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권 12화
112화
그렇게 서준이 이번 사건으로 얻 은 수확을 정리하고 있던 순간이었다.
끼익-!
굳게 닫혀 있던 문이 활짝- 열어 젖혀지며 강석호가 허겁지겁 협회 장실 내부로 들어선다.
강석호는 S급 각성자로서 초인의 경지에 들었기에 땀을 홀리거나 호 흡이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이진 않
았지만, 항상 단정하던 옷매무새가 무너진 것만으로 얼마나 급하게 걸 음을 옮겼는지 예상할 수 있었다.
“하하…… 차가 너무 막혀서 그 만. 기다리게 해서 정말 죄송합니 다.”
그런 강석호가 허리를 꺾으며 사 과를 건네 오는 모습에서준은 고 개를 내젓는다.
“아닙니다. 저야말로 업무 처리 에 한창 바쁠 때 약속도 잡지 않고 불쑥 찾아와서 죄송할 따름이죠.”
“그런 말씀 마시지요. 한서준 각 성자님이라면 언제든 편하게 오셔
도 됩니다.”
너털웃음을 홀리던 강석호는 옷 매무새를 다듬고는 커피포트가 놓 여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차는 커피로? 녹차? 아니면 따 로 드시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저는 괜찮습니다. 오래 있지는 못할 것 같아서요.”
카일과 칼리번과의 만남도 있었 고, 석호의 말마따나 늦어 버린 시 각이었기에 벽에 걸린 시계는 시간 을 오후 6시 30분을 막 넘어 7시 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 말은 곧 가족과의 저녁 식사
시간이 된다는 말이었다.
천 년간 부재였던 가족의 소중함 과 유대를 느낄 수 있는 식사 시간 은 가급적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럼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시겠 군요.”
고개를 주억이는 서준의 모습에 강석호가 그 맞은편의 소파로 걸음 을 옮긴다.
강석호가 소파에 몸을 기대기 무 섭게 서준은 곧장 화두를 던진다.
“세력을 구축하려고 합니다.”
갑작스러운 말이었지만, 그간 서준의 과감하면서도 확실한 행동력
을 지켜봐 온 만큼 강석호의 표정 은 미동도 없었다.
대신하여,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 야기를 이어 간다.
“세력이라……. 어느 정도를 말 씀하시는지 잘 모르겠군요.”
서준은 항시 상상을 뛰어넘는 일 을 보여 주었던 만큼 짐작조차 함 부로 할 수 없게 되었다.
다행히도 서준도 예상한 질문이 었던 만큼,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악마, 천사, 용 그 어떠한 존재 도 함부로 대적할 수 없는 거대하 면서도 강력한 세력을 만들 생각입
니다.”
이번 카일, 칼리번과 회동한 후, 갑작스레 결정지은 사항은 아니었다.
대격변, 몬스터라는 존재를 인식 했을 때부터 계속 생각하고 고민했 던 문제였다.
그저 이번 데메이아, 악마 군단 그리고 벨리드라는 존재를 인식함 으로써 확신을 내렸을 뿐이었다.
‘지금 지구의 평화는 살얼음판 위에 있어,’
꿈만 같은 가족들과의 생활, 행 복들이 언제 깨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당장 벨리드만 해도 악마 군단을 쓰러뜨린 것을 빌미로 삼아 서준을 노리고 있었고, 기본적으로 계속해 서 생성되는 게이트에서 몬스터들 이 끊임없이 시민, 국가를 넘어서 지구 전체를 위협하고 있었다.
물론, 기존 지구의 기득권자들도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여 평화를 위 한 지구의 연합인 세계 각성자 협 회를 창설하고, 차원 연합인 트리 니티에 가입이 되어 있었지만, 허 울뿐인 것이었다.
실제로 충칭과 임진강을 비롯한 악마의 침공에서 그 어떤 종족도
도움을 주지 않지 않았는가?
“제 손으로 직접 세계 각성자 협 회와 같은 지구 연합, 아니 이종족 들과 차원 연합을 만들 생각입니 다.”
서준은 중원 대륙을 통치한 오랜 경력이 있었고, 그것으로 하여금 진정한 평화의 시대를 열었기에 그 방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단적으로. 진정한 평화는 단순히 선한 마음, 행동들로만 쟁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억제력,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
는 거대한 힘이 필요하다.’
서준, 일신의 무력이 강하다고는 하나 혼자 할 수 있는 한계가 존재 하는 법이었다.
보다 확실하면서도 강력한 힘을 갖추기 위해서는 세력, 연합이 필 요했다.
지금처럼 허울뿐인 협회, 연합이 아닌, 같은 목표로 끈끈하게 결속 된 진정한 연합이 말이다.
서준의 이야기를 경청하던 강석 호가 묵묵히 고개를 주억인다.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제가 해야 할 것은……
말끝을 흐리던 강석호가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길드 창설을 준비해 놓아야겠군 요?”
강석호의 현명함에서준의 입가 에 피식 미소가 흐른다.
“이야기 진행이 빨라서 좋네요.”
연합이라 불릴 만한 세력을 구축 하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 다.
그중에서도 가장 우선시되면서도 중요한 것은 역시나 구심점이자 데 스크 역할을 해낼 중심지였다.
가장 중요한 자리가 곧 세력의 힘인 만큼 남에게 함부로 이 중책 을 맡길 수는 없었다.
‘나의 길드를 만들어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린다.’
하지만 각성자로 이루어진 길드 는 일종의 군사 집단을 구축하는 것과 같았기에 정부와 각성자 협회 의 승인을 받아 내야 했다.
본래, 까다로운 절차들을 거쳐야 하는 탓에 최소 한 달 이상의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고 강석호에게 특 별히 부탁하기 위해 불쑥 협회장실 을 찾아온 것이었다.
“최대한 빠르게 처리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서준이 조심스러운 물음을 던졌 고, 다행히도 강석호는 흔쾌히 고 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해 왔다.
“일주일 내로 준비를 끝내 다시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날.
강석호가 길드 창설에 관하여 분 주히 힘을 써 주고 있을 때 서준도 박차를 가하며 길드 창설을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일은 바로 건 물, 길드 하우스의 구입이었다.
“한서준 각성자님의 명예를 생각 한다면 이 정도 큰 빌딩은 필요하 지 않겠습니까?!”
강석호로부터 소개를 받은 부동 산 중개업자, 용성훈이 주먹을 불 끈- 쥐며 한껏 고양된 목소리로 외 치고 있었다.
서울 강남구.
한국에서 가장 비싼 땅이라 불리 는 그곳에, 위풍당당한 위용을 뽐 내고 있는 40충짜리 거대한 빌딩이 서준의 시야를 가득 메웠다.
“이렇게나 큰 빌딩이 필요할까 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서준의 모습 에 성훈이 손사래 친다.
“아무렴요, 오히려 한서준 각성 자님의 명성을 고려하면 오히려 너 무나도 아쉬운 층수라고 볼 수 있 습니다. 과거 한국의 4대 길드라 불렸던 곳들도 이런 고층 빌딩 하 나씩은 다 가지고 있거든요. 특히
불새의 경우에는 70층에 달하는 높 은 건물을 소유하고 있죠.”
서준은 이어지는 성훈의 이야기 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뒷머리를 긁적이고는 고민에 빠졌 다.
‘다 쓸 수는 있으려나?’
자그마치 40층.
그 거대 빌딩을 기업이 아닌, 개 인이 소유하게 되는 것이었다.
물론, 본목적은 길드 하우스로 이용할 속셈이지만 말이다.
다만 일단은 개인이 사용하는 빌 딩에 이런 건물이 필요한지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굳이 살 필요가 있을까 계속해서 의문이 피어났지만, 강석호의 추천 인 만큼 이유는 있을 것이었다.
“저도 이 물건이 매물로 나오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 기업 중 하나인 더 에이치 그 룹 아시죠? 이게 그 기업 소유의 빌딩이거든요. 강남역에서 걸어서 5분도 안 되는 초역세권 노른자 땅 인지라 설마 이 건물을 매물로 내 놓을 줄 몰랐는데 강석호 협회장님 이 지독하게도 설득했나 보더라고 요.”
용성훈의 이야기에서준이 듣는
중 고개를 슬쩍 까딱이고는 입을 연다.
“그래서 가격이 얼마죠?”
거래하는 데 있어 가장 민감하면 서도 중요한 질문이었기에 쉴 새 없이 입을 움직이던 성훈의 입이 잠시나마 멈추고는 사뭇 진지한 표 정이 되었다.
이내, 결심이라도 한 듯 성훈의 입가에 자본주의의 환한 영업용 미 소가 피어난다.
“8천억입니다.”
순간, 서준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예? 8천억이라구요?”
놀라서 저도 모르게 반문을 내뱉 었지만, 성훈은 여기서 흔들리면 안 된다는 듯이 여전히 미소를 띤 채로 쐐기를 박아 넣는다.
“네, 8천억. 8천억입니다.”
“참……. 땅값이 왜 이렇게 올랐 습니까?”
아무리 강남땅이라고 해도 이 정 도까지의 가격을 지니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유 없는 상승은 존재하 지 않았다.
“당연히, 전부 한서준 각성자님 의 명성 덕분이죠.”
머리를 회전시키자 금세 그 이유 를 알 수 있었다.
“혹시 안전 때문에?”
서준의 혼잣말에 용성훈의 손가 락을 튕긴다.
“역시나! 한서준 각성자님 통찰 력이 탁월하시군요.”
현재 지구는 몬스터들에게 끊임 없이 위협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몬스터를 상대할 수 있는 것은 각성자들.
그 각성자 중에서도 악마 군단을 홀로 격퇴해 낸, 세계 제일의 한서준이 서울에 거주하고 있었다.
단적으로 놓고 보자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가 바로 한국, 그 중에서도 서울이라는 말이었다.
때문에, 안전한 거주지, 투자처를 원하는 사람들이 계속 몰려들었고, 한국의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것이었다.
예부터 강남은 한국에서 가장 비 싼 땅으로 그 명성이 높았고, 눈앞 의 빌딩은 초역세권에 위치했으며 대지 면적이 천 평은 가뿐히 넘는
다는 것과 더불어 시각적으로도 완 고한 미(美)를 자랑하는 고층 빌딩 이었다.
흔히 이름만 빌딩인 5층 내외의 100억 미만으로 구매할 수 있는 건 물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규모였기 에 가격이 천문학적일 수밖에 없던 것이다.
이유는 충분히 납득 갔지만, 가 격을 생각하면 고민을 끝낼 수는 없었다.
‘돈을 이렇게 막 써도 되려나?’
상당히 비현실감이 느껴지는 액 수였지만, 당장 서준에게도 그 정
도의 돈이 존재하기는 했다.
빠르게 디아볼로스, 데메이아의 현상금을 정산받았기에 오히려 충 분히 여유롭기까지 했다.
하지만 서준의 목적은 단순히 길 드 창설로 끝이 아니었다.
‘연합 창설과 운영을 위한 초기 금이 어느 정도 필요하려나?’
중원 대륙을 제패하고 운용을 해 본 경력이 있기에서준은 조직이란 것을 굴리기 위해서는 엄청난 지출 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필요한 물품, 비품, 그 외로도 예상치 못한 지출도 잔
뜩 생기지.’
그렇기에 가능하다면 최대한 많 은 현금을 확보하는 편이 좋았다.
‘어떻게 하지?’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서준의 마 음을 알아챘는지 성훈이 황급히 입 을 열었다.
“제 중개업 12년 경력을 걸고 약 속드리겠습니다. 이 빌딩, 한서준 각성자님께 있어 절대로 구매한다 고 손해 볼 물건이 아니라는 것을 요. 장담합니다. 이렇게 추천하는 것은 제 사리사욕을 채우고자 함이 아닙니다. 그것도 아니면, 강석호
협회장님을 믿는다고 생각하시고 구매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 흐음.
신음을 흘린 서준이 손을 턱에 괸다.
사실 성훈의 말대로라면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석호의 말을 듣고 서준이 손해를 봤거나 아쉬운 일이 생겼던 적은 한 번도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의 땅값 이 오른 것이라면 이번 상승은 시 작에 불과했다.
‘내가 연합을 제대로 창설하고
결속시킨다면 각성자뿐만 아니라 이종족들도 한국으로 모이기 시작 하겠지.’
아니, 당장 이번 주 내로 발표할 길드와 연합 창설의 이야기만으로 도 한국의 땅값은 한 번 더 천정부 지로 치솟게 될 것이었다.
여러모로 서준의 입장에서는 망 설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좋습니다. 구입하도록 할게요.”
서준의 흔쾌한 대답에 용성훈의 입가에 웃음꽃이 만개한다.
“홀륭한 선택이십니다.”
그렇게 서준은 8천억짜리 강남
대빌딩의 건물주가 되었다.
목표로 하고 있던 연합 창설로 향하는 크나큰 한 걸음을 내디딘 것이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