이 모두 입을 닫고 선물을 받
아들였다.
누군가는 과한 사치를 부리는 것 이라며 욕할 수도 있겠지만 서준은 상관없었다.
‘내가 부당한 방법으로 번 돈도 아닌데.’
스스로의 능력으로 정당하게 번 돈을 나 자신, 가족들의 행복을 위 해서 쓰는데 눈치를 볼 필요는 없 었다.
애초에 이번 쇼핑은 시작에 불과 한 것이었다.
‘지금부터의 소비는 단위 자체가 달라질 거야.’
길드, 연합을 창설한 뒤가 진짜 시작이었다.
서준이 원하는 것은 억제력을 가 질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힘이었다.
이러한 무력은 단순히 연합이 결 속되고, 원활하게 굴러가는 것으로 만들어 낼 수 없었다.
‘연합의 병력을 단련시키고 무장 한다.’
과거 최강이라 불렸던 미국도 이 와 같은 체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매년 국방비를 한화 기준으로 천조 가깝게 투자해 왔다.
연합은 그보다 더 강력하고 거대 한 세력을 만드는 것인 만큼, 매년 천조를 넘어 경(京)에 달하는, 아니 그보다 더 많은 금액이 필요할 것 이었다.
물론, 이게 개인의 돈이 아닌 길 드, 연합의 돈으로 굴러가는 것이 겠지만, 그때를 대비하여 어느 정 도 이런 소비들에 익숙해질 필요는 있었다.
‘고작 이 정도 소비에 움츠러들 어서는 안 되는 거지.’
이렇게 서준이 길드, 연합에 관 한 일로 서서히 마음의 준비를 해
가고 있던 순간이었다.
스마트폰에서 연신 진동 소리가 울리고는 메시지들이 도착했다.
[강석호 협회장 - 연합 창설 건 으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괜찮 으시다면 지금 만나 뵐 수 있을까 요‘?]
어둠이 짙게 내리깔린 늦은 시 간, 일은 내일로 미루는 것이 상식 적인 판단이었고 서준도 그렇게 행 동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강석호가 이렇게 연락을
해 오는 것을 보면 단순한 일은 아 닐 것이다.
특별한 일도 없는 지금, 굳이 미 룰 필요가 없었다.
서준은 곧장 침대에서 몸을 일으 켰다.
며칠 전, 서준과의 만남 이후 강 석호는 임진강 전투의 사후 처리
때보다 더 밤낮없이 움직여야만 했 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서준이 최종적으로 바라는 것이 단순 히 길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진정으로 결속된 차원 연합이라 니……
그것은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정말 꿈같은 이야기였다.
아직도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지 기도 했지만 서준의 얼굴을 떠올리 면 금세 고개를 내젓게 된다.
‘한서준 각성자님이라면 해낼 수 있겠지.’
그간 봐 왔던 한서준의 기적들은 강석호에게 확신을 준다.
분명, 이례 없는 대통합, 결속을 다진 연합을 만들어 낼 것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한서준 각 성자, 한국이라는 국가가 자리하겠 지.’
과거 석호가 이루고자 했던 꿈을 아득히 넘어선, 천지 근간이 뒤흔 들릴 만한 일이 곧 실현되려 하고 있었다.
가슴 한편이 뜨겁게 벅차오르며,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물론, 아무런 대가 없이 서준에
게 업혀 갈 생각은 없었다.
지금이야말로 스스로와 했던 약 속을 지켜 내야 할 때였다.
‘전력으로 한서준 각성자님의 일 들을 보조한다.’
차원 연합이라는 거대한 세력을 만드는 만큼, 일이 닥쳤을 때 하면 늦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사전에 준비해 놓아야 만 했다.
자잘한 준비들은 강석호의 능력, 권한들로 어느 정도 진행해 낼 수 있었지만 큰 문제들이 남아 있었다.
혼자서 해결해 보려 했지만 너무
규모가 커 서준에게 연락하게 된 것이었다.
“ 흐음......
맞은편에 앉아 있는 서준이 턱에 손을 괸 채로 침음을 홀리자, 강석 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보시다시피 연합의 인원들을 수 용할 만한 땅이 없습니다.”
연합, 타 차원의 이종족들도 수 용해야 하는 탓에 땅만큼은 매우 넓어야 했다.
하지만, 익히 알고 있듯, 한국은 그리 땅이 넓은 나라가 아니었다.
굳이 이용하자면 주인이 사라진
빈 곳, 과거 북한의 땅이 남아 있 긴 했지만.
“역시 너무 위험하겠죠?”
“네, 그리고 위치가 위치다 보니 인부들이 일하기를 거부할 것입니 다.”
요즘 들어 조금씩 영토를 수복해 나가고 있었지만, 북한은 아직 몬 스터가 들끓는 곳이었다.
그런 위험을 부담하면서까지 자 재를 옮기고, 공사를 할 인력은 존재치 않았다.
단순히 일신의 무력만으로는 해 결할 수 없는 일인 만큼 서준의 미
간도 깊게 파이기 시작한다.
“일단은 당장 답을 도출할 수 있 는 문제가 아닌 것 같으니, 제가 조금 더 생각하고 방안을 찾아본 뒤에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고민을 끝마친 서준이 자리를 박 차고 일어나려던 순간, 강석호가 황급히 말을 내뱉는다.
“아직 말씀드리지 못한 중요한 것이 하나 남아 있습니다.”
“이것보다 더 말입니까?”
서준의 눈치를 살피던 강석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번 일에 날파리들이 꼬이기 시작해 버렸습니다.”
“누구죠?”
눈을 가늘게 뜬 서준의 모습에, 강석호가 놓여 있던 노트북을 돌려 서 한 통의 메일을 보여 주었다.
[세계 각성자 협회 - 한서준 각 성자님은 영웅이라 칭송받을 정도 로 명예가 드높은 인물인 만큼 제 대로 된 날짜에 공표하는 게 옳다 고 판단이 됩니다. 하지만 아직 한 국의 사태들이 수습된 상태가 아니 니 우선은 창설을 잠시 미루는 것
이 좋다는 판단이 되는 관계로 잠 시 보류토록 하겠습니다.]
물론, 이건 공식 석상에서 내뱉 을 때를 대비한 형식적인 답장이었다.
“협회의 핫라인을 통하여 연락을 취해본 결과 임원들은 돈과 한서준 각성자님이 창설하시려는 길드의 명예직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터무니없는 요구에서준의 입가 에 헛웃음이 흘렀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