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권 22화
97화
이미 한번 넘었던 벽이었으나, 그 쾌감은 몇 번올 겪어도 처음과 다를 바 없이 전율이 돋는다.
‘언제 느껴도 짜릿하네.’
생각해 보면 무인으로서 스스로 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보다 더 좋 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자연스레 서준의 얼굴에 환한 미 소가 흐른다.
“고맙다.”
서준이 과거의 기억과 경험을 되 살려 내는 것으로 벽을 넘게 도와 준 아스모네아에게 진심으로 감사 를 표하고 있었다.
그러나 계속해서 공격을 펼치느 라 정신이 없었던 아스모네아는 그 뜻을, 서준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 했다.
[영문 모를 소리를 하는군. 죽을 때가 되어 정신이 나간 것인가?]
정신은 멀쩡하다 못해 상쾌하기 그지없는 상태였지만, 굳이 그것을 설명해 줄 필요는 없었다.
‘곧 스스로 알게 되겠지.’
자신을 옭아매고 있던 관념에서 벗어남으로써 서준은 과거처럼 굳 이 아스모네아의 지근거리로 접촉 을 하려 하거나, 쏟아지는 공격들을 피할 필요가 없어졌다.
‘가장 나, 천마스러운 방식으로 나아간다.’
앞을 가로막으려는 모든 것들을 짓이기고 부숴 낸다.
그것이 천마, 마선 한서준의 방 식이었다.
사삭-!
가슴팍 앞에 손을 일자로 세운 서준의 등 뒤로 천마, 마선의 기운
이 모여든다.
전신의 내력이 한자리에 모여든 기운들에 응집, 중첩되어 증폭의 묘리를 담아내며 거대한 손의 형태 를 만들어 간다.
세 가지의 묘리가 담긴 기운, 손 은 순식간에 크기를 부풀려 삽시간 에 저 하늘의 태양을 가리고 하늘 을 뒤덮었다.
그 순간, 서준은 일자로 세우고 있던 손을 앞으로 뒤집으며 손을 천천히 말아 쥔다.
“천마림(天魔臨), 천마장악(天魔 掌提).”
세상을 뒤엎고 있던 거대한 천마 의 손이 움츠러들었다.
콰지지직-!
그러고는 그 안에 있던 무수히 많던 기공, 마법진들은 물론, 세상 마저 찌그러뜨려 간다.
거대한 천마의 손아귀가 주는 극 도의 압력에 사지가 터져 나간 아 스모네아가 경악 섞인 말을 흘려 낸다.
[이런 마법을 펼칠 수 있었다 고‘?]
아니, 분명 이 정도로 마나를 자 유롭게 다뤄 내지 못했었다.
그 짧았던 전투의 순간 한층 더 강해졌을 뿐이었다.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존재 가…….]
상위종인 악마, 천사들조차 이런 성장은 금시초문이었다.
아니, 전설로만 내려오는 용들도 전투 도중 이렇게 갑작스러우면서 도 엄청난 성장을 보였다는 사례가 존재치 않았다.
그런데 하등종, 그것도 바닥에 있는 지구의 인간이 상식, 사례들을 부숴 버리고 있었다.
[인간! 대체 네놈의 진짜 정체가
무엇이냐?!]
아스모네아가 크게 당황을 했는 지, 고래고래 소리를 내지르며 질 문을 던져 왔지만 서준이 그것에 대해서 대답해 줄 이유가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답해 줄 가치 가 없는 놈이었다.
이렇게 나약한 존재라면 대답해 준다고 할지라도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격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다.
단순히 힘을 응집, 중첩, 중폭시 키는 것뿐이었다면 벽을 넘어섰다
고 말할 수 없었다.
‘내공을 변환시킨다.’
평범한 내공의 속성 변환이 아 닌, 강기의 끝에 도달한 힘이자 기 운의 응집체라 볼 수 있는 극강기 를 변화시킨다.
응집, 중첩, 중폭에 더불어 변환 의 묘리를 동시에 담아내겠다는 말 이었다.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의 내공의 양, 정교하면서도 섬세한 운용이 필요하였지만 지금의 서준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화르륵-!
진정한 불꽃, 그것도 극강기로 빚어진 천마의 불꽃이 손바닥에 피 어난다.
“천마림(天魔臨), 절초, 마도멸겁 (魔道滅幼).”
서준이 펼치고 있는 손을 말아 쥘수록 거대한 손바닥도 서서히 좁 혀져 간다.
동시에 그 안에 피어난 천마의 불길들이 맞부딪치며 연쇄 폭발이 일어났다.
콰광, 콰과과광!
타오르는 불길, 터지는 폭발들에 아스모네아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
었다.
저 인간이 만들어 낸 불꽃은 판 데모니움, 지옥의 업화(業火)와 같 은 위력을 가지고 있는 것을.
그렇기에 확신을 할 수 있었다.
‘지금 내 힘으로는 이 공격을 막 아 낼 수 없다.’
도망쳐야 한다.
하지만 어디로 도망을 친단 말인 가?
세상을 덮고 있는 이 손아귀의 영향이 닿지 않는 곳 따위는 없을 것이다.
한 번도 생각해 보았던 적 없던 죽음, 그것도 하등종인 인간들이 살고 있는 지구에서 그것이 찾아오 고 있다.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
‘생각해라, 분명 방법이 있을 거 다.’
판데모니움에도 천계, 엘리시움 에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아 나올 수 있다는 속담이 있지 않은 가?
재빨리 머리를 굴려 가던 아스모 네아의 눈동자에 희망이 깃든다.
[멈, 멈춰라! 여기서 이 불꽃을 터뜨린다면 근방에 있는 인간 놈들 도 무사하지 못할 거다!]
이 괴물 같은 인간은 방금까지도 다른 벌레들이 도망치는 것을 돕기 위해 직접 손을 쓴 적이 있었다.
같은 종인 인간을 어느 정도 아 낀다는 말이었다.
그렇기에 희망이 존재했다.
지옥의 업화와 같은 이 불꽃이 터져 나간다면 도시, 근방의 사람 들이 무사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 다.
실제로 효과도 상당했다.
계속해서 조여 오는 것을 멈추지 않던 손아귀가 잠시 움직임을 멈추 었으니 말이다.
“확실히 그렇긴 하겠네.”
고개를 주억이고 있는 서준의 모 습에 희망을 엿본 아스모네아가 다 급하게 말을 쏟아 낸다.
[거래! 거래를 하자! 날 살려 보 내 준다면 두 번 다시 인간을 해치 지 않도록 약속을 하겠다!]
“정말로?”
[맹세하겠다!]
“에이, 악마 말을 어떻게 믿어.”
[진심이다! 원한다면 계약을 맺 도록 하겠다!]
계약, 악마족에게 가장 우선시되 는 규율이자 어길 경우 힘의 일부 가 박탈되고 지위가 하락하게 되는 절대적인 법률.
만약 계약을 지키지 못할 경우, 악마로서의 존재가 부정되어 소멸 하게 되는, 일종의 강력한 제약이 었다.
이러한 계약을 내걸 정도로 아스 모네아는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고 있었지만, 애석하게도 서준은 들은 체도 해 주지 않고 있었다.
그저, 품 안에서 작은 돌을 꺼내 와 마력을 주입할 뿐이었다.
서준의 손에 들려 있던 자그마한 결계석은 삽시간에 넓게 영역을 펼 쳐 나간다.
“그것보다는 이게 더 확실한 방 법이지 않을까?”
일전에 엘레오노르와 접전을 치 르고 나서 회수했던 결계석이었다.
동시에 뉴욕에서 엘레오노르와 접전을 치렀던 결계였기에 그 내구 성은 보장이 확실히 되어 있다는 말이었다.
물론, 마도멸겁은 그때와는 수준
이 다른 공격인 만큼 충격을 견디 지 못하고 부서질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아스모네아가 생 각했던 것처럼 큰 피해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이로써, 아스모네아가 가했던 협 박이 소용없어졌다는 것이었다.
[빌어먹을…….]
상위종인 악마로서, 하등종인 인 간 따위에게 패배를 겪는 것도 크 나큰 치욕이었다.
게다가 완전 놀잇감 취급까지 당 했다.
일그러진 아스모네아의 표정을
바라보고 있는 서준의 입가에 비릿 한 미소가 흐른다.
“덕분에 오랜만에 재미있었다.”
마지막 인사를 건넨 서준은 펼치 고 있던 손아귀를 꽈악- 말아 쥔 다.
콰쾅!
거대한 천마 손바닥의 압력 그리고 지옥의 업화가 아스모네아를 뒤 덮으며, 살이 타고 육체가 짓이겨 지는 고통이 밀려온다.
[끄아아악-!]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는 아스 모네아의 신형이 짓이겨지고, 잘게
부서진 육체의 조각들이 활활 타오 른다.
종(種)의 특성이라 할 수 있는 뛰어난 재생 능력이 발휘되며 상처 를 수복하려 하였지만, 지옥의 업 화 앞에서는 무의미한 것에 불과했 다.
지옥의 업화는 단순한 피부, 근 육뿐만 아니라 근간이라 볼 수 있 는 종의 세포마저 불태워 내며 모 든 것을 집어삼키는 불꽃이다.
이 불꽃 앞에서는 아스모네아가 잘난 듯이 떠들어 댔던 재생 능력 따위는 보잘것없는 거에 불과하다 는 말이었다.
[위대한 악마종인 이 아스모네아 님이 인간 따위에게……!]
쾅-!
삼류 악당들과 같은 마지막 말을 남긴 아스모네아의 신형이 한 줌의 재조차 남기지 못하고 자취를 감추 었다.
띵-!
[악마족 사 군단, 부장 아스모네 아를 처치해 냈습니다!]
[경험치가 대폭 상승합니다!]
[레벨이 가파르게 상승하였습니
다.]
[축하드립니다! 경험치를 충족함 에 따라 레벨이 96으로 상승하였습 니다.]
[정복왕의 수투가 악마, 데몬의 심장을 섭취했습니다.]
[수투에 걸린 봉인의 일부가 해 제됩니다.]
[봉인이 해제됨에 따라 정복왕의 수투의 옵션이 강화 및 추가로 개 방됩니다!]
[능력이 상승함에 따라 정복왕의 수투의 등급이 EX등급으로 상승합 니다!]
기분을 좋게 해 주는 메시지 창 이 무수히 많이 떠올랐지만, 아쉽 게도 아직 이를 만끽하고 있을 수 가 없었다.
‘쥐새끼가 붙어 있었네.’
아스모네아가 내뿜는 존재감, 거 대한 기에 가려져 있었는데 아주 교묘하게 마나의 흐름이 뒤틀린 영 역이 존재했다.
미국, 뉴욕에서 이미 한번 느껴 본 적이 있던 만큼 서준은 이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디아볼로스의 결계.’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디아볼로스는 악마, 아스모 네아와 연관이 있었던 것이었다.
절대로 그냥 보내 주어서는 안 되는 이들이자 서준이 외지의 땅인 중국까지 직접 나선 이유가 이곳에 있다는 말이었다.
서준은 곧장 발을 놀리며, 마나 의 흐름이 뒤틀려 있는 곳으로 향 한다.
쉭-!
발을 놀린 서준이 도착한 곳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 그러나 이런 눈속임에 속아서는 안 되었다.
서준은 손을 말아 쥐며, 극강기 가 둘러진 주먹을 내뻗는다.
챙-!
별안간 유리 깨지는 소리와 함께 결계가 부서진다.
그 안에 숨어 있던 존재의 모습 에서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피어났다.
“나타샤 그리코바노프.”
예기치 못했던 갑작스러운 서준 의 방문에 나타샤의 눈이 휘둥그레 진다.
“어떻게……!”
당황은 잠시뿐, 부의장이라는 직 책을 허투루 달고 있는 것이 아닌 지 나타샤는 곧장 상황 파악을 마 치며 도주를 준비한다.
하지만 현경의 끝자락에 도달한서준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원류, 천마신장.”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손에 억눌린 나타샤의 눈동자가 지 진이라도 난 것처럼 흔들린다.
“살, 살려 줘!”
“걱정 마, 죽이지는 않을 거니 까.”
나타샤에게로 걸음을 옮기고 있 는 서준의 손에는 회색빛 기운이 일렁거렸다.
퍼억-!
회색빛 기운이 서린 서준의 팔이 아랫배를 가격하는 순간, 나타샤의 입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온다.
“끄아악-!”
고통에 몸부림을 치던 나타샤는 얼마 가지 못하고, 흰자위를 드러 내며 의식을 완전히 잃으며 바닥에 고꾸라진다.
띠링-!
[흡성대법을 사용해 나타샤 그리 코바노프의 내공 스텟을 10만큼 갈 취해 왔습니다!]
경지의 차이가 아득했고, 내공의 질이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 었던 만큼 홉성대법을 통하여 나타 샤로부터 흡수한 내공의 양은 미미 하기 그지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아쉬워할 것은 없었다.
애초에, 이미 아스모네아를 처치 한 것으로 큰 성장을 이룬 서준은 이런 내공 따위를 얻기 위해 나타
샤를 기절시킨 것이 아니었기 때문 이었다.
“무슨 짓거리를 벌이고 있는지 한번 봐 볼까.”
널브러져 있는 나타샤의 신형을 들어 올리고 있는 서준의 손가락에서는 므네모시아의 염 반지가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귀환한 천마는 만렙 플레이어