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권 25화
100화
흩어졌던 서준의 신형이 모습을 드러낸 곳은 다름 아닌 천위의 앞 이었다.
“으으윽-!”
어느새, 서준의 손아귀에 멱살을 잡힌 천위가 바동거리며 양팔과 다 리를 휘젓는다.
“후, 후회하게 될 걸세!”
천위가 목소리를 높이며 위협했 지만, 서준의 입가에는 비릿한 미
소가 흐를 뿐이었다.
“후회할 짓이었다면 시작도 안 했겠지.”
방금, 천위는 서준의 가족과 소 중한 사람들을 건드렸기에, 명백한 ‘적’。] 되었다.
그리고 서준은 적에게 자비를 보 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서준의 엄격함을 모르는 천위는 계속해서 발버둥을 쳐 간다.
“이,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줄 아는 건가?!”
“너야말로 내 사람들을 건드린다
는 말을 해 놓고 무사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
“현명하게 생각하시게……. 대중 국의 주석인 나에게 이런 무례를 보인 것이 세상에 알려지면 네놈도 지금처럼 편히 생활하기는 힘들게 될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다.
중국에는 세뇌하다시피 교육받은 이들이 많은 만큼 추종자, 세력들 이 많을 것이며 그 수많은 이들이 어떤 형태로 위협을 가해 올지는 전부 알 수가 없었다.
지킬 것들이 있는 서준의 입장에
서는 확실히 조금 귀찮은 일들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천위가 주석으로 남을 때의 이야기였다.
“구존.”
말을 내뱉기 무섭게 구존이 부리 나케 달려오며 대답을 해 온다.
“충! 주군! 부르셨습니까!”
“너 오늘부터 주석 해라.”
구존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주석이 어떤 자리란 말인가?
중국을 대표하는 자리로 15억의 인민을 거느리는 왕(王)이 되라는
이런 직위를 무슨 껌 건네듯 권 유하는 서준의 모습에 구존이 제 귀를 의심하면서 반문을 내뱉는다.
“ 네?”
그러나 서준은 그 구존의 물음에 쐐기를 박아 넣는다.
“오늘부터 주석 하라고.”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현명 한 주군께서 버젓이 존재하시는데, 우둔한 제가 어찌 주석의 자리에 앉을 수 있겠습니까! 부디 명을 거 두어 주십시오!”
서준은 이미 중원 대륙이라는 거
대한 세상을 통치해 본 경험이 있 는 만큼 구존보다 더 효율적이고 확실하게 나라를 거느릴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너무나도 비효율적인 일 이었다.
통치에는 정말로 많은 사람, 인 재들이 필요했다.
그만한 인적자원을 충당해 내는 것만으로도 번거로운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국인이 아 닌 한국인이 주석의 자리에 앉아서 나라를 통치한다고 하면 갖가지 말 들이 나오며 귀찮고 거추장스러운
일들이 벌어질 것이었다.
귀찮은 일들을 덜어 내기 위하여 주석을 갈아 치우려는 것인데 귀찮 은 일을 떠맡을 수는 없지 않은가?
‘적당히 이용해 먹기 좋은 애를 앉혀 두는 게 좋지.’
그런 역할로서 구존은 최고의 인 물이었다.
“그냥 하라면 해.”
서준의 압박에 구존은 묵묵히 고 개를 주억일 수밖에 없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물론, 몇 가지 문제가 존재하긴
했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주군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 해 보겠으나 신(臣), 구존의 능력이 부족하여 혼자만의 힘으로는 주석이 라는 자리를 차지하지 못할 수도 있 다는 점도 염두에 두시옵사……
“왜 네가 혼자야? 여기 도와줄 친구들이 널렸는데.”
서준의 시선이 구석에 움츠리고 있는 중국의 간부들에게 향한다.
“천위보다 더 악랄하면서도 여우 와 같은 놈들입니다. 주군께서 자 리를 뜨시면 금세 가면을 바꿔 쓸
것입니다.”
이건 구존의 의견에 동의할 수밖 에 없었다.
여기 모여 있는 간부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이득을 취하기 위하여 주석의 말도 안 되는 의견에 적 극적으로 동의하면서까지 꼬리를 흔들어 대던 놈들이었다.
지금 당장이야 공포심에 억눌려 고개를 숙이겠지만 본인들의 자리 가 위험해지고, 취할 이득이 없다 는 판단이 내려지면 삽시간에 태도 를 바꿀 놈들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알고 있으면
서도 서준이 자신감 있게 구존에게 명령을 내린 데는 이유가 있는 법 이었다.
“그건 걱정하지 마. 미국에서 네 가 그랬듯, 이들도 오늘을 절대 잊 지 못할 거니까.”
서준에게는 분근착골이라는 아주 좋은 수가 있었다.
비록 조금 시간이 필요하긴 하였 지만, 효과는 확실하다고 볼 수 있었다.
무인(武人)이라 불리는 중원 대 륙 놈들도 굴복한 것을 일반인이 버틸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그러나 이런 서준의 수법을 알 리가 없는 천위는 여전히 자신만만 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크큭- 나의 충성스러운 당원들 이 고작 협박에 굴복할 성싶으냐?!”
대답해 줄 가치도 없는 말이었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 직 접 당해 보면 알 것이기 때문이었다.
분근착골에 당한 천위의 눈이 휘 둥그레 떠진다.
“끄으읍!”
이내 얼마 가지 않아 게거품을 문 채로 비명을 내지른다.
“으아악-! 살, 살려 줘!!”
항상 자신감, 기백이 넘쳤던 천 위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애원하는 모습에 자리에 있는 간부들의 얼굴 이 창백해졌다.
“자 그럼 다음은……
그런 간부들에게로 서준의 시선 이 향하는 순간이었다.
“주석, 아니 천위 저놈.이 헛된 소리를 내뱉은 것입니다.”
“저희들은 한서준 각성자님이 명
하신 대로 다음 주석으로 구존을 추대하겠습니다.”
정말 모래알 같은 결속력이었다.
자신만만해했던 천위의 말과 달 리 삽시간에 태도를 바꾼 것도 모 자라, 서로 충성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 진짜?”
“네! 최선을 다하여 구존을 돕겠 습니다!”
중국 간부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 처럼 대답하고 있었지만, 그 대답 이 무색하게도 서준은 괜한 뒤끝을 남기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이런 여우와 같은 놈들의 말을 믿을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뇌리, 영혼에 확실하게 새겨 놓을 것이었다.
“대답들은 좋았는데 아쉽게도 난 말뿐인 맹세는 믿지 않아.”
때문에, 회의장 내에 있는 간부 들 전원이 분골착근의 끔찍한 고통 을 느끼게 되었다.
“으아악-!”
“끄으아악-!”
“히아아악—!”
서준은 그렇게 바닥을 나뒹굴어
가며 다채롭게도 비명을 내지르는 간부들을 느긋이 바라보았다.
잠시 후.
서준은 분근착골의 시간을 끝낸 후, 앞으로 중국이라는 나라의 태 도, 방향성과 해야 할 일들을 정해 주기 위하여 제법 긴 이야기를 이 어 나갔다.
그렇게 30여 분의 시간이 흘렀을 때쯤, 계속해서 움직이던 서준의 입이 처음으로 움직임을 멈추었다.
“여기까지, 혹시 내 의견에 불만 이 있는 사람?”
가장 구석 편에 있던 국장이 조 심스레 손을 들어 올린다.
“너무 급격한 변화에 인민들이 당황스러워하지 않을까 싶……
일의 순서와 방법에 대해서 조목 조목 설명을 해 줄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빠른 것이 존재했다.
“분근착골?”
서준이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말 하자 중국인 권력자 대부분의 낯빛 이 사색이 되어 간다.
끔찍하면서도 강렬했던 고통이었 던 만큼 뇌리에 확실하게 각인된 탓이었다.
국장은 황급히 용서를 구한다.
“죄, 죄송합니다! 생각해 보니 충 분히 처리가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반드시 성공해 내도록 하겠습니다!”
“자비는 한 번뿐이야. 앞으로 처 신 잘하라고.”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모든 문제를 일단락 짓는 데 성 공한, 서준은 피식 미소를 흘리며 구존을 바라본다.
“이제 할 수 있을 것 같지?”
구존은 직접 분근착골의 고통을 겪어 봤기에 천위, 주석을 포함한 여기 있는 중국 간부들이 절대 반 항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가끔 반항을 일으키고 싶더라도 오늘날의 고통과 주군의 얼굴이 떠 오르면서 그 마음조차 싹 가시겠지.’
그런데 심지어 주군께서는 혹시 모를 상황에 사용할 수 있도록 분 근착골에 대한 것도 전수하기까지
해 준 것이다.
실패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 는 일이었다.
구존은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충, 명 받들겠습니다.”
한편, 영국 런던에 있는 거대한
대저택에 모여서 TV 화면을 보고 있던 금발과 은발을 각각 지닌 두 명의 미남자의 입에서는 연신 헛웃 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성장 속도 네.”
“알고는 있었다만 설마 이 정도 의 괴물일 줄은 몰랐어.”
화면 속에서는, 세계가 주목했던 서준과 악마, 아스모네아의 전투가 재생되고 있었다.
“구존 놈이 다룰 때는 몰랐는데 저 무공이란 스킬은 지극히도 효율 적이고 파괴적인 위력을 가지고 있
었군.”
“동의, 한서준의 영상을 보면서 우리 스킬 체계를 한 번쯤 검토해 볼 필요가 있겠어.”
서로 브리핑을 주고받아 가며 영 상을 시청하고 있던 찰나, 금발을 가진 사내의 입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미쳤군!”
서준이 만들어 낸 거대한 손바닥 내부에 묵색의 업화가 피어나는 순 간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대단하다고 생각 했는데 현경 내의 모든 벽을 넘어
서고 자연계의 능력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될 줄이야. 대단해! 정말 대단하다고!”
우렁찬 감탄을 터뜨리고 있는 금 발의 남자와 달리, 은발의 사내 얼굴에는 그늘이 드리우고 있었다.
“마냥 감탄하며 좋아할 일은 아 닐 텐데?”
“그렇긴 하지.”
은발 사내의 말에 금발의 사내도 뒷머리를 긁적이며, 멋쩍은 미소를 피워 내고 있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둘 은 세계를 수호, 평화를 지켜 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들.
카일 크리스토퍼, 그리고 크라운 즈 나이트의 일관(一冠)을 차지하 고 있는 칼리번 하이드리히였기 때 문이었다.
“미안, 너무 멋있는 걸 봐서 들 떴었나 봐.”
금발의 사내, 카일이 사과를 건 네는 모습에 은발의 남자 칼리번은 고개를 주억이며 생각을 털어놓는 다.
“어떤 사상과 생각을 지니고 있 는지도 모르는 이인데 너무 방치해 버린 것 같군.”
“어쩔 수 없잖아. 이렇게 빨리 성장할 줄도 몰랐고, 애초에 알았 다고 해도 디아볼로스 놈들의 힘이 너무 강력해져 버렸던 탓에 시간을 낼 수가 없었잖아.”
디아볼로스 그리고 AAO와 미국.
두 세력은 완벽한 적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완벽한 우군도 아니었다.
카일 크리스토퍼와 칼리번 하이 드리히가 바라는 것은 균형, 평화 를 지키는 것이었다.
물론, 카일과 칼리번이 아무런 이해관계 없이 오직 정의감 하나로
이런 행동을 벌이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본인들이 쥐고 있는 패권 (0權)을 지키기 위한 수단 중 가 장 편리한 것이 지금처럼 지구를 큰 접전 없이 평화롭게 흘러가게 하는 것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그렇게까지 걱정 할 거는 없는 거 아니야?”
“걱정할 게 없다니? 지금의 한서준은 카일, 너라 할지라도 혼자서 는 감당하기 힘들 거다.”
언성을 높이는 칼리번의 모습에 카일은 황급히 손사래를 친다.
“아니,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
라 여태껏 보고 들어 왔던 한서준 은 큰 분쟁을 만들지 않고 평화를 위해 힘을 쓰고 있는 좋은 인물이 라고 볼 수 있는 사람이잖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어 보이는데 괜히 호들갑 떨고 있는 것 같아서 한 말이지.”
“확실히 지금까지 본 바로는 그 렇기는 한데……
얼굴에 그늘이 드리우고 있는 칼 리번의 모습에 카일이 고개를 주억 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사람 마음이라는 게 쉽 사리 알 수가 없긴 하지.”
“잘 알고 있네.”
피식- 미소를 홀리며 대답을 해 오는 칼리번의 모습에 카일은 기다 렸다는 듯이 질문을 던진다.
“그렇게까지 걱정되면 직접 만나 서 대화를 나눠 보는 게 어때?”
“한국까지 갔다 오라고?”
칼리번이 눈을 휘둥그레 뜨며 반 문을 해 왔지만, 카일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주억인다.
“지금은 가능하잖아.”
그간 한서준을 만나지 못했던 것 은 균형을 수호하기 위하여 수많은
일을 처리하다 보니 함께 움직이지 못해서일 뿐이었다.
그런데 근래 디아볼로스가 급격 히 약해져서 활동하기 힘들어졌을 뿐더러 AAO 팀 미국은 한서준과 접촉한 이후 활동이 눈에 띄게 줄 어 있었다.
충분히 움직일 여유가 있는 상황 이라는 말이었다.
“여유가 있을 때 직접 가서 판단 을 내린다, 확실히 나쁘지 않은 생 각이긴 하네.”
“그럼 한국 가는 걸로 정해진 거 맞지?”
대답 대신 고개를 주억이는 칼리 번의 모습에, 카일의 입가에 씨익 미소가 흐른다.
“그럼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바 로 출발하자.”
“너도 가려고?”
앞서 말했다시피 디아볼로스와 미국 모두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는 지금이라면 움직일 여유 는 충분했다.
그러나 카일이 직접 움직이는 것 은 단순한 시간적 여유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모든 것을 다 귀찮아하던 인간
이 왜 이렇게 적극적일까?”
카일을 향하고 있는 칼리번의 눈 이 가늘어진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 금의 카일은 귀찮아하기는커녕 계 속해서 엉덩이를 들썩거려 가며 언 제든지 일어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생각해 봐, 방금 그런 영상을 봤는데 어떻게 집에 있을 수 있겠 어?”
카일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흐른 다.
“가서 미리미리 사인 받아 놓고 친목을 다져 놔야지.”
“웬일로 머리가 빨리빨리 돌아가 고 열의를 보인다 했더니만 애초에 그게 진짜 목적이었나 보네.”
“왜? 혹시 내가 처리해야 할 일 이 있는 거야?”
혹시나 동행하지 못하게 될까 봐 카일의 눈동자가 거세게 혼들리는 모습에, 칼리번은 황급히 손을 내 젓는다.
“아니, 그냥 농담 삼아서 던진 말이었어.”
오히려 칼리번의 입장에서 카일 의 동행은 상당한 행운이라 볼 수 있었다.
‘만에 하나의 확률로 접전이 생 길 경우 큰 힘이 되겠지.’
무엇보다도 애초에 카일의 성격 상 말린다 해서 말릴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다른 선택지가 존재치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럼 비행기는 내가 호출해 놓 을 테니, 필요한 짐들 챙겨서 이 앞에서 만나자고.”
“오케이.”
짧은 대화를 주고받은 두 사람은 곧장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한국으로 향할 준비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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