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권 24화
99화
충칭시, 비상 대책 위원 간부회 의 본사.
원형의 탁상에 앉아 있는 중국을 대표하는 주요 인물들 앞에서 구존 의 얼굴이 잘 익은 사과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악마 토벌의 보상으로 고작 A 급 아티팩트를 내놓겠다니, 제정신 으로 하는 말인가?”
중국은 처음 약속했었던 때와 달
리 서준에게 내어 주어야 할 보상 의 격을 완전히 낮추고 있었다.
이는 충성을 맹세한 주군이기 전 에, 멸망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해 준 은인에게 보이는 처사라고는 생 각할 수 없었기에 구존이 목소리를 드높이며 항의를 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간부라는 놈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구존의 말을 받아 냈다.
“구존! 말을 높이시오. 그리고 이 건 정말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 않 습니까.”
“그리고 생각해 보면 한서준 각
성자 혼자의 힘만으로 악마를 막아 낸 것은 아니잖소? 우리 중국도 악 마 토벌의 진군을 멈추고, 맞서 싸 우는 충분한 공헌을 보였었으니 어 찌 보자면, 이게 합당한 보상이 아 니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변명에 구존의 입 에서 헛웃음이 흐른다.
“너희들은 정녕 이 나라, 중국이 망하는 꼴을 보고 싶은 거냐?!”
“반대지요. 부국강병이 무엇이겠 습니까. 바로 이런 거 아니겠습니 까‘?”
“총리 말씀이 백번 맞습니다. 타
국인에게 귀한 아티팩트를 넘겨줘 서 좋을 것이 뭐가 있단 말입니 까?”
말이 통하지 않는 답답함에 구존 은 깊은 한숨을 내쉰다.
“하아......
구존은 고개를 돌리어 마지막 희 망이라 볼 수 있는 주석, 천위(陳 字)를 바라보며 물었다.
“정말 이런 식으로 할 건가? 이 래서 중국이 발전할 수 있겠소?”
그러나 그 호소가 무색하게도 천 위 또한 간부들과 같은 대답을 내 놓는다.
“총리가 말했듯이 우리 중국이 입은 피해도 상당한 편이네. 남의 나라를 챙겨 주고 있을 여유 따위 는 없구먼.”
“주군…… 아니, 한서준 각성자 님의 분노를 감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한서준의 강함은 본인도 인정하 네. 그러나 넓게 봐야 하지 않겠나. 아무리 양보해도 한국은 반도에 갇 혀 있는 약소국에 불과한 곳. 감히 우리 대중화(大中華)의 결정에 불 만을 품을 수 없을 걸세.”
천위가 말을 끝맺기 무섭게 간부
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아첨하기 시 작했다.
“주석님 말씀이 옳습니다. 우리 가 만들어 놓은 연줄들을 이용하여 한국 정부 사람들을 이용하고 압박 을 넣는다면 한서준도 감히 큰소리 를 내지 못할 것입니다.”
한심하기 그지없는 주석과 간부 의 모습에 구존이 절레절레- 고개 를 내젓는다.
“멍청한 인간들……. 내가 장담 하건대 오늘의 이 선택은 너희들 혹은 중국의 파멸을 불러오게 될 것이다.”
구존은 나름의 진심 어린 조언을 해 준 것이었지만 말 그대로 소 귀 에 경 읽기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오히려 윽박을 내지르며 구존을 압박해 오고 있었다.
“무슨 그런 망발을! 말씀을 삼가 십시오!”
“구존! 아무리 자네가 구룡문의 문주라 할지라도 감히 주석님에게 그런 무례를 보이시는 건 안 됩니 다.”
고작 이 정도 말을 무례라고 보 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천위, 주석의
체면이 있었기에 아주 순화해서 내 뱉어 준 말이었다.
‘욕심에 눈이 먼 개돼지 같은 놈 드 ,
지금 한서준 각성자를 등지는 것 은 세계를 적으로 돌리겠다는 말이 었다.
각성자, 세계의 동태 따위는 전 혀 보지 않고 탁상공론이나 벌이는 멍청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오늘은 그 정도가 너무나도 심하였 다.
‘나라를 이끄는 지도층이라는 놈 들이 단 한 치 앞도 못 보고 있다
니.’
이렇게 되면 이 나라, 중국은 더 이상 미래가 없었다.
남아 있어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결단을 내린 구존이 고개를 주억 이며 입을 열었다.
“네놈들의 뜻이 그러하다면 나와 구룡문의 문파원들은 중국의 시민 권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귀화 를...
구존이 귀화에 관련하여 폭탄 발 언을 내뱉고 있던 순간이었다.
쾅-!
폭음과 함께 부서진 문 너머에서 사람 한 명이 회의장 내부로 날아 들어 왔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천위의 미간 이 찌푸려진다.
이를 재빠르게 캐치한 총리가 목 청껏 소리를 내지른다.
“누구냐! 이곳에 감히 누가 계신 줄 알고 소란을 벌이는 거냐!”
그러나 총리의 용감한 기백은 오 래가지 못했다.
아니, 겁먹은 개처럼 몸을 발발 떨며 꼬리를 내려야만 했다.
“당, 당신이 왜 여기에……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부 서진 문짝의 너머로 들어오고 있는 존재는 다름 아닌 서준이었기 때문 이었다.
합당한 보상을 요구하기 위하여 시청의 내부로 걸음을 옮기던 서준 의 앞길을 거구의 사내, 각성자들
과 함께 경호실장이 막아서며 입구 를 가린다.
“죄송합니다만, 회의 동안 그 누 구도 들여보내지 말라는 주석님의 명령이 있었습니다.”
서준의 고개가 갸웃거린다.
“ 회의?”
“네. 중요한 회의라고 절대, 그 누구도 접근을 허락지 말라 하셨습 니다.”
나라를 구해 준 영웅으로서 문전 박대를 당하는 것이 기분이 썩 좋 지는 않았지만, 그럴싸한 명분이 있는 만큼 그냥 돌아가야 하는 것
이 맞았다.
그런데 너무나도 뛰어난 육체, 청각이 그 명분을 부숴 버리고 말 았다.
-토벌의 보상을 A급 아티팩트로 내놓겠다니 제정신으로…….
한껏 격앙되어 열변을 토해 내는 구존,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늘어놓 으며 보상을 내놓길 거부하려는 총 리와 주석의 이야기까지.
회의장 내부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야기가 전부 귓전에 생생하게 전 해진 것이다.
화장실 들어갈 때랑 나올 때랑
다른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모든 일에는 정도가 있는 법이었다.
하지만 중국은 그 정도를 넘어서 고 있었다.
때문에, 서준의 속에서 분노가 치솟았지만, 길을 막고 있던 거구 의 사내들과 경호실장은 이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며 앵무새같이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
“돌아가 주십시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회 의장은 특제 마정석으로 제작된 공 간, 방음이 거의 완벽할 정도로 잘 된 공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주석과 총리를 비롯한 중 국의 간부들도 그걸 믿고 마음껏 목소리를 높이고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초월자를 넘어선 서준의 청각은 회의장 내부의 소리마저 캐 치해 내고 있었다.
물론, 지금 중요한 것은 방음의 상태, 서준의 뛰어난 청각 같은 것 들이 아니었다.
서준이 회의장 내부에서 진행되 는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있을 거 라 생각한 경호실장이 큰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주석님께서는 중요한 회의 중이시 니 이만 돌아가 주십시오.”
경호실장이 우두커니 서서 버티 고 있는 서준을 향하여 낮은 목소 리로 경고를 가한다.
서준의 입가에 피식- 웃음이 새 어 나온다.
당연하지만 이 미소가 기분이 좋 아서 흘러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너도 좋아서 하는 일은 아닐 수 도 있으니까, 딱 한 번의 기회를 주마……
말을 내뱉는 서준의 목소리가 낮 게 가라앉는다.
“비켜.”
마치 위협적인 맹수가 눈앞에서 있는 듯한 기세에 원초적인 공포를 느낀 경호실장의 몸이 움츠러든다.
그러나 길을 비켜설 수는 없었다.
“주석님의 명령입니다. 그 누구 도 이 앞으로는 지나가실 수 없습 니다.”
경호실장이 어째서 이렇게까지 자리를 사수하려고 하는지는 쉽게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공산국가인 중국에서 주석의 명 령은 절대적이었다.
만약 여기서 길을 터 주게 되면 돌아오는 것은 주석의 분노, 죽음 뿐이라는 말이다.
어느 정도 납득은 가지만 그렇다 고 이해해 줄 이유는 없었다.
“이것이 너의 선택이냐?”
경호실장과 눈을 마주하고 있던 서준의 발이 움직인다.
눈앞에서 보고 있었지만, 경호실 장의 능력으로 서준의 움직임을 쫓 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신기루처럼 흐려졌던 서준의 신
형이 경호실장 앞에서 모습을 드러 낸다.
“내가 내린 결정이니 후회하지는 마.”
드랭크에도 도달하지 못한 나약한 각성자들에게는 주먹을 쓸 것도 없 었다.
손가락 둘. 그것 하나면 족했다.
이윽고 엄지가 지탱하고 있던 검 지를 놓았다.
쾅-!
검지에 이마를 가격당한 경호실 장의 신형이 허공을 노닐고는 마침 내 회의장 입구에 정통으로 부딪쳐
박살을 냈다.
“더 불만 있는 사람?”
손도 써 볼 수 없었던, 아니 눈 으로 좇지도 못했던 압도적인 서준 의 무력을 본 지금 감히 누가 불만 을 표할 수 있겠는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거 구의 사내들은 황급히 길을 텄다.
서준은 그렇게 활짝 열리게 된 길 위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회의장 내부에 들어서자 몸을 움츠린 채로 서 있는 중국을 이끈다는 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겁먹은 하룻강아지처럼 몸을 발
발 떨고 있는 간부들을 바라보며 서준이 피식 미소를 홀렸다.
“밖에서 들어 보니 재미있는 이 야기를 하던데 나도 좀 끼워 줬으 면 해서.”
앞서 압도적인 무력, 서준의 패 도적인 행각을 두 눈으로 본 만큼 중국 간부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 가 되어서 서준의 눈치를 보기 바 쁘던 와중이었다.
쿵-!
갑작스레 책상을 내려친 천위가 목소리를 드높인다.
“한서준 각성자, 지금 이게 무슨
무례인가?”
당연하지만 천위는 아무런 근거 없이 이렇게 목소리를 높이며 자신 감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두려워할 거 없다, 한서준은 국 제 영웅이라 불리는 놈이다.’
함부로 범죄를 저지를 만한 사람 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계속해서 생각을 되뇌며 스스로 에게 최면을 걸자 날뛰던 심장이 차분해지고, 전신을 억누르던 공포 와 압박감이 사라진다.
여유를 찾은 천위가 더더욱 목소 리를 높였다.
“나는 대국! 중화인민공화국을 대표하는 주석, 한 나라의 수장에 게 이런 무례를 보이는 것은 심각 한 국제적 범죄라는 것을 모르는 건가?”
뭐든 처음이 어려운 법이라고 하 지 않는가?
두 번부터는 난도가 극히 쉬워졌 고, 세 번째는 평소와 같이 기백 넘치는 천위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 다.
“자네의 무례한 행동이 도를 넘 긴 했으나, 넓은 아량을 베푸는 것 또한 위대한 통지자의 덕목, 이쯤
에서 그만두면 나이 어린 친구가 사회 경험이 없어서 벌인 실수라고 이해해 주도록 하겠네. 그러니 이 쯤에서 그만 사과를 하고 물러나시 게나.”
기가 찬 천위의 말에서준의 입 가에 헛웃음이 흐른다.
“나보고 사과를 하라고?”
“자네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한 손으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전체 를 지킬 수 있을 것 같나?”
“한국과 전쟁이라도 벌이겠다는 말이야?”
“천위! 선을 넘지 말게!”
구존이 소리를 내지르며 만류했 지만, 기세가 잔뜩 오른 천위의 행 보는 거침없었다.
“그건 자네의 태도에 따라 달라 지겠지.”
천위를 향하고 있는 서준의 눈빛 이 차갑게 가라앉는다.
맹수를 눈앞에서 마주하고 있는 듯한 압박감이 느껴졌지만, 천위는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그 기세에 대응하는 뻔뻔 함을 이어 갔다.
“친구, 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 현명한 선택을 내려야 할 걸세, 한서준 각성자.”
애초에 천위가 믿고 있던 최후의 보루는 바로 이것이었다.
한서준이 지금처럼 제멋대로 날 뛴다면, 단순한 불화로 끝낼 만한 일이 아니었다.
수장과 간부, 나라 자체를 위협 하는 행위인 만큼 국가 간의 전쟁 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사항이었다.
그렇기에 한서준은 함부로 행동 할 수 없을 것이다.
본디, 지킬 것이 많은 자는 약해
지기 마련이었다.
‘나라, 그리고 가족, 그 외의 지 인 등 수많은 요소가 신경이 쓰이 겠지.’
당장 중국이 핵을 쏘아 낸다면 서준 혼자서 모두 막아 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천위는 서준이 꼬리를 말고 고개를 숙일 것이라고 생각했 고 여태껏 대부분이 그러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상대가 좋 지 못했다.
천위를 주시하고 있던 서준의 눈
빛이 한겨울의 얼음장보다 더 차가 워져 있었다.
“구존의 충언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더니 기어이 넘지 말아야 할 선 을 넘어 버리네.”
말을 내뱉은 서준의 신형이 그림 자처럼 사라졌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