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권 10화
110화
글렌스를 비롯한 각성자들이 비 명올 토하며 바닥에 널브러지는 것 이 화면에 중계되고 있었지만, 상 임의장, 쿤 레옹하츠의 표정에는 조금의 당황도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예 견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흐음……. 혹시나 귀화 제의를 받아들일까 싶어서 한국까지 와 봤 습니다만…… 역시나 헛걸음을 한 것 같군요.”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비단 상임의장뿐만이 아니었다.
EU를 대표하는 직책들도 큰 동 요 없이, 묵묵히 고개를 주억이고 있었다.
“그래도 완전 소득이 없던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한서준이 계획해 둔 대로 행동을 해 주었으니 말이 죠.”
가장 최선책이었던 유럽의 나라 중 한 곳으로 귀화시키는 것은 실 패하였지만 차선책, 서준의 신경을 긁어 무력을 사용하게 하는 데는 성공한 것이다.
“확실히 영웅이라 칭송받던 한서준의 잔인한 면모가 담긴 이 영상 이 퍼진다면 타격이 제법 클 겁니 다.”
글렌스를 비롯한 EU 소속의 각 성자가 먼저 시비를 거는 무례를 보였지만, 위협이 섞인 발언들은 편집으로 잘라 내면 그만이었다.
아니, 애초에 질투에 눈이 먼 이 들에게는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적당히 물고 뜯을 이슈가 필요할 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영웅이라 칭송받 던 자의 무차별 폭력은 그들에게
좋은 이슈가 되어 줄 것이었다.
물론, 한서준의 명예가 워낙 대 단한 만큼 이 한 방으로 날개를 완 전히 꺾지는 못할 거다.
애초에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이 들도 한서준을 한 방에 꺾어 낼 것 이라 생각을 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이번 일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방심하지 말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를 견제해야 할 테죠.”
“빌런으로 지정하기까지 이제 얼 마 남지 않았습니다. 틈을 줘선 안 되겠지요. 공세를 멈추지 않는 것 이 중요합니다.”
파르슈나 이반젤라, 집행위원장 의 말에 호세프 에스파, 사무총장 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빌런 등재라니, 너무 이르지 않 나요?”
이에, 쿤이 비릿한 미소를 흘린 다.
“걱정하실 거 없습니다. 세계 각 성자 협회 쪽과 이미 이야기가 끝 난 사항입니다.”
지금 한서준의 기세를 경계하는 것은 비단 EU뿐만이 아니었다.
각지의 패자(觀者)들, 그중에서도 대격변의 시대가 도래한 이후 가장
큰 권력을 쥐었던 세계 각성자 협 회는 온 신경을 쏟고 있는 수준이 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이 지금 EU 에 큰 힘이 되어 주고 있었다.
“세계 각성자 협회 쪽에서 나선 다면 한서준 그도 별다른 뾰족한 수를 내지 못하겠군요.”
“이런 상황을 아예 생각지도 못 하고 있을 것입니다. 한서준이 강 하기는 하지만 아직 경력도 짧고, 새파랗게 어린 놈이라 이런 상황에 는 약할 테니까 말이죠.”
“맞습니다. 미국처럼 기억을 읽
어 내는 므네모시네의 염을 가진 것도 아닐 테니까요. 집행위원장님 말씀대로 이런 계획이 있는 것 자 체를 꿈도 꾸지 못할 겁니다.”
한서준을 몰락시킬 계획으로 이 야기꽃을 피우고 있을 때였다.
쾅-!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대표 들이 화들짝 놀라서 고개를 돌린다.
“누구냐?!”
그곳에는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찌그러지고는 먼지 속에서 두 명의 사내가 회의장에 들어서고 있었다.
“아니, 이런 누추하신 분들이 귀
한 곳에 모여서 다들 뭐 하고 있는 지?”
“자네들은……
금발과 은발을 각각 지닌 사내, 한때 세계 제일이라 불렸던 카일과 크라운즈 나이트의 일관을 차지하 고 있는 칼리번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인물의 방문이었 기에 당황스러웠지만, 다행히도 그 들은 적이 아니었기에 대표들의 놀 랐던 가슴이 다시금 가라앉고 자연 스레 입에서는 여유가 흘러나온다.
“이번 건은 자네들과 관련된 일 은 아니니까, 신경 쓸 것 없네.”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젓는 상임의 장의 모습에 카일의 입가에 피식 미소가 흐른다.
“관련이 없다니 섭섭한데. 그 영 상 한서준, 아니, 왕에 관한 것 아 닌가?”
날이 서 있는 카일의 질문에, 상 임의장은 입을 열지 못한다.
그러나 카일에게 상임의장의 대 답 따위는 필요 없었다.
카일과 칼리번은 오랫동안 정상 의 자리에 있었던 만큼 EU, 세계 각성자 협회와 같은 이들의 더러운 방식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며칠 전, EU의 대표들이 디아볼로스, 빌런들에 관한 처리를 핑계 삼아서 한국에 입국했을 때부 터 감시를 멈추지 않았고 이렇게까 지 추적을 해 온 것이었다.
“멍청한 생각 하지 말고 자료들 놓고 가.”
“맞아, 이 친구 말대로 자료들을 놓고 가면 으음…… 멀쩡하긴 힘들 어도 그래도 목숨은 부지할 수 있 을 거야.”
서준이 등장한 이후로 비록 최강 의 자리를 내주게 되었지만, 카일 과 칼리번은 한때 세계 제일을 논
했던 이들이었다.
그들이 가하는 위협에 대표들의 몸이 저도 모르게 움츠러든다.
그러나 완전히 꺾이지는 않았다.
여기 모여 있는 이들도 상당한 권력을 거머쥐고 있는 이들이었다.
지금과 같은 위기를, 숱한 난관 을 헤쳐 온 이들이라는 말이었다.
“이거 왜들 이러나. 한서준이 빌 런이 되는 것은 자네들에게도 좋은 일 아닌가?”
디아볼로스, 데메이아가 사라짐 으로써 세계 공공의 적이 없어진 상황이었다.
이제 세계 각성자 협회, 미국 혹 은 중국과 같은 강대국들이 각자의 뜻을 펼치기 위하여 싸움을 시작할 것이었다.
균형이 깨지며 패권의 구도가 계 속해서 바뀔 거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 흐름은 카일과 칼리번 도 피해 낼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카일과 칼리번도 그런 상 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디아볼로 스를 완전히 소탕하지 않고 힘의 균형, 평화를 유지하는 용도로 이 용을 했었다.
“세계 모두가 단합하고 한뜻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한서준은 강 력하기 그지없는 존재인 만큼 힘의 균형도 딱 맞지 않겠나?”
“그렇게 하면 네놈들은 안전하게 패권을 계속 쥘 수 있는 거고?”
“역시! 자네는 똑똑해서 좋아. 이 건 서로가 윈윈하는 전략이라는 거 지.”
상임의장의 말에, 카일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흐른다.
“아직도 이렇게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다니……
말끝을 흐리는 카일의 시야가 먼 미래를 향한다.
“영감님들, 이제 대격변의 시대 는 끝났어.”
데메이아와의 전투를 직접 겪었 고, 그 자리에서 기적을 느꼈던 만 큼 확신을 할 수 있었다.
이제는 한서준이라는 영웅, 새로 운 시대가 펼쳐질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카일의 두 눈동자에 어려 있는 동경심에 상임의장의 미간이 찌푸 려진다.
“완전히 한서준의 개가 된 건 가?”
과거의 카일이었다면 누군가의
밑에 소속된다는 것 자체가 치욕이 었을 탓에 이런 모욕적인 발언에 길길이 날뛰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카일은 달랐다.
“장래 희망이긴 한데, 아쉽게도 아직 이루지는 못했어.”
구존과 애쉬의 대화를 통해 한서준이 자신을 믿게 하기 위해서는 그 과정이 지극히 깐깐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필요 가치를 보여 주고, 합당한 능력을 증명해야 한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어떻게 증명해야 할지 머리가 아팠었는데,
때마침 EU라는 좋은 진상품이 와 서 그 걱정을 덜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조용히 자료들 내놓 고 가라고.”
낮게 깔린 목소리로 압박을 가해 오는 카일의 모습에 상임의장이 아 랫입술을 질끈- 깨문다.
“기어이 피를 보겠다는 거냐?”
“분쟁은 내 스타일이 아니다만, 이런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지.”
“놈을 막아라!”
상임의장의 우렁찬 소리와 함께, 경호원으로 대기하고 있던 각성자 들이 발을 놀린다.
EU의 사병으로 선발된 이들인 만큼 최소 A급, 몇몇은 아티팩트의 힘을 빌린다면 S급에 준하는 실력 을 지녔다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 이었다.
모두가 실력자들이었지만, 애석 하게도 카일과 칼리번의 몸에 닿을 수 있는 각성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크읍-!”
“으윽-!”
수십 명에 달하던 각성자들이 순 식간에 고통을 호소하며 바닥올 나 뒹구는 모습에 상임의장의 눈이 휘 둥그레진다.
“이게 무슨?!”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 었다.
그러나 정말 눈 하나 깜빡할 사 이에 모두가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젓 고 있었지만, 놀란 것은 비단 상임 의장뿐만이 아니었다.
카일과 칼리번의 눈도 휘둥그레 져 있었다.
“ 뭐야?”
어려운 상대는 아니었다.
A급, 아티팩트의 도움을 빌려서 야 간신히 S급 턱걸이에 도달할 수 있는 각성자들인 만큼 마음먹는다 면 쉽게 이길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일과 칼리 번이 이리도 놀란 것은, 다가오던 각성자들이 손을 쓰기도 전에 쓰러 졌기 때문이었다.
‘대체 누가?’
카일의 머릿속에 의문이 피어나 려던 찰나였다.
“쿤 레옹하츠, 파르슈나 이반젤 라, 호세프 아스파.”
별안간 목소리가 들려왔고 그 신 형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다.
“다행히도 다 여기 있네.”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낸 자에 대 표들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 럼 거세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 런 식으로는 절대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마주해서는 안 되는 인물, 한서준의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어, 어떻게……
천천히 대표들을 향해 걸음을 옮 기는 서준의 모습에 카일과 칼리번 의 눈동자도 보름달처럼 동그래져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곳까지……
이곳은 청사 건물 아래 지하 깊 숙한 곳에 숨겨진 일종의 비밀 기 지였다.
카일과 칼리번도 오랜 시간, 세 계의 권력자들과 암투를 벌이며 생 긴 눈치로 계속해서 감시하고 추적 을 멈추지 않았기에 찾을 수 있었 던 곳이었다.
그런데 서준은 이곳을 어떠한 준
비도 없이 한 번에 찾아낸 것이었다.
두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가 힘들 었지만, 방금 A급 이상의 각성자들을 순식간에 정리하는 저 실력은 눈앞의 존재가 진짜 한서준 각성자 임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아니, 중요한 것은 일련의 과정 따위나 진위 여부가 아니었다.
EU에서 대체 무슨 사고를 친 것 인지 서준의 눈동자에서 분노가 불 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얘네들한테 볼일 있어?”
말을 내뱉는 서준의 등 너머로
몇몇 대표들이 눈빛으로 도움의 사 인을 보냈지만, 카일과 칼리번은 고개를 내젓는다.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흐름을 놓친 자들이 치러야 할 대가일 뿐이었다.
아니, 애초에서준은 카일과 칼 리번이 함께 나선다고 해서 막아 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카일과 칼리번은 황급히 고개를 내젓는다.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말을 내뱉은 두 사람은 옆으로 나란히 비켜서며 서준이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준다.
“현명한 판단이야.”
활짝 열린 길을 걸어오는 서준의 입가에 피어난, 야차(夜X)의 섬뜩 한 웃음에 대표들은 심장이 철렁대려앉는 듯했다.
그러나 오랜 생활 정치를 해 오 며 쌓아 온, 담력과 뻔뻔함으로 노 련하게 감정을 숨겨 낸다.
“무례하오! 대체 무슨 볼일로 이 늦은 시각에 찾아와서 횡포를 부린 단 말이오!”
최대한 침착한 어투로 말을 했지 만, 이러한 연기는 의미 없는 발악 에 불과했다.
서준이 오른손의 검지를 길게 뻗 는 모습에 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므네모시아의 염?!”
한서준을 몰락시키기 위한 계획 을 세우고 명령을 내린 지 일주일 이 넘지 않았다.
모든 기억을 봤을 거라는 말이었다.
“긴 말은 필요 없겠지?”
덜미가 잡혀 버린 것이지만 이곳
에서 쓰러질 수는 없었다.
아니, 방금 전에 보았던 영상 속 한서준의 성정을 생각한다면 절대 로 쓰러져서는 안 되었다.
그렇기에 상임의장은 오히려 더 욱 뻔뻔해지기로 했다.
“네놈이 본 기억들이 진실이라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있을 것 같 나?”
“여기, 바로 눈앞에 있잖아?”
“네 편을 들어 줄 거라고 생각하 는군. 과연 그럴까?”
물론,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이들 이 결속력이 좋거나 의리가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오랜 기간 힘을 합쳐 활 동해 온 만큼 서로가 서로의 약점 들을 잘 알고 있었다.
누구도 마음 편히 배신하지 못할 거라는 말이었다.
그렇기에 쿤은 자신만만한 미소 를 이어 갔다.
“괜한 헛고생을 하지 말고, 빠르 고 간편한 거래를 하나 제안하지.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함세. 그리고 우리를 보내 주면 더 이상 우리도 자네를 건드리지 않는 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본래 지킬 것이 많은 자는 약해 진다.
주변에 폐를 끼치고 피해를 입히 는 것이 두려워서라도 위축될 수밖 에 없었다.
사실, 일방적인 거래도 아니었다.
서로 한 발자국씩만 양보하는, 상당히 합리적인 조건으로 약속하 지 않았는가?
이 정도면 한서준도 어느 정도 화를 누그러뜨리고 거래를 받아들 일 것이라 생각했고, 여태껏 모두 가 그래 왔었다.
물론, 이런 생각들은 상임의장의
착각에 불과한 것이었다.
“개소리도 참 그럴싸하게 하네.”
애초에 권력, 욕심에 눈이 먼 이 들이 말을 지킬 리도 만무했다.
그렇기에, 이들처럼 욕심에 눈이 먼 자들일수록 확실하게 정리를 해 놓아야 했다.
“일단은 기본예절부터 가르쳐야 겠어.”
서준의 신형이 흩어지는 순간, 대표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으아악-!”
생전 처음 느껴 보는 끔찍한 고
통에 비명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볼썽사나운 꼴로 바닥을 구르고 있었지만, 체면 따위를 생각할 때 가 아니었다.
정신을 잃고 기절할 것 같았지 만, 너무나도 끔찍하고 악독한 고 통은 의식조차 붙들어 맨다.
지옥과 같은 시간이라고 생각하 였지만, 이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 과한 것이었다.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인데, 엄살 부리지 마.”
다시 한번 서준의 손이 움직인 다.
이어서, 대표들의 육신이 살아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근육은 뒤틀리고 뼈는 틀어지며 고통이 더 욱더 심해진다.
“끄아아악-!”
횐자위가 드리울 정도로 끔찍한 고통을 느끼는 대표들과 그 광경을 차가운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는 서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흐른다.
“오늘 밤을 절대 잊지 못하게 해 줄게.”
그렇게 영겁과 같은 밤이 시작되 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